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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전례
작성자 주일강론모음
작성일 2007년 11월 20일 (화) 10:28
분 류 연중31-34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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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해 연중 제 34주일 주일강론 모음 ”
 

그리스도왕 대축일(연중 제34주일)

17. 강길웅 신부(다)/28

18. 강영구 신부(다)/30                           19. 김신호 신부(다)/없음

20. 변희선 신부(다)/33                           21. 유영봉 신부(다)/35

22. 이기정 신부(다)/없음                         23. 조순창 신부(다)/37

24. 정주성 신부(다)/39





17     그리스도왕 대축일(연중 제 34 주일)  루가 23. 35-43 (다) 예수, 왕중의 왕

강길웅 신부



제1독서 Ⅱ사무 5,1~3 (모든 장로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았다) 

제2독서 골로 1,12~20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 주셨습니다) 

복 음 루가 23,35~43 (주님, 주께서 왕이 되어 오실 때에 저를 꼭 기억하여 주십시오) 



‘못난 노태우'는 정말 못난 노태우였습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대대 후손에 이르기까지 큰 영광이요 자랑인데 한 나라의 최고 통치권자로서 국가를 보위하고 국민 복리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야 할 자가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웠다는 것은 그가 정말 제 정신이 올바르게 들어 있는 사람인지조차도 의심스러웠습니다.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을 봐도 그 사람은 철부지였습니다. 어찌보면 순전한 기만이요 사기였습니다. 그리고 측근들을 동원하여 감출 수 있는 데까지 감추고 숨길 수 있는 데까지 숨기며 또 빠질 수 있는 데까지 빠져나가려는 모습을 볼 때 차라리 연민의 정을 느끼기 도 합니다. 그런 자를 왕으로 뽑아 준 우리 손들이 부끄러웠습니다.



교회는 연중 마지막 주일을 그리스도왕 대축일로 정하여 예수님이 왕으로 다시 오실 것을 기리고 있습니다. 십자가 위에는 라틴어로 INRI라는 글자가 새겨 있습니다. 이는 ‘유대인의 왕 나자렛 예수'라는 말의 약자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정말로 예수를 왕으로 인정하여 쓴 것이 아니라 조롱하기 위해 썼던 것입니다. 그러나 맞는 말이 되었습니다.



본래 유대인들에게는 하느님만이 진정한 왕이었습니다. 그들은 또 다른 왕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국가의 왕이 없으니 여러 가지 곤란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 청하여 왕을 세웠던 것입니다. 제일 처음 왕으로 뽑힌 자가 사울인데 그러나 그는 하느님 눈밖에 난 사람이었고 둘째 왕인 다윗이야말로 유다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오늘 1독서에 보면 다윗이 통일 국가의 왕으로서 등극하는 내용이 나왔습니다. 기원전 약 1천 년경이었습니다. 다윗은 비록 목동 출신이었지만 하느님께 순명하고 또 그 길을 충실하게 걸어가려 했습니다. 물론 죄도 있었지만 이내 뉘우칠 수 있었고 그 때문에 더 겸손할 수 있었던 아주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후계자들은 하나같이 못난 왕들이었습니다. 건듯하면 하느님을 배신하고 우상이나 섬겼으며 못된 짓거리를 골라서 하다가 결국은 나라를 망쳤습니다. 그리고 뼈아픈 유배생활을 체험했습니다. 이처럼 왕들의 실정에 실망한 백성들은 다윗에 버금가는 새 왕을 기다리게 됩니다. 이것이 메시아 사상의 시초가 됩니다.



