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모음
강론을 위한 자료실
       
 
전체글 보기  
       
 logos
말씀과 전례
작성자 전교주일 강론모음
작성일 2008년 9월 6일 (토) 21:17
분 류 행사강론
ㆍ추천: 0  ㆍ조회: 8983      
IP: 218.xxx.165
http://missa.or.kr/cafe/?logos.1249.
“ 전교주일 강론 모음 ”
 

7-11.  전교주일



        1. 최창무 주교 / 2

        2. 성민호 신부 / 4

        3. 신은근 신부 / 7

        4. 이계중 신부 / 8

        5. 김정진 신부 / 9

        6. 전태준 신부 / 11

        7. 조순창 신부 / 13

        8. 유근복 신부 / 15

        9. 양경배 신부 / 16

        10. 최인호 작가 / 17

        11. 교구 주보 / 18

        12. 전옥주 작가 / 19

        13. 갈릴레아에서 / 21

        14. 김영남 신부 / 23



1.     전교주일 <사순 특강>           선교, 성부의 사랑이 드러남

                                         1999.3.24             최 창무 주교





“하느님은 창조주이시며 구원의 하느님이시고, 무한히 자비로우신 아버지이시다."

“선교는 근본적으로 복음화이며, 복음화가 되면 그리스도인은 곧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이다"



「복음선포는 성부께 대한 사랑의 실천」 이란 주제로 네 차례 강연이 있었다. 그 요지는;



1. 선교와 신앙은 인간에게 있어 영혼과 육신에 비유될 수 있는 불가분의 관계며, 동전의 양면과 같은 점이다. 이는 말씀이 사람이 되게 하신 성령, 곧 하느님의 역사이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은 보람이며 말할 수 없이 기쁘게 새 삶을 살게 해주는 것이다.



2. 그런데 한국교회의 선교상황은 어떠한가? 복음이 전파되던 초기에는 죽음이나 혹형도 두려워하지 않고, 예루살렘의 초기교회 신자들처럼 기쁨에 넘쳐 선교하며 살았고, 많은 순교자를 배출하였고, 눈부신 성장을 해온다. 그러나 최근 10여 년 불행하게도 선교열의가 식었을 뿐 아니라 냉담교우를 양산하는 아픔과 부끄러움을 반성하는 교회가 되었다



3. 이 현상을 극복하는 길은, 초대교회 신앙인들이 체험한 살아있는 신앙, 곧 메마른 교리만을 배우는 지식 습득이 아니라, 살아있는 진리 인생의 길을 가르치는 예수님과의 만남이 주선되어야 할 것이다. 복음을 모르고 죄에 머무르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지 않는 일이며, 박힌 못을 빼는 일이다. 복음선교를 이렇게 이해한다면 신앙인 자신은 물론이고 그가 사는 사회도 변할 것이다.



4. 이를 위해 한국 주교단은 2천년 대희년을 준비하는 마지막 해 「성부의 해에 새날, 새삶을 실천운동으로 펴자고 한 것이다. 즉 「나부터 새롭게」 「참된 가정 이루기」 「좋은 이웃 되어주기」 「함께 가요. 우리」 다.

  우리가 이런 신앙인들이 된다면 우리의 삶이 선교이고 인류를 구원하시고자하는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이 드러나는 것이다.



5. 구세사에 드러난 하느님 아버지의 뜻



  가) 구약성서는 하느님의 사랑과 약속을 알려주는 책이다.

  첫째, 하느님은 창조주이시다. 하늘, 땅 물, 공기 한마디로 사람이 샅 수 있는 조건을 다 마련해 주시 고 당신을 위해서, 당신을 대신해서 이 세상에 살도록 사람을 창조하신 분이 다.

  둘째, 구원의 하느님이시다. 불행하게도 사람이 이 행복을 차 버리고 하느님을 배신했으나

     하느님은 인간을 잊지도 버리지도 않는 분이시다. 인간의 축복을 위해 아브라함과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시고 스스로 은혜를 약속하시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시다. 「너희는 내가 하는 일이 부당하다고 한다마는. 이스라엘 족속들아, 너희가 하는 일이 부당하지 내가 하는 일이 부당하냐? ‥‥ 너희의 행실을 고쳐라. 거역하며 저지르던 죄악을 모두 버리고 마음을 돌려라. 그래야 올가미에 걸려 망하지 아니할 것이다. 거역하며 저지르던 죄악을 다 벗어버리고 새 마음을 먹고 새 뜻을 품어라. 죽을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사람이 죽는 것은 나의 마음에 언짢다. 주 야훼가 하는 말이다 살려느냐? 마음을 고쳐라」 (에제 18,27~3a/ 창세 12.1~3,/출애 3,6~7).



  셋째. 하느님은 무한히 자비로우신 어버이 이시다. 어떤 어머니 보다 더 그윽한 사랑을 지니신 하느님이며 (이사 49.14-15). 어떤 아버지 보다 자비로우시며 (미가 7.14~20),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어버이시다 (호세 14.2~9. 지혜 11,21"12,2).

