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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전례
작성자 강론모음
작성일 2008년 9월 6일 (토) 21:28
분 류 행사강론
ㆍ추천: 0  ㆍ조회: 4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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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자가 현양 축일 <요한 3,13~ 17> ”
 

3.        십자가 현양 축일 <요한 3,13~ 17>    우리의 구원이 십자가에 달렸다

                                                          방윤석 신부



오늘은 십자가 현양 축일이므로 십자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겠다. 어떤 책에 십자가에 관한 이런 얘기가 있다.

 

첫번째 이야기. 주님은 두 제자를 데리고 어떤 길로 들어서셨다. 거기서 주님은 각자에게 무게가 똑같은 십자가를 하나씩을 내주면서, 나는 이 길이 끝나는 곳에 가있을 테니, 당신은 그곳까지 그 십자가를 지고 오라고 지시하신 다음 자취를 감추셨다.

첫 번째 제자는, 가볍게 십자가를 메고 가는데 반해, 두 번째 제자는 지독히 힘들어하면서 뒤처져 따라왔다. 십자가를 걸머진지 하루만에 첫 번째 제자는 길 끝에 당도하여 십자가를 스승에게 넘겨드렸다.



주님은 첫 번째 제자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 주시며 말씀하셨다. 「아들아, 아주 잘했다」

두 번째 제자는 이튿날 저녁이 되어서야 길 끝에 도착했다. 도착한 두 번째 제자는 십자가를 주님의 발 밑에 내동댕이치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저한테는 다른 제자보다 훨씬더 무거운 십자가를 내주시다니요! 제가 이제야 온 것도 그 때문이라고요?」



주님은 마음이 상한 채 슬픈 얼굴로 두 번째 제자를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십자가는 둘 다 똑같은 무게였느니라?」「그런데도 앞사람은 아주 쉽게 십자가를 옮겼는데, 유독 저만 십자가를 옮기느라 쩔쩔맸다는 말씀입니까?」

주님이 그에게 타이르셨다.「십자가를 탓하지 말아라. 그 까닭은 십자가를 지고 오는 동안 줄곧 불평을 늘어놓은 너에게 있느니라. 네가 불평할 때마다 십자가의 무게는 늘어났던 거야. 앞에 온 제자는 십자가를 지고 오는 동안 사랑을 실천했기 때문에, 그 사랑이 십자가의 무게를 덜어준 거야. 그래서 힘들이지 않고 옮길 수 있었던거지」.



두번째 이야기. 한 사내가 죽어서 영혼이 연옥으로 끌려갔다. 천사가 이끄는 대로 들판으로 나가보니, 거대한 십자가 더미 하나가 나타났다.

천사가 그에게 말했다. 「내가 그대를 천당으로 데려가자면, 먼저 그대가 이 십자가들을 저 멀리 보이는 언덕까지 모조리 옮겨놓아야만 하오.」 사내는 낙담하여 고개를 흔들었다. 십자가는 엄청나게 많은 데다가, 옮겨놓아야 할 언덕도 까마득히 멀어 보였다. 게다가 십자가는 한번에 하나씩 밖에는 옮길 수가 없으니, 일을 빨리 끝내자면 오랜 세월이 걸릴 판이었다. 사내가 불만을 토로했다. 『도무지 모르겠군요. 나는 지상에 있으면서, 그런대로 훌륭한 삶을 살았고, 질 십자가도 다 졌다고요. 그런데 여기 와서 이 많은 십자가를 또 져야 한다니, 도대체 어떻게 된 노릇입니까?」



그러자 천사가 대답했다. 「사실 그대가 훌륭한 삶을 살았오. 져야 할 십자가를 다졌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 못할 거요. 하지만 선생, 이 십자가들은 그대가 지상에 있을 때 불만을 토로한 바로 그 십자가들이오. 그대가 불만 속에 걸머진 십자가는 이곳 연옥으로 넘어 와 그대가 죽은 후에 다시 한번 걸머지도록 되어있는 거라오」 천사의 말을 들은 사내는 그제야 알아듣고서 거대한 십자가 더미에서 십자가 하나를 들어올렸다.

그러면서 지상에 있을 때 이 모든 십자가를 불평하지 않고서 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생각했다.

  

오늘은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이다. 십자가는 원래 사람을 처형하던 도구였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자, 그 후로 십자가는 치욕적인 죽음의 도구가 아니라, 인류의 속죄를 위한 희생 제단, 죽음과 지옥에 대한 승리, 그리스도를 신앙함으로서 당하는 고통 등을 상징하게 되었다. 예수님은『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마태 16,24)고 가르치셨고,

사도 바오로도 서간에서 십자가의 신비를 주요 주제로 다루었다.

