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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전례
작성자 말씀과 전례
작성일 2008년 2월 5일 (화) 17:13
분 류 사순시기
ㆍ추천: 0  ㆍ조회: 3477      
IP: 211.xxx.24
http://missa.or.kr/cafe/?logos.996.
“ 가해 사순 제 1주일 주일 강론 모음 ”
 

사순 제 1주일

예수께서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제 1독서: 창세 2,7-9; 3,1-7

제 2독서: 로마 5,12-19

복 음: 마태 4,1-11

 사순적은 그 근원적 축제인 빠스카를 지향하고 있다 : 예비자들은 이시기에 보다 더 열심히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하며 또한 통회함으로써 빠스카 축일 성야에 세례를 받도록 자신들을 준비한다.

 그러므로 40이라는 수자로 상징되는 사순절의 긴 여정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생명’이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여정이다.

 40이라는 수자는 성서적 전승에서 볼 때, 하느님과의 만남에 앞서 갖게 되는 특별한 약속과 신자의 시기를 뜻한다 :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헤맨 40년(신명 8,2-4 참조), 모세가 산 위에서 보낸 40주야(출애 34,28 ; 신명 9,9 참조), 엘리야가 호렙산을 향해 밤낮으로 걸어간 40일(1열왕 19,8참조) 등을 생각해 보라.

 하느님께 다다르는 일은 어느 누구에게도 - 그리스도에게까지도- 쉽지 않다! 침묵 속에서 자신의 주위와 자신의 내면을 비워야 한다 : 또 마치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주님의 말씀을 외로이 바위 위에 새겼듯이 그 말씀이 우리 마음속에 들어와 새겨지도록 해야 한다: 또한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계획에 대한 불만과 무관심을 갖게 하는 ‘의심’을 우리 안에 야기 시키고 자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하는 사탄 (욥기 1,6 참조)을 물리쳐 이겨야 한다. 이러한 것들이 사순절인 오늘부터 우리를 내적 순례를 통해 ‘우리의 과월절 양’(1고린 5,7)이신 그리스도와의 새롭고도 환희에 찬 만남에로 인도하기 위해 우리에게 요구하는 근본적인 요구들이다.



예수께서 받으신 ‘유혹’의 의미

 그런데 예수께서도 극적이면서도 고통스러운 ‘사십일 간의’ 체험을 하셨기 때문에 전례 상으로 예수께서 하신 그 체험에다 우리의 깊은 관심과 믿음의 눈을 돌리는 것보다 더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이 분명하다. 사실, 예수께서 받으신 ‘유혹’에 관한 그 신비스럽고도 놀라운 이야기의 메시지를 알아듣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믿음의 태도가 필요하다.

 예수의 유혹에 관한 이야기가 A해에는 마르코복음(1,12-13:두구절로 간단히 편집되고 있다)보다는 휠 씬 길고 루가복음 (4,1-13)과는 사실상거의 일치하고 있는 마태오 복음에 의해 소개되고 있다.

 문학 비판적 관점에서 보나 역사적 관점에서 보나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는 문제는 많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그것들을 다 다룰 수 없다. 그래서 다만 그 개개의 우혹들이 제시되고 있는 강한 ‘극적 표현’을 강조함에 있어서 학자들 간에 본질적으로 일치하고 있는 점만을 살펴보기로 한다. 물론 여기서 그 개개의 유혹들은 마치 예수께서 사탄과의 극적인 만남을 통해 느끼시는 것을 사진을 박아내듯이 표현한 것으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그때에 예수께서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사십 주야를 단식하시고 나서 몹시 시장하셨을 때에…”(마태 4,1-2).

 이보다 앞서 예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을 때 ‘비둘기 모양으로’(3,16)그분의 머리 위에 내려 오셨던 하느님의 ‘성령’이 여기에 서는 그분을 광야로 ‘인도하시어’, ‘유혹을 받게 하신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이것은 다음 두 가지 사실을 말해준다 : 첫째로, 여기서 서술되고 있는 ‘유혹’은 하느님의 계획의 한 부분으로서 그리스도에게나 우리에게나 은혜로운 것이다. 둘째로, 그 유혹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3,17)라는 성부의 선포에 뒤이어 나오고 있기 때문에 ‘메시아적’ 형태의 유혹이다. 사실, 사탄은 그리스도께 접근해서 그분의 메시아적 신분에 대해 두 번씩이나 확인하려고 시도 한다 :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93.5절).

 뿐만 아니라 메시아니즘을 확실히 선택할 것을 촉구한다. 그 당시 메시아에 대한 기다림은 온통 환상적인 희망에 들떠 있었다 : 증오할 로마인들의 지배하에 놓여 있던 팔레스티나의 특수한 정치적 상황을 전제해 볼 때, 거기에는 모든 것이 폭력에 의해 뒤엎어 졌으면 하는 바람이 지배적이었다. 이스라엘의 명예와 품위를 다시 세워 일으키기위해 무력이라도 행사할 수 있는 강력한 메시아를 꿈꾸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도 잘 알고 있는 ‘열성당원’들의 운동은 이러한 기다림이 얼마나 만연해 있었는가를 말해주고 있다.

