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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전례
작성자 주일강론 모음
작성일 2009년 1월 3일 (토) 17:39
분 류 성탄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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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나해 주님 공현 축일 강론 모음 ”

첫 그리스도인들의 표본

성호영 신부


2세기 후반 익명의 교부가 쓴 '디오그네투스에게'라는 글에 이러한 내용이 나옵니다.

 

"그리스도 신앙인은 신앙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나라를 달리하는 것도, 언어를 달리하는 것도, 복장을 달리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고유한 도시에 살지도 않으며, 어떤 특수한 방언을 쓰지도 않습니다. 그들의 생활에는 특수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들의 교리는 쓸데없이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상상이나 꿈이 만들어 낸 것도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이 하듯이 인간적 학설을 내세우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 신앙인은 각자의 운명에 따라 그리스의 도시 혹은 야만인들의 도시에 흩어져 삽니다. 그들의 복장과 음식과 생활방식은 그들이 사는 지역의 관습을 따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속하는 영적 세계의 특수하고 역설적인 법을 나타내 보입니다. 그들은 각자 자기 조국에 살면서 마치 타향살이 나그네와 같습니다. 시민으로서의 모든 의무를 수행하지만 나그네와 같이 모든 것을 참습니다. 타향 땅이 그들에게는 조국과 같고 모든 조국이 타향과 같습니다. … 모든 사람들이 하듯 그들도 결혼하여 어린 아이를 가지지만 아기를 버리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육신을 지니고 있으되 육신을 따라 사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지상에 살고 있으나 하늘의 시민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세 명의 현자들은 별을 따라서 머나먼 동방에서 왔고, 마침내 인간이 되어 오신 아기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동방박사로 통칭되는 그들의 면모를 가만히 살펴보면 공통점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들은 나라가 같은 것도, 언어가 같은 것도, 복장이 같지도, 먹는 음식이나 생활방식이 같은 것도 아닙니다. 그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서도 공통점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오로지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그들은 모두 하늘을 바라본 사람들입니다. 결코 자신에게 주어진 지위나 명예, 부나 권력 따위에 눈을 돌리지 않고 오로지 빛을 찾아 나선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별의 움직임을 따라서 예루살렘을 거쳐 베들레헴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이 세상에 오신 메시아를 만날 수 있었고, 그분께 경배하고 예물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비록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과 삶의 자리는 달랐지만, 참 진리를 알아볼 수 있는 눈과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었기에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실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동방박사들은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부터 준비되어왔고, 만난 후 그리스도인이 되어 돌아간 사람들입니다. 첫 그리스도인들인 셈이죠. 그리고 그들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찾아나서는 삶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었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리스도를 만나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수많은 교회공동체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들 모두 교부의 글에 나오는 것처럼 나라도, 언어도, 복장도, 먹는 음식이나 생활방식도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방의 문화방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같은 곳을 바라봅니다. 바로 빛으로 오시는 주님을 말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머무는 자리에서 하늘의 시민으로서 살아갑니다.

 

진리의 빛을 바라보는 삶, 모든 고통과 아픔을 참아내고 묵묵히 빛을 추구하는 삶, 사랑으로 빛을 나누는 삶, 이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삶입니다. 아니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살아왔고, 살아가고, 살아가야 할 삶입니다. 첫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하였듯 말입니다.



저희가 당신의 손이 되어드리겠습니다

은성제 신부

 

찬미 예수님!

한 주간 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가장 추운 시기에 훈련에 임하고, 나라를 지키는데 최선을 다해 주시는 모든 군인들에게 주님의 사랑과 평화가 넘치기를 빕니다.