      마치 철부지 아이들이 부모님 속상하게 한 뒤 철들어 보속하고, 부모님의 사랑을 본받아 어진 부모가 되듯, 남의 잘못을 대신해서 고통을 참아 받고, 벌을 피하게 하는 종들을 통해 하느님은 당신의 사랑을 가르쳐 주신다 (창세 18,16~32, 호세 14: 이사 50,4~9,52.13"53,12)



나) 신약성서는, 구약의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성취된 것을 알려주는 책이다.

   첫째. 약속대로 당신 외아드님을 보내시어, 죄스런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이사 9.1~5 :     루가 2,8~1,) ; 요한 3,14 ~17).

   둘째. 우리를 위해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는 우리 죄인을 위한 대속물이 되셨으며, 하느님과 인간. 인간자 인간, 인간과 자연의 화해의 이치가 되시고 원리가 되셨다. (2고린 5,14-2l/ 1고린 1,18-2,16)

   셋째. 이 신비는 말씀이 사람이 되게 하신 성령에 의하여 죄인들을 새생명에 이끌어 주시고, 그 오묘한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신다(루가 1,26-38/요한 14,15-l7/ 15,26-27/16,4-15).

   넷째. 이 성령을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에 약속하셨고 내려주셨다. (사도1,4,172,1-4)



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는 교회 안에 계시며, 교회를 통해서 당신 구원사업을 계속하신다. (마태 28,18-20/ 1고린 12-14), 그러므로 선교는 근본적으로 복음화이며, 복음화가 되면 그리스도인은 곧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이다. (마태 5,13-16). 곧 나부터 새롭게, 우리 모두에게 새롭게 삶을 가구는데 있다고 하겠다.







2.           전교주일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성민호 신부





때는 바야흐로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추수기간입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농촌에 일손이 모자라 농촌 일손돕기 운동을 전개하고 농번기 방학을 실시하여 다소나마 농민들의 일을 돕고 있습니다. 이와 때를 같이해서 우리 교회에서는 시월 한 달을 전교의 달로 설정하고 많은 영혼들을 하늘나라에 거두어들여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임무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은 전교주일입니다. 모든 신자들이 복음선포의 사명을 새롭게 인식하고 다짐함으로써 그리스도 왕국을 확장하고 그 신비체를 키워야 하겠습니다. 단순히 연례행사처럼 전교에 대한 강론이나 듣고 전교회비를 내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되며, 우리 모두가 복음정신에 입각하여 전교를 생활화함으로써 가장 성스럽고 자랑스런 복음전과와 임무를 수행하기로 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전교를 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의 제자일 수 없고, 사실상 신자의 입장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주일이 다 전교주일이 되어야 하고, 모든 날이 다 전교의 날이 되어야 하며, 우리의 일상생활이 다 전교를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표현이어야 합니다.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세상에 파견된 천주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때가 되자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고 하시며 복음선포를 시작하셨습니다. “나는 이 일을 하러 왔다."고 선언하신 예수께서는, 직접 전도도 하셨지만 열두 제자들에게도 그 임무를 부여하시어, 하늘나라를 선포하도록 고을마다 파견하셨습니다 그러나 목자없는 양과 같이 시달리며 허덕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것을 보시고 불쌍한 마음이 들어 제자

들에게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그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달라고 청하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는 이사야의 예언처럼, 성자께서 세상에 내려오신 목적이 바로 기쁜 소식을 전하고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시기 위함이었기 때문에, 일생 동안 복음을 전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고, 제자들에게도 같은 임무를 지시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하늘나라로 오르시기 전에 제자들을 모아놓고 “너희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모든 사람에게 이 복음을 선포하여라"고 당부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헤어질 때 마지막으로 하는 부탁이나, 죽기 전에 남기는 유언은 언제나 특별한 의미를 지닌 것으로 중대하게 받아들이며 그대로 실천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하는 법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주님의 마지막 부탁을 예사롭게 생각할 수 없고,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꼭 수행해야 하는 지상명령으로 받아들여야합니다.

사도들은 주님의 간절한 부탁이며 동시에 명령인 복음전파를 위하여 성령 강림 이후 눈부신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일생 동안 이에 전념하였고 목숨이 다하도록 온갖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한다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1고린 9.16)고 말한 바오로 사도의 생각처럼, 그들은 복음전파를 마땅히 해야할 일로 간주하였고, 오히려 전교하지 않는다면 화가 미칠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또한 바오로 사도는 디모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도록 촉구하였습니다 “나는 하느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대에게 엄숙히 명령합니다.‥‥하느님의 말씀을 전파하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전하고 끝까지 참고 가르치시오‥‥언제나 정신을 차리고 고난을 견디어내며 복음 전하는 일에 힘을 다하여 그대의 사명을 완수하시오" (27모 4.1-5)

  

