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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전례
작성자 강영구 신부
작성일 2008년 9월 6일 (토) 21:31
분 류 행사강론
ㆍ추천: 0  ㆍ조회: 3171      
IP: 218.xxx.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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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금요일 <요한 18,1-19> ”
 

6.      성금요일   <요한 18,1-19>     십자가 위에서 요절한 사나이

                                                           강영구 신부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오늘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수고 수난하심과 십자가의 죽으심을 묵상하면서 이 장엄한 예절을 거행하고 있습니다.

  방금 우리가 들은 긴 수난 복음은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향해 나아가시는 예수의 모습은 참으로 무능하고 무력한 모습입니다. 그 어디에서도 기적을 행하시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 어디에서도 사람들을 가르치시던 권위 있던 모습은 찾을 길이 없습니다. 다만 제자들의 배신과 당신을 고발하는 사람들의 모함과 총독 빌라도의 비굴함과 백성들의 소란 앞에 무능하고 무력하신 모습을 볼 수 있을 뿐입니다. 과연 저토록 무력하고 무능한 사나이가 죽은 사람들을 살려내고 바다의 풍랑을 잠잠케 하고 물고기 두 마리와 다섯 개의 빵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배불리시고 악마를 쫓아내시던 분인가 의심이 갈 정도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무력하고 무능하기는 하지만 당신을 죽이려고 악다구니를 쓰는 사람들 앞에 비굴하지 않으신 모습을 봅니다. 구차스럽게 당신을 변명하거나 생명을 구걸하거나 살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모습이 아닌, 참으로 의연하고 초탈하신 모습을 봅니다. 죽음의 운명을 눈앞에 보면서 당당히 그 죽음을 발아들이는 모습을 봅니다. 그리하여 그분은 사람들의 조소와 조롱 앞에 발가벗겨져서 처참한 모습으로 삼십삼 년의 짧은 생애를 마감하고 맙니다.

  

우리는 십자가 위에서 처참한 모습으로 요절한 저 어리석은 사나이를 주님이라, 그리스도라 부릅니다. 그리고 그 사나이가 매달렸던 소름 끼치는 사형 도구인 십자가를 구원의 길이라 믿고 있습니다.

  참으로 알아듣기 어려운 일입니다. 자기 목숨 하나 살리지도 못하면서 저토록 무력하고 무능하게 십자가에 매달려서 죽은 사나이가, 어찌하여 우리를 구원하고 살리시는 주님이 될 수 있으며, 사람을 죽이는 데 사용되는 형구인 십자가가 사람들을 구원하고 살리는 도구가 될 수 있단 말입니까? 이처럼 바보 같고 엉터리 같은 일이 세상 어디에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어리석고 바보 같은 사실, 터무니없는 사실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고린토 전서 1장18절 이하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멸망할 사람들에게는 십자가의 이치가 한낱 어리석은 생각에 불과하지만 구원받을 우리에게는 곧 하느님의 힘입니다. 유다인들은 기적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지만,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선포할 따름입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렸다는 것은 유다인들에게는 비위에 거슬리고, 이방인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이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 사람의 눈에는 어리석어 보이지만, 사람들이 하는 일보다 지혜롭고, 하느님의 힘이 사람의 눈에는 약하게 보이지만 사람의 힘보다 강합니다.”

  

예수는 결코 인간들이 원하는 방법으로 당신의 구원 사업을 성취시키려 하지 않았습니다. 어리석은 인간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가 당당히 십자가에서 내려와 주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죽었던 라자로를 살렸던 바로 그 기적의 힘으로 십자가에서 내려와서 당신을 모욕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던 무리들을 모두 쓸어버리는 모습을 보기 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무력하고 무능한 모습으로 죽음을 받아들였을 뿐입니다.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는 결코 당신의 그 권능과 힘을 발휘하거나 과시하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결코 우리 어리석은 인간들이 당신의 그 놀라운 능력에 압도당하여 당신 발 앞에 무릎 꿇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그와는 정반대로 당신을 송두리째 비워서 무능함과 무력함을 드러내시고, 비워진 당신의 모습 안에 하느님의 권능이 드러나기를 바라셨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리신 저 예수의 모습은, 하느님의 권능과 능력에 자기 자신을 맡기는 모습이요, 하느님의 능력이 드러나도록 당신을 송두리째 비운 모습입니다.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믿었던 예수는 삶에 대한 미련마저도 완전히 포기한 채, 철저히 하느님께 귀의하고 의지하셨습니다. 해탈하신 것입니다.