  

성녀 헬레나는 345년 골고타에서 예수님이 2명의 도둑과 함께 못박혔던 3개의 십자가를 발견하였다. 아들 황제 콘스탄틴 대제에게 요청하여 이를 안치할 부활 성당을 예루살렘에 건축하게 되는데, 그 봉헌식 날이 335년 9월 14일이었다. 그후 페르샤에게 점령당해오다가, 이를 629년 로마 헤라클리우스 황제가 페르샤인들에게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탈환한 것을 기념하는 행사를 9월 14일에 열게되었다.

787년 제2차 니체아 공의회에서 십자가 공경이 공식적으로 인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위의 예화에서 볼 수 있듯이,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수반되는 모든 고통을 우리는 달게 져야만 한다. 그리스도는 왜 따르는가? 그분의 약속 말씀대로 영생을 따내기 위해서다. 그분의 부활하신 하느님의 생명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예수님이 가신 길을 그대로 따라가야 한다. 수난-죽음-부활의 길을 말이다.



세상에 쉬운 일이 없다. 큰 일일수록 책임도 막중하고 따르는 희생도 큰 법이다. 사람에게 있어서 구원받는 것보다 더 큰 일은 있을 수 없다. 그 구원이 바로 십자가에 걸려 있는 것이다. 잘 신앙해오다가 게으름 때문에, 세속 일 때문에, 제 탓으로 구원이 말짱 헛 것이 된다면 얼마나 억울한가?

이제까지 들어간 돈과 시간이 아깝지 않느냐? 밑지는 장사하지 말지어다. 더 이상 한 눈 팔지 말고 앞으로도 잘 살아보자.











4.            성 십자가 현양 축일          십자가의 신비  

                                                                 성민호 신부





오늘은 주님의 십자가를 특별히 공경하며 그 의미를 되새기는 성 십자가 현양축일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처럼 주님은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당신의 것을 다 내어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을 뿐 아니라,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주님의 그 십자가가 아니었다면 세상이 구원받을 수 없었기에, 오늘 우리는 다시 한번 십자가의 신비를 깊이 깨닫고, 옷깃을 여미어 충심으로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한낱 사형틀에 불과했던 십자가를 현양한다는 것이 어찌 보면 역설처럼 느껴지지만, 그 위에서 주님의 인류 구원사업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제는 십자가가 참혹한 절망의 형틀이 아니고 인생살이에 참다운 의미를 부여하는 도구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통한 부활의 신비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십자가의 참뜻을 알 턱이 없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십자가는 비위에 거슬리는 걸림돌이며 어리석게 보이는 형상으로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가 인류 구원의 보증이며, 천국의 문을 여는 열쇠일 뿐 아니라, 특별히 사람을 극도로 사랑하신 하느님 사랑의 실제적인 증표임을 믿습니다.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없었다면 주님의 십자가는 상상도 할 수 없고, 또한 갈바리아 산정에 우뚝 세워진 십자가가 없었다면, 인류 구원이란 불가능하였을 것입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사랑과 주님의 십자가와 인류의 구원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어느 것이라도 제외하고는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오늘의 복음은 바로 이러한 사실을 너무도 자명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주셨다."고 말씀하신 주님은, 당신이 하느님의 사랑 때문에 이 세상에 파견된 구세주이심을 분명히 밝혀주셨습니다. 그리고는 벗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사랑은 없다고 하시면서, 하느님의 극진한 사랑을 입증하시기 위하여 당신은 필히 십자가에 높이 들려야 한다고 역설하셨습니다.

그래야만 당신을 믿는 사람들이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덧붙여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말씀이야말로 진정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으며,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고 사람들에게 외치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십자가 위에서 두 팔을 벌리고 계시는 주님의 모습을 볼 때마다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느껴야 하며, 우리의 부활과 영생을 미리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신비를 재현하는 미사 중에 신앙의 신비를 외치면서 “주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는 주의 죽으심을 전하며 주의 부활하심을 굳세게 믿나이다."고 고백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참으로 십자가에는 세상의 이치를 초월하는 하느님의 지혜가 있으며, 모든 사람을 주님께로 이끄는 막강한 위력이 있습니다. 십자가에는 진정한 사랑과 정의가 있으며, 구원과 영생이 있습니다. 이제는 십자가가 더 이상 죽음의 상징이 아니고 생명의 상징이며, 영광의 표시입니다.