 이러한 ‘정치적’ 메시아니즘의 분위기는 별문제로 한다 하더라도 이사야 예언자가 그의 유명한 ‘야훼의 종의 노래’에서 예언했고 또 위에서 언급한 장엄한 선포(“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이사 42,1참도)가 시사하고 있는 비천하고 고통 받는 그런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들은 아주 적었었다(아니 어쩌면 거의 없었을 것이다).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당신의 죽음을 예고하실 때 베드로는 “주님, 안됩니다. 결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마태 16,22)라고 격렬한 어조로 예수께 대든다. 그러나 바로 그때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은 가혹한 말씀으로 그를 물리 치신다 :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장애물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는 구나”(16,23). 예수의 이 말씀은 말할 것도 없이 광야에서의 유혹의 장면을 연상케 한다.

베드로가 사탄이라고 불리고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십자가의 길에서 벗어나게 하려 하기 때문이다. 광야에서 그리스도를 시험하는 마귀도 마찬가지로, 예수께 즉각적인 성공, 권력, 명예를 가져다주는 안이한 메시아니즘 - 어느 누구도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치기는  커녕 손뼉을 치며 환영하게 될 - 을 제시하면서 성부께 대한 순명의 길에서 벗어나도록 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사탄의 유혹을 이겨내시기 위해 어째서 복음사가가 유혹사화를 하나의 이야기로 전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 안에다 그리스도의 생애 ‘전체’의 체험을 ‘압축시켜’전하고자 하는지도 알아들을 수 있다: “우리의 사제는 연약한 우리의 사정을 몰라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와 마찬가지로 모든 일에 유혹을 받으신 분입니다. 그러나 죄는 짓지 않으셨습니다”(히브 4,15).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까지 안이한 메시아니즘의 길에로의 유혹을 받으셨다 : “남은 살리면서 자기는 못살리는구나. 저 사람이 이스라엘의 왕이래. 십자가에서 한번 내려와 보시지. 그러면 우리가 믿고말고”(마태 27,42).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

위 구절에서 직접적인 이익을 얻고 열광적인 환영을 받으려면 권능의 행동과 기적을 행해보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은 바로 광야에서의 유혹의 경우와 같지 않은가!

 “사십 주야를 단식하시고 나서 몹시 시장하셨을 때에 유혹하는 자가 와서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성서에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고 하지 않았느냐?’하고 대답하셨다. 그러자 악마는 예수를 거룩한 도시로 데리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뛰어내려 보시오. 성서에<하느님의 천사들을 시켜 너를 시중들게 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너의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 하지 않았소?’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떠보지 말라>는 말씀도 성서에 있다’ 하고 대답하셨다. 악마는 다시 아주 높은 산으로 예수를 데리고 가서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며 ‘당신이 내 앞에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사탄아 물러가라! 성서에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고 하시지 않았느냐?’ 하고 대답하셨다”(마태 4,2-10).

 이렇듯 생생하게 극화되어 묘사되고 있는 이 이야기에서 어떤 중요한 내용이 점진적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감지할 수 있다. 즉 오랫동안의 단식 후에 빵을 얻는 것과 같은 단순하고 순수한 일로부터 우상을 숭배하도록 종용하는 본격적인 충동적 권유(“당신이 내 앞에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 : 9절)에까지 이르고 있다. 이 마지막 유혹은 가장 유치하지만 단지 표면상으로만 그렇다 : 실제적으로는,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 자신을 내세우고 자신의 명예를 추구하려고 애쓰는 사람 누구에게나 던지는 치명적인 유혹적 발언이라는 의미에서 가장 날카롭다. 인간이 하느님의 계획에 더 이상 따를지 않을 때는 완전히 사탄의 지배하에 내맡겨지게 된다. 특히 사탄이 권력과 부(富)라는 매력적인 것으로 나타나면 더 그렇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성서에…’라고 대답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사탄이 교묘하게 제시하는 그 여러 가지 유혹들을 어떻게 물리쳐 이기시는가?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확고부동한 신뢰심과 일치로써 하신다 : 그 말씀은 ‘그의 발에 등불’ (시편 118, 105)이 되고 또한 그가 하는 모든 결정에 있어서 힘과 영양분이 된다. 사탄이 제시하는 모든 제안에 대해 그리스도께서는 성서에 나타나고 있는 하느님의 뜻에 대해 명백히 언급함으로써 대답하신다.

 예수께서 정확히 세 번 (4절. 7절. 10절)사용하시는 ‘성서에…’라는 강한 표현은 그이 결정이 이미 정해져 있는 하느님의 계획에서 점 하나도 바꾸지 않고 있다는 것을 뜻하고자 한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그 세 개의 인용문은  다 같이 말씀의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지상권(至上權) 뿐만 아니라 말씀 그 자체가 모든 힘을 얻고 있는 궁극적 가치로서의 하느님의 ‘배타성’도 강조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성서에 <사람이 빵만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고 하지 않았느냐?’(신명 8,3참조)하고 대답하셨다…예수께서는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떠보지 말라>(신명 6,16참조)는 말씀도 성서에 있다’ 하고 대답하셨다…그러자 예수께서는 ‘사탄아, 물러가라! 성서에,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고 하시지 않았느냐?’(신명 6,13참조)하고 대답하셨다”(4. 7. 10절).

