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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전례
작성자 말씀과 전례
작성일 2008년 11월 17일 (월) 23:09
분 류 대림시기
ㆍ추천: 0  ㆍ조회: 3727      
IP: 211.xxx.202
http://missa.or.kr/cafe/?logos.1282.
“ Re..나해 대림 제 2주일 주일강론 모음 ”
 

대림 2주일

소리 높여 알려라:

주 야훼께서 저기 오신다

제1독서 : 이사 40, 1 - 5, 9 - 11



제2독서 : 2베드 3, 8 - 14



복   음 : 마르 1, 1 - 8



이번 주일의 독서들간에는 주제상의 의미심장한 통일성이 있다. 그 통일성은 오늘의 복음이 이사야의 유명한 에언(마르 1,2-3 ; 이사 40,3-4 참조)의 실현으로서 제시되고 있다는 사실뿐 아니라, 세 독서가 모두 기쁘면서도 동시에 불안한 기다림의 의미를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그 내용에 따르면 장차 일어날 아주 중대한 ‘어떤 사건’이 있으며 무엇보다도 오셔야 할 ‘어떤 분’이 께시다고 한다. 오셔야 할 그분의 신비스러운 모습은 아직도 해묵은 성서의 구겨진 책장 속에, 스리고 세레자 요한의 불확실한 날카로운 말들 속에 감추어져 있다. 바로 이런 까닭에 믿는 이는 기다림 속에서 살도록 불리움을 받고 있고, 미래에 투사되어 있으며, 그 미래는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간절히 원하고 또한 구함으로써 거의 우리의 원의에 의해서 창조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여러분은 그날을 기다리고 있으니만큼

흠없이 살기를 힘쓰십시오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구원은 사랑에 개방된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만 충만하게 이루어진다는 의미에서 볼 때, 우리의 기다림은 무기력하거나 운명적인 것이 안라, 생동적이고 더 나아가 창조력을 지닌 기다림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기다림은 ‘은총’이 아니라 단죄를 위한 ‘심판’이 되고 말 것이며, 그 결과 기쁨에 찬 주님의 도래가 아니라 저주가 되고 말 것이다. 바로 이런 까닭에 제2독서는 믿는 이들에게 ‘주님의 날’을 기다림에 있어서 경박하게 행동하지 말 것을 경고하고 있다 :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그 날을 기다리고 있으니만큰 티와 흠이 없이 살면서 하느님과 화목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십시오.”(14절).

이러한 준비와 깨어 기다림의 자세에 대해, 오늘 전례의 문을 여는 ‘본기도’도 다음과 같이 기도하고 있다.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천주여, 현세의 어떠한 일에도 구애를 받지 않고 흔연히 성자를 맞이하려는 우리에게 천상 지헤를 가르치시어, 우리로 하여금 성자를 닮을 수 있게 하소서.“

현세의 일에 정신을 차려 마음을 쓰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곧 다가올 성탄의 짧은 기간 동안만이 아니라, 우리의 전생애에 걸쳐서 이루어질 그 사건(주님의 도래)에 대한 긴장을 이완시켜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 사건은 우리가 크나큰 인내심과 용기를 가지고 우리에게 주어진 몫을 꾸준히 채워감으로써 완성시켜야 할 과제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위로하여라



제1독서는 이미 많은 학자들이 유배생활 말기에 무명의 에언자인 제2이사야(Deutero-Isaia)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사 40-55장의 이른바 이스라엘의 ‘위로의 책’의 가장 아름다운 첫 부분을 제시해주고 있다.

‘위로의 책’이라고 불리우는 이유는 그 예언자가 바빌론의 종살이로부터 백성들의 해방이 다가오고 있음을 억누를 수 없는 기쁨에 차서 선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해방은 에집트로부터의 첫 번째 출애굽 사화(史話)로부터 취한 표상과 상징으로써 묘사되고 있다. 그 예로 결론부분을 읽어 보자.