 

오늘은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공현'이란 '공적으로 나타내 보이시다'라는 의미입니다.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하면 예수님께서 당신의 탄생을 먼 동방에서 온 3명의 박사들에게도 보이셨는데 하느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 동방박사들에게도 자신을 보이심으로써 온 세상 누구에게나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고, 기뻐하는 날이 바로 '주님 공현 대축일'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당신의 모습을 당신을 모르는 이방 백성들에게까지 알리셨듯이 우리도 이러한 예수님의 뜻을 깨닫고서 다른 이들, 특히 하느님을 모르는 이들에게 군 생활을 통해 알릴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연합군이 노르망디 작전을 성공하고 프랑스의 영토를 되찾던 중 어느 작은 마을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은 폭격으로 인해 풍비박산이 나있어서 군인들이 그 마을을 재건하는데 함께 일을 했습니다. 마을을 재건하면서 성당을 다시 짓게 되었고, 성당을 복구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오른쪽 손은 폭격으로 완전히 파손이 되어서 이어붙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연합군 군인들은 이런 글귀를 남겼다고 합니다.

"저희가 당신의 손이 되어드리겠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동방박사 세 사람은 별을 보고서 주님의 탄생을 알았고, 그 별이 안내해 주는 길을 따라 왔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손이 되어드린다는 것'은 이제 우리가 그 별이 되어, 어디에 예수님이 계신지 알려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세계 제2차 대전 당시 연합군들의 모습을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바라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영혼 속에 계신 예수님의 모습을 믿지 않는 다른 이들에게 가장 잘 드러내는 방법은 바로 '우리가 주님의 손이 되어드리는 것'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드와이트 무디라는 개신교의 유명한 부흥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백사람 중 하나가 성서를 읽으면 나머지 아흔아홉은 그리스도인을 읽는다.” 그만큼 다른 이들은 그리스도인의 삶과 행동을 보고 예수님을 만나고,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이 아직 주님을 모르는 이들에게 별이 되어주고, 손이 되어줄 때 그 모습을 보는 이들의 가슴 속에 주님 탄생의 기쁨이 전해질 것입니다. 특히 군이라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힘들어하는 전우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라는 선물을 안겨줍시다.


 

 

마태 2,1-12. 이사 60, 1-6.

서공석 신부

성탄에서 우리는 한 어린 생명이 태어났다는 사실을 기념하였습니다. 그 어린 생명은 자라서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또 우리의 구원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오늘 주님의 공현 축일은 그 생명을 찾아 나선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마태오복음서의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을 보도하는 기사가 아닙니다. 동방에서 박사들이 베들레헴에 왔다는 오늘의 이야기는,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예수님이었지만, 이스라엘은 그분을 거부하였고, 이교도들이 먼 이역에서 찾아 와 예수님을 영접하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해 활동하셨지만, 이스라엘은 그분을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 후 그분의 가르침은 이방인들에게 더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박사라는 사람들이 해 뜨는 동방에서 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무엇 하는 사람인지, 몇 명인지, 베들레헴을 다녀서 어디로 갔는지, 후에 신앙인이 되었는지, 어느 것 하나도 말해 주지 않습니다. 그들은 잠시 무대에 나타났다가 사라집니다. 무대 위의 배우가 자기의 배역이 끝나면 사라지듯이, 그들도 성서 안에서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그들이 세 명이라는 말은 복음서에 나오는 예물이 셋이기 때문에, 기원 후 500 년경 발생한 전설입니다.

 

그들이 나타나자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다.’고 오늘 복음은 말합니다.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헤로데 왕이고,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입니다. 이스라엘은 예수님이 탄생하시자 벌써 놀라고 그분에 대해 적의를 품었다는 말입니다. 오늘의 이야기에서 헤로데 왕은 아기를 찾거든 자기에게도 알려 달라는 음흉한 주문을 하면서 그 박사들을 베틀레헴으로 보내었습니다. 그들은 길을 떠나 결국 아기를 찾아 경배하였습니다. 말씀을 찾아 자기 길을 가는 사람은 말씀을 만난다는 뜻입니다.