예수님은 세상 끝 날까지 복음선포를 지속하기 위하여 교회를 세우셨고 그 임무를 교회에 맡기셨습니다. 따라서 교회의 첫 번째 사명은 두말할 것도 없이 복음전파이며, 만일 교회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그 존재이유도 없고 존재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선교활동에 관한 교령에서도 “나그네길을 가고 있는 교회는 그 본성상 선교하는 것을 사명으로 한다. "고 밝혔으며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선교는 그리스도의 신비체요,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의 본질로서 우리 모두가 투신하여 온 누리가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선교하지 않는 교회의 단체나 모임은 그 존재의미를 상실하고, 선교하는 단체일수록 더욱 생동하는 단체가 됩니다. 또한 교회는 복음전파라는 주님의 지상명령을 상기시키기 위하여 미사가 끝날 때마다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고 반복하면서 신자들에게 전교의 임무를 새롭게 부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주님을 알고 구원받기를 기원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주님의 진리를 전파해야 하고, 이웃을 주님께 인도해야 하며 모든 사람이 영생을 얻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따라서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진실한 사랑은 복음전파를 요구하고 있으며, 복음을 전하지 않는 사람은 사랑의 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더욱이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하겠다."고하신 예수님의 약속대로, 남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자신의 구원을 보장받지만 혼자서 살겠다고 이웃선교를 소홀히 하는 사람은 자신의 구원마저 위태롭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전교에 무관심하다거나 전교를 성직자나 수도자들만의 의무로 착각하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몇 년이 지나도록 한 사람도 교회에 인도하지 않거나 아예 인도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서 우리가 어떻게 주님의 뜻을 따르는 신앙인이라고 자부할 수 있으며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또 어떤 신자는 교리지식이 없고 말주변이 없어서 전교할 수 없다고 변명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참다운 전교는 우리가 복음에 입각한 신자다운 생활을 함으로써 이웃에게 기쁨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기쁘게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은 이웃에게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쓸데없는 논쟁이나 교리지식의 자랑 따위는 전교에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따라서 세상을 복음화하려면 먼저 우리 교회가 끊임없는 회개와 쇄신으로 복음적 교회가 되어야 하고, 세상에 하늘나라를 선포하려면 먼저 우리 자신이 하늘나라의 표지를 드러내는 성사적 구실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면 자연히 사람들은 우리를 통하여 하느님을 보게 되고 복음을 깨닫게 됩니다. 또한 전교는 농사짓는 일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온갖 노력과 투자를 아끼지 않고 추수할 때까지 수고하는 농민들처럼 우리도 이웃에게 뿌려진 신앙의 씨앗이 자라도록 정성껏 보살펴야 합니다.

  

성 프란치스코 사베리오는 포교 일선에서 온갖 고통을 감내하며 복음전파에 전념하여 포교사업의 수호자가 되었고, 성녀 소화 데레사는 짧은 일생을 수녀원 안에서만 보냈지만 세상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고 싶은 열렬한 마음으로 기도와 희생을 바침으로써, 역시 포교사업의 수호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모든 신자들도 수많은 형태의 고통을 충분히 환용하여 인간 구원과 복응화에 기여하라고 촉구하였습니다. 우리도 복음전파의 책임을 통감하고 온갖 노력과 힘을 동원하여 세상에 복음을 전 합시다.



3.            전교 주일    (마태 28,16-20)   정말 전교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신은근 신부



전교란 하느님을 전하는 일이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만 쉽지 않다.

어디서부터 해야 하는 것인지 대부분 망설인다. 아무나 붙잡고 전교할 수는 없는 일이다.

더구나 늘 같이 만나고 다투고 감정적으로 대했던 사람들에게 갑자기 목소리를 바꾸어 신앙얘기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차라리 모르는 사람에게 가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신자 된 것이 귀찮고 힘들어 죽겠는데 어떻게 남을 인도한단 말인가. 솔직하게 고백하는 사람도 있다. 정말 전교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우선 하느님을 전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인지 나름대로 답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전교가 가능해진다. 최근 들어 신자 수는 줄고 쉬는 신자가 많아졌다며 걱정하고 있다. 실제로 신자 대비 쉬는 신자 수치는 매우 높다. 이렇게 쉬는 신자가 많은가 놀라게 된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신앙생활에서 기쁨보다는 부담감을 느끼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자신 스스로 신앙생활을 짐스럽게 느끼고 있다면 선뜻 신앙을 전할 수 없다. 자신이 신앙생활을 인생의 사슬로 느끼고 있다면 타인에겐 신앙이 기쁨이라고 말할 순 없는 일이다. 차라리 입 다무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전교하라 하면 침묵해 버린다.



그러니 먼저 신앙생활을 기쁨으로 바꾸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주님께서 확실히 내 인생과 운명의 주인이란 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내게 일어나는 온갖 사건과 만남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 믿음은 생활이다. 맡기는 생활이다. 미래를 맡기고 걱정을 맡기고 불안과 십자가를 맡기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그래야 믿음의 응답을 느낄 수 있다.



그럼 맡긴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느님께 맡긴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주신 것으로 여기는 것을 말한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이지만 원래 그것은 하느님의 것이었고 그분이 주신 것으로 여기는 것을 말한다. 주님께서 주셨기에 내가 소유하고 있다. 이렇게 믿고 처신하는 것이 하느님께 맡기는 행위의 핵심이다.



따라서 우리가 전교한다는 것은 이러한 모습을 이웃에 보여주는 것을 말한다. 보여준다기보다 그러한 삶이 겉으로 드러나게 사는 것을 말한다. 평소 그러한 삶을 살아간다면 그게 바로 전교인 것이다. 현대인들은 종교에 대한 관심보다 종교생활을 실제로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이론은 이제 사람을 감동시키지 않는다.



납득은 시킬 수 있을지 몰라도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는 없다.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행동뿐이다. 우리가 기쁨과 확신을 갖고 신앙생활을 한다면 그것이 바로 최상의 전교인 것이다.



