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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전례
작성자 교회일치주간 강론
작성일 2008년 9월 6일 (토) 21:20
분 류 행사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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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일치주간 ”
 

7-14. 교회일치주간



        1. 김지석 주교 / 2                       

        2. 변진홍 교수 / 6 

        3. 갈라진 형제를 적대시하지 말자 / 9 

        4. 김몽은 신부 / 10

        5. 김창석 신부 / 11                       

        6. 교황청 그리스도교 일치 촉진 사무국 / 14  



1.        교회일치 주간          그리스도인의 일치와 종교간의 대화

                                                            김지석 주교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가 끝난지 35년째에 들어서고 있다. 바티칸공의회가 끝나면서 종교의 자유, 종교간 대화, 그리스도인의 일치를 내세웠을 때, 가톨릭교회 일부에서는 이제 선교는 개인의 종교자유를 침해하고, 그리스도 신앙과 다른 신앙을 지닌 종교인들과 가톨릭 신앙과 다른 신앙을 지닌 그리스도인들이 가톨릭교회로 개종하는 것은 공의회의 정신에 어긋나지 않는가 하는 의구심을 지니게 하였고, 종교 무분별주의로 이끄는 결과를 갖고 올 것이라고 우려하였다.



그러나 종교의 자유는, 가톨릭교회가 다른 종교들에 대한 불관용의 비난에서 벗어나, 종교관용의 원칙을 제시하는 것이고, 종교간 대화는 다른 종교들이 지니고 있는 가치를 존중하는 것으로서, 이는 가톨릭교회의 토착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으며, 그리스도인의 일치 자세는 교파주의 다툼을 진정시키고, 반(反)종교개혁에 끝을 맺게 한다.



이처럼 바티칸공의회가 내세운 종교의 자유, 종교간 대화, 그리스도인의 일치는 선교활동을 저해하거나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종교 사이에 또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상호이해와 우호관계를 지향하게 하였다.

  이처럼 가톨릭교회가 다른 종교 교회들과 관계를 개선하려는 동기는, 하느님 아버지와 그분이 세상에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찾게 된다. 사람은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되었기에(창세 1,26) 전(全)인류는 하느님 안에 기원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공통된 기원에 바탕을 둔 하나의 가족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



인류의 일치는 하느님께서 처음부터 바라시는 뜻이다. 그리고 만인의 구원을 위해서 세상에 파견되신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셨다. 그분은 유다인 어머니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지만, 이방인(異邦人)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나누셨고(요한 4,41-42), 이방인들에게 기적의 치유를 베풀어주셨다(마르 7,24-30; 마태15,21-28).



아울러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앞에서 이렇게 기도하셨다. “아버지, 저는 그들(제자들)을 위해서만 청하지 않고, 그들의 말로 저를 믿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청합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소서"(요한 17,20-21). 따라서 종교간 대화와 교회 일치는,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하느님 아버지와 예수님의 원의에 기쁜 마음으로 충실하게 응답하려는 태도이다.



종교간의 대화

  바티칸공의회는 ‘비(非)그리스도교에 관한 선언'을 통해서, 종교들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사람들은 인간의 마음을 번민케 하는 인생의 숨은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을 여러 종류의 종교에서 찾고 있다('비그리스도교에 관한 선언. 제1항).



이어서 이 문헌은 다른 종교들에 관한 가톨릭교회의 긍정적 자세를 밝히고있다. “가률릭교회는 다른 종교들에서 발견되는 옳고 성스러운 것은 아무것도 배척하지 않으며, 그들의 생활과 행동의 양식과 규율과 교리도 거짓 없는 존경심을 갖고 살펴본다. 그러므로 다른 종교 신봉자들과 함께 지혜와 사랑으로 서로 대화하고, 서로 협조하면서 그리스도교적 신앙과 생활을 증거하고, 그들 안에서 발견되는 정신적 선과 윤리적 선, 그리고 사회적 가치와 문화적 가치를 인정하고 발전시키기를 권하는 바다"(제2항).



이로써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서 로마제국 백인대장의 믿음에 감탄하셨듯이(마태 8,5-13), 다른 종교인들의 개인적 신앙생활과 그들의 종교가 지니고 있는 긍정적 가치를 인정하고, 사회정의의 구현, 도덕정신의 함양, 민족화해의 실현과 같은 공동선을 위해 서로 협력할 것임을 알게 된다.

  

교황청 종교간 대화평의회는, 종교간 대화는 “종교다원주의 맥락에서 진리에 순응하고,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면서, 서로 다른 믿음을 가진 개인이나 공동체들이 서로 알고, 서로에게 많은 것을 얻고 배우기 위한 종교사이의 긍정적, 건설적 관계의 총체"(‘대화와 선포' 제48항)라고 정의하면서, “대화에 임할 때, 양편 모두 서로가 지니고 있는 종교적 신념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간 대화의 진실성은 서로가 상대방의 신앙에 대해 온전한 자세를 지닐 것을 요구한다"(‘대화와 선포' 제48항)고 설명하고 있다.