유대인들은 정말 강력한 힘을 가진 왕을 기다렸습니다. 압박 받는 식민생활에서 해방되어 독립국가를 건설하고 경제적으로 배부르고 사회질서가 안정된 복지국가를 꿈꿨습니다. 그리고 그 꿈은 메시아 가 나타나서 해결해 주리라 믿고 그래서 간절한 마음과 신앙으로 기다렸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혜성처럼 등장하자 그가 바로 메시아다 하면서 기대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예수는 너무 딴판이었습니다. 하느님께로부터 온 사자 같기도 한데 이건 어찌된 일인지 순전히 죄인들과 어울리면서 먹고 마시기나 하지, 나라를 해방시키고 독립시키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빵 다섯 개로 수천 명을 배불리 먹이시면서도 국민들의 가난에는 손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를 단죄했습니다. 저 친구는 메시아도 뭣도 아니고 한낱 사이비 종교의 교주쯤으로 무시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왕이라고 사칭하면서 백성을 선동시키고 우롱했다 해서 십자가에 매달아 처형시켰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아무런 힘의 과시나 방어도 없이 그대로 당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였을 때 그들은 이제 세상이 조용하리라 믿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메시아를 열심히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다른 메시아는 오지 않았고 죽은 예수는 오히려 유대인들을 더 곤혹스럽게 만들었습니다. 그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이며 그리고 그를 믿는 추종자들이 계속해서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정말 왕으로 오셨습니다. 물론 세상에서는 더없이 초라한 왕이었습니다. 가난한 왕이었으며 힘없는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겸손하면서도 가장 완벽한 왕이었습니다. 그분은 진정 가난하고 병든 사람에게 참된 희망을 주었으며 죄로 타락하여 구제불능인 세상에 하늘의 문을 복되게 열어 주셨습니다.

가진 것이 없으면서도 모든 이에게 넉넉하게 채워 주셨습니다.



그 왕이 이제 다시 오십니다. 이것은 그분의 약속입니다. 우리는 정말 살아서도 죽어서도 그분 나라의 백성입니다. 십자가 옆의 강도는 그분을 왕으로 고백했다가 바로 그 자리에서 구원받았습니다. 우리의 구원도 그분이 왕이라는 고백과 믿음에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왕으로 고백하고 믿음으로써 늘 새 날을 만나도록 합시다.











18 연중 제34주일 -그리스도 왕 대축일  루가 23. 35-43 (다) 십자가 위에서 왕이 된 사람

                                                                  강영구 신부





오늘은 연중 제34 주일이자 그리스도 왕 대축일입니다. 우리 교회의 달력-전례력(典禮曆)이라고도 합니다만-에 의하면, 오늘 이 주일이 일 년 중의 마지막 주일이 되는 셈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달력으로 일 년 중의 마지막 주일이 되는 오늘을 교회는 전통적으로 그

리스도 왕 대축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다음 주일부터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게 됩니다. 우리 교회의 전례력은 3년 주기로 되어 있습니다. 가해, 나해, 다해로 돌아가게 되어 있는데, 올해는 다해입니다. 그러니까 다음 주일부터 시작되는 새해는 가해가 되는 셈입니다. 교회의 전례력으로 한해가 다하고 새로운 해가 다가오려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얼마나 성실한 하느님의 자녀로서 살아 왔는지를 반성해야 할 때입니다.

  

아주 오랜 옛날, 어느 나라에 왕이 한 분 계셨습니다. 그 왕은 기구한 운명을 타고났습니다. 그분이 태어날 때 하늘이 열리고 천사들이 나타나서 그분의 탄생을 알리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하늘에는 새로운 큰 별이 나타났습니다. 그 별을 보고 동방의 세 박사가 왕을 조배하러 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사람들은 그분을 왕으로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왕은 분명히 왕인데, 그 왕에게는 왕궁도 없었고, 그를 호위하는 군사도 없었습니다. 왕은 늘 백성들 가운데서 백성들과 함께 어울려서 살았습니다. 그 왕은 왕이면서도 전혀 왕처럼 행세하지 않았습니다. 그 왕의 주변에는 늘 가난한 사람들과 버림받은 사람들, 고아와 과부들, 나병 환자들과 병자들이 있었습니다. 대신들과 군사들이 그 왕을 에워싸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세리와 창녀들, 버림받은 죄인들이 그 왕을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왕은 그들의 상처받은 가슴을 어루만져 주었고 그들과 아픔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한 식탁에 앉아서 음식 나누기를 즐겨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때로 그 왕을 죄인들과 어울려서 먹고 마시기를 즐겨 하는 껄렁패라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인지 백성들을 그분이 왕인지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왕은 또 다른 왕에게 고발당하고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죄목이라는 것이 참으로 회한했습니다. 도대체가 인간답지도 않은 죄인들과 창녀들과 세리들, 가난한 사람들이 하느님 나라의 주인이 된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렸다는 것이 그분이 고발당한 죄목이었습니다. 그런 유언비어를 퍼뜨려서 사회 기강을 문란하게 한다는 것이 그 왕이 고발당한 이유였습니다.