아이들은 밝다. 그들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모든 어린이들의 운명은 이렇게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 밝게 인도하도록 되어있다. 어른인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욕망과 의심의 끈을 계속 달고 있었기에 성령께서 활동하심을 방해했을 것이다. 확실히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 나는 세상 마칠 때까지 너희와 함께 있겠다고 복음에서도 말씀하시지 않으셨는가. 주님께서 함께 계시면 세상 사람들은 어떤 형태로든 그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들도 주님을 모시고 싶어한다. 이것이 전교인 것이다.













4.         전교주일(연중 29주일) 마태오 28,16-20

                           갈릴래아에서 열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다.

                                                                         (이계중 신부)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인류를 구속하기 위함이었고, 그 구속의 길이 십자가의 길이었다는 것은 인류를 멸망으로 이끌은 죄가 중하다는 것을 말해 주며, 또한 복음을 전하는 길이나 개개인의 구속의 은혜를 받는 길이 역시 십자가의 길이라는 것은 인류를 죄로 유인한 유혹의 지혜가 얼마나 악랄한가를 훌륭히 증명하여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당신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친히 12사도를 간택하여 교육시켰습니다. 3년 동안 그리스도의 교육을 받은 12사도 중 유다스는 예수님을 배반하여 은돈 30량을 받고 예수님을 원수에게 팔았으니, 돈이 사람의 이성을 흐리게 한다는 말은 이런 경우에 맞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붙잡히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으나, 하느님의 사업은 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것이 인류를 구속하는 길이 되었고, 유다스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과 제자들은 십자가의 예수님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본 간교한 마귀는 유데아 사람들을 꾀어 교회를 박해하고 베드로를 잡아 옥에 가두었습니다. 많은 교우들은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였고 하느님은 천사를 보내 그를 구출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열심한 사도를 위시한 성직자들은 열심한 교우들의 뒷받침으로 간교한 유혹을 이겨나가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또한 이렇게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는 넓은 세계로 흘렀던 것입니다. 그러나 유혹은 때때로 성직자들을 함정에 빠뜨렸으니 1492년에 교황이 된 알렉산델 6세는 재직 11년간 각종각양의 해독을 가져오게 하였고 특히, 그의 부당한 정욕은 교황의 위신을 몰락시켜 크나 큰 해를 교회에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그 후 성 아오스딩 수도원의 수사 신부는 루터는 ‘신앙만으로써의 의화’의 교리를 내세워 사람들을 교회에서 갈라져 나가게 하였습니다.



 ‘가장 좋은 것의 부패는 가장 흉악하다’라는 격언과 같이 천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축성되고 ‘또 하나의 그리스도’가 되어 그리스도의 사명을 수행하던 그들이 타락하였을 때 그들 자신에게는 물론이요, 그 주위에도 말할 수 없는 큰 해독을 가져오게 하니 참으로 심각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교우들은 한 사람의 부패한 성직자도 생기지 않도록 기도하여야 하겠습니다.



베드로를 구출하고 성 비안네 신부를 유명한 설교가와 고해 신부로 만든 것은 모두 열심한 교우들의 기도와 희생이었습니다. 열심한 교우들이 있을 때 부패한 성직자가 있을 수 없고, 열심한 성직자가 있을 때 교우들은 더 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사업임으로 망할 수는 없으나 큰 상처를 입을 수는 있습니다. 이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전교 주일을 맞이하여 모든 교우가 활동으로나, 물질적으로나, 혹은 기도나 희생으로 전교하는 일원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데 한 몫을 맡겠다고 다짐해야 하겠지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성직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일입니다. 싸움터에서 승리하는 것은 그 지휘관에게 80% 이상이 달려 있음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5.              전교주일(연중 29주일) 마태오 28,16-20

                             갈릴래아에서 열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다.

                                                              (김정진 신부)



오늘 복음에서는 우리가 늘 기도하라는 데 대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언제나 기도하고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신 바와 같이 예수님은 친히 기도하는 표양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때로는 홀로, 때로는 여럿이 함께 기도하셨고, 또는 사도들이 보는 앞에서도 기도를 하셨습니다. 특히 전교를 시작하시기 위한 공생활로 들어가시기 전에는 무려 40일 동안이나 밤낮으로 단식하시며 기도하셨습니다.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오늘은 1년에 한 번 지내는 전교주일입니다. 이 날을 맞이하여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모범을 되새기며 특히 전교하시기 위하여 40일 동안이나 기도에 몸을 바치신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야말로 “기도하며 전교하라”는 좋은 표양과 교훈을 남겨 주셨고, 이 길이 가장 효과적인고 능률적인 전교 방법이란 것을 명백히 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이 방법 밖에 없습니다.

미신자나 냉담자를 위해서 먼저 주님께와 성모님께 기도 바치고 나서 그들을 권면하든지 방문하든지 해야 하겠습니다.