이 평의회는 그리스도인들과 다른 종교인들이 이웃사랑의 정신으로 살려고 힘쓰면서, 서로의 기쁨과 슬픔과 같은 인간적 관심사를 함께 나누며(삶의 대화), 인류에 봉사하기 위해 협력할 뿐만 아니라(활동의 대화, 종교 전문가들은 각자의 종교적 유산에 대해 이해를 높이고, 쌍방 종교의 영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려고 노력하도록(신학의 대화) 권장하고 있다(‘대화와 선포’ 제42항).



교회일치

가톨릭교회의 쇄신과 함께, 그리스도인 일치를 목표로 소집된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개신교 대표들을 초대하였다. 이 참관인들은 단순히 참석만 한 것이 아니라, 공의회 교부들과 함께 토의하면서, 그들의 견해를 제시하였다. 교황 바오로 6세께서는 공의회 제2회기 개막식 연설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에게 분열의 책임이 있다면, 우리 가톨릭교회는 하느님뿐만 아니라 우리한테서 상처를 받았다고 느끼는 갈라진 형제들에게도 용서를 청합니다. 우리편에서 가톨릭교회가 받은 피해를 즐거운 마음으로 용서하고, 오랜 기간의 분쟁을 통해 받은 고통을 잊겠습니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우리의 이러한 선언을 받아주시고, 우리 모두가 참다운 형제적 평화를 되찾도록 해주셨으면 합니다"('교황청 관보'. 제55권, 1963년). 교회일치에 관한 교령도 많은 단체들이 가톨릭교회와 완전한 일치에서 갈라졌거나, 때로는 양쪽 사람들에게 잘못이 있으며, 더욱이 종교개혁시대 이후에 태어나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분열의 책임을 지울 수 없다고 선언하였다(제3항).

    

바티칸공의회는 갈라진 형제들과의 관계를 어렵게 하는 언행을 피할 것을 촉구하면서, 형제적 사랑과 존경을 표시하는 자세를 갖추도록 권고하고 있다. 교회일치에 관한 교령은, 그리스도교들 사이에 존속하고 있는 교리와 규율, 그리고 교계의 차이점을 지적하면서도, 갈라진 형제들이 지닌 보화들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일치될 수 있는 요소들을 열거하면서, 가톨릭교회와 다시 결합될 수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교회일치는 “우리의 갈라진 형제들 사이에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재건하려는 운동"('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 제1항)이라고 정의하였다.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재건하려는 노력이 완전한 결실을 얻기 위해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말씀대로 신앙교리가 합치되어야 한다. 그래서 가톨릭교회와 갈라진 교회들과 국제적 모임을 구성하여, 전문가들이 협동의 정신으로 신학대화를 나누면서, 공동보고서와 공동 신앙선언을 발표하여, 긍정적 결실을 거두고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신학적 이해 안에서, 일치의 가능성에 대한 근거들이 제시되고 있고, 이는 신학대화의 결과라고 말씀하셨다(가톨릭 주교회의 산하 교회일치위원회 담당 주교들의 알현, 1985년 4월 28일).



그리스도인의 자세

종교간 대화에 있어서 그리스도인들은 개방의 자세와 수용의 태도로, 모든 사람과 대화할 마음을 지니고 있어야 하며, 모든 사람과 벗이 되고, 서로 존경하며, 진실한 사랑으로 대하여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유다교 율법을 모르면서도, 길에서 부상당한 사람에게 사랑을 베푼 착한 사마리아인(루가 10,25-37)을 비그리스도인들 안에서 만난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셨고”(요한 3,16), 예수님께서는 이웃사랑(마태 22,39)과 원수 사랑(마태 5,44)을 요구하셨다. 이러한 그리스도교의 보편적 사랑을 실천하는 자세가 종교간 대화다. 따라서 종교가 다르다고 해서 차별을 두거나 비판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복음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다.

다른 종교인들, 특히 재래의 전통종교가 지닌 좋은 점들을 받아들일 만한 용기와 겸손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이는 그리스도교의 토착화 작업에 이바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종교간 대화에 있어서, 대화와 협력을 지나치게 바라는 나머지 진리를 굽히는 영합적 태도는 지양되어애 하며, 종교무분별주의와 무비판적 관용과 수용의 위험은 극복되어야 할 것이다.