  왕은 그가 평소에 사랑하던 사람들, 죄인들과 세리들, 창녀들과 가난한 사람들, 내쫓긴 사람들을 위해서 죽기로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이 불쌍한 왕은 그 누구도 변호해 주는 이 없는 가운데 심하게 매질과 고문을 당하고 끝내는 죽음의 산으로 끌려가야 했습니다. 왕은 머리에 왕관 대신에 가시관을 쓰고, 환호와 박수 갈채 대신에 온갖 욕설과 침 뱉음과 모욕을 받으면서, 깃발 대신에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죽음의 산으로 끌려갔습니다.



왕은 평소에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백성들에게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너희도 알다시피 세상에는 통치자들이 백성을 강제로 지배하고, 높은 사람들이 백성을 권력으로 내리누른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사이에서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종이 되어야한다. 사실은 나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마태 20,25-28).

  

왕은 평소에 백성들을 가르쳤던 대로 백성들을 위해서 죽었습니다. 왕은 십자가 위에서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자신을 고발한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죽었습니다. 그렇게 힘없이 무력하게 죽어 간 그를 아무도 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때 그 왕과 더불어서 두 폭도도 십자가형을 받고 같이 처형되었는데, 그 폭도 중의 한 사람이 함께 십자가형을 받고 죽어 가는 왕을 왕으로 알아보았습니다. 그 폭도는 피 홀리며 십자가 위에서 비참하게 죽어 가는 왕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왕이

되어 오실 때 저를 꼭 기억하여 주십시오.”

  

그 왕의 머리 위에는 사람들이 비웃는다고 이런 죄목을 걸어 두었습니다. “유다인의 왕, 나자렛 사람 예수.” 그 왕이 죽자 온 땅이 세 시간 동안 캄캄한 어둠에 잠기게 되었고, 예루살렘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짝 갈라져서 두 쪽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은 그 왕이 죽은 지 3일 후에 일어났습니다. 죽었다던 왕이 다시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왕은 이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 왕으로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 바오로는 골로사이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 왕에 대해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아버지께 감사를 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버지께서는 성도들이 광명의 나라에서 받을 상속에 참여할 자격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시어,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아들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받고 속박에서 풀려났습니다. 곧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의 피로써 평화를 이룩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으로 섬기는 예수 그리스도는 왕입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이 왕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는 백성들을 다스리시기 때문에 왕이 아니라 백성인 우리 죄인들을 섬기시기 때문에 왕입니다. 그분은 백성들로 하여금 왕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를 강요하시는 분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백성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심으로 왕이 되신 분입니다. 그분은 하느님의 아들이었음에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심으로 왕이 되신 분입니다. 그분은 가장 높으신 분임에도 가장 낮은 자리를 차지하심으로써 왕이 되신 분입니다. 그분은 화려한 왕궁에서 천군만마를 호령하심으로 왕권을 행사하신 분이 아니라 버림받은 죄인들과 동고 동락하심으로 왕권을 행사하신 분입니다. 그분은 총과 칼로 백성들 위에 군림함으로써 왕이 되신 분이 아니라, 죄인인 당신 백성들 위해서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돌아가시고, 백성들을 죄와 죽음에서 구해 내심으로써 왕위에 오르신 분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주님이시지만 우리 인간들을 위한 종이 되심으로 왕 자리에 앉으신 분입니다. 그분은 왕좌에서 대관식을 하고 왕이 되신 분이 아니라, 가시관을 쓰시고 십자가 위에 매달려 왕이 되신 분입니다.

  

그분은 당신의 십자가로 하늘과 인간을 화해시키시어 죄인인 인간들이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하심으로 왕이 되신 분이고, 인간과 인간을 화해시키셔서 서로 형재 자매라 부를 수 있게 하심으로 왕이 되신 분입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나라가 있고 또 통치자들이 있습니다. 그 통치자들은 모두 국민들에게 봉사하기 위해서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국민들에게 봉사하기보다는 국민들 위에 통치자로서 군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국민들 위에 군림하는 재미와 통치하는 재미 때문에 권력자들은 온갖 추잡한 권모술수(權謀術數)로, 때로는 총과 칼로 권좌에 앉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한번 권력에 맛을 들이면 끝까지 그 권좌를 누리려고 온갖 더러운 작태를 행하게 됩니다. 여기서 온갖 죄악들이 생겨나고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속담에도 “열흘 붉은 꽃이 없고, 십 년 세도 없다.” 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왕들과 통치자들은 떨어지는 별이 되어서 허무하게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한번도 금으로 만든 왕관을 써 보신 작도 없고, 총칼로 무장한 군대를 호령해 보신 적도 없고, 화려한 왕궁에서 살아보신 적도 없는 우리의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가시관 쓰시고, 무참히 죽으셨던 우리의 왕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2천 년이 지난 긴 세월 동안 왕으로 우리 가운데 살아 계시고, 앞으로도 영원히 왕으로 살아 계실 것입니다.