신자 여러분! 성녀 소화 데레사는 일생을 깔멜 봉쇄 수녀원에 갇혀 살면서 단 한 번도 포교활동을 한 일이 없는데도 포교사업의 수호자로 추대된 까닭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데레사 성녀는 하느님을 열애하고 또 다른 사람도 뜨겁게 사랑하며 모든 영혼을 구하려는 열정에 타올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녀는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특히 전교 신부들을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였습니다. 그 뿐 아니라 오랜 중병으로 병석에 누워 있으면서 당하는 형언키 어려운 고통을 한 마디 불평 없이 참아 견디어내며 머나먼 지방에서 전교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바쳤던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이 훌륭한 전도사인 데레사 성녀를 교회에서 전교회의 대 주보로 모신 것은 지극히 온당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신자 여러분! 전교사업에 기도와 희생이 절대적 조건이 되는 것과 같이 전교 활동도 이에 못지 않게 크게 중요합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직접 들은 사도들이나 오늘날의 모든 크리스찬들에게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지상 명령이 아닐 수 없으며 커다란 사명과 의무로 받아들여야 하겠습니다. 참된 크리스찬은 지상에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지상에 하느님의 나라를 임하게 하는 것이 그 생활의 근본적인 목표이어야 한다고 교황 바오로 6세께서는 강조하십니다.



교황께서는 이어 말씀하시기를 “선교 활동으로 인하여 하느님께 완전한 영광을 드리게 되는 까닭은 선교 활동을 통해 하느님의 인간 구원사업을 완성시키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늘에 계신 같은 아버지를 모시고 맏형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한 가정을 이루므로 우리의 형제애는 물질적으로 도울 뿐 더러 영신적 신앙으로 더욱 관심을 갖고 도와야 한다.”고 역설하였습니다.



신자 여러분! 우리는 냉담자나 미 신자들을 권면하고 하느님께로 돌아오게 하는데 성급히 생각하거나 실망하거나 단념하지 맙시다. 너희는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님의 엄숙한 명령을 복음 전도의 성공 여하를 막론하고 행동에 옮기며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던 한 선교사가 있었는데, 그는 재속 중에는 남들이 선망할 정도의 큰 사업가였는데 전교에 나서기 위하여 그 막대한 재산을 희사하고 사업도 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전교의 성적은 도무지 오르지 않았으므로 어느 날 한 친구가 찾아와서 “자네는 세속 사업에는 성공하였지만 하느님 사업에는 솔직히 말해서 큰 실패를 한 셈이군”하며 빈정거렸습니다.



이 말에 그는 “내가 이런 선교사업을 하는 것은 결코 과거나 미래의 성공 때문이 아니고 온 세상에 가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그 명령에 복종하기 위해서이지!” 하고 말하더랍니다. 이 같은 교훈을 거울삼아 우리는 복음 전파에 더 한층 박차를 가하도록 다 같이 노력합시다.











6.         전교주일(연중 29주일) 마태오 28,16-20

                         갈릴래아에서 열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다.

                                                                 (전태준 신부)



현대를 선전 광고의 시대라 한다. 사람도, 일도, 물건도 너무 많아서 정신을 차릴 수 없고 도대체 뭔지도 분간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의 것을 억지로라도 알게 하려고, 또 기억하게 하려고 선전을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가짜가 진짜가 되고 진짜가 가짜가 되기도 한다. 정말 천박하고 복잡한 시대에 살고 있다. 좋은 것은 자연히 알게 되고 진리는 자연히 드러난다는 안일한 생각은 이제 통하지 않는 것 같다.



2000년의 역사 속에서 굳건히 살아왔고, 거룩하고, 하나이고, 보편되고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가장 유일하고 확실한 교회라는 안일한 생각 속에서 머리는 하늘에 두고 발은 땅을 딛고 있지만 몸둥이는 허공을 맴도는 우리들은 과연 무엇을 오늘날의 사회 속에 심어 줄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이 마음으로부터 주님의 부르심을 느끼어 성당의 문을 두드렸다. 성당에서는 아무도 그를 아는 체 해 주지 않았고 따뜻한 인사 한마디 건네주는 이도 없었다. 거의 일년을 성당에 나갔건만 그 사람은 언제나 이방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사람은 여전히 미사에 나왔다. 그런데 마침 그때 비가 내렸다. 미리 우산을 준비해 온 신자들은 모두 우산을 펴 들고 빗속으로 사라졌고 성당은 곧 텅비어 버렸다.



이 사람 혼자 우두커니 쏟아지는 비를 쳐다보고 서 있는데, 마침 그때 마지막으로 성당을 나서던 한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는 이 남자를 보더니 우산을 받쳐주며 같이 차 타는 곳까지 가자고 했다. 이 남자는 감격하여 “실은 저는 이 성당 신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신자가 되려고 근 1년을 열심히 교회에 나왔지만 그 누구도 말 한마디 건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아가씨의 친절을 대하고 나니 참 기쁩니다. 저도 이제 영세를 받을 용기가 생겼습니다.”우산을 받쳐 준 여자는 깜짝 놀라며 이렇게 말했다. ‘저도 예비자예요. 지난 1년 전부터 이 성당에 나왔지만 아무도 말을 붙여주지 않더군요.“



이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으면 좋겠다. 우리는 하느님의 근본 진리를 너무 왜곡해서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겨난다. 이런 상태에서는 절대로 하느님의 기쁨의 소식을 전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이 그 기쁨의 메시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느님의 기쁨의 메시지를 알고 자기 우상화를 근절시키지 않고서는 이웃 사랑도 못하고, 더 더군다나 그 기쁨의 소식을 전하지 못한다.