교회일치 노력에 있어서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일치를 위한 기도에 호소하여야 할 것이다. 이 기도는 영성신학자들이 말하는 ‘교회일치영성'의 핵심이다. 기도는 성령의 역사(役事)하심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기도 속에서 성령께서는 여러 교회들이 자기 쇄신을 수행하면서 진정한 교회에 대한 깨달음을 얻도록 도와주시고, 이에 필요한 특은을 베푸시어, 교회일치의 생활을 지향하도록 인도해 주신다.

기도는,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마음의 변화를 갖고 옴으로써, 상대방에 대한 오해와 부당한 선입관을 벗어버리고, 참다운 이해심을 지니게 하여, 그리스도인 일치의 길을 마련한다. 그리고 기도를 통해서 갈라지고 분열된 그리스도인들은 화해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일치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 세계가 분열된 지 멀리는1000년, 그리고 가까이는 500년이 지난 오늘날에 있어서, 분열이 쉽게 치유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지난 1000년대에 그리스도인 선인(先人)들이 교회를 분열시킨 병을 2007년대에는 치유되도록,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기도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 사이에는 기도를 통한 ‘영적 일치운동'('일치운동에 관한 교령' 제8항)을 소극적 자세로 여기기도 하지만, 사람의 눈에는 불가능하게 보이는 것도 가능하게 하시는(마르 10,27) 하느님께 기도함으로써, 분열의 병은 치유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그리스도인 일치운동에 있어서 기도를 중요하게 여기고, 15년 전부터 시작된 그리스도인 일치를 위한 기도주간(1월 18~25일)에 갖는 합동기도회를 계속할 것이다.

아울러 기도회를 준비하면서 구성된 그리스도인 일치를 위한 기구를 확대, 활성화하여 외적 활동도 전개하여 나갈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화해와 일치의 복음을 구현하려는 자세는, 그리스도교 공동체 사이의 일치를 지향한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내세워 우리를 당신과 화해하게 해주셨고, 또 사람들을 당신과 화해시키는 임무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2고린 5,18).

이러한 화해 임무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종교인들에게도 수행되어야 한다.

바오로 사도께서는 말씀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몸을 바쳐 유다인과 이방인이 서로 원수가 되어 갈리게 하였던 담을 헐어버리고, 그들을 화해시키셨습니다"(에페 2,14). 아울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말씀대로 그리스도교와 다른 신앙의 종교들은 양심 존중, 이웃 사랑, 용서와 화해, 기도와 명상, 정의구현 같은 그리스도교적 가르침들을 지니고 있다.

1999년 10월 로마에서 소집된 ‘세계종교간대화총회'가 선언하였듯이, 그리스도인들과 다른 종교인들은 협력하여, 종교가 지니고 있는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여, 좀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는 데 함께 일할 수 있다. 그래서 한국 가롤릭교회인들은 종교단체에 가입하여 모든 종교인들과 함께 공동선을 구현하는 데 참여하고 있다.









2.           일치주간 < 타종교에 대한 올바른 인식 : 신흥종교을 중심으로>

                                                               변진흥 교수



머리말

   한국의 신흥종교계는 80년대에 접어들면서, 적어도 두 까지 면에서 큰 변화를 나타내고 있다. 그 하나는 신홍종교의 수효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이들이 그 동안의 폐쇄적이고 소극적인 자세를 떨쳐버리고, 적극적인 선교활동과 사회참여를 시도하기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1. 신흥종교의 도전적 성격

   기성종교의 입장에서 본다면, 신홍종교의 발생은 그 자체가 하나의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신홍종교는 기성종교를 비판하면서 등장한다. 어떠한 신홍종교를 막론하고, 이들은 오늘날의 기성종교들이 이미 중산층의 종교로 변질되었으며, 물질주의․물량주의․권위주의․율법주의 등에 빠져 있어, 종교로서의 생명력과 역동성을 상실하고 있고, 세속화되었다고 비판한다. 따라서 이들은 기성종교에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기성종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선교활동을 전개한다.

  이와 같은 신흥종교의 도전적 성격은 신홍종교 신자들의 사회적 배경을 통해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신홍종교의 신봉자들은 거의 대부분 사회에서, 소외되고 억눌리고 상처받은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흥종교는 민중 종교 운동이라고도 불리운다. 또한 이들은 자신들이 현실생활에서 겪게되는 고통과 한(恨)을 위로 받고 치유받기 위해, 기성종교를 찾았던 경험을 대부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중산층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 기성종교에 적응하지 못한 채, 다시 한번 소외되고 상처받음으로써, 이중의 소외와 상처를 받은 자들이다. 따라서 이들은 기성종교에 대해 그만큼 강한 비판의식을 갖고 있다.



