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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전례
작성자 말씀과 전례
작성일 2008년 1월 19일 (토) 09:55
분 류 부활시기
ㆍ추천: 0  ㆍ조회: 3680      
IP: 211.xxx.225
http://missa.or.kr/cafe/?logos.972.
“ 가해 부활 제 3주일 주일 강론 모음 ”
 

부활 제3주일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그렇게도

믿기가 어려우냐 !



제 1독서: 사도 2,14.22-28

제 2독서: 1베드 1,17-21

복 음: 루가 24,13-35



 우리가 얼마 전 기념하여 거행한 그 형언키 어려운 빠스카 사건은 여전히 우리 앞에 전개되고 있으며 그것을 기리는 크나큰 환호성도 그대로 울려퍼지고 있다. 오늘의 입당송(시편 65,1-2)과 특히 본기도가 그 사실을 잘 증명해주고 있다: “천주여, 당신의 백성이 영혼의 청춘을 되찾고 즐거워하오니, 지금 영광스러이 당신의 자녀되었음을 기뻐하는 우리로 하여금 언제나 확실한 기쁨의 희망을 품고 부활의 그날을 기다리게 하소서”:그리스도와 일치된 삶을 사는 그리스도신자에게는 기쁨과 희망의 밝은 여정이 펼쳐지며 그 여정은 현세에서 거행하는 빠스카로부터 내 세에서 거행하게 될 빠스카에까지 이를 것이다.

 그러나 기쁨과 더불어, 우리 각자에게 주어지는 빠스카의 의미를 신앙의 빛에 비추어 알아들으려는 노력도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 신자들이 기울인 그러한 노력을 우리 역시 여러 가지 다른 상황에서 끊임없이 계속함으로써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시고 그분에게 영광을 주시어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께 희망을 두게 하셨다”(1 베드 1,21)는 사실을 증거해야 한다.

 오늘의 독서 세 개는 다 같이 이와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항상 새로운 빠스카 신비를 생기있게 접근하여 해석하는 구체적인 예를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되살리시고…

그분에 관해서 다윗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 1독서는 베드로가 오순절에 그 의미를 군중들에게 설명해주기 위해 행한 긴 설교 중에서 발췌된 것이다: 사람들은 오순절의 의미를 단지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구원사업의 ‘완성’으로만 알아들었다. 신학적 직관에 비추어 보면 성령께서 임하심은 주님의 부활이 참되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주님이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하느님께 올라가 당신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실 수 있었다는 말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 주일에 요한 복음사가가(20,22-23)말해 주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러한 사실 외에도 나자렛 예수께 일어났던 모든 일들이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뜻’ 에 의한 것이었음을 사람들에게 이해시키고자 한다: 그분이 많은 사람들 앞에 수치스러운 패배자의 모습으로 서셨던 것은 사실상 성부께서 인간들을 향해 미리부터 지니신 전능하신 사랑을 들어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구약성서가 지니고 있는 예언적 가치를 이해하고 또 하느님께서 어떻게 서서히 인류로 하여금 당신 아들의 죽음과 부활의 놀라운 현실을 받아들이도록 준비시키셨는가를 알아들으려면 구약성서의 내용을 그리스도의 빛에 비추어 깊이 읽어보면 족할 것이다: 만약 인간의 마음이 지극히 높으신 분의 무한한 사랑과 헤아릴 수 없는 지혜를 따르지 않는다면 그 무엇인가가 항상 믿을 수 없는 사실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

 그러므로 여기서 성서적 근거에 의존하는 목적은 터무니없는 모순투성이로 나타나 보일 수도 있는 하느님의 계획을 논증적 추론에 의해 알아내는 데 있다기보다는 여러 가지 모양으로 나타나는 그 계획의 조화된 일치점을 파악하고자 하는 데 있다. 이렇게 해서 성서의 인용은 설득력을 가질 뿐만 아니라 활력을 불어 넣어주게 된다. 즉 성서의 인용을 통해 하느님의 신비스러운 구원계획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전개되어 나가는 여러 가지 단계와 방향을 더 깊이 알아듣게 된다.

 그러면 베드로의 설교 내용을 들어보자: “나자렛 예수는 하느님께로부터 오신 분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것을 분명히 보여주시려고 여러분이 보는 앞에서 그분을 통하여 여러 가지기적과 놀라운 일과 표징을 나타내셨습니다. 이 사실은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뜻과 계획에 따라 여러분의 손에 넘어간 이 예수를 여러분은 악인들의 손을 빌어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되살리시고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죽음의 세력에 사로잡혀 계실 분이 아닙니다. 그분에 관해서 다윗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주께서 내 오른편에 계시오니 나는 항상 주님을 가까이 뵈오며 내 마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내 마음은 기쁨에 넘치고 내 혀는 즐거워 노래하며 이 육신마저 희망 속에 살 것입니다. 당신은 내 영혼을 죽음의 세계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당신의 거룩한 종을 썩지 않게 지켜주실 것입니다. 당신은 나에게 생명의 길을 보여주셨으니 나는 당신을 모시고 언제나 기쁨에 넘칠 것입니다’ ”(사도 2,22-28).