우리 신앙이 직접 행동으로 드러나야 하는 첫째 동기는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에 대한 감사이다. 이웃을 사랑하기 위하여 어떤 계명이나 상이 필요한 사람은 아직 하느님의 선물이 무엇인지 못 깨달은 사람이다. 세계와 인간은 모든 것을 구원하고 죽음도 극복하신 하느님의 사랑에 의해서 보존된다는 데에 그리스도교의 신앙의 핵심이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사람은 희망과 신뢰를 가지고 이 세상에 살면서 이 세상을 위하여 일할 수 있는 것이다.



구원에 대한 우리의 신앙은 구원에 합당한 행위인 사랑을 통해서만 그 결실을 맺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으로 완전히 지배되는 세계야말로 하느님의 선물로 선포되는 구원인 것이다.

불란서의 어떤 영성가가 있었다. 그 분은 어느 날 하느님의 특별한 은혜로 신비체험을 하게 되었다. 그 후 그 사람은 “신비체험을 했어도 나에게는 여러 가지 모자람이나 더러움이나 나의 죄나 연약함이나 그 모든 것이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그래도 나는 기쁘다. 하느님의 사랑이 이런 나를 감싸주고 계속 나를 지켜주고 항상 내 곁에 계셔 주시기 때문에 더 기쁜 것이다” 하고 말했다. 이 사람은 벌써 구원을 체험했다.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이 자신을 구원한 것이다.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자비와 사랑을 체험했고 그러기에 기뻐하고 더 열심히 생활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자기 우상화의 뿌리를 근절시키게 된다. 우리는 스스로를 우상화하여 가장 완전하고 훌륭한 인물이 되기를 갈망한다. 우리의 고통이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자연 발생적인 욕심, 자신의 기호를 충족시키려는 열망, 등은 자신의 내적인 자유를 억압한다.



이 모든 요소는 사랑의 장애물이 된다. 이것을 근절시키지 않고서는 사랑이신 하느님을 체험할 수 없다. 자기 자신의 욕구와 기호와 편함에 모든 것이 양보된다면, 자기 자신의 의지는 자기 생활의 율법이 된다. 우리 생활 속에 나타나는 고통이란 것도 다 이런 것이다. 하느님이 왜 이런 고통을 주셨는가를 원망하는 행위는 그 고통의 진가를 모르는 것이다.



고통은 괴롭기만 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적절히 긴장을 풀어주고 신자로서의 정규적 생활을 하기에 정확한 판단을 내리게 해 준다. 언제나 긴장 상태에서 안간힘을 다 하는 사람, 늘 끝가지 자기 자신을 조정하려는 사람, 자신에게만 의지하고 자만하는 사람, 스스로 외롭다고 여기는 사람은 극도의 위기에 빠진다.  옛 성인들의 고행이란 세상 도피가 아니다. 자기 만족의 노예화에 신앙으로 항거하는 것이다. 현세의 삶을 그리스도께로 이끌자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다. 이를 전하자.











7.            전교주일(연중 29주일) 마태오 28,16-20

                            갈릴래아에서 열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다.

                                                   (조순창 신부)



예수님께서 구세주로서의 사명을 마치시고 승천하시면서,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기에 필요한 교회를 창립하시고, 사도들에게 복음 전파의 사명을 주시며 유훈을 남기셨습니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나는 세상 끝날 때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

제자들은 성령을 받은 후, 목숨을 내걸고 헌신적으로 복음을 전하였고, 신자의 수는 날로 증가하였습니다. 성 바울로는 디모테오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십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전하고, 끝까지 참고 가르치면서, 사람들을 훈계하고 격려하시오.”(디모II : 4,2) 라고 말했습니다.



‘선교 교령’ 2항에서는 “나그네길을 가고 있는 교회는 그 본성상 선교하는 것을 사명으로 하니, 이것은 성부의 계획을 따라서 교회가 상자의 파견과 성령의 파견에서 그 기원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가르치고 있으며, 교황 요한 바울로 2세의 ‘전교주일’ 메시지에서도 교회는 ‘선교의 화신’이라고 하시며, 교회측에서 선교를 포기하는 태도는 교회에 위임된 사명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복음 선포자이지만, 교회 자체가 복음화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교회가 참으로 우리 민족을 복음화하고, 전 세계를 복음화하려면, 끊임없는 회개와 쇄신으로 복음적 교회가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인 하느님의 나라를 이 세상에 선포하고, 또 동시에 교회가 먼저 하느님 나라의 표지를 드러내는 성사적 구실을 다해야 합니다.



‘전교 주일’을 맞는 오늘, 우리는 ‘나의 신앙 생활이 알차고 열성적인가?’, ‘우리 교회가 구원을 주는 희망의 교회인가?’ 반성하고, 전교의 열성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 한국 천주교회는 선교 200주년을 앞둔 오늘, 120만의 교세(1979.12.31.현재)밖에 이루지 못하엿으나, 개신교는 선교 100주년에 교세 700만에 달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숫자로만 비교할 수는 없어도, 문제인 것만은 사실입니다.