        2. 신흥종교외 선교방법

신홍종교는 글자 그대로 역사가 짧은 종교이다. 따라서 이들의 교리나 의식, 조직 등은 기성종교보다 제도화의 정도가 약하다. 신홍종교가 신자들을 모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이들이 현실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면서, 사회에서 소외되고 억눌린 자들에게 보다 분명한 삶의 방향과 방법을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은 메시아․구세주 또는 신적 존재로까지 불리우는 교주와의 결합을 통하여, 자신을 의지할 권위나 공동체를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정신적 지주를 제공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신흥종교들은 선교방법을 신학이나 교리에 관한 설명을 통해서 보다는, 사회에서 소외되고 억눌리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생활에 호소하고, 그들의 열망을 채워주는 것에서 찾는다. 이러한 선교방법은 구체적으로는 자기 종교를 믿을 경우에는 모든 재앙을 물리치고, 축복을 받아 잘 살게 될 것이라는 현세 기복적인 약속이나, 방언 ․도통․접신․치병 등과 같은 신비체험의 제시 등으로 나타난다. 또한 이들은 주로 사회에서나 기성종교에서 소외되고 억눌리고 상처받은 자들로 구성된 신흥종교 신자들의 동질적인 성격과, 교주와 신자들간의 강한 결속력으로 이루어진 집단 응집력을 제시함으로써, 자신을 의지할 대상을 상실한 소외계층을 포섭한다.

  한편, 일부 신흥종교들은 교리나 사상을 내세우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이 제시하는 신학이나 교리는 기성종교의 그것보다는, 체계성이 미약하고 단순하다. 특히, 그리스도계 신홍종교의 신학은 거의 대부분 성서에 대한 해석이 중심을 이룬다. 그러나 그것도 모든 성서률 대상으로 그 의미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주로 예언서나 묵시록을 대상으로 그 내용을 자구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성서에 관한 지식이 부족한 기성교회의 신자들에게 접근하는 방식을 취한다.



        3. 신흥종교의 공통 교리와 사상

  한국의 신흥종교는 수효가 많을 뿐만 아니라, 계보․역사․규모․활동상황 등이 저마다 다르다. 그러나 이들의 경전이나 교리서 또는 설교내용 등을 분석해 보면, 교리나 사상에 있어서는 놀랄만한 공통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이들이 한국사회의 동일한 문화적 전통과 역사적 체험을 바탕으로 발생하였으며, 종교에 대한 소외계층의 욕구가 동일한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우선, 한국의 신홍종교들은 강렬한 개벽사상을 나타낸다. 이 사상은 흔히 말세론 또는 지상천국신앙으로 불리워진다. 신홍종교의 주 관심은, 내세의 구원이 아니다. 그들의 주 관심은 현세에서의 행복한 삶에 있다. 이러한 현세위주의 관심은 모순과 부조리로 가득찬 현실세계는 곧 종말을 고하게 되고, 진정한 자유와 정의 그리고 복지가 실현되는 지상천국이 오게 되리라는 개벽사상으로 연결된다. 이들은 곧 닥칠 말세에는 기존의 모든 권위와 제도들은 종말을 고하게 되고, 지금까지 권세와 풍요를 누리던 사람들은 멸망하며, 자신들만이 선택되어 지상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개벽사상은 억눌린 민중의 고통과 한숨이 종교적으로 해원되어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로, 이들은 선민의식과 민족주체사상을 강조한다. 이들은 자기 교단의 창시자 또는 교주를 메시아나 또 다른 신적 존재로 신봉함으로써, 구세주는 한국에 강림하였으며, 따라서 한민족은 선택받은 민족이고, 세계를 밝힐 새 진리는 한국에서 나오게 되며, 한국은 세계의 주도국가가 될 것이오, 한국어는 세계의 공용어가 되며, 지상천국도 한국에서부터 건설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사상은 지금까지 외세 열강에 억눌려온 민족적인 한을 종교적으로 해원시킨 결과라고 해석된다. 한국의 신홍종교들은 계보에 관계없이, 모두가 해원사상․단군신

앙․유교사상․불교사상․도교사상․풍수지리설․정감록 신앙 등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 점은 그리스도계 신흥종교의 경우에도 마찬까지이다. 이들은 이와 같은 민족문화의 수용과 체계화를 통하여 밀려드는 외래문화의 충격에 대응하고, 민족문화의 보존과 계승을 시도한다.



       4. 신흥종교의 기능과 역기능

   신흥종교의 집단구조적 성격과 교리적 특성은, 사회에서 소외되고 억눌린 자들에게는 하나의 위로가 되며 한풀이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은 신흥종교를 통하여 자신의 밝은 미래를 약속 받고, 삶의 의미를 되찾게된다. 이러한 점은 신흥종교의 중요한 기능적 측면이다. 신흥종교가 하나의 종교집단으로 유지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점과도 관련된다.