 여기서 인용되고 있는 대목은 다윗의 시인 시편 16,8-11을 칠십인역본에 따라 취하고 있는 것으로서, 부활 사상을 더욱 명확히 표현해주고 있다: “당신은 내 영혼을 죽음의 세계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당신의 거룩한 종을 썩지 않게 지켜주실 것입니다” (히브리어 원문에서는 ‘썩다’가 아니라 ‘무덤’ 이라고 표현되고 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거룩한 종’ - 베드로의 해석서에는 예수와 동일시되고 있는 - 은 분명히 비극적인 죽음의 상황에 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살아나게 된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그의 ‘오른편’에 계시어 그를 변호하여 지켜주시기 때문이다(25절).



“여러분은 없어질 물건으로 값을 치르고

해방된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의 첫째 편지에 의한 제 2독서도 그리스도께서 ‘은이나 금’ 따위가 아니라 ‘흠도 티도 없는 어린양의 피같은 당신의 귀한 피’로 값을 치르시고 성취하신 ‘구원’에 대해 언급하면서 (1 베드 1,18-19) 그리스도에 관한 하느님의 신비로운 계획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느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미리 정하셨고 이 마지막 때에 여러분을 위해서 그분을 세상에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바로 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분을 죽은 자께 희망을 두게 되었습니다” (20-21절).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사랑의 계획의 도달점은 우리 자신이면 그 계획은 성서를 통하여 드러나고 있다. 이것으로만도 우리는 성서의 위대성을 알 수 있고 또한 성서를 보다 성예로니모가 “성서를 무시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무시하는 것과 같다” (Comment. in Isaiam. Prol., PL 24,17; 「계시 현장」, 27 참조)고 힘주어 한 말은 그릇된 말이 아니다.



엠마오의 제자들의 기대에 어긋난 희망



예수께서 엠마오의 두 제자에게 나타나신 장면을 기술하고 있는 오늘 복음도 이미 그리스도의 신비를 예언하고 준비하는 구약성서 안에서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있다: 죽 구약성서의 메시지에 의하지 않고서는 그 그리스도의 신비를 이해할 수 없다.

 여기서 성서의 권위있는 해석자는 바로 그 성서의 대상이기도 한 예수 자신이시다. 그 이야기의 내용에 들어가지는 않고 다만 우리가 지금까지 이야기해온 관점에 비추어 살펴보고자 한다.

 빠스카 당일에, 주님의 제자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고 있었는데 그들은 그즈음에 일어난 모든 사건으로 인하여 낙담하여 실망하여 있었다. 그들이 그 일어난 일들에 애해 이야기하고 있을 때 어떤 낯선 사람이 그들이 하고 있었던 이야기의 내용을 모르는 체하면서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그들은 그 낯선 사람에게 그들이 기대했던 바가 모두 무너져서 침통해 있노라고 자세히 설명한다: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구원해주실 분이라고 희망을 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이미 처형을 당하셨고 더구나 그 일이 있은 지도 사흘째나 됩니다. 그런데 우리 강운데 몇몇 여인이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새벽에 무덤을 찾아가 보았더니 그분의 시체가 없어졌더랍니다. 그뿐만 아니라 천사들이 나타나 그분은 살아 계시다고 일러주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동료 몇 사람이 무덤에 가보았으나 과연 그 여자들의 말대로였고 그분은 보지 못했습니다”(루가 24,12-24).

 구러므로 그 두 제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사형당하심으로써 이미 모든 것이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부활에 대한 희망은커녕 의구심이 그들을 스치고 지나간다 ! 또한 그리스도께서 예언하신 그 말씀과 연관이 있는 죽은 지 ‘사흘째나’ 되었다고 하는 그들의 표현을 보더라도 희망을 갖고 있다기보다는 이제 더 이상 할 것이 없다는 태도이다: 즉 이스라엘의 해방에 대한 희망(21절)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태도이다.

 여기서 그 두 제자들과 다른 모든 사람이 어떤 메시아를 기대하고 있었는지가 나타난다: 그들은 그들의 원수들을 아주 쉽게 분쇄해버릴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가진 그런 메시아를 기대했었다. 그러나 십자가상에서 벌어진 일들은 전혀 그 반대였다. 그렇게 볼 때 그들의 마음의 위기감에 사로잡혔으리라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자 바로 이때에예수께서는 그 두 제자들에게 성서가 그 사건을 어떻게 예언하는가를 가르치면서 그들을 깨우쳐주신다: “너희는 어리석기도 하다!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그렇게도 믿기가 어려우냐 ? 그리스도는 영광을 차지하기 전에 그런 고난을 겪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 ? 하시며 예수께서는 모세의 율법서와 모든 예언서를 비롯하여 성서 전체에서 당신에서 관한 기사를 들어 설명해주셨다”(25-27절).