1984년 선교 200주년을 계기로 하여, 신자 200만 돌파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만, 현재대로의 추세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지난 해(1979)의 증가수는 56,405명이었으나, 냉담자의 수가 16만 명이나 되는 것도 걱정입니다. 따라서 새로운 각오와 방법의 모색이 필요하며, 수만 늘리는 데에 신경을 쓰다가 내실화하지 못하면 그것도 문제입니다.

하여튼 복음 전도는 나의 의무요, 우리의 사명이고, 교회의 임무임을 절실히 깨닫고, 적극적 자세를 가져야겠으며, 신앙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먼저 함께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민족 복음화를 위한 염원과 간절한 기도는 하느님의 뜻이기에, 꼭 이루어질 것입니다.



오늘 특별히 기도합시다. 우리 모두는 교리 공부와 성경 공부를 더 착실히 해서, 신앙을 알차게 다지고, 자신있는 믿음과 신앙인으로서의 긍지를 가지면서, 이를 토대로 전교의 열성에 불타야 합니다. 우선, 가까운 가족의 입교와, 외짝 교우의 해소에 노력하고, 이웃 친지 중 한 사람 인도 등의 책임을 지면, 목적이 달성될 것입니다. 그리고, 앞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교회가 복음적 교회로 쇄신되고, 민족을 구원하는 종교로서 모든 인가 희망의 등대로 믿고 찾을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또 ‘통신 교리’와 ‘구역 모임’의 활용 등도 좀더 구체적으로 연구되어야겠지요.



끝으로, 전교 사업 후원을 위한 ‘2차 헌금’을 성의껏 봉헌해 주시고, 전교회에 가입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전교회 가입은 선교 의무의 일부를 지는 것입니다. 회비는 어린이는 1년에 200원 이상, 성인은 1000원이며, 매일 주의기도, 성모송을 바치시고,

“성 프란치시꼬 사베리오여! 우리를 위하여 비옵소서.”

를 한 번씩 외는데, 전교회원으로서의 은사를 아울러 받게 됩니다.













8.                      전교주일

                                                유근복 빅토리노 신부



1. 예수님의 말씀



오늘 마태오 복음(28,16-20)에서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시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19-20). 이 말씀은 일차적으로 제자들에게 하신 것이지만 세례성사를 통하여 하느님의 백성이 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하신 말씀이기도 하다.



2. 복음선포

예수님의 지상명령인 복음선포는 교회와 하느님의 백성에게 맡겨진 가장 중요한 임무이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선교하기 위해서 모인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교회가 선교하지 않는다면 교회의 생명력을 잃은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가 세상에 복음을 전한다는 것을 단순히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입교 권면하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복음화의 의미를 축소하는 것이다. 넓은 의미에서 복음화란 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죄악의 어둠으로부터의 해방과 함께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인간으로의 품위를 지니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복음선포의 주역은 언제나 하느님 자신이다. 성령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



심에 따라 복음선포를 하는 협조자인 셈이다. 복음을 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증거의 삶일 것이다. 교회에 속한 우리들이 먼저 복음화되어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그 말씀에 따 라 진실되고 정의롭게 살아간다면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교회를 찾을 것이다. 또한 이웃 에게 직접 다가가는 적극적인 선교와 함께 다양한 홍보매체를 통하여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데 서슴지 않아야겠다.



3. 사랑의 사람들

  아울러 전교주일을 맞이하여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 도처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 선교사제와 수도자, 평신도들을 위해 기도하고 관심과 함께 물질적인 지원을 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는 하나의 지구촌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제 복음선포는 각 본당과 교구, 지역과 나라의 경계를 뛰어넘어 복음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한다.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현재 약 400명의 선교사를 아시아와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등지에 파견하고 있다. 선교사들은 사랑의 사람들이며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보편적 형제들이다. 세례성사를 받은 우리들 역시 삶의 현장에서 선교사로 불렸다는 것을 자각하여 가정과 교회, 사회에서 먼저 복음을 살고, 산 복음을 전하는 데 더욱 열과 성을 다해야 할 것이다.

    (아프리카 잠비아 성 김대건 안드레아 땀부미션 성당 주임신부)











9.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전교주일) (나) 아저씨(아줌마)도 성당                                          다닌대요?

                                                                           양경배 신부



오늘은 전교주일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복음전파를 위하여 수고하는 사람들을 위해 특별히 기도하는 날이다. ꡒ하느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하라ꡓ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유언이다.

요사이 이 말씀을 실천하기 위한 우리 교회의 모습도 참으로 많이 변해가고 있음을 본다. 버스터미널이나 기차역, 큰길에서 한 손에는 피켓을, 다른 한 손에는 휴대용 마이크를 들고 ꡒ예수 천당, 예수 천당ꡓ을 외치고 다니는 개신교 사람들, 그들을 보는 우리들의 시각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광신도 혹은 미친 사람들이라는 말로 평가절하를 했었다.



더 나아가 그런 선교방식은 오히려 잃는 것이 더 많다고 하면서 무시하였다. 그러나 요즘 우리 신자들도 그들만큼은 못하지만 교회 안에서 교회 밖으로 나가기 시작하였다. 예수 믿으면 천당 가고, 안 믿으면 지옥간다는 무시무시한 구호는 외치지 못하지만 ꡐ천주교를 알려 드립니다. 천주교회! 어떤 종교인가?ꡑ라는 제목으로 리플렛과 책자를 만들어 가두선교에 열을 올리고 있다. 참 좋은 일이다. 세상을 향한 복음의 외침은 신앙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도 각자에게 주어지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점도 있다.