가장 높으신 분이시지만 가장 낮은 자리에 내려오시고, 백성들을 위하여 당신의 모든 것을 바치셨기에,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이 참 왕이시고 영원한 왕이십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의 첫째 편지 2장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선택된 민족이고 왕의 사제들이며, 거룩한 겨레이고, 하느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두운 데서 여러분을 불러내어 그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해주신 하느님의 놀라운 능력을 널리 찬양해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의 말씀대로, 우리는 세례를 받아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가 되었을 때, 이미 그리스도의 왕직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주님이신 그분이 왕이신 것처럼 우리도 왕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가정에서 왕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직장에서 왕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본당에서 왕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사회 속에서도 왕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명심하십시오 우리가 왕이 된다는 것은 사람들로부터 섬김을 받기 위해서 왕이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장 낮은 자리에서 모든 사람들을 섬김으로써 왕이 되신 것처럼, 우리도 스스로 낮은 자리에서 우리의 가족을 위해서, 직장의 동료들을 위해서, 그리고 이웃과 형제들을 위해서 봉사함으로써 왕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가정과 직장과 사회, 그리고 교회가 얼마나 자기 중심적 이기주의와 편의주의로 깊이 병들어 있는지는 새삼스럽게 말씀드리지 않아도 잘 아실 것입니다. 모두가 자기에게 득이 되지 않으면, 자기의 편함을 위한 것이 아니면 꼼짝하려 하지 않습니다. 서로 섬기려 하기보다는 섬김 받기만을 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참 평화와 기쁨이 없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깊은 병을 치유하기 위해서, 그래서 더불어 기쁨과 평화 누리기 위해서 우리는 왕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낮은 자리에서 왕이 될 때, 우리 가정에 평화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 직장이 평화로울 것이며, 이 사회 이 나라가 평화롭게 될 것입니다. 여기 또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축복과 은총이 풍성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높은 자리에서 서로 섬김을 받기 위해서 왕이 되려 할 때, 우리의 가정에는 불화와 싸움이 그칠 날이 없을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 위에서, 아내가 남편 위에서 그리고 부모가 자식 위에서, 자식이 부모 위에서 서로 섬김받겠다고 한다면, 그 가정에 무슨 평화가 있겠습니까? 자기만의 안락과 편함만을 찾는 이기적인 가족들, 잘나고 똑똑한 가족들만이 모인 이런 가정에 불화와 불목, 싸움이 끝날 날이 없을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20     연중 제34주일   루가 23,35-43 (다) 십자가에 달리신 우리들의 왕(주님)

                    변희선 신부





  미국에서 발행되는 가톨릭 다이제스트라는 잡지에 실린 어느 젊은이에 관한 이야기이다. 신심 깊은 가톨릭 집안에서 성장한 그는 열심히 성당 활동을 하다가 신학교에 입학하여 사제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에게 위기가 닥쳐온 때는 미국의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월남전쟁 반대시위가 격화된 상황이었다. 그 당시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의 반전시위를 하던 중에 세 명의 대학생들이 경찰이 발사한 총에 의하여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에 충격을 받고 분노한 그 신학생은 자신의 신앙을 버리고, 신학교와 교회를 떠나서 반전운동에 가담하게 된다. 그의 가족들은 갑자기 교회를 비판하고 신앙에 대하여 적개심마저 품게 된 것에 대하여 경악하였지만, 그는 점점 더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졌다.