 특히, 하느님께서 광야에서 만나로 배부르게 해주셨지만 그분을 믿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모세가 꾸짖는 대목을 인용하고 있는 첫 번째 인용문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느님의 ‘말씀’은 그분께서 인간들에게 베풀어주시는 ‘빵’보다도 더 값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생명- 육체적 생명도-을 얻기 위해 특별히 섭취해야 할 것은 하느님의 ‘말씀’이다. 만일 우리와 하느님의 관계가 단지 물질적 차원에 그치고 만다면 이미 우리는 우상숭배를 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느님을 물질적 번영, 지상생활, 기적 등의 보증인 정도로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분을 우상과 혼돈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 우리는 빵이라는 것이 인간을 도와 참된 나라를 이룩하게 하는데 사용되는 것임을 잊고 있는 것이며, 믿음을 팽개치고 인간의 운명이 이 세상 전체보다 더 소중하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J. Pikaza, Leggere Matteo, Marietti, Torino 1977, p37).

 메시아 사상- 그리스도교의 영원한 메시지가 될- 의 참된 의미에 대한 유혹은 역사를 통해 끊임없이 계속 된다 : 불행히도, 하느님의 나라가 인간들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빵을 보다 필요한 형제들에게 나누어줄 수 있도록 마음을 ‘회개하는’ 데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배고픔을 없이하기 위해서 돌을 빵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을 때에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크리스찬들은 언제나 있을 것이다!



원조들이 받은 ‘유혹’

 40일간의 극한 투쟁을 통해 보여주시는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예수의 철저한 믿음의 태도는 학자들이 강조하듯이 시련의 주제와 40이라는 똑같은 수자를 상기시켜주고 있는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없는 배반과 불충실의 태도와 대조를 이룰 뿐만 아니라, 원조들의 태도와도 대조를 이룬다. 그래서 오늘 전례는 짤막한 창조설화와 원조들의 타락에 관한 이야기(창세 2,7-9;3,1-7)를 제 1독서로 제시하면서 이점에 관해 강조하고자 한다.

 여기서도 우리는 하느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시험-물론 은혜를 가져다주는 것임에 틀림없는-을 대하고 있다. 여기서도 사탄은 유혹자의 탈을 쓰고 나타나서 아주 별것 아닌 순수한 사실로부터 원조들을 꾀이려고 하고 있다 : 어째서 “보기에 탐스러울뿐더러 사람을 열리하게 해줄 것같은”(창세 3,6)가까이에 있는 그 ‘열매’를 따먹지 못하게 하느냐 하는 물음을 던지고 있다. 또한 여기에서도 구원이냐 파멸이냐에 대한 하느님의 모든 계획이 연결되어 있는, 지켜야 할 ‘말씀’이 나타나고 있다 : “하느님께서는 이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는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따먹되, 죽지 않으려거든 이 동산 한가운데 있는 나무 열매만은 따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다”(창세 3,3).

 하지만, 여기서는 그 결과가 불행스럽다. 사탄은 먼저 그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말씀의 참됨과 진실성을 의심하도록 하여 그 말씀을 어기도록 하는 데 성공한다 : “하느님이 너희더러 이 동산에 있는 열매는 하나도 따먹지 말라고 하셨다는데 그것이 정말이냐? … 절대로 죽지 않는다! 그 나무 열매를 따먹기만 하면 너희의 눈이 밝아져서 하느님 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이 아시고 그렇게 말하신 것이다”(창세 3,1.4-5). 실제로, 금지된 나무 열매를 따먹은 후 그들의 눈은 ‘밝아졌다.’ 그러나 그들은 그로써 자기들이 ‘알몸인 것’ (7절)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불순명은 그들에게 그 크나큰 것을 가져다주지 않았다!

 그들의 태도는 그리스도의 태도와 아주 극적으로 대립되고 있다 :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십자가에 달려 서 죽기까지 순종하셨고”(필립 2,6-8) ; 반재로 그들은 비천한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배신과 독자적인 행동으로써 ‘하느님과 같이 되려는’ 꿈을 꾸었다.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순명이 그들을 비참하게 만들고 있고 그들에게서 온갖 자유를 빼앗아 간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그들은 그들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파멸에로 이끌었다.


한 사람이 죄를 지어 이 세사에 죄가 들어왔고…”  

바울로에 의한 제 2독서도 서로 완전히 다른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태도와 원조 아담의 태도 사이의 그 극적 대립에 대해 아주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 : “그러므로 한 사람이 죄를 지어 모든 사람이 유죄 판결을 받은 것과 달리 한 사람의 올바른 행위로 모든 사람이 무죄 판결을 받고 길이 살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된 것과는 달리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로마 5,18-19).

 생각건대, 죽기까지 하느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충실히 ‘순명’하신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다시 회복하여 주신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의 길을 부지런히 애써 걸어가는 것 바로 거기에 사순절의 본질적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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