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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전례
작성자 주일강론 모음
작성일 2008년 6월 20일 (금) 22:52
분 류 연중8-13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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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남북통일 기원미사,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
 

남북통일 기원미사

이철희

주제 : 변화는 나부터.....



찬미 예수님!

세상살이에는 힘든 일이 많습니다.  먹고 사는 일이 힘들다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압니다.  이렇게 다양한 삶에서 사람들이 자기 삶을 마감하는 순간은 저마다 다릅니다만, 우리의 생명이 계속되는 순간에서 어렵고 힘든 일을 찾으라고 한다면 그 첫 자리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용서가 자리를 차지할 것입니다.  그 용서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가끔씩 과장하는 소리로, ‘죽기보다 싫다’는 말을 쓰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결사반대(決死反對)’라는 즐겨씁니다만, 삶에서 우리가 좋은 모양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용서’는 분명 죽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 민족의 아픈 기억을 우리 스스로 치유하자고 하는 ‘남북통일 기원미사’를 하는 날입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일어난 일, 같은 민족이 남과 북으로 나뉘어 총과 칼을 마주하고 싸워야만 했던 싸움에서 생긴 상처를 치유하자고 사람으로서 서로 노력하고, 하느님의 자비도 함께 기도하는 주일입니다.



요즘 북쪽 저편에서는 미사일인지, 인공위성인지를 발사한다는 아주 민감한 문제 때문에 그 일의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이런 일처럼 삶에서 만나는 어려운 일들은 분명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원칙이 적용되어서 바뀌어야할 일이 있습니다만, 현실에서는 학문으로 통하는 진리만 부여잡고 있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 ‘형제들이 잘못한 일에 대하여 일곱 번을 용서하면 충분하겠느냐는. 칭찬을 기대하는 질문을 했다가 도저히 불가능해보이는 대답’을 듣습니다.  삶을 통해서 우리가 해야할 용서는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이라도 돼야 한다고 말입니다.  같은 사람, 같은 일에 대하여 일곱 번씩이나 용서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고 사람으로 사셨던 예수님도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분명히 아셨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베드로 사도의 질문에 대하여 그 숫자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많은 횟수를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세상에서 저마다 행복하게 살고 싶어하고, 우리는 세상에서 저마다 성공하고 싶어합니다.  그 말의 의미가 크게 다르지 않다면 우리가 바라는 태도는 큰 차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목표가 같다고 해서 저마다 실천하는 방법도 같은 것은 아닙니다.  쉬운 길을 어렵게 돌아서 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도 있고, 아주 쉬운 일을 왜 그토록 어렵게 생각하느냐고 물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 남쪽의 사람들을 힘들게 만든 전쟁을 일으킨 사람들은 피부색도 빨갛고 생각도 빨갛고 머리에는 뿔이난 사람들이라고 어릴 때는 배웠는데, 요즘에는 그들과 화해를 이야기합니다.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우리와 비슷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알아들은지도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곳에서 투자해서 만들어낸 물건의 품질이 돈에 비해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칭찬의 소리도 있고보면, 세상은 참으로 오래 살아야할 일이라고 우스개 소리를 말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50년이상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을 흘려보낸 다음에야 그것을 알아듣고 실행하려고 합니다만, 신앙을 통해서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오늘 독서에서 하느님은 우리가 그러한 자세를 실천해야 한다고 이미 3000년이 넘는 세월 전에 이야기 하셨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면 뭔가 다른 마음자세는 필요한 일입니다. 



모세는 하느님의 뜻을 자신있게 선언합니다.  우리가 갖는 삶의 자세에 따라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도 달라진다고 말입니다.  이렇게 단순하고도 분명한 진리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습니다만, 혹시라도 우리가 김칫국을 먼저 마시는 심정으로 다른 사람이 나에게 대해서 좋은 일을 할 기회를 주고 있다고 우기지는 않는지 생각해야할 일입니다.  세상이 변화하기를 바라면서, 다른 사람이 먼저 변하고 내가 움직이는 것은 그 이후로 미루어놓는다뎐 그 변화는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변화는 내 입에서 나가는 말 한마디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뒤늦은 핑계거리를 대는 사람들이 즐겨쓰는 것처럼, ‘내가 마음은 그게 아닌데 행동은 왜 그렇게 마음과 다른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으로서는 세상 변화에 참여할 자격은 없어지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고 하듯이 우리에게 다가온 기회부터 잘 사용하는 사람들이 되도록 해야 할 일입니다.



