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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전례
작성자 김한수 시몬
작성일 2008년 2월 22일 (금) 11:24
분 류 사순시기
ㆍ추천: 0  ㆍ조회: 3598      
IP: 211.xxx.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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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가해 사순 제 3주일 주일 강론 모음 ”
 

1. 김한수 시몬

가. 사순 제3주일



제1독서 : 출애 17, 3-7

  탈출기의 중심 주제는 에집트로부터의 해방과(1,1-15,21) 시나이 계약이다(19,1-24,18).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에집트 종살이에서 해방시키시어 시나이 산으로 데려오셨고, 여기에서 이 백성과 계약을 맺으시어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셨다는 것이 출애굽의 내용을 통하여 표현되는 이스라엘의 신앙고백이다. 이 해방과 시나이 계약 두 사건을 연결시켜 주는 단락이 광야 생활에 대한 기사이다(15,22-18,27). 이 단락은 이스라엘이 시나이 산에 이르기까지 광야에서 생활하는 동안 어떻게 목이 마를 때에 물을 얻어 마셨고(15,22-27; 17,1-17) 굶주릴 때에 메추라기와 만나를 얻어먹었으며(16,1-36), 적의 위협으로부터 보호받았는지(17,8-16), 그리고 백성 내부의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었는지를(18,1-27) 들려준다. 즉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시고 당신 백성으로 삼으신 하느님께서는 항상 당신 백성을 안전하게 지켜 주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이 이 단락의 주제이다. 본문은 한편으로 하느님께 대한 이스라엘 백성의 불신을, 다른 한편으로 백성을 생존의 위험에서 구원해 주시는 하느님의 섭리를 강조한다.

  이스라엘 백성의 생존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주 하느님의 손에 달려 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시고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시며 온갖 곤경과 위험에서 구원해 주시고 보살펴 주시는 분이시다. 이스라엘이 아무런 자격이 없는데도 주님께서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어 주시고 그들에게 온갖 복을 내려 주신다. 이스라엘에게 요구되는 것은 주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고 그분을 충실히 섬기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자그마한 어려움과 곤경이 닥치면 즉시 하느님을 불신하고 불평을 터뜨린다. 이스라엘 백성의 이러한 자세를 그리스도인들에게서도 자주 볼 수 있다. 건강하고 사업이 잘 되고 가정이 평화로울 때는 하느님께 의지하고 감사를 드리다가도, 큰 병이 들거나 사업에 실패하고 가정에 불행한 일이 생기면 쉽게 하느님께 불평을 하거나 심지어 그분을 원망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더 하느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고 자신의 전 존재를 그분께 내맡기는 자세가 참된 신앙인의 모습일 것이다. 이러한 신앙인은 반드시 하느님의 구원 행위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제2독서 : 로마 5, 1-2. 5-8.

  로마서 5장은 앞서 있는 내용(4개의 장)의 종합이라고도 하고, 후에 오는 내용의 입문에 해당한다고도 한다. 그러나 서간의 전체 흐름에서 볼 때 양쪽에 다 해당하는 것으로 봄이 더 옳은 것 같다. 즉 5장을 통해서 앞선 내용들이 더 분명해지고 동시에 따라올 내용들이 미리 알려지기 때문이다. 바로 오늘 독서에서 우리는 저자의 생각과 그 방향을 알아볼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체험하고 있는 평화와 은총 그리고 희망에서 출발하여 하느님의 영원한 사랑의 두 가지 특징을 보고 있다. 즉 성령께서 우리 안에 사시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로마의 신자들은 서로 화해하지 못한 채 두 교회로 나뉘어 있었다. 아마도 각 편은 서로 갈라선 채 이 화해를 훗날로 미루고 있었을 것이다. 유다인들은 하느님의 정의가 사람들에게 아직 유보되어 있다고 보고 메시아 시대를 애타게 기다렸다. 바오로는 이 유다적 사고에 수정을 가하면서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를 더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한다. 즉 하느님의 정의가 이미 선사되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은 의화와 함께 평화가 주어졌기 때문에 이 화해(평화)가 지금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세상에 구원이 선사된 것은 십자가상의 처절한 예수님의 죽음에서였다. 그래서 구원에 이르는 희망에의 길은 실패와 좌절의 역사를 통하여 실현되고 있음을 본다. 즉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희망은 역사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고 언제나 역사와 함께 마지막까지 가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희망을 종말적이고 공동성의 어떤 것으로 이해한다.

 사실 바오로 시대의 로마 신자들은 아직도 있다. 하기 힘들다 해서 희망이 안 보인다 해서 쉽게 화해를 미루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우리는 형제적 일치를 위해서 많은 기도를 하지만 이 일치가 벌써 우리 안에 기도를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음을 잊고 있는 경우가 많다. 훗날에 이르러서야 이 일치가 가능했다거나 오직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과의 평화는 지금, 바로, 여기에 우리 모두에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희망이 앞서 지적한 데로 지금 현재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복 음 : 요한 4, 5-42

  사순절 마지막 몇 주간 동안 복음으로 읽고 있는 요한복음에만 전해지는 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점진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그리스도의 참 모습을 보게 된다. 그분께서는 무한한 행복을 갈망하는 우리의 갈증을 풀어 주시는 ‘물, 생명수’이시며(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 사순 제3주일), 인간을 어둠으로부터 이끌어내시는 ‘빛’이시며(태생 소경의 치유: 사순 제4주일), 인간을 죽음의 절망으로부터 다시 살리시는 ‘참 생명’이시다(라자로의 부활: 사순 제5주일). 이렇게 그분께서는 ‘물’(생명수), ‘빛’, ‘생명’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신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당신을 ‘생명수’로 나타내 보이시는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 부분이다. 요한복음 저자는 공관 복음과는 달리 처음부터 예수님을 메시아, 구세주로 드러내며 소개하고 있다. 세례자 요한의 증언(1,29-34)을 통해 ‘그분께서 하느님의 아드님’(1,34)이시라는 것이 드러났고, 첫 번째 제자들의 만남(1,35-42)을 통해 ‘그분께서 메시아이심’이 드러났다(1,41). 또한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로써 포도주를 만드시는 표징을 통해서(2,1-11), 니고데모와의 대화를 통해서(3,1-21)도 그것이 드러났다. 이제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4,5-42)를 통해서도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이 밝혀지는데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영원한 생명을 주는 ‘생명수’로 나타내 보이신다.