  그러나 신적 존재로까지 신앙되는 신홍종교 지도자와 신자들간의 강한 결속과, 교리상의 말세임박설, 그리고 피해심리로 충만한 그들의 집단구조적 성격은 많은 부작용도 가져올 수 있다. 매스 미디아를 통해 자주 보도되는 신홍종교 신자들의 학업․직장의 포기, 부녀자들의 가출, 무리한 재산헌납, 성적 일탈, 집단 히스테리 현상 등은 신홍종교가 나타내는 역기능적 측면의 단편적인 사례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5. 신흥종교의 도전에 대한 대응방안

  지금까지의 논의에 비추어 본다면, 기성종교가 신흥종교의 도전에 대응하는 방안은 결국 기성종교의 구조와 기성종교 신자들의 신앙생활이 쇄신되어야 한다는 점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한국교회의 현실과 관련시킨다면, 그 구체적인 방안은 다음과 같은 몇 까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첫째는, 한국교회가 소외되고 억눌린 민중과 함께 사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교회는 점차 중산층 교회로 변화되고 있다. 중산층이 중심이 된 종교에서는 모든 가르침이나 활동이 중산층을 기준으로 하게 되기 때문에, 하류계층은 거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또 다른 소외와 상처률 받기 쉽게 된다. 이것을 방지하는 방법은, 교회가 소외되고 억눌린 사람들의 고통과 한을 나누어 갖는 동시에, 교회가 갖고 있는 인적․물적․지적 자산을 그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다.

  

둘째로는, 한국교회가 민족사에 적극 참여하여, 민족이 받는 수난과 고통에 동참하고, 그러한 수난과 고통을 해방과 구원으로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오늘의 한국사회가 요청하는 정의․평화․통일의 가치는, 한국교회가 민족사에 동참하고 민족교회로 발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구현시켜야 할 복음적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셋째로는, 신학과 전례의 토착화이다. 하류계층은 타 계층에 비해 전통적인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을 보다 많이 갖고 있다. 따라서 복음이 그들의 생활과 일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한국인의 심성이나 전통적인 생활양식과 만나, 살아 숨될 수 있는 방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이것은 복음의 육화를 위해서도 필수적인 것이다.

  

넷째로는, 신자재교육과 공동체의식의 강화이다. 신흥종교의 적극적인 선교활동으로부터 신자들을 보호하는 방법은 성서와 교리에 대한 지식의 함양과 함께, 신자 상호간의 공동체의식이 강화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3.           일치주간      갈라진 형제들을 적대시하지 말자





하느님은 자비로우신 분이시니, 우리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서로 미워하며, 비참한 전쟁을 일삼고, 희망 없이 죄 중에 헤매는 인류를 더욱 가련히 보시어, 당신 외아들 예수님을 구세주로 보내 주심으로써 사랑과 일치로 구원을 얻을 희망을 안겨 주셨고, 그러고도 하느님의 백성으로 함께 구원하기 위한 오로지 하나의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또, “제자들이 갈라지지 않고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시고, “그들의 말을 듣고 믿는 모든 이들이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20-21)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또,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으로 부르시어, 안겨 주시는 희망도 하나입니다.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이며, 만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초대 교회 때부터 교리를 못 알아들을 신비라 해서, 제 주장에 맞추거나 지방 교회 사이의 불화나 권력다툼으로, 또는 교역자들 사이의 인간적인 경쟁심이나, 신자들 사이의 불화, 성경 해석이나 교리에 대한 이견 등으로, 이단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하느님의 계시나 하느님의 뜻을 찾고 따르려는 것보다는, 오히려 인간적인 고집과 자기 뜻에 성경을 맞추려고 빗나간 주장을 하게 되니, 자연 여러 분파가 생겼고, 드디어는 동방 교회나 루터 이후의 프로테스탄트는 수백 개의 분파를 이루게 되는 불행한 현실을 가져왔습니다.

이것은 하나이기를 바라는 하느님의 뜻을 저버린 인간의 고집과 무지에서 연유된 것입니다. 현실을 바라보며, 교회의 쇄신을 결심한 가톨릭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교회 일치를 제창하고, 그 원칙을 ‘교회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에서 밝히는 한편, ‘세계 기독교 협의회(WCC)’와 협의해서, 신구교가 일치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매년 1월 18일부터 1월 25일까지를 ‘교회 일치 기도 주간’으로 정했습니다. 오늘이 그 시작의 날입니다.

‘교회 일치 주간’에 즈음하여, 우리가 취할 행동들을 생각해 봅시다.



첫째, 우리 모두는 교회 일치를 위하여 오늘부터 다음 주일까지 매일 미사 때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하느님이 원하시는 대로 가톨릭은 그대로, 개신교는 더욱 그 나름으로, 과연 하느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를 깊이 반성하고, 일치를 위한 노력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성령의 은총으로 교회가 서로 비난하지 않고, 분열 없이 일치 화합한 가운데, 하느님을 섬기고 온 인류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진정한 교회가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기를 염원하며 기도합시다.