오늘은 민족의 화해를 기억하고, 그 화해가 뿌리 내릴 수 있기를 바라는 기도의 날입니다.







조재형 신부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至誠이면 感天이란 말이 있습니다. 저는 이번 가뭄을 겪으면서 이 말의 뜻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가뭄은 "사상 최악"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지독했습니다. 밭은 물론이고, 논에 모를 심지 못한 곳도 많았습니다. 우리 성당도 물이 나오질 않아서 매일 밤, 조금씩 나오는 물을 받곤 하였습니다. 계속되는 가뭄으로 모두가  지치고, 힘들어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웃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 나누려는 고마운 사람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메마른 논에 물을 나르는 레미콘 차, 유조차, 소방차가 그랬습니다.

대민 지원을 매일 나서는 우리의 젊은 군인들이 그랬습니다.

가뭄 지역에 생수를 무료로 나누어주는 생수 회사가 그랬습니다.

가뭄 극복을 위해서 양수기를 보내주는 고마운 마음이 그랬습니다.

 이런 전 국민의 나눔과 사랑으로 그늘진 농민의 얼굴에 조금씩 웃음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지난 주일에는 전국적으로 단비가 내렸습니다. 이제 가뭄은 거의 해갈 될 수 있을 정도의 비가 내렸다고 이야길 합니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만을 기다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이 가뭄을 이겨내려고 함께 했던 우리 국민들의 정성이 하늘을 감동시켰다고 생각합니다.

 至誠이면 感天이라 했으면 至誠이면 感人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작년 6월에 남쪽의 지속적인 포용정책과 햇볕정책으로 남과 북의 정상이 평양에서 만남을 가졌습니다. 평양 비행장에 내리는 남쪽의 비행기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기뻐했습니다. 그 비행장에 마중 나온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뜨거운 포웅을 하는 김대중 대통령의 모습은 비단 남과 북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감동시킨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제 곧 걸어서 개성도 가고 금강산도 가고 할 날이 곧 오리라 이야길 합니다.

어릴 때, 북한 사람은 모두 머리에 뿔이 달리고, 무서울 것이라고 배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서로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가 가득 찼던 시절입니다. 서로가 이기는 공생이 아니라, 상대방을 죽여야만 살수 있을 것 같았던 투쟁의 시절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북쪽에도 따뜻한 가슴이 있고, 북쪽의 어린아이도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를 줄 알고, 아직도 우리들 가슴속에는 서로에 대한 뜨거운 마음이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휴전선의 높은 철책을 허무는 것은 박격포와 미사일이 결코 아닙니다. 상대방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이 아닙니다.

통일을 향한 열정으로 분단의 벽을 허문 임수경이란 학생의 작은 발이었습니다.

소 때를 몰고 고향으로 향한 노인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서로에 대한 열린 마음, 그리고 지난날의 잘못에 대한 이해와 용서, 우리는 한민족이라는 한 핏줄이라는 그래서 결국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동질성의 회복입니다.

 우리 적성 성당을 봅니다.

때로 가슴이 아플 때가 많습니다.

교우들 간에 금전적인 문제로 다툼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상대방을 무시하고 인격적으로 모독하는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지난날의 실수를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정확하지 않은 일들을 뒤에서 확대하고, 한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마음을 모아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도 무슨 일이든 다 들어주실 것이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모아 가뭄을 극복할 수 있었듯이

우리가 마음을 모아 남, 북이 통일의 물꼬를 틀 수 있었듯이

우리가 마음을 모아 구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무슨 일이든 다 들어주시리라 믿습니다.

잠시 묵상하겠습니다.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우리의 할 일 두 가지.

왜 우리 나라는 통일을 하여야 하는가.



1. 정신적 윤리적인 문제 : 우리는 북쪽에 가족을 갖고 있다.