 그러므로 엠마오의 제자들에게 물의를 일으켰던 그 사건은 하느님의 구원계획의 일부였다: 그들에게 모든 희망이 꺾였던 것처럼 나타났던 것이 실제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영원히 감싸게 될 크나 큰 ‘영광’의 시작이었다. 따라서 그 ‘영광’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때부터 그분 안에 있던 신적 능력이 드러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성서상의 증거는 하느님의 옮으심을 말해주며, 잘못을 원하지는 않았으면서도 (사도 3.17 참조) 그 잘못을 저질렀던 유다인들의 어리석음과 모세와 다른 예언자들의 말을 믿을 줄 몰랐던 제자들의 불신과 의혹은 단죄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완전히 무시했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그들은 그 말들의 참 뜻을 왜곡하고 편리하게 해석하며, 또 일상적인 사고나 행동체계를 혼란케 하거나 그와 대립되는 내용들을 외면함으로써 그 말들을 멋대로 다루었다. 예수께서는 그 성서의 말씀이 비록 역설적이거나 혼란을 준다 할지라도 그 본래의 뜻을 되찾아 주신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말씀은 본래의 능력과 빛을 온전히 되찾게 된다: 말하자면 우리의 지혜를 무한히 초월하시는 하느님의 올바르심이 타당하게 드러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신앙의 메시지로서의 모습을 되찾게 되는 성서의 말씀은 오직 ‘믿는 마음’을 통해서만이 그 풍부한 의미를 다 드러낼 수 있다.

 엠마오의 두 제자는 스승이신 주님께서 그들에게 ‘성서’에 대해 설명해주실 때 이 모든 것을 체험한다. 그래서 마침내 그들은 그 낯선 사람이 유다인들이 십자가에 못박았던 나자렛 사람 예수였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스스로 이렇게 고백한다: “길에서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서를 설명해주실 때에 우리가 얼마나 뜨거운 감동을 느꼈던가 ! ” (32절). 우리가 신앙의 관점에서 성서를 받아 들인다면 서서는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와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장소가 될 것이며, 바로 그 순간 그리스도께서 마치 엠마오의 제자들에게 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가장 권위있는 성서 주석가가 되어 주실 것이다.



“빵을 떼어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았다”



 그런데, 성서와 더불어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현존하신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는 또 다른 표지가 있다. 즉 성체성사의 표지이다. 사실, 여기서는 그 먼 옛날 빠스카 때에 한 낯선 여행자가 초대되었던 평범한 ‘저녁식사’ 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가 그 자리에서 행한 행동은 분명히 성체성사를 암시하고 있다: “예수께서 함께 식탁에 앉아 빵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나누어주셨다”(30절). 루가 복음사가는 여기서 성체성사를 세우신 사실을 상기시키고자 하는 것이 분명하다 (22,19 참조).

 또 다른 한편, 그 제자들이 예수를 알아본 것은 바로 그 순간 이었다: “그제서야 그들은 눈이 열려 예수를 알아보았는데 예수의 모습은 이미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다” (31절). 그리고 그들은 예루살렘에 돌아가자마자 열한 제자에게 일어났던 일을 이야기하면서 “그분이 빵을 떼어주실 때에야 그분을 알아보았다” (35절)고 한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행하신 그 ‘독특한’ 행동으로 인하여 우리는 그분의 생애 가운데 특별히 장엄한 어떤 순간과 연결된다: 즉 우리는 예수께서 정상적인 빠스카의 식탁이 아닌 곳에서 특별한 모양으로 취하시는 그 행동으로써 다시금 최후만찬을 상기하게 된다.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그 제자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는 이야기가 ‘그들은 그분이 빵을 떼어주실 때에야 그분을 알아보았다”라는 말로 끝나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성서를 읽어보면 신자들의 공동체는 신앙을 고백하고 빵을 떼어 나누기 위해 성체성사를 통해 서로 결합되고 있다. 빵을 떼어 나눔으로써 실현되는 주님의 현존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사람들에게 인식되도록 해주신다. 이와 같이 신앙은 인가에게 빠스카 신비를 열어 보여줄 뿐만 아니라, 신앙 그 자체가 빠스카 신비의 조명이다. 신앙은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신 그 행위의 결실이다. 그러므로 신앙은 부활과의 만남을 전제하면서 동시에 그 부활을 일으키기 때문에 부활의 원인이며 또한 결실이다“(A. Stoger, Vangelo secondo Luca, vol. ∏, Citta Nuova Ed, Roma 1968, p.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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