 

우리도 모두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태어나고 철이 들면서부터 우리는 길을 가고 있습니다. 어디로 가든 우리는 가고 있습니다. 사랑하기도 하고, 환상을 좇기도 하면서 갑니다. 돈을 좇아, 권력을 좇아, 때때로는 비굴하기도 하고, 거짓을 말하기도 하며 길을 가고 있습니다. 나 한 사람 잘났다고 착각하기도 하고, 이웃을 미워하기도 하면서 길을 갑니다.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시들고 마는 한 송이의 꽃과 같이 길지도 않은 인생길을 우리는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이 주신 우리의 생명입니다. 창세기는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진흙으로 인간의 모상을 빚어놓고, 당신의 숨결을 불어넣으시자 살아 있는 존재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숨결, 곧 그분의 생명과 관계가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 안에 그 숨결이 살아 있으면, 허무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창세기는 “흙으로 돌아간다...먼지로 돌아간다.”(3,19)는 말로 그 허무를 표현하였습니다. 하느님 없이 우리 삶의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인간은 자기중심적으로 또 제 멋대로 살도록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숨결을 자기 안에 살려서 살아야 하는 인간입니다.

 

오늘 베들레헴을 향해 길을 떠난 박사들의 여행은 말씀을 찾아 나선 신앙인들의 여정입니다. 그들은 인간에게 주어진 구원의 말씀을 찾아 별을 보고 떠났습니다.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은 별 하나입니다. 흔하디흔한 별들 중 하나입니다. 그들은 정든 삶의 온상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아브람이 자기 고향을 버리고 길을 떠났듯이 그들도 떠났습니다.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과거의 편안함이 그립기도 하였고, 회의에 빠져 마음이 어둡기만 한 때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헤로데 왕에게 가서 길을 묻기도 하고, 그의 간교한 주문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간교함이 하느님을 향한 그들의 발걸음을 막지는 못하였습니다. 드디어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만나 그들의 정성을 바치고 우리 시야에서 사라집니다. 성서는 그들에 대해 다시는 말하지 않고 우리는 그들에 대해 더 알아볼 길도 없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역할을 다 하고 사라졌습니다.

 

우리도 하느님의 말씀을 찾아야 합니다. 찾는 마음이 있고, 길을 떠나는 용기도 있어야 합니다. 길을 떠나는 것은 지금까지 아무 문제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삶의 온상을 떠나는 것입니다. 재물이 제공하는 온상에서 하느님의 말씀은 들리지 않습니다. 남보다 우위에서 남을 지배하기를 원하는 마음에 말씀의 별은 보이지 않습니다. 말씀은 초라한 구유에 한 아기라는 연약한 모습으로 누워 있습니다. “이 지극히 작은 형제들 가운데 하나에게 해 주었을 때마다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는 복음서 말씀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찾는 우리가 무엇에 시선과 마음을 주어야 하는지를 알려 주는 말입니다. 초라한 현실과 고통당하는 약자들의 모습을 외면하면, 말씀에로 인도하는 별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 현실과 그런 사람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하겠다는 배려의 마음이 있을 때, 별은 보이고 말씀은 들립니다. 그런 마음 안에 하느님의 숨결이 살아 계십니다.

 

별은 우리에게도 주어졌습니다. 우리의 이기심과 욕심의 구름이 걷히면, 하느님 말씀의 별은 보입니다. 초라하고 고통스런 약자의 모습들은 하늘의 별과 같이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것을 향해 우리는 움직여야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를 인도하는 별이 빛을 발할 것입니다. 옛날의 헤로데와 율법학자들 같이, 오늘의 통치자와 종교 지도자들이 하는 엉뚱하고 때때로 간교한 주문도, 말씀을 찾아가는 우리의 발길을 막지는 못합니다. 그 말씀을 따라 조금씩 움직이는 우리의 삶 안에 하느님은 숨결로 우리 안에 계십니다.