  그 젊은이가 22살이 되던 해 1770년 성주간 금요일에 차를 몰고 어느 성당을 지나치고 있었다. 그는 한 때 자신이 존경했던 신부님께서 그 날의 전례를 담당하신다는 게시판을 보았다. 문득 마음이 움직여서 차를 세우고 성당 안에 들어가 맨 뒷자리에 앉았다. 마침 성금요일 전례의 핵심 부분인 십자가 경배예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젊은이에게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젊은이는 다음과 같이 당시의 체험을 고백했다. 『뭔가 마음을 강하게 때리고, 저는 그냥 울기 시작했습니다. 격한 감정을 억제하고, 몇 년 전에 교회 안에서 느꼈던 평화가 다시금 찾아왔습니다. 이 순간 저는 단순한 신앙의 참된 의미를 깨닫고, 십자가에 다가가서 그분에게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 신부님은 저를 알아보시고는 저를 안아주셨습니다. 바로 그 날 저는 새 신자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오늘의 복음을 읽어보자.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처참한 죽음을 당하시고 있다.

좌우로 두 사람의 죄수들이 함께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데, 한 사람은 예수님을 비웃으면서, 「당신은 그리스도가 아니오? 당신도 살리고 우리도 살려 보시오!」하고 말한다. 그러나 또 다른 죄수는 말한다.「예수님, 예수님께서 왕으로 되어 오실 때에 저를 꼭 기억하여 주십시오.」



  우리 모두는 예수님 옆에 달린 죄인들과 비슷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조롱하면서 눈앞에 보이는 현상에만 집착하는 죄인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눈에는 잘 안 보이지만 믿음의 눈으로 예수님을 왕으로 알아보는 죄인을 선택할 것인가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 세상에는 눈앞에 보이는 왕들이 너무나도 많다. 돈이 많은 사람, 권세가 있는 사람, 나의 상사, 대통령 등은 내가 눈치를 보아야 하고 잘 보여야 할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나의 진정한 왕은 아니다. 내가 진심으로 머리 숙여 경배할 분은 오로지 예수님뿐이다. 왜 그런가?



  예수님은 가장 보잘것없는 이들을 위하여 가장 처참하게 십자가에서 자기 자신을 내 놓으신다. 그분의 가난함과 꾸밈이 없으신 모습은 우리 모두에게 진정으로 사랑이 무엇인가를 일깨워주신다.



  평생동안 범죄의 소굴에서 살았던 죄수가 마지막 순간에「예수님, 왕으로 되어 오실 때에 저를 기억하여 주십시오」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이며, 동시에 우리의 희망이기도 하다.



  자기 자신의 목숨마저 구할 수 없고, 처참하게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는 예수님에게 무슨 희망이 있는가? 하는 질문은 오늘도 계속된다. 어찌하여 모든 것을 믿지 못하던 타락한 신학생 출신의 젊은이가 그 분 앞에 무릎을 꿇었는가?

  예수님의 답변은 이러하다. 「오늘 네가 정녕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21        연중 제34주일   루가 23,35-43 (다)         예수는 나의 왕인가?

                                                     유영봉 신부



  묵상 : ‘왕'이라는 말은 민주화를 갈망하는 요즘 귀에 거슬리는 단어다. 그러나 ‘그리스도 왕'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분은 참으로 당신을 우리 죄인들을 위한 제물로 바치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죄와 죽음을 이기신 왕이시기 때문이다,



  왜 하필 왕인가?



  오늘은 전례적으로 한해를 마무리하는 연중 마지막 주일이며, 그리스도왕 주일이다,

‘왕'이란, 민주화를 부르짖는 요즘 전제군주적인 냄새가 많이 나기에 거부감을 갖게 하는 말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왕'이란 요즘의 ‘대통령'처럼 우리가 뽑아서 일꾼으로 삼았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갈아치울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왕'은 나라의 주인이요, 백성도, 땅도, 산천도 심지어 들짐승과 산짐승까지도 나라님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왕'이란 바로 ‘주님'이라는 말과 같은 뜻이 아니겠는가?  ‘그리스도 왕',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당신의 왕권을 확립하셨는가?


  악과 죽음을 이긴 왕


예수의 십자가 위에 써 붙인 죄명은 ‘유다인의 왕 나자렛 사람 예수'였다, 예수님은 이 세상 권력에 뜻을 둔 적이 결코 없었지만, 본의 아니게 정치범으로 몰려 죽으셨다. 당신의 말씀대로 예수님의 나라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당신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인간을 가장 비인간화시키는 죄와, 인간을 짓누르는 제일 두려운 공포의 대상인 죽음을 극복하셨다. 그리하여 죄와 죽음에서 인간을 해방시킨 진정한 왕이 되셨던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죽음을 뛰어넘는 결정적 승리에 도달할 수 있었는가?