  

그러기에 십자가는 자칭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수치일지 몰라도 신앙인들에게는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성인들의 길잡이요 순교자들의 힘이 되어준 십자가, 고생하며 무거운 침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위안과 용기를 북돋아주며, 묶이고 억눌린 사람들에게 해방과 자유를 안겨주는 십자가, 인간적인 것을 하느님의 것으로 승화시키고 지상의 것을 천국으로 올려주는 사닥다리인 십자가는, 진정으로 하느님을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입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은 십자가를 안방에도 모시고, 응접실에도 모시고, 사무실에도 모십니다.



이러한 십자가의 위력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겪은 불뱀사건으로 이미 오래 전에 예시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보호와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에서 탈출하였지만 광야에서 오랫동안 헤매다 지친 나머지 참지 못하고, 그만 하느님을 원망하고 모세에게 대들었습니다.

이때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잘못을 책망하시기 위하여 가차없이 불뱀의 벌을 내리셨지만, 그들이 죄를 뉘우치고 모세를 통하여 당신께 탄원하자 그들의 애원을 들어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계약을 저버리고 우상숭배나 불의나 거짓을 자행하면 응분의 벌을 내리셨지만,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간청하면 언제나 자비로이 용서해 주시고 더욱 큰사랑으로 감싸주셨습니다. 그러기에 하느님께서 내리신 책벌은 미워하여 죽이기 위한 책벌이 아니라, 잘못을 깨닫게 하여 다시 살리시려는 책벌이었습니다.

불뱀으로 고생하던 경우에도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하느님께 용서와 도움을 청하자,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구리뱀을 만들어 높이 달아매도록 하셨고, 그것을 쳐다보기만 하면 뱀에게 물린 사람이라도 죽지 않게 해주심으로써 내리신 벌을 다시 거두셨습니다.

  

하지만 구리뱀 자체가 미신에서 말하는 부적처럼 사람을 살리는 힘이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불뱀 때문에 죽어가는 사람들이 높이 매달린 그 뱀을 쳐다보고 하느님의 징계임을 깨달아서, 빨리 하느님께 돌아가야 한다는 마음이 그들을 살린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뱀과 상극이 되는 것을 달아매지 않고, 문제가 된 뱀 자체를 매단 것은, 그 뱀을 쳐다봄으로써 정신을 차려 진정으로 회개하고, 다시 하느님께 돌아와 용서를 청하도록 자극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죽지 않게 되었고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복지를 향한 여정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불뱀 사건은 주님의 십자가 사건의 전주곡에 불과합니다. 십자가에 매달린 주님을 바라봄으로써 죽을 죄를 지은 인간은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깨닫게 되었고, 용기를 얻어 그분의 용서를 청할 수 있게 되었으며, 마침내 하느님이 약속하신 구원과 영생을 보장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옛날 구리뱀 자체가 사람들을 살린 것이 아니고, 하느님께 향하는 마음이 그들을 살린 것처럼 십자고상을 사방에 모셔두었다고 해서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십자가를 쳐다봄으로써 자극을 받고 진정으로 회개하여 하느님께 돌아와야 할 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당하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주님을 따라야만 우리도 구원받아 영원히 살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십자가를 단순히 장식물로 생각한다거나, 신자라면 으레 모시니까 나도 모신다는 식으로, 아무 생각 없이 십자가를 모셔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믿고 바라는 신앙의 내용이 십자가 안에 전부 포함되어 있음을 명심하고, 그 신비를 새롭게 느끼기 위해서 모셔야 합니다. 특별히 이웃에 대한 미움이 생길 때, 십자가를 바라보고 사랑과 용서를 배워야 하며, 슬프고 고통스러을 때 십자가 안에서 위로와 용기를 찾아내야 합니다. 잘못을 저질렀을 때에는 십자가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비를 구해야 하며, 못된 욕심이 생길 때에는 십자가를 짊어지는 마음으로 끊어버려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십자가가 하느님 사랑의 증표요 인류 구원의 보증임을 믿고, 그에 맞갖게 살아감으로써 아직까지도 십자가를 우스꽝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십자가의 신비를 알려주어야 합니다. 기쁨이 없는 믿음이나,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태도나, 신앙의 위력을 나타내지 못하는 생활은 자신도 구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이웃에게 신앙의 걸림돌만 될 뿐입니다. 사랑과 기쁨이 넘치고 정의와 자유가 꽃피는 생활을 통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세상사람들에게 전할 때, 비로소 그들은 주님의 십자가를 우러러보게 되고 구원의 길을 찾게 될 것입니다.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을 맞이하여 십자가의 신비를 새롭게 되새기고 이웃에 널리 알림으로써 주님의 십자가가 찬란하게 빛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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