 

하느님을 향해 가야 합니다. 우리가 갇혀 살고 있는 이기심의 따뜻한 온상을 뒤로 하고 떠나야 합니다. 우리의 죄도, 우리가 받은 상처도 모두 잊어 버려야 합니다. 하느님은 그런 것들 안에 계시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과거를 가지고 우리와 시비하시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그분을 향해 길을 떠나면, 별이 되어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이웃을 불쌍히 여기고 보살필 때, 하느님은 우리 실천의 숨결로 살아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 실천의 원천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하느님 없이도 잘 돌아가는 세상입니다. 각자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아도 무방한 세상입니다. 그러나 그런 삶 안에 ‘흙과 먼지’의 허무를 보는 사람이 신앙인입니다. 하느님의 숨결이 자기 안에 살아 있게 살겠다는 신앙인입니다. 말씀과 숨결이 우리의 실천 안에 살아 계셔야 합니다. 우리를 움직이게 해야 합니다.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

 



내 자신을 드러냅시다.

이강태 신부

2009년 새해 첫 주일을 맞아 한 해 동안 주일을 잘 지킬 것을 결심하시면서 주님의 은총 안에 자신을 드러내시도록 기도를 드립니다.

 

세상의 구세주인 예수님의 탄생을 맞아 아기 예수님께 경배드리고 예물을 바치러 온 동방박사의 방문을 기념하는 주님공현대축일은 2세기 초 동방교회에서 유래하였고 동방 교회의 공현 축일이 니케아 공의회(325년)이후에 서방으로 전파되었을 때 서방 교회에서는 동방 박사들이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이방 민족들 모두에게 드러내 보이셨다는 변화의 의미가 강조되었습니다. 즉 하느님의 구원과 은총이 유다의 국경을 넘어 모두에게 전해졌다는 교회의 보편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뵙기 위하여 가정과 모든 것을 버리고 빛나는 별 빛만을 따라 베들레헴까지의 먼 여행은 신앙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에 본보기가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당신께 도달하는 길을 가르쳐 주셨고 우리는 그 길을 찾아 가야만 구원되는 것이며 다른 사람들에게 인생항로의 빛의 역할을 하여야만 합니다.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이 계신 곳을 알게 되어 기뻐하면서 그분께 준비해 간 예물을 바치듯이 우리도 1년 동안 선물을 마련하여 아기 예수님께 드립시다. - 나 자신을 드러냅시다 ― 주일 미사만 하고 성당에서 쏜살같이 빠져나가는 나! 또 온다면 다음 주일미사만 하러 오시지 제 단체에도 가입하지 않아 “나는 신부를 알지만 신부는 나를 모를 거야” 하시는 분들께 교회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시고 신부, 수녀, 형제, 자매들이 나를 알아주는 일이 생기도록 말구유에 누우신 예수님처럼 우리 자신도 레지오 주회나, 성가연습, 성당청소 등등 교회 안에서 모습을 드러냅시다. 냉담자들도 구원을 입을 수 있도록 찾아갑시다.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외인들도 교회에 들어와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말과 행동이 하나 되는 삶을 살아가시고 그들을 공동체로 안내합시다.

 

우리를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다른 사람들을 구원해 주시는 분으로 드러나도록 사는 삶이 되는 주님 공현 대축일이 됩시다. 그렇게 될 때 교회는 하느님의 자녀들로 번성하게 되고 발전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비전을 실천하는 공현 대축일이 되어야겠고 2009년 비전을 지니고 신앙생활을 하도록 합시다.


그분의 별을 찾는 사람들

허영엽 신부

 

지금으로부터 30년은 되었을 것입니다. 신학생 시절 어느 해 겨울 방학에 서울역 앞 양동에서 봉사체험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양동에는 몇 분의 수녀님들이 그 지역에 거주하며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수녀님들도 처음에는 그곳 사람들의 텃세에 마음고생도 많이 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자취조차 없어졌지만 당시 서울역 앞 양동에는 해방이후 형성된 유곽이 즐비했고 판자를 세워 지은 집들이 가득했습니다. 윤락 여성, 걸인, 고아, 장애인들도 많이 살았습니다.