  우리는 ‘하느님의 아들 딸’,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그리스도의 사람’(그리스도인)이라고 인정받고 또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많이 알지 못한다. 이것은 지적인 앎이 아니다. 차라리 예수 그리스도를 많이 닮지 못한다. 그러기에 보다 가까이 그분께 다가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분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신다. 오시는 분은 그분이시다. 그것도 우리들이 보다 즐겁고, 행복하고, 기쁘게 살고 있을 때가 아니라, 모든 것에 지쳐 어깨가 축 늘어지고 기운이 다 빠져 살고 싶은 마음조차 없을 때, 절망에 빠져서 삶을 포기하고 싶을 때, 그분께서는 우리를 찾아오신다. 오시어 우리들의 가녀린 어깨를 감싸주시고 당신의 위로를 보내신다. 본래 인간들이 절망에 빠졌을 때 목마른 부름으로 하느님을 찾는 법이건만 우리의 주님께서는 오히려 인간을 ‘목말라 ’하시며 인간을 찾아오신다. 사마리아 여인도 마찬가지였다. 이 여인이 처한 삶의 위치는 그야말로 최악의 상태였다. 그녀는 유다인들로부터 멸시받는 사마리아인, 그것도 여인이었다. 그리고 남편을 다섯이나 두었고 지금도 한 동거자와 살고 있는, 윤리적으로 형편없는 여인이었다. 어쩌면 사마리아 동네에서도 내놓은 여인이었는지도 모른다. 바로 이 여인에게 예수님께서 다가가셨고 당신을 계시해 주셨다. 이 보잘것없고 형편없는 여인을 통하여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고 믿게 되었다. 잊지 말자. 우리가 바로 그 사마리아 여인이고 그 여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론

생명의 물 


예수님은 우물가의 여인과 말씀을 나누십니다.  여인에게 다가가 물을 청한 것입니다.  낯선 남자가 물을 청하다니, 여인은 예사롭지 않은 사람임을 직감합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어디에 그런 물이 있습니까. 그 물을 제게도 주실 수 있는지요.”  여인은 호기심으로, 예수님은 따뜻함으로 이루어진 두 사람의 만남이었을 것입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누가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너무나 상식에서 벗어난 이야기입니다.  그러기에 여인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되다니 가능한 일이겠는가.’  우리 역시 알아듣기 힘든 말씀입니다. 



살다 보면 우리는 인간의 힘으로는 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러한 한계 앞에서 많은 시간과 물질을 바치게 됩니다.  굿을 하고 부적을 달기도 합니다.  먹고 싶은 것을 절제하고 하고 싶은 것을 참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만족스러운 해결책은 주어지지 않은 듯 늘 허전해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들은 어떠합니까?  무엇으로 그 부분을 메우고 있습니까?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기도와 성사생활을 통해 끊임없이 하느님께 맡기고 신뢰하려 노력하지요.  육신의 갈증은 물질로써 해결할 수 있습니다.  단순한 목마름은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면 그칩니다.  그러나 영혼의 갈증은 그렇지 않죠.  영혼의 갈증은 물질의 충족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원인 모를 허무감과 늘 떠나지 않는 불안감, 막연한 두려움은 물질이 쌓인다고 사그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경우 원인조차 모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영혼의 갈증은 내면 깊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당신께서 주시는 물을 마셔야 갈증이 사라질 수 있다고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순 제 3주일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니 사마리아 여인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어느 날 주님은 우리 곁에도 다가오셨습니다.  느낌을 통해 깨달음을 통해 만남과 사건을 통해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했던가 생각해 봅시다.  사마리아 여인처럼 단순하게 받아들이고 믿었던가, 아니면 망설임 없이 말씀대로 행동 했던가 반성해 봅시다.  그리고 이제라도 좋으니 그 물을 주님께 청해 봅시다.  “생명의 물을 제게 주십시오.”  “영혼의 목마름을 벗을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  우리는 끊임없이 이러한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산다는 것은 끊임없는 갈증의 연속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하고 희망을 붙잡아야 합니다.  기뻐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기쁨을 만들며 살아가야 합니다. 바로 생명의 물을 찾는 일 말입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이 물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여인은 예수님을 만난 뒤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자신도 예상치 못했던 변화이지요.  인생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삶에 대한 확신은 그녀의 미래에 희망과 기쁨을 남겼을 것입니다.  그것은 진정 생명의 물이 느껴지는 체험이었던 것입니다.  늘 목이 말랐던 예전의 그녀 모습은 이제 없어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그녀의 이런 체험이 없었습니까?  돌아보면 주님께서 함께 하셨던 사건들이 분명 있습니다.  그분께서 주셨기에 아직도 우리 안에는 생명의 물이 남아 있습니다.  이번 한 주간 주님께서 내 안에 주신 생명의 물은 어떤 것인지 더욱 깊이 깨달을 수 있도록 합니다.  또한 또 다른 목마름이 내안에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생명의 물을 주십사 주님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따뜻함으로 기다리고 계십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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