2. 실제적인 문제 : 우리가 쓰는 국방비는 제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일년 예산의 30%쯤 되는 것으로 기억한다.  남한에만 60만의 젊은이가 가장 소비적인 집단을 만들고 있으며 북에는 더 가난한 나라에서 120만인가의 군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이 생산을 한다면? 그들이 더 이상 소비적인 집단이 아니라면 얼마나 이 국가에 도움이 되겠는가?  무엇을 하려고만 하면 항시 갈라진 조국이 우리의 뒤통수를 잡아당긴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두 가지를 말하고 싶다.

1. 우선 우리 마음에서 분열하려는 마음을 없애야 한다. 이 조그만 남한 땅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파를 갖고 있는가? 그리고 여러분들이 사회에서 만나게 되는 그 많은 학연 지연들. 사실 똑같이 경쟁을 해서 실력이 없어서 낙오를 했다면 그렇게 억울하지는 않다. 그러나 같은 성적인데 또는 더 낳은 결과를 냈는데도 불고하고 그것이 없어서 떨어져 나온다면. 얼마나 억울한가.



선배가 후배를 끌어 주었다. 단순하게 보면 참 아름다워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를 끌어 줌으로 해서 그와 경쟁하고 있는 사람의 공평한 기회를 빼앗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내가 그를 끌어 주면 그는 나에게 충성을 받친다. 그리고 나는 나를 끌어준 선배에게 또한 충성을 받친다. 그리고 그들 전체는 그들의 학연이나 지연이 같은 무리의 공통된 이익을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나 까놓고 이야기하면 공통된 이익으로 대변된 자신의 개개인의 이익인 것이다. 그것에는 정의도 없고 사랑도 없다. 지들끼리 만의 정의와 사랑이 있을 뿐. 그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은 배척되고 짓밟혀 진다.



이러한 것이 없어야 한다. 이 작은 나라에서 그 많은 파들. 그리고 그것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동쪽과 서쪽이라는 또 다른 휴전선. 그리고 그것을 악착같이 이용해 먹는 정치인들. 우리 나라의 역사책에 지역감정이라는 말이 등장한 것은 박정희 때 부터였다.



조영남이 노래하는 "화개장터"라는 장터는 옛날부터 있었다. 아마도 지역감정이 옛날부터 있었다면 존재할 수 없었던 장터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엄연히 존재하지 않는가?



전라도에 돈 띄어 먹는 놈이 많다는 말이 있다. 이른바 경제사범이 많다는 말인데 그러면 경산도 법원에 가면 경제사범이 없다는 말인가? 말도 안 되는 말이다.



이러한 모든 파들을 구성하는 가장 가운데는 바로 남을 배척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려는 이기심이 자라 잡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없애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없는 가운데서 통일을 한다면? 나는 그러한 통일은 절대적으로 반대를 한다. 왜냐. 동서는 서로 전쟁을 하지도 않은 사이인데 저 모양이다. 그러난 남과 북은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을 한 사이다. 그러한 사이가 통일을 하면 아마도 일년도 되지 않아서 다시 갈라서자고 할 것이다. 그렇게 갈라서고 나면 아마도 영원히 다시 통일이 되지 못한 채로 남게 될 것이다.



우리들 마음에서 분열을 조장하는 그 이기심을 없애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통일을 준비하는 것이다. 우리 교회 식으로 이야기를 하면 그것을 회개라고 말 할 수 있다.



바로 이 마음이 있을 때 우리 사회에 이지 저리 잘려져 있는 분열이 다 기어지고 그렇게 기어진 것이 모여서 드디어 남과 북을 갈라짐이 기어지게 될 것이다.



2. 그러면 두 번째는 무엇일까?

그것은 왜 우리가 통일을 하려고 하고 그리고 그렇게 꼭 하여야 하는지 하는 것에서 출발을 한다.



제가 만일 일본하고 통일하자고 하면 여러분들은 다 저를 미친놈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북한과 통일을 하자고 하면 여러분들은 그거야 당연하지 하고 말을 할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남한 사람들과 북한 사람들이 모이면 같이 끝까지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 노래는 무슨 뽕짝도 아니고 그렇게 흥이 나는 노래도 아니며 그렇게 뭐 클래식한 노래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 노래를 부르면 다 큰 어른들이 서로 울어. 무엇일까요?