 

양동을 처음 찾았을 때 ‘서울에 이런 곳도 있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들의 모습을 보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세상으로부터 철저하게 소외받고 버림받았으며 가난과 병에 지친 사람들이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작은 희망조차 없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수녀님들이 이들의 벗이 되어 함께 살고 계셨던 것입니다. 나는 양동에서 만난 맹인 할아버지가 한 말을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나는 하느님이 누군지, 정말 계신지도 몰라. 그런데 수녀님들이 우리들 곁에 오셔서 우리들을 위해 사시는 것을 보면 하느님이 계신 것 같아. 수녀님들이 믿는 하느님이니까.” 그 당시 양동 사람들에게 수녀님들은 오늘 복음에 나오는 그분의 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현재도 우주의 끝이 밝혀지지 않아서 우주에 존재하는 별의 숫자를 정확히 모른다고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그 많은 별 중에서 그분의 별을 발견한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께 경배를 드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천 년 역사동안 자신들을 구원할 메시아가 오실 것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핍박과 고통의 삶 속에서도 꿋꿋하게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메시아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구세주인 예수님께서 태어난 것을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들은 머나먼 동방의 이방인들이었습니다.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마태 2,2)”라는 동방 박사의 말을 듣고 비로소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법석을 떱니다. 동방박사들은 아주 먼 곳에 있었지만 그분의 별을 보았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나요? 오히려 지척에 있던 유다인들은 그분의 별을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유다인들은 왜 별을 못 보았을까요? 혹시 너무 가까이 있어서였을까요? 아니면 욕심에 눈이 어두워졌거나 별을 찾는데 게을러지지는 않았을까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그분의 별은 어디에 있을까요? 어쩌면 손이 닿을 곳에 있을지 모릅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태어나실 곳, 베들레헴은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입니다. 우리는 무수한 별들 중에 그분의 별을 찾아야합니다. 물론 저절로 찾을 수는 없습니다. 동방박사들처럼 많은 수고와 노력이 따를 것입니다. 그래도 다행히 예수님께서 당신을 진리요 길이라고 가르쳐주십니다. 따라서 우리도 예수님을 보고 그분을 따라간다면 생명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 자신도 다른 이들을 생명으로 인도하는 그분의 별이 되어야 합니다.

 

올 한해 나와 이웃 안에서 그분의 별을 자주 발견하기를 소원합니다.


신앙의 별이 되자!

이지철 신부


새해 첫 주일이다. 하느님께서 새해를 다시 선물로 주셨다. 이렇게 좋은 날이 첫 주일이라는 것은 한 해를 희망과 믿음으로 시작하라는 하느님의 덕담이요, 격려요, 가르침으로 들린다. 오늘 우리가 경축하는 주님 공현 대축일의 의미는 하느님께서 별을 통해 아기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요, 당신의 아드님이심을 밝혀 주셨다는데 있다.

 

지난 여름 어린 조카들과 함께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함께했던, 참으로 아름다웠던 시간이 떠오른다. 별자리를 찾고, 떨어지는 유성을 보며, 빛나는 그들의 영혼을 바라보는 시간은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특별한 선물이요 아름다운 추억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밤은 우리 인생을 위해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캄캄해져야 보이는 것, 캄캄해질수록 자신의 존재를 우리에게 확연히 드러내 보여 주는 것이 별이다. 오늘날 대도시에서 별을 보기가 힘든 것은 사람들이 밤을 낮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성경을 묵상하다 보면 밤이 인간을 위해, 신앙의 심화를 위해 얼마나 긍정적인 작용을 하는지 알 수 있다. 동방박사들은 밤의 어두움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인생의 밤이 춥고 어두울 때면, 그리고 어둡고 캄캄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방황의 시간이 허전함과 불안함 속에 실존의 고독을 배가시킬 때면, 눈을 들어 별을 바라보았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자비의 기억이 빛이 되어 어둠을 밝히듯 말이다. 밤이 어두울수록 밝게 빛나는 것이 별이다.