둘째, 가톨릭과 갈라진 형제인 이른바 개신교와 그 밖의 종파는 서로 자극적인 말과 편견이 빚은 판단과 행동을 조심하며, 형제적 존경과 사랑으로 그들을 받아들일 아량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를 혹시 비난하더라도 적대하지 말고, 선입관을 버리고 진지하게 진리가 어디에 있고,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찾을 겸허한 마음을 가집시다. 또 한편 교리와 성경의 뜻을 이해하려고 공부하며 노력합시다. 또, 참을성 있게 형제다운 정성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혹시 질문에 충분히 대답을 못하게 되더라도 불안해하거나 회의를 느끼기보다 공부를 함으로써 의연함 참 믿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셋째, 교리나 예식, 규율이나 조직 면에서 차이가 커서 쉽게 접근하기 어렵더라도,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지나치게 경솔하거나 현명치 못한 열심을 가져 그르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어차피 언제라도 하느님의 뜻대로 어떤 모양으로나 신구교의 일치는 이루어져야 할 일이므로, 어느 종파의 신자를 만나더라도, 우리 교회의 장점인 교회 안의 신앙과 예식과 조직의 일치를 보여 주십시오.

사랑의 공동체의 본 모습을 보여 주며, 그리스도교적 양심이 요구하는 공동선을 위해서 협력함으로써, 요원한 길이로되, 꾸준히 노력하여 하느님의 뜻을 찾고 실현하는 신자와 교회될 것을 다짐하여야겠습니다.







            



4.              일치주간       교회 재일치를 위한 노력

                                                      - 김몽은 신부





1월 18일부터 사도 바오로의 개종 축일까지를 교회 재일치 주간으로 정하고, 이 기간은 가톨릭 교회가 개신교 여러 교파들과 함께 그리스도교인의 일치를 위해서 기도하고 노력하는 기간입니다. 이 기간 동안 특별히 모든 그리스도교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 노력은 항상 계속해 갑니다.



일치 기도의 목표는 모든 그리스도교인들이 언젠가는 하나의 신앙과 하나의 교회에서 그리스께 결합하는 데 있습니다. 이 목표는 참으로 크나큰 것입니다. 오늘날 전 세계의 그리스도교인들의 수는 9억 이상에 이르고 있으나, 이들이 서로 갈라져 있는 현실입니다. (그 중의 6억 5천이 가톨릭이고, 나머지가 희랍정교 및 개신교입니다.) 그런데 이들 중에, 심지어 세계 어느 곳에서는 그리스도교인들 사이에 전쟁을 하고 있는 곳도 있습니다. 이것은 더할 수 없이 부끄러운 일이며,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크나큰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교인들 간의 일치는 무엇보다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일은, 인간의 힘만으로는 이룩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능력이신 성령께서 역사하셔야만 이룰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궁극적으로 이 교회 재일치는, 기도의 힘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리라고 봅니다. 그리스도교인의 일치를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기울여야 할 것은 물론이지만 기도의 뒷받침 없이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모든 그리스도교인들이 일치를 위한 기도를 바칠 때에 비로소 그리스도교인들은 하나의 신앙과 하나의 교회로 결합될 것입니다.



우리 가톨릭에서는 비단 이 일치주간뿐만 아니라, 매일 바쳐지는 미사에서도 항상 일치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오로께서 그리스도의 모범을 본받아 모두 하나가 되기를 간곡히 기도한 것을 우리의 기도로 삼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평화의 줄로 여러분을 묶어 하나가 되게 해주신 것을 그대로 보존하도록 노력하십시오.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며, 성령도 하나입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당신의 백성으로 부르셔서 안겨 주시는 희망도 하나입니다.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고 세례도 하나이며, 만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에페소 4,4-6)



그리고 요한 23세께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하실 때, 이 공의회의 주요한 소집 이유 중에는 그리스도교인들의 일치를 증진시키는 데도 있었습니다.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 서론 첫머리에서 요한 교황께서는, 일치의 재건을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 사이에 촉진하자는 것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중대한 목적 중의 하나입니다.



바티칸 공의회 가르침에 의하면, 가톨릭 신자들이 일치의 목적으로 갈라진 형제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교회 사정으로 그들과 접촉하며, 먼저 그들에게 접근해 가야 하겠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가톨릭 가정 안에서 쇄신되어야 할 것, 이루어져야 할 것이 무엇인지, 성실하고 세심하게 살펴봄으로써, 그리스도로부터 사도들을 통하여 전래하는 교리와 계명을 교회 생활이 증거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일치운동에 관한 교령 4항 참조).