바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바로 북한 사람이나 남한 사람이나 모두가 우리가 한 민족임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노래를 부르면 모든 사람이 공통된 느낌을 갖는 것입니다. 만일 일본사람하고 이 노래를 어깨동무하고 같이 부르면 감동이 물결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북은 달라요. 그들은 우리 민족이니까.



김일성 대학을 졸업하고 남한으로 귀순해서 지금은 일산인가 어딘 가에서 냉면장사해서 돈 번 사람이 있습니다. 왜 TV에도 가끔 나오는 그 키 작은 사람 말입니다. 언젠가 그 사람이 심야대담프로그램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자리는 북한에 식량을 보내야 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토론을 하는 자리였습니다. 많은 쟁쟁한 전문가들 사이에 그 사람이 가만히 앉아 있더군요.



아마도 여러분들도 우리 나라에서 얼마전인가 북한에 홍수가 났다고 해서 식량을 보낸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 보다 더 먼저 북한 사람들이 우리가 홍수 났을 때 남한으로 식량을 보내 준 적이 있습니다. 아마 이 이야기를 기억하는 분은 구세대에 속하는 분들이겠지요.



그 사람이 자신에게 순서가 돌아오니까 이러한 이야기를 하더군요. 지금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충 이러한  이야기 였습니다.



남한에서 홍수가 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자신은 김일성 대학에 다니고 있었답니다. 물론 여러분들도 아시겠지만 김일성 대학은 겉도 붉고 속도 붉은 정말 이른바 빨갱이들만 다니는 대학이지요. 그때 어떻게 어떻게 되어서 김일성 대학에서도 남한의 굶고 있는 동포들에게 쌀을 보내기를 결의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먹을 곡식 창고에서 제일 좋은 쌀만 골라서 연병장에 말려서 손수 가마니에 싸서 남으로 보냈다고 합니다. 물론 그 당시에도 자신들도 잘 먹지 못하고 있었고 그 일로 인해서 한 달인가 두 달인가를 옥수수 죽인 가만 먹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가운데서 도 그 어떤 사람도 불평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때 마음은 홍수가 나서 고생하고 있는 남한의 동포들이 어서 회복되기를 비는 마음뿐이 이었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물론 식량을 주면 북한이 군량미로 쓸 수도 있다. 그러나 도와주자. 지금 굶고 있지 않은가 하며 말을 하였습니다. 물론 그 말이 끝나자 마자 많은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그의 말을 완전히 밟아버리더군요.



완전 빨갱이 안에도 있는 것. 그리고 우리들 마음 안에도 있는 것. 그것이 무엇일까요. 서로 힘들어하면 서로 걱정해줄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가 한 동포, 한 민족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왜 통일을 해야만 하느냐는 바로 우리가 한 민족이라는데 있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잊는 순간.  우리에게 있어서 통일은 없어지고 맙니다. 우리는 어떠한 경우라도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설사 동해안에 잠수함이 떼거지로 나타나고 서해안에 군함이 내려온다 해도 우리들은 이 사실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도발을 봐주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도발을 한다면 함포가 아니라 미사일이라도 쏴서 다시는 그러한 장난을 못하도록 정일이에게 정확하게 가르쳐주어야 하겠지요. 그러나 그러한 경우에도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우리는 한 민족이고 그리고 결국은 통일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제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나면 여러분들은 그러면 우리들은 뭐를 하지요. 사실은 우리가 할 일은 없지 않나요 하고 말을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우리가 할 일이 있다.



첫 째는 맨 앞에서 말한 이야기를 기억했으면 한다. 바로 우리의 이기심을 버려서 우리 안에 있는 분열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 이것이 안 될 때  우리는 아직 통일이라는 선물을 받기에는 준비가 되지 않은 백성이다.