 

그래서 이들은 인생의 어둠에 좌절하기 보다는 오히려 감사한다. 저 캄캄함을 알지 못했다면, 인생의 차가움과 어두운 밤을 마음으로 겪지 못했다면, 그들은 분명 구원의 필요성을 몰랐을 것이고,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과의 만남이 얼마나 큰 은총인지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그분께서 인도하시는 저 별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에게도 체험되는 어두움이 있다. 그럴수록 별의 인도로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찾아뵙고 경배 드렸듯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믿어주시는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도 신앙의 별이 되자.



기축년 새해를 여는 첫 주일에...

김동철 신부

기축년 소의 해가 밝았다.

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뀔 것만 같았는데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다. 단지 바뀐 것은 2009년의 새로운 달력뿐. 그렇지만 어려운 세상살이 가운데에서도 하느님 안에서의 행복을 잃지 않고 소처럼 부지런함과 인내심을 가지고 뚜벅뚜벅 올 한해를 걸어가고자 한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나름대로 소박한 소망을 꿈꾸었을 것이다. 그것이 어떠한 것이든지 ‘꿈은 이루어진다’고 그 목표를 향해 성실히 달음박질해 나간다면 반드시 성취될 것이다. 마치 오늘 주님 공현 대축일을 맞이하여 동방박사 세 사람이 별의 인도를 받아 그들이 만나기를 간절히 소망했던 아기 예수님을 만났던 것처럼 말이다.

 

제임스 와트라는 사람이 그린 “소망”이란 유명한 명화가 있다. 이 명화의 내용을 보면 지구가 있는데, 그 지구 위에 남루하게 옷을 입은 어떤 소녀가 앉아 있다. 그리고 그 소녀가 거기서 바이올린을 켜고 있는데 그 바이올린 줄을 가만히 보면 그 줄들이 가닥가닥 끊겨있다. 오직 하나의 줄만 남아 있을 뿐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녀는 그 하나밖에 없는 바이올린 줄로 열심히 바이올린을 켜고 있다. 줄이 정상적으로 모두 있어도 바이올린을 켜기 어려운데 가닥가닥 끊어지고 하나밖에 없으니 얼마나 어려웠겠는가? 그 한줄로 소녀는 열심히 바이올린을 켠다. 이것이 ‘소망’이라는 명화이다. 도대체 그 소녀는 무엇을 그렇게 소망하였던 것일까?

 

소망이라는 그림을 바라보면서 이러한 묵상을 해본다. 둘도 없는 가족과 친지와 이웃과의 관계 줄이 끊어지고, 내가 바라는 것을 모두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돈줄 등, 그 밖의 모든 것이 끊어져 외롭고 힘들게 느껴진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 준 예수님과 함께 할 수 있다는 한 가닥 희망의 줄, 믿음의 줄만 있다면, 나의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바로 그러한 삶의 연주를 멈추지 않는 이상 예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어 놓을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내가 무엇에 힘들어하고 아파하는지를 잘 알고 계시기에, 동방박사들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예수님을 만나보고자 별빛 하나만을 바라보며 포기하지 않고 그토록 노력했던 것처럼 예수님 품 안에 머무르려 노력한다면 더없는 기쁨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 철사 줄보다 강하고 나일론 줄보다 더 질긴 것이 사랑의 줄이라고 하였다. 그 사랑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 보여주셨던 것이다.

 

오늘 주님 공현 대축일은 단순히 지나간 2000년 전, 동방박사들이 별을 따라 예수님을 찾아갔다는 것을 기념하는 것 뿐만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동방박사들처럼 예수님께로 끊임없이 나아가고, 그 안에 머물며 살기를 다짐하는 한해의 시작이 되라는 의미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그 무엇이 나의 신앙과 삶을 방해한다 하더라도, 억지로가 아니라 또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실 예수님을 스스로 찾아 나서는 제2의 동방박사로서 살아갈 것을 소망한다면 마침내 예수님은 나의, 나는 예수님의 영원한 동반자가 될 것이다.