그분의 생애를 보자, “왜 나를 찾으셨습니까? 나는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모르셨습니까"(루가 2, 48-49). 아들은 모친이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였다. 12세 때부터 예수는 자신의 특별한 소명을 느끼고 있었다. 예수님은 세례 때부턴 ‘고통받는 야훼의 종'으로서, 세상 사람들을 위한 속죄의 제물이 되는 것이,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당신의 소명임을 알고 계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에게 주어진 사명에 충실하기 위해 많은 인간적인 갈등을 겪으셔야 했다. 예수님은 당신의 죽음을 예고하시면서 “내가 이렇게 마음을 겉잡을 수 없으니 무슨 말을 할까? ‘아버지, 이 시간을 면하게 하여 주소서'하고 기도할까? 아니다, 나는 바로 이 고난의 시간을 겪으러 온 것이다"(요한 12, 27)하셨다.



  수난을 목전에 둔 겟세마니 동산에서도 “아버지, 아버지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라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주십시오"(루가 22,42)라며 기도하셨다.



  끝내 예수님은 큰 쇠못이 당신의 손발을 뚫어 십자가에 못박히기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예수를 보고 “네가 정말 하느님께서 택하신 그리스도라면 어디 자기도 살려 보라지!"(루가 23, 35), “네가 유다인의 왕이라면 자신이나 살려 보아라"(루가 23, 37)하며 야유를 퍼붓는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꼼짝도 못하고 죽음만 기다려야 하는 이 순간은, 완전한 패배의 순간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순간은 십자가의 죽음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일생동안 따라다니던 끈질긴 유혹을 끝내 물리치고, 당신을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복종시킨 승리의 순간이었다.



  십자가에 못박혀 도망갈 수 없게 됨으로써, 자신을 이기고 죄인들을 위한 숭고한 제

물로 자신을 바쳐, 죽음을 넘어서는 결정적인 승리를 얻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예수님

은 ‘이제 다 이루었다’하시며 고개를 떨어뜨리시며 숨을 거두셨다"(요한 17,3)



이렇게 예수님은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사랑의 제물이 되어 죽으심으로써 인간의 이기심과 아담의 불순종이 뛰어 낸 모든 죄업(罪業)을 말끔히 씻으셨다. 이로써 인간성과 인류는 죄와 죽음에서 해방되었던 것이다. 사도 바오로는 “우리는 그 아들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받고 속박에서 풀려났습니다"(제2독서)하고 고백한다. 드디어 예수님은 ‘만물의 으뜸이 되시고' 죽음까지도 뛰어넘는 ‘우주의 왕'이 되셨던 것이다,



   예수는 내 안에서 ‘왕 노릇' 하시는가?



  나는 나에게서 얼마나 자유로운가? 나를 얼마나 이겼는가? 인간에게 있어 진정한 해방과 자유는 자신을 얼마나 이겼는가에 달려있다. 예수님이 죽음을 넘어 부활의 영광에 이르게 된 것은 자신을 온전히 내놓는 사랑과, 하느님께 대한 전적인 순명으로 된 것이었다.



 나에게 있어 예수는 누구인가? 참된 해방, 구원에 이르는 길은 바로 예수님이 가신 그 길에 있음을 깨닫자. 이 깨달음 없이는 예수를 주님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나의 모든 삶이 예수 중심의 삶이 되어, 예수님이 나에게 왕노릇 할 때, 그때 나에게 주님의 나라가 임할 것이다.











23       그리스도왕 대축일   루가 23, 35-43 (다) 이 사람은 유대아인의 왕

                                                             -조순창 신부- 





엊그제 영하의 첫 추위로 겨울에 들어선 느낌입니다. 시장의 겨울 옷가지도 ‘평소의 곱절이 팔렸다’는데, 환절기에 잘 대처해야 할 시기입니다. 그래야 탈없이 지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공의 기회를 잘 잡고, 고난의 고비를 넘어서서 지나야 할 관문을 어렵게 지나며 살아갑니다. 마치 운동회 때에 출발점에서 힘차게 달려나가, 그물을 헤치고 사다리 간막이도 빠져나가고, 갖가지 장애물을 지나 결승점에 도달하여 등수의 평가를 받는 것과 같습니다.