“이제, 너희는 기뻐 뛰며 길을 떠나 안내를 받으며 탈없이 돌아가리라. 너흐를 맞아 산과 언덕들은 환성을 터뜨리고, 들의 나무가 모두 손뼉을 치리라. 가시나무 섰던 자리에 전나무가 돋아나고, 쐐기풀이 있던 자리에 소귀나무가 올라오리라. 이런 일이 야훼의 이름을 들날리고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표가 되리라:(이사 55,12-13).

그러므로 다시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들을 그리스도원에로 인도하시는 지금, 출애굽의 기적들이 다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 독서 부분은 여러 소리로 이루어진 합창처럼 제시되고 있다. 종살이의 종말을 알리는 노래를 하느님 자신이 시작하고 있다 :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위로하여라’. 너희의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예루살렘 시민에게 다정스레 일러라. 이제 복역기간이 끝났다고, 그만하면 벌을 받을 만큼 받았다고, 야훼의 손에서 죄벌을 곱절이나 받았다고 외쳐라’”(이사 40,1-2).

해방은 자동적으로 또는 우연히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에루살렘은 벌을 받을 만큼 받았기 때문에 해방되었다. 즉 에루살렘은 마치 ‘곱절’로 갚아야 했던 도둑들처럼(출애 22,3 참조), 홰개하여 야훼께로부터 훔친 것의 ‘곱절’을 기워갚음으로써 해방되었다. 이처럼 정치적 행위가 종교적 차원에 병합되어 이루어진다.



야훼께서 저기 오신다. 사막에 길을 내어라



여기서 에언자는 한 익명의 ㅅㄴ비스러운 ‘소리’를 이끌어들이는데, 그 이유는 의도적으로 보다 큰 관심을 모으기 위해서다. 그 소리는 당신 백성을 승리로 다시 이끌기 위해 되돌아오시는 야훼를 위해 기릉ㄹ ‘준비하라’고 권고한다.

“야훼께서 오신다. 사막에 길을 내어라. 우리의 하느님께서 오신다. 벌판에 큰 길을 훤히 닦아라. 모든 골짜기를 메우고, 산과 언덕을 깎아내려라. 절벽은 평지를 만들고, 비탈진 산골길은 넓혀라. 야훼의 영광이 나타나리니 모든 사람이 그 영화를 뵈리라. 야훼께서 친히 이렇게 약속하셨다”(3-5절).

바빌론 원문(텍스트)에서 ‘길’이라는 개념은 유비적으로 어떤 정해진 산들을 위해 준비된 종교적 행렬을 위한 길이나 또는 승리한 왕을 위해 마련되는 승리자의 길에 사용된다.

‘사막’이라는 말을 사용함은 바빌론으로 추방(유배)되는 사람들이 건너야만 했던 시리아 벌판을 정확히 가리키는 것 외에도 이미 위세서 언급한 바와 같이 많은 기적들을 동반했던 첫 번쩨 출애굽의 체험에 특별히 관련짓고자 함이다.

하느님께서는 현재도 새로운 해방을 가져올 기적적인 일들을 통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낼 것이고, 그 결과 모든 사람이 직접 그 영화를 뵐 것이며 감지하게 될 것이다.











주 야훼께서 권능을 떨치시며 오신다



곧 이어서 에언자는 아직도 슬픔과 비탄에 휩싸여 있는 예루살렘에 기쁜소식을 전하기 위해 귀향자 중 한 사람이 서둘러  오고 잇음을 상상한다.

“너 시온아, 높은 산에 올라 기쁜소식을 전하여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질러라. 유다의 모든 도시에 알려라. 너희의 하느님께서 저기 오신다. 주 야훼께서 저기 권능을 떨치시며 오신다. 팔을 휘둘러 정복하시고 승리하신 보람으로 찾은 백성을 데리고 오신다. 수고하신 값으로 얻은 백성을 앞세우고 오신다. 목자처럼 당신의 양떼에게 풀을 뜯기시며, 새끼양들을 두 팔로 안아 가슴에 품으시고 젖먹이 딸린 어미양을 곱게 몰고 오신다”(9-11절).