별의 인도를 따라…

채지웅 신부


오늘은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구세주이신 예수님께서 당신의 존재를 이 세상에 처음으로 드러내신 날입니다. 모든 예언자들이 그토록 예언하였고 모든 사람들이 이 순간을 기다려왔지만, 그 누구도 예수님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분을 가장 먼저 알아 본 사람들은 가난한 목동들이었고, 또 오늘 복음에서 만나는 동방 박사들이었습니다.

 

동방 박사들은 당대의 지식인 계층이었고, 안정된 삶과 고상한 품위를 갖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눈이 높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동방 박사들이 어떻게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구세주로 알아볼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빛이신 하느님의 인도를 받아 정화의 과정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동방 박사들은 호기심에서 별의 인도를 따라 길을 나섰습니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큰 별을 보고, 자신들의 능력으로 그 별이 나타내는 인물을 꼭 찾아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별의 인도에 따라 낮에는 매우 뜨겁고, 밤에는 매우 추운 사막 안에서 많은 고생을 하면서 그들의 생각은 정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은 깨달았습니다. 자신들의 힘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별빛이 비추는 데로 자신들이 따라가고 있음을, 그리고 그렇게 하기에 별이 나타내는 인물을 찾을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 다. 이러한 정화의 과정을 겪었기에 그들은 베들레헴의 춥고 냄새나는 허름한 마구간의 말 여물통 위에 뉘인 아기 예수님을 보고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을 위해서 자신을 낮추신 예수님처럼 그들도 빛이신 하느님의 도움을 받아 자신들의 눈을 낮추었기에, 아기 예수님을 자신들을 구원할 구세주로 바라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걷고 있는 인생여정은 동방 박사들이 걸었던 그 길과 같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항상 좋은 길, 곧은 길을 걷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때로는 오르막길을, 때로는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행복을 느끼기도 하고 실망과 좌절을 겪기도 합니다. 그래도 우리는 과감하게 길을 떠나야 합니다. 그 길이 보이지 않고 두렵다고 해서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빛이신 하느님께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빛을 따라 갈 때 우리들의 눈과 마음은 차츰 정화되어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신 구세주의 진면모를 알아보고 그분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이번 한 주간 우리의 삶을 인도하는 별빛의 인도를 잘 따르는 시간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스타입니다

이성길 신부


2009년 새해 첫 주일입니다. 하느님의 은총 속에 더욱 보람되고 행복한 한 해 되시기를 빕니다. 아울러 올해는 바오로 해의 후반기를 마무리하는 해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오로를 닮아 진정한 회개와 불같은 열정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널리 전하는 복된 한 해가 되면 좋겠습니다. 또한 올해는 안동교구 설정 4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하느님이 심어 주신 작은 생명을 소중히 가꾸며 내적 쇄신과 확고한 신앙으로 50주년을 향하여 더욱 성장하는 한 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오늘은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머나먼 나라에서 동방박사들이 찾아왔습니다. 별의 인도를 받아 먼길을 찾아온 그들을 예수님은 기꺼이 맞아주시며 친구와 가족이 되어 주십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제부터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만의 주님이 아니라, 모든 인류의 주님, 우리 한국 사람의 주님도 되십니다. 오늘은 이 큰 은혜를 감사하며 경축하는 큰 잔칫날입니다.