두 번째는 북한 동포들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훗날 우리가 통일이 되었을 때 "우리 아세끼들이 굶어 죽을 때 당신들은 뭐했소?"라고 물었을 때 우리가 "그냥 그렇고 있었지요."라고 대답을 한다면 그들이 뭐라고 할까? "너 아세끼 우리 형제 맞네!"하고 화를 낼 것이다. 형제라는 것이 아이들이 죽어 나가는데도 몰라라 했다면 그것이 무슨 형제인가? 실제로 지금 북한에서는 아이들만도 수 만 명씩 죽어나가고 있다. 우리들은 분명 그들을 도와야 한다.



세 번째는 우리들 신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이 땅에 살고 있는 이 불쌍한 민족을 위해서 열심히 기도를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민족은 아픔이 많은 민족이다. 그 많은 한과 상처를 치유해 달라고 하느님께 기도를 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이며 동시에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와 같은 것이다.



교회는 2000년 희년을 준비하고 있다. 이 희년의 정신을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모든 것을 원상태로 되돌려 놓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느님이 만들어 놓으신 "보시니 좋았다"라는 탄성이 나오는 상태로 되돌려 놓는 것 바로 그것이 희년의 정신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희년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통일이다. 갈라진 조국이 아니라 하나의 민족이 어울려 사는 원래의 상태로 이 민족을 되돌려 놓는 것. 그래서 우리의 역사책에서 더 이상 남한과 북한이라는 용어 자체가 없어지도록 하는 것. 그것이 바로 희년인 것이다.



우리 모두는 이 민족에게 하느님의 희년의 축복과 해방이 오도록 기도와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말씀과 기도의 위력"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새벽 성무일도 중 다음 시편 말씀이 고마웠습니다.

“주님, 새벽부터 넘치도록 자비를 베푸시어, 우리 한생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하느님의 기쁨은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이요, 새벽부터 넘치도록 자비를 베푸시고자 하느님은 매일 미사잔치에 우리를 초대해 주십니다.

오늘은 57년 전 6.25 전쟁이 발발했던 날이고 우리는 남북통일 기원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무려 3년여 계속됐던 한민족 역사상 유례없는 동족상잔의 참혹한 전쟁이었습니다. 온갖 우여곡절 중에도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기운이 서서히 감도는 시기, 더욱 기도를 필요로 합니다.

얼마 전 제주교구 신학생들의 ‘일치운동 순례’중 어느 신학생과 동방 정교회 교구청 교구장 소티리오스 트람바스 대주교님과 문답내용입니다. 한 신학생이 묻습니다.

“신앙을 가지고 있지만 신앙과 평소의 삶에 괴리감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까요?”



대주교님의 답입니다.

“매일 끊임없이 주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숨 쉬는 것처럼 매 순간 주님을 생각하면 됩니다.”



아주 평범한듯하나 영성생활의 핵심을 집어 낸 단순명쾌한 깊이의 말씀입니다. 끊임없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숨 쉬는 것처럼 매 순간 주님을 생각하며 기도 바치라는 말씀입니다. 자연스럽게 말씀과 기도가 한 쌍을 이룹니다.

오늘 1독서의 신명기에서 모세의 말씀입니다.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와서.....  마음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

  주 너희 하느님께서 운명을 되돌려 주실 것이다.....  너희를 다시 모아들이실 것이다.”

말씀을 들을 때 운명을 되돌려 주시고, 다시 모아들여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어 복음의 주님의 말씀입니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이래서 둘 이상 함께 마음을 모아 바치는 매일의 미사와 성무일도가 그리도 중요한 겁니다.

한 마음으로 끊임없이 말씀을 듣고 기도를 바칠 때, 일흔일곱 번의 끝없는 용서도 하느님의 은총으로 가능할 것입니다.

하여 저는 매일 미사 경문 중 다음 대목에 ‘우리나라’를 넣어 정성을 다해 기도를 바칩니다.

“...저희 죄를 헤아리지 마시고 교회의 믿음을 보시어,

  주님의 뜻대로 교회(와 우리나라)를

  평화롭게 하시고 하나 되게 하소서.”

교회는 물론 분단된 이 나라의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기도문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한 마음으로 바치는 이 거룩한 성체성사의 은총이 남북통일을 촉진시킵니다. 아멘.