야훼 하느님의 가장 위대한 ‘도래’는 당신 나라에서의 구원자임을 위한 것이다. 그분의 ‘도래’는 화해와 사랑의 ‘도래’이다. 그리하여 귀양살이에서 돌아오는 백성들과 더불어 예루살렘도 다시 복귀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의 귀향이요, 다른 하나는 폐허로 남아 있던 예루살렘 - 이것은 이미 타락한 세상을 상징한다 - 의 재건이다.

오늘 제1독서의 결론부분은 참으로 아름답다. 여기서 권능을 떨치시며 지뱅의 왕자를 차지하고 계시는 야훼는(10절) 어미양과 갓난 새끼양들에 대한 지극한 염려와 자상한 보살핌의 정으로 가득찬 목자에 비유되고 있다(11절). 그분 안에서는 궈네와 사랑 - 무조건적인 모성적 사랑 - 이 서로 전혀 대립되지 않는다.

우리가 성탄날 밤에 묵상해야 할 점은 바로 이 경이로운 사건이며, 오늘 전례는 다음과 같은 이사야의 말씀들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준다 : “우리를 위하여 태어날 한 아기, 우리에게 주시는 아드님, 그 어깨에는 주권이 메어지겠고 그 이름은 탁월한 경륜가, 용사이신 하느님, 영원한 아버지, 평화의 왕이라 불릴 것입니다”(이사 9,5).

온 세상의 주권자이신 그분께서 한 갓난아기의 모습으로 이 지상의 후손인 우리 가운데 또 다시 태어나시려 한다. 그러므로 얼마 남지 않은 그 아기의 탄생에 대한 기다림은 기쁨과 환희에 넘치는 기다림인 것이다.



그때에 세레자 요한이 나타났다



이제 복음은 앞서 이끌어들인 신비스러운 ‘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밝혀준다. 그 소리는 유다의 사막 한구석에서 시작되어 타오르는 불처럼 그리고 바람결에 부딪쳐 일어나는 마찰음과 같이 반향되어 퍼져나간다. :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 나타나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라. 그러면 죄를 용서받을 것이다’하고 선포하였다 … 요한은 낙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두르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으며 살았다. 그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나보다 더 훌륭한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끈을 풀어드릴 만한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지만, 그분은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다’”(마르 1,4.6-8).

세례자 요한의 선포에 대한 마르코의 서술은 아주 짧다. 즉 닥쳐올 징벌, 나무뿌리에 대어진 도끼, 오시는 분께서 손에 드신 키, 타작 마당에서 가려내는 일, 꺼지지 않는 불에서 태워질 쭉정이 등에 관해서는(마태 2,7-10; 루가 3,7-9. 17 참조)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군중이나 세리나 군인들에 대한 훈계의 말(루가 3,10-14 참조)도 전혀 하지 않는다. 그의 서술은 온통 ‘더 훌륭한 분’ 즉 메시아의 도래와 그 메시아께서 - 세레자 요한이 물로 베푸는 세례 대신 - 베푸실 ‘성령의 세레’를 중점적으로 전하고 있다. 여기서 ‘온다’(erchetai)라는 동사의 현재형은 도래의 임박성을 말해준다. 마르코복음에서는 세례자 요한의 역할이 그리스도가 곧 임하신다는 사실을 소리 높여 외쳐 전하는 한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다른 복음에서보다도 더 강조되고 있다. 즉 세례자 요한의 역할은 신비스러운 인물인 그리스도를 알리는 일에 온통 집약되고 있으며, 요한 자신은 그리스도를 섬기기조차 부당한 종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강조되고 있다. “신발끈을 풀어드린다”(7절)는 표현은 바로 이 점을 암시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이러한 종과 주인의 관계는 어떤 주석가(E. Lohmeyer)에 의하면 “내 뒤애 오신다”(7절)라는 구절에 의해서도 나타난다고 하겠는데 그 경우 이 구절은 시간적인 전후관계를 의미한다기 보다는 주인을 위해 길을 내며 앞서가는 종의 행동을 묘사하고자 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그 내용이 암시적이면서도 문맥상 아주 잘 짜여져 있는 것 같다.

오늘 복음에는 아주  중요한 그리스도론적인 두 가지 내용이 담겨져 있는데 그 하나는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보다 ‘더 힘센 분(훌륭한 분)’이라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라는 것이다.