 

캄캄한 세상살이에서,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는 백성 앞에 큰 별이 나타납니다. 여태껏 본 적이 없는 밝은 별입니다. 그 별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이것을 본 동방박사들은 그 별을 따라 길을 떠납니다. 멀고도 험난한 여행을 시작합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도, 살을 에이는 한 겨울에도, 피로와 불안속에서도 오로지 밝은 별빛에 희망을 걸고 나그네길을 계속합니다. 드디어 험난한 여정 끝에 동방박사들은 별이 멈추는 곳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 예수를 만나게 됩니다. 그토록 찾아헤매던 새 생명의 구원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 옛날 멀리서부터 동방박사들을 구세주 예수님께로 인도해 온 것은 하나의 별(스타)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지 2천년이 지난 오늘도 세상은 여전히 어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불의와 부정이 난무하는 암흑 속에서,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할 지, 사람답게 사는 올바른 길이 어디인지 그 길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일은 누가 할 일입니까? 하느님은 우리가 이 일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세례를 받은 우리 모두가 이 시대의 스타입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별(스타)로 뽑아주시며,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태 5, 14), “일어나 비추어라”(이사 60, 1)고 말씀하십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 16)는 사명을 주십니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직장, 단체, 마을의 별인데도, 별의 역할을 제대로 살지 못한다면, 이 세상은 절망 속에 언제까지나 어둠과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따뜻한 마음으로 모든 이에게 먼저 다가가는 참 별이 될 때, 이 세상은 희망으로 일어서 새 삶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금년 한해도 참 삶을 찾아 애쓰는 이웃들에게 나눔과 봉사와 사랑의 아름다운 스타로 복되게 사는 한 해 되시길 기도합니다.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 (이사 2,5)

박철호 신부

얼마 전 갑자기 찾아온 한파 때문에 방에서 키우던 열대어들이 얼어 죽었습니다. 저는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작은 물고기들을 안쓰러운 마음으로 복을 빌어주면서 어항의 물을 변기에 부었습니다. 하얀 변기는 마치 그들을 하늘나라로 인도해 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물고기들이 따뜻한 변기 안에서 꿈틀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변기의 더러움은 잊은 채 허둥지둥 다시 살아난 물고기들을 건져서 따뜻한 곳으로 옮겼습니다. 한참동안 어항을 다시 꾸며주고 나서 정신 차린 저는 그제야 변기를 다시금 보게 되었습니다. 오로지 더러움을 씻기 위하여 만들어진 변기는 물고기에게 생명의 샘이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은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동방의 세 박사가 먼 길을 달려와 아기 예수님을 경배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동방박사들은 그 먼 길을 오직 별 하나에 의지하여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박사들은 세 가지의 예물을 통해서 예수님을 하늘나라와 이 세상 그리고 죽음까지도 통치하시는 왕 중의 왕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하지만 헤로데 임금을 비롯한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은 주님의 탄생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현명하다고 일컬어지는 이들에게 주님께서는 구세주를 보여주지 않으신 것입니다. 다만 하느님께서는 진심으로 당신의 뜻을 구하고 바라고 믿는 이들에게 고요한 밤에 주님 구원의 빛을 보여주십니다.

 

나에게는 더러운 변기가 얼어붙은 물고기에게 생명의 샘이 될 수 있듯이, 주님께서는 내가 지금은 보지 못하는 무수한 방법으로 당신의 구원을 보여주십니다. 비록 그것이 아무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어느 밤하늘 무수한 별들 중에 작은 별빛일지라도, 끊임없이 하늘나라의 신비를 희망하는 이들은 볼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신앙도 모든 것을 주님께로 향할 때에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길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생명의 위협까지 무릅쓰고 머나먼 길을 떠나 베들레헴이라는 작은 고을에서 예수님을 경배할 수 있었던 동방박사들은 우리에게 어떠한 자세로 주님의 길을 걸어야 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밭 속에 묻힌 보물을 발견한 사람이 자신의 모든 것을 팔아서 그 밭을 산 것처럼, 세상을 통치하실 구원의 별 빛을 발견하고서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 동방박사들처럼, 우리 또한 주님의 빛을 보기 위해서 그 어떤 수고로움도 마다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가 찾은 주님의 빛을 소중히 간직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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