  저렇게 텅 빈 모습의 십자가에서 하느님은 당신의 권능을 드러내시고, 저 십자가를 통하여 어리석은 인간들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의 힘과 권능은 인간의 무력함과 무능함을 통하여 드러납니다.

  

인간들이 자신들의 쥐꼬리만한 능력을 과시하고 자신이 지닌 재물과 재산, 학식과 재능, 권력과 재주를 뽐내고 자랑하는 곳에 하느님은 언제나 침묵하시고, 그런 곳에 하느님은 계시지 않습니다. 하기는 그런 것들을 자랑하고 과신하는 인간들은 하느님이 필요 없고, 하느님의 권능을 믿지도 않습니다. 자신들의 능력으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이란 필요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자신의 무능과 무력을 고백하고 하느님께 의지할 때 바로 그곳에 비로소 하느님의 그 놀라운 능력은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십자가는 아버지이신 하느님께 대한 철저한 믿음의 표지요, 하느님께 완전히 귀의한 사람만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멸망할 사람들에게 십자가의 이치가 한낱 어리석은 생각에 불과하지만 구원받을 우리에게는 곧 하느님의 힘입니다.”(1고린 1,18)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께서는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셨고,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주님으로 믿음으로써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된 것입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우리는 모두 한 형제요 자매가 되었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과 화해할 수 있었고, 형제들과 화해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이 만나는 자리가 된 것입니다. 십자가의 위에서 아래로 내려 뻗는 종선(縱線)은 하느님과 인간이 만남을 뜻합니다. 그리고 좌에서 우로 가로지르는 횡선(橫線)은 사람과 사람이 만남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저 수치스럽고 잔혹한 사형 도구가 사람들을 살리는 구원의 도구가 된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의 주님이요 스승이셨던 예수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셨으므로 우리도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받아들이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십자가 아래에서 예수를 조롱하고 비웃던 사람들은 예수가 하느님으로부터 배척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십자가에 처참한 모습으로 매달리신 예수의 모습은 하느님으로부터 배척받은 모습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모습이자 하느님으로 충만한 모습입니다.

  

일상의 편함과 안락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은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지 못합니다. 오히려 자신이 지금 누리고 있는 편함과 안락함에 안주하려 합니다. 그리고 그 편안함과 향락을 잃지 않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게 됩니다. 바로 여기에 온갖 번뇌와 번민이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온갖 죄악들이 시작됩니다. 십자가의 고통을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그 고통을 외면하려 하기에 하느님을 떠나게 되고 하느님의 사랑을 잃게 됩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신비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고통과 시련 가운데서, 자신의 무능함과 무력함을 절감하게 되고 ,눈을 들어 하늘을 향하게 됩니다. 그리고 위로부터 오는 구원의 손길을 갈망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자신의 무력함을 고백하면서 도우심을 청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당신의 능력의 손길을 펴 주십니다. 고통과 시련의 시간은 하느님을 향하는 시간이요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시간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주님으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시련과 고통 가운데서도 절망하지 않고 쓰러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일상 가운데서 삶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시련과 유혹이 닥쳐올 때도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예수께서 당신을 비워 그 십자가를 받아들였듯이 여러분도 그 십자가를 받아들이십시오. 그리고 하늘을 향해 눈을 뜨십시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께서 “아버지 내 영혼을 당신의 손에 맡기나이다.” 하셨던 것처럼 철저히 자신을 비워 하느님께 의지하십시오. 그 때부터 여러분은 하느님의 그 크신 권능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려서 어리석고 수치스러운 죽음을 당한 예수를 스승이요 주님으로 믿는 우리가 갈 길은, 십자가의 길밖에는 없습니다. 십자가의 길만이 우리를 부활에 이르게 하고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야 할 신비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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