이번 일치주간 중 우리들은 모든 그리스도교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결합되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5.            일치주간  그리스도교인의 일치는 가능한가

                                                  - 김창석 신부





6.25 동란 중에 있었던 일이다. 나와 같이 해군에서 군종 장교로 근무하던 어느 목사에게서 어느 목사에게서 천주교 신자만 천국에 가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나는, 그렇다고 대답하면 그 목사에게 실례가 되고,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면 천주교 교리에 어긋나기 때문에 대답을 명확히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말았다. 그러나 지금 그런 질문을 받는다면 서슴지 않고 천주교 신자 아닌 사람들도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대답할 것이다.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났는가? 밖에서는 잘 모르는 이들이 많지만, 천주교 안에서는 1962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래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즉 천주교가 다른 종교들의 가치를 문헌으로 인정하게 된 것이다.



옛날부터 내려온,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신학적 명제가 있었다. 조직체로서의 천주 교회만이 교회라고 이해했었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후에는 교회를 ‘하느님의 백성’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교회를 유기체로서 이해하여, 산 사람들의 모임으로 인정하게 된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장 중요한 문헌 중의 하나인 <교회 헌장> 전체가 ‘하느님의 백성’에 대한 것이다. 이 헌장에 의하면 ‘하느님의 백성’ 안에는 물론 천주교 신자들이 포함되지만, 갈라진 형제들이라고 불려지는 개신교 신자들과 하느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 심지어는 불교 신자들까지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굉장한 변화이다.



현재 천주교의 롬바르디를 비롯한 많은 신학자들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강조하면서도,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몰라도 그리스도가 가르친 내용을 따라 살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원칙에 어긋나는 말이라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자기 종교 신자들만이 천국에 간다고 우기는 광신자들의 말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분열은 큰 수치이다. 최후의 만찬석상에서 하나가 되라고 간곡히 기도한 그리스도의 뜻에 크게 어긋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분열은 신앙적이거나 교리적이기 보다는 정치적 내지 민족적 대립에서 생겨난 것이 역사적인 사실이다.

그리스도교의 일치는 조직적으로는 어려우리라고 생각된다. 교파들이 합쳐도 어느 쪽에서 으뜸이 나오느냐 하는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자끄 마리땡의 말대로 다양성 안에 일치를 도모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정신적인 일치를 위해서는 우리가 할 수 있고 또 해야 할 일들이 많다.



우선 서로 공통점을 찾기 위해 대화를 해야 한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얼마든지 있다. 에페소서 4장 4-6절에서 사도 바오로는 말하기를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며 성령도 하나입니다. … (중략) … 희망도 하나입니다.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고 세례도 하나이며 만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하였습니다. 이 말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한했을 때 한국의 개신교 지도자들과의 만남에서 인용한 성경 구절이다. 사실 성경도 하나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신, 구교가 성경을 공동으로 번역하기까지 했다. 같이 사용하면 일치에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된다.



또한 서로 욕하지 말아야 한다. 종교 분열의 책임은 프로테스탄트 측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톨릭 측에도 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천주교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문헌들을 통해서 공식으로 인정했다. 내 종파만이 옳다는 주장은 서로 하지 말아야 하겠다. 가톨릭 신자들은 ‘가톨릭으로 돌아오라’가 아니고, ‘다같이 복음으로 돌아가자’고 외쳐야 한다.



다음으로 서로 상대방을 존중해야 한다. 소설 <25시>의 작가 게오르규 신부가 한국에 왔을 때 경주 불국사를 찾아간 일이 있었다. 그 때 그는 불상을 향하여 절을 하고 헌금까지 했다. 이러한 그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평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는 그가 대단히 잘 했다고 생각했다. 게오르규는 한국을 아주 좋아하는 동방 교회의 신부이다.



같이 기도해야 한다. 예배당에 가면 죄가 된다고 생각하는 천주교인은 이제는 아무도 없다. 몇 해 전에 마르틴 루터 탄생 4백 주년을 기하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로마 시내의 루터교 예배당에 가서 같이 기도한 적이 있었다. 이런 일은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다.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개신교 신자들과 같이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같이 좋은 일을 하는 것은 대단히 바람직한 일이다. 자선 사업을 같이 하는 일은 우리 모두가 추진해야 할 일이다. 독일에 갔을 때 신, 구교가 교회당을 같이 쓰고 학교 하나를 같이 운영하는 것을 본 일이 있다. 교회당을 쓸 때에는 예배 시간과 미사 시간만 따로 정하고, 학교에서는 종교시간만 따로 가르치고 다른 과목들은 함께 가르치고 있었다.



몇 해 전 해군 종군 목사들의 연수회에 초청되어 같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우리의 분열은 서양 사람들이 가져다 준 것이라고 말하고, 서양 사람들은 다시 합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우리가 분열을 계속해서야 되겠느냐고 말했었다. 이 말에 많은 목사들이 공감하는 것 같았다. 우리 믿음의 형제 자매들이 서로 공동 증거자로서 같이 전도해서 안 될 일은 없을 것이다.