‘더 힘센 분’의 의미는 ‘더 힘센 사람’에 의해 쫓겨나는 사탄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마르 3,27 그리고 루가 11,22과 연관시켜 볼 때, 에수께서 사탄을 쳐부수러 오신다는 것을 뜻한다고 ㅂ아야 할 것이다. 즉 예수의 구원사업은 바로 “악마가 저질러 놓은 일을 파멸시킴”(1요한 3,8)으로써 이루어질 것이다. 세례자 요한은 이러한 무서운 전쟁의 전초전을 상징적으로 대변해준다.

그리고 ‘성령으로’라는 표현은 성령의 증여자로서의 메시아를 암시해주고 있다. 비록 성령이 항상 메시아에 직접 관련되어 온 것은 아니지만, 예언적 메시지에 따라 사람들은 마지막 날에 성령이 충만히 넘쳐흐를 것을 줄곧 기대해 왔다(이사 44,3 ; 에제 36,26 참조). 후에는 성령의 세례가 일부 그리스도교 독자들에게 있어서 성세성사를 생각하게끔 한 것이 분명하며, 이 성세성사는 그들의 생활 속애 영광스러이 개입하시어 그들의 생활을 변화시켜 주시는 그리스도와의 원초적인 만남을 이루었다. 여기서 물은 오직 성령께서 그들 안에 깊이 작용하시는 활동의 상징일 뿐이었다.



그는 낙타 털옷을 입고…

세례자 요한은 무미건조하게 울려대는 단순한 ‘소리’로서만이 아니라, 그의 생활 자세로써도 메시아의 오심을 알리고 준비했다. 즉, 곧 임하실 메시아가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해주기 위해 일상생활에서 필요로 하는 것들조차도 아랑곳하지 않았던 그의 생활 자체가 바로 하나의 웅변적인 설교였다. 그래서 “온 유다 지방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이 그에게 와서 죄를 고백하며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았다”(5절).

낙타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들꿀(아마 어떤 식물의 즙이었을 것이다)을 먹으며 광야에서 살았다고 하는 사실은 그의 속죄의 정신을 말해주는 것 외에도 하느님께 대한 그의 고행적 열정, 또는 그분을 찾아 얻기 위한 간절한 기도, 어떤 형태의 필요성 - 자연적이든 인위적이든 -에 의해서도 제약을 받지 않는 존재론적 차원에서의 근본적 자우에 대한 갈구,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시는 주님께서 지나가실 ‘광야’의 길을 자기 형제들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자 하는 열망 등을 말해준다.

이 모든 것들은 세례자 요한이 설교를 통해 가르친 내용이며, 또한 물의 세례를 통해 형상적으로도 표현하고자 했던 ‘죄를 용서받기 위한 회개’(4절)를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이런 식으로 세례자 요한은 메시아의 도래가 마음의 ‘회개’와 밀접히 연결되어 잇다는 것을 말해주고자 했다. 즉 마음의 ‘회개’가 없는 곳에는 메시아도 오시지 않는다. 만일 마음의 회개가 없는데도 메시아가 오신다면, 그것은 오직 그분의 사랑에 마음의 문을 닫고 있는 사람들을 벌하시기 위해서일 것이다.

이런 의미로 미루어 볼 때, 우리는 마르코복음이 왜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의 시작”(1절)이라는 이상한 구절로 시작되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아마 이 구절은 어떤 주석가가 주장하는 것처럼 세례자 요한에 관한 부분만이 아니라 복음 전체의 제목이 될 것이다. 어쨌든 계속 이어지는 복음 전체의 내용이 그 출발점을 선구자 세례자 요한의 복음선포와 행동과 생활모습에 두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복음이 우리 각자를 위해서도 ‘시작’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의 죄를 ‘뉘우쳐야’ 하고, 물과 성령으로 ‘다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 또한 세례자 요한처럼 ‘광야’로 나가 폐허로부터 재건되고 있는 예루살렘을 향해 유배지로부터 환희에 차서 돌아오는 하느님 백성의 대열에 다시금 새롭게 참여하여야만 한다. ‘대림시기’는 오랜 동안의 황막한 객지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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