내일 모레면 60만 명의 고 3 학생들이 대학교 입학을 위한 학력 고사를 치르게 됩니다.



우리의; 현실 속에서 고 3 학생이 겪어야 하는 관문이며, 본인의 불안과 조바심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부모와 가족이 겪는 걱정은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은 그런 대로, 잘 못하는 학생은 잘 못하는 대로 클 것입니다.



한 인생길의 큰 관문 앞에 서 있는 학생들을 위해서 기도하여 드립니다. 그러나 한 번의 성공과 실패에 인생을 다 걸 수는 없습니다. 많은 시험을 치러보고, 평가받으며, 기뻐하고 좌절하되, 국가적인 면에서 안보와 정치와 경제 문제뿐 아니라, 크고 작은 인명 손상의 사고와 사건, 생존과 내일을 위한 가족 계획에서 희생되는 태아, 숱한 투쟁과, 그 어느 때보다도 큰 규모의 금융 사고, 어렵게 대학에 들어간 학생이 졸업 정원 탈락의 위협을 받으며, 끊이지 않는 학원 소요 사태, 공무원들의 무사 안일 사례 등을 내놓고 공무원을 문책하는 현실은, 끊임없는 도전 앞에 신념과 의지로 대처하고, ‘이겨 나아가야 한다’는 현실을 말해 줍니다.



위기의 벼랑에 선 교우 여러분, 마음 걱정 없고, 사는 데에 경제적인 구애도 받지 않고, 사회에 안정이 있고, 인류의 평화가 있고, 인간이 서로를 두려워하지 않고, 서로 믿고 의지하며, 사랑을 나누고, 상부상조하는 가운데서, 끝없는 이상을 마음껏 펴고, 자유와 평등과, 정의와 박애와, 희망과 평화로 참된 행복을 구가하는 우리들입니다. 이런 소망은 환상적 꿈인가요? 문제와 불행은 무더기이고, 기쁨과 보람은 조각이어서 인가요?



오늘은 ‘그리스도왕 대축일’입니다. 연중 제 33 주일 다음 주일이며, 연중 끝 주일입니다. 우리의 이상이 어루어지고, 하느님의 계획이 완성되는 하느님 나라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하십니다.

이미 창세기 22장에서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불어나게 하시고, 네 후손이 원수의 성문을 부수고 그 성을 점령할 것이며, 세상 만민이 네 후손의 덕을 입으리라.”(창세 : 22, 7-78)는 말씀으로 큰 나라를 약속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제 2 독서에는, 하느님 약속하심에 따라서 다윗이 통일 국가의 왕이 되어,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린 섭리 실현의 말씀(사무Ⅱ : 5, 1-3)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 탄생 예고를 하면서, 마리아에게서 태어날 아기에게 다윗의 왕위를 주시어, 야곱의 후손을 영원히 다스리는 왕이 되겠고, 그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라고 일러 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갈릴레아에서 전도를 시작하시며, “회개하라, 하늘나라가 다가왔다.”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나라의 신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느님나라는 영원한 나라요, 평화의 나라요, 정의의 나라요, 사랑이 넘치는 나라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 사랑과 축복으로 통치하는 나라요, 이 세상 종말에 완성될 나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느님나라가 왔다’는 말씀에서 시작된 나라에, 하느님 손수 완성하시는 ‘그 날’이 오도록, 우리 스스로가 하느님나라가 이 땅에 한 부분이라도 실현되도록, 우리가 힘을 모아 실천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 부르심으로 세례라는 관문을 통하여 하느님나라의 국민이 되었습니다. 이 땅에, 우리가 회개하고 쇄신하여 평화와 정의와 사랑을 심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오늘 복음 말씀처럼, “오늘 네가 정령 나와 함께 하느님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하시는 축복의 말씀을 듣는 날이 되도록 합시다.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을 바라보며, 순교자의 얼을 이어받아, 이 땅에 빛을 비추어 나갑시다.













24        그리스도왕 대축일 루가 23, 35-43 (다) 이 사람은 유대아인의 왕

                                                        -정주성 신부-





나는 오직 진리를 증언하려고 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습니다. 진리 편에 선 사람은 내 말을 귀담아 듣습니다. (요한 18, 37)

오늘은 그리스도왕 축일입니다. 1925년 교황 비오 11세께서 새로이 그리스도왕 축일을 제정 공포하시고 그리스도의 왕권을 승복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만물의 왕이십니다.