‘비그리스도교 선언’이라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2항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교회는 다른 종교의 신봉자들과 더불어 지혜와 사랑으로 서로 대화하고 서로 협조하면서 그리스도교적 신앙과 생활을 증거하는 한편, 그들 안에서 발견되는 정신적 내지 윤리적 선과 사회적 내지 문화적 가치를 긍정하고 지키며 발전시키기를 권하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폐막식에서 교황 바오로 6세는 말하기를, “우리 가톨릭 교회는 하느님께 뿐 아니라 우리에게서 상처를 받았다고 느끼는 갈라진 형제들에게도 용서를 청합니다. 우리편에서 가톨릭 교회가 받은 피해를 즐거운 마음으로 용서하고 오랜 기간의 분쟁을 통해서 받은 고통을 잊겠습니다”하였다. 이 이상 파격적인 말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된다.

6.           일치주간

                  <1988년 그리스도교 일치기도주간 교황청 그리스도교 일치촉진 사무국>



1988년 그리스도교 일치 기도 주간을 위해 선정된 주제 ‘하느님의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냅니다’(1요한 4,18)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은 지난 2년 동안 선정된 주제, 즉 ‘너희는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 1,6-8)와 ‘그리스도를 믿으면 새 사람이 됩니다’(1고린 5,17-6,4)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새로 태어나고’ ‘그리스도를 믿어 그 안에서 일치된’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현대인을 위한 하느님의 사랑을 다 함께 증거하도록 부림을 받았습니다.



요한 1서는 특히 이 기도 주간에 읽기에 적합합니다. 왜냐하면 이 편지는 사랑이신 하느님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당시의 사회와 교회가 맞닥뜨려 있는 것들을 볼 때, 여러 면에서 우리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를 연상시키는 세계에서 쓰여졌기 때문입니다.



사랑이신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교 신앙과 희망의 중심에 자리하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에 의해 명백히 드러난 이 사랑으로부터 우리를 갈라놓을 수 있는 거이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죽음도, 삶도 그럴 수 없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삶에 대한 근심도 그럴 수 없습니다. 온갖 종류의 근심 걱정으로 가득 차 있는 이 세계 속에서 우리는 이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될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사실, 두려움은 전체 역사 속에서 언제나 인류와 함께 해 왔습니다. 그러나 어떤 시기에는 그것이 특히 위협적인 것이 될 경우가 있었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2000년대가 시작되는 오늘의 상황이 바로 그러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두려움-이것이 개인적인 것이든 집단적인 것이든-을 표현한 숱한 예들을 거의 세계 전역에서, 현대 문학과 예술 분야에서 모을 수 있을 것입니다.



 미래를 그려볼 수 없는 젊은이들 가운데 존재하는 두려움, 핵무기와 파국을 초래할 만한 전쟁에 대한 두려움, 인종과 인종간에 드러나는 증오와 차별에 대한 두려움, 낯선 사람에 대한 두려움, 압제자에 대한 두려움, 남과 북 그리고 동과 서의 분열에 대한 두려움, 마지막으로 인간의 삶에 한결같이 수반되어 온 일상 생활 속에서의 두려움, 즉 질병과 죽음과 자연 재해에 대한 두려움 등이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이들의 관심과 희망을 함께 나누기 때문에 이러한 보편적인 두려움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께서 그러하셨고(마르 14,33), 제자들이 그러하였던 것처럼(마태 8,26 ; 14,30 ; 요한 20,19) 괴로움과 근심에 싸여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은 두려움으로 인해 자신이 무기력해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역사 속에서 개인적인 투신을 회피하거나 착한 마음을 지닌 모든 이들과 함께 하는 공동 투쟁을 회피하는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르는, 어떤 사건들에 대한 해석들을 경계하고 삼가도록 불리어져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과 인간 어느 편에서 판단해 보더라도 나약하다는 것-분열의 죄로 말미암아 생겨난 나약성-을 의식하고 있습니다. 만일 편견과 의심과 분노가 우리 가운데에 지속되고 있거나 주님의 식탁에 둘러앉아 기도하는 집에서 분열이 계속되고 있다면, 우리가 어떻게 두려움을 몰아 내는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할 수 있겠습니까? 거짓말쟁이가 되지 않고서야 볼 수 있는 형제들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전혀 본 적도 없는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1요한 4,20)



모든 그리스도교 교회들을 재결합해 나가는 가운데 한결같이 끈기 있게 일치를 향해 전진해감으로써 교회는 우리가 계속 희망을 품을 수 있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될 확신에 찬 말씀을 인류 앞에 선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볼 때, 1988년 기도 주간을 위해 제시된 내용의 다양한 특면들이 한데 어울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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