남북통일 기원 미사

장병찬



찬미 예수님



“주님의 교회는 하나의 빛이니, 그 빛은 온 세상을 다 비추어도 갈라지지 않는다.”



오늘은 우리 민족의 큰 고통이었던 한국전쟁이 일어난 날(6월 25일)입니다.

하나의 민족이 갈라져 있음으로 인해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민족만의 문제나 잘못만이 아니라, 주위의 강대국들에 의한 자국의 이익만을 위한 결과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이것을 딛고 일어서야 합니다. 갈라진 민족이 하나의 민족이 되도록, 수많은 고통과 어려움을 이겨내고 당당하게 하나가 됩시다.

주님께서는 가난한 이를 돌보시듯이 우리 민족의 아픔과 고통을 눈여겨보십니다. 하나 됨은 우리가 믿는 이로써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따름으로서 시작됩니다.



1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와서,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대로 너희와 너희의 아들들이 마음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의 운명을 되돌려 주실 것이다.”(신명30,2-3)

이 말씀은 이스라엘 민족들을 향한 말씀이셨지만, 오늘 우리 민족을 향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 믿는 이들은 분단의 아픔과 고통 가운데에서 우리 민족을 하느님께 봉헌하며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삶은 용서의 삶이기도 합니다.



2독서에서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에페 4,32) 하고 말씀하십니다.

분단의 아픔은 용서와 화해의 복음으로 성장되어야 합니다.

우리 믿는 이들부터 시작합시다. 진정한 통일은 용서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마태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일곱 번까지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에서)

북한은 우리와 같은 하나의 민족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민족과 함께 하십니다.

믿든 믿지 않든 우리 민족 또한 주님의 섭리하심에 있습니다.

갈라짐은 하나를 향해 움직여야 합니다.

여기에 우리 가톨릭 신자들의 중요한 역할이 있습니다.

진정한 하나 됨은 주님의 말씀을 실천함으로서 이루어집니다.

오늘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이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도록 합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지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19-20)



*~*~*~*~*~*~*~*~*~*~*~*~*~*~*~*~*~*~*~*~*~*



이 글을 읽는 형제 자매님은 죄인들의 회개와 고통받는 사람들과 사제와 수도자를 위해 미사와 기도 때 기억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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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교황주일 교황님은 누구십니까? 2008-06-27 3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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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14-18주일
Re..연중 제 18주일 주일강론 모음 2008-07-17 3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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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시기
가해 부활 제 3주일 주일 강론 모음 말씀과 전례 2008-01-19 3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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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대축일 강론 모음 비어있음 2007-12-29 3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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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대축일 강론 모음 성령... 2003-06-06 3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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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미사 강론 ----------이계창 신부 장례미사 강론 2002-12-28 3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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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가해 사순 제 3주일 주일 강론 모음 김한수 시몬 2008-02-22 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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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 성체와 성혈 대축일 주일 강론 모음 주일강론 모음 2005-05-28 3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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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가해 사순 제 2주일 주일 강론 모음 김재덕 베드로 2008-02-14 3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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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연중 제 25주일 주일 강론 모음 주일강론 모음 2008-09-06 3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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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왕 대축일(2사무 5,1-3; 콜로새 1,12-20; 루카 23, 마산교구유영봉 몬시뇰 옮김 2007-11-25 3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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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교황주일 성민호 신부 2008-09-06 3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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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 부활 제 4주일 주일 강론 모음 말씀과 전례 2008-01-19 3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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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나해 주님 공현 축일 강론 모음 말씀연구 2009-01-03 3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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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가해 대림 제 3주일 주일강론 모음 주일강론 2007-11-25 3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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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가해 예수 부활 대축일 강론 모음 주일강론 2008-03-14 3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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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주님 세례 축일 강론 강론모음 2003-01-11 3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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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배
혼인갱신식 예절서 햇살가득 2007-11-15 3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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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다해 삼위일체 대축일 강론 모음 요한신부 2007-06-02 3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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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가해 부활 제 2주일 주일 강론 모음 말씀연구 2008-03-29 3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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