하늘과 땅은 주님의 영광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자계산기의 발명에서부터 로케트의 발명에 이르기까지 과학의 모든 놀라운 발전은 주님의 지혜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예술의 아름다움은 주님의 영원한 영광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사랑의 왕이십니다.

한 여성이 남성을 사랑한다 하더라도, 한 남성이 여성을 사랑한다 하더라도, 한 어머니가 그 자식을 사랑한다 하더라도, 한 사나이가 그 나라를 사랑한다 하더라도, 그리스도께서 여러분과 나를 사랑하시는 사랑보다 더 위대한 사랑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스도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심으로써  당신의 위대한 사랑을 증명하셨습니다.



우리와 같은 식으로 생활하시고 생각하시고 이야기하시며 우리와 똑같이 고통을 당하심으로써 우리와 더불어 계시고자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셨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의 행위입니까!

우리가 사랑의 왕이신 그리스도의 사랑의 나라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그리스도처럼 사랑하기를 배워서 그분께 사랑의 보답을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스도는 진리의 왕이십니다.

그리스도의 왕국에는 결코 속임수란 있을 수 없습니다. 우선 자기 자신에게나 이웃에 대해 정직해야 합니다. 우리가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대해 진실하다면 진리를 쉽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이 진리의 증거자라고 말씀하셨을 때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많은 이가 빌라도처럼 진리를 발견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그리스도 왕국에 속해 있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온갖 이론과 지식이 범람하는 가운데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는 사람들을 여러분은 보셨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어느 것이 참말이고 어느 것이 거짓말인지 도무지 모르겠구먼!”

이것은 분명히 그리스도의 왕국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진리를 확신하시고 계셨습니다. “나는 오직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습니다. 진리 편에 선 사람은 내 말을 귀담아 듣습니다.”(요한 18, 37)



빌라도의 마음은 그 당시 궁중의 시끄러운 부르짖음, 데모를 진압시키려 했습니다. 빌라도에게 있어서 진리의 소리를 듣는 것보다는 민중의 소란을 진압시키는 편이 더 중대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진리란 무엇이냐?”라고 스스로 질문을 하고 그리스도의 답변을 기다리지 않고 밖으로 나가버렸습니다. 빌라도는 끝내 진리를 귀담아 들을 좋은 기회를 영원히 놓치고 말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초대 이승훈 등 많은 학자들이 “진리는 무엇이냐?”하고 북경으로 달려가 세례를 받은 후 4대 박해를 치렀습니다. 해방이 되고 6. 25동란이 지나 통일을 눈앞에 두고 국민의 대다수가 아직도 “진리가 무엇이냐?”하고 진리를 추구하기보다는 목전의 물질 문화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의 마음이란 물질문화만으로 충족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물질이 풍부해지고 과학만능이라는 생각 때문에 종교 무관심,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합니까? 그 옛날 빌라도처럼 소동을 부리는 군중 편에 서서 손을 씻으며 시치미를 뗄 것이냐? 아니면 진리 편에 서서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 왕을 따를 것이냐? “당신들은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당신들에게 자유를 줄 것입니다.”(요한 8, 32)



진리를 알면 우리가 자유를 얻을 것이라는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진리의 왕이신 그리스도 왕 축일에 우리 주변에서 진리대로 참되게 살려는 백성이 많아지도록 노력합시다.

만물의 왕이시며 사랑의 왕이시며 진리의 왕이신 그리스도여, 당신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하소서.



  

우리 직장도 마찬가지이고, 이 사회도 마찬가지이며 우리 본당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섬김받는 왕이 아니라,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왕이 됨으로서 평화를 누려야 하고, 함께 기쁨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가시관을 쓰시고 왕이 되시던 날, 우리가 다 함께 구원을 받고 평화와 행복 가운데, 서로 화목하는 중에 살아갈 수 있는 확실한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도 예수처럼 왕이 됩시다. 그리고 서로를 섬기려고 다투고, 봉사하려고 다툽시다. 평화와 기쁨, 행복과 화목이 은총으로 주어질 것입니다.

  “평화의 왕이신 예수여, 당신이 왕이 되어 오실 때, 우리를 기억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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