가끔 병원에 입원해 있는 신자들을 찾아가 기도를 드린다. 보통은 6인실에 입원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다른 분들이 쳐다보는 가운데 신자에게 성체를 모셔드리며 기도를 드린다. 기도가 다 끝났을 때 많은 경우 옆에 있는 다른 환자나 보호자들이 ꡒ아저씨(아줌마)도 성당 다닌대요?ꡓ하고 신자 환자에게 묻는 말을 듣는다. 그런데 그 말의 의미가 나에게 두 가지 의미로 들려왔다.



  첫째는 의외의 눈빛이다. 더 정확하게는 비아냥거림이다. 왜냐면 그 동안 병실에서 함께 지내면서 전혀 천주교신자라는 것을 알지 못했는데 신부와 수녀가 와서 기도를 하면서 본인의 종교가 드러난 것이다. 아울러 더 많게는 평소에 병실에서 보여준 그 사람의 모습이 하느님을 믿는 사람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거나,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과 차이가 없는 모습을 보아 왔기 때문에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교회와 교회 다닌다는 사람에 대한 실망에서 나오는 질문이다.

  

둘째는, ꡐ역시 그렇구나ꡑ하는 느낌이다. 헌데 이런 느낌은 거의 드물다. 평소에도 같은 병실 안에서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나 이해심이 많은 것을 보면서 ꡐ뭔가 다른 사람이다ꡑ라는 것을 느꼈는데 천주교 신자임을 알고서는 ꡐ천주교신자는 뭔가 다르지ꡑ라는 느낌을 가지고 말하는 사람이다.



하느님의 말씀은 반드시 전해야 한다. 모두가 해야한다. 그런데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은 타인에 대한 복음 선포도 중요하지만 먼저 그 복음이 나 자신에게 선포되고, 복음에 따라 내 삶이 차츰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변화된 사람이 아니더라도 변화되어 가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탕이 된 선교활동은 우리의 생각을 뛰어 넘는 엄청난 복음의 결실을 가져오리라 생각한다.

오늘 전교주일을 맞이하여 우리 각자는 ꡒ아저씨(아줌마)도 성당 다닌대요?ꡓ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 사람이 어떤 느낌을 가지고 나에게 질문을 하는지 한 번 돌아 봐야 할 것이다.













10.                   <주님과의 약속>

                                                                    최인호 베드로/작가



미국이 낳은 위대한 작가 윌리암 포크너(Faulkner 1897-1962)는 평생을 미국 남부의 사회적 변혁의 모습을 소설로 형상화시켰던 독특한 소설가입니다. 1949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그의 작품 중 단편 「에밀리에게 장미를」이란 걸작이 있습니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미국 남부 소도시에 에밀리라는 여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서른 살이 되도록 결혼을 못했던 에밀리는 어느 날 떠돌이 십장(什長) 베론과 사랑을 하게 됩니다. 마을 사람들은 에밀리와 같은 귀족이 베론과 같은 떠돌이 상놈과 어울려 다니는 것은 마을의 불명예라고 수군거렸습니다. 그런데 베론이 에밀리를 배신하고 도망쳐버리자 에밀리는 문을 걸어 잠그고 은둔생활을 합니다. 할머니가 된 에밀리가 죽자 마을사람들은 수십 년 동안 열리지 않던 그녀의 집에 가 문상하게 됩니다. 그때 사람들은 굳게 잠긴 방 하나를 발견하고는 그 방문을 부수고 들어갔습니다. 침대에는 30년 전에 죽은 베론의 시신이,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눴던 자세로 백골이 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에밀리는 자신을 배신하고 떠나려는 배론을 독살하고는 그의 시신을 침대에 눕혀놓고 평생동안 그의 베개 옆에서 사랑을 나누었던 것입니다.』

이 기괴한 단편은 사랑에 집착하는 에밀리라는 여인을 통해 인생의 허무함과 사랑의 헛된 맹세를 날카롭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가엾은 에밀리처럼 우리는 평생을 헛된 맹세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맹세하고 우정을 약속하고 계약을 맺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맹세와 약속은 한갓 들의 풀포기와 같은 것입니다.

예언자 이사야가 “모든 인생은 한낱 풀포기, 그 영화는 들에 핀 꽃과 같다! 풀은 시들고 꽃은 진다. 풀은 시들고 꽃은 지지만 우리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있으리라”(이사 40,6-8)라고 노래하였듯 사람들의 약속은 헛된 것입니다. 영원한 것은 오직 하느님의 말씀과 우리 주 그리스도뿐입니다.

주님께서 “아예 맹세를 하지 말라.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라.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라. 네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말라”(마태 5,34-36)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들 인생이 풀포기와 같으므로 맹세와 약속의 유한성을 경계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마지막 유언을 남기십니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네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마태 28,19-20). 그리고는 “내가 세상 끝날 때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고 우리에게 맹세하십니다.

주님의 이 맹세야말로 영원한 약속인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현존(現存)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과거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고 미래에도 계실 살아있는 우리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의 이 약속이 「에밀리의 장미」처럼 헛된 사랑의 맹세라면 우리는 지금 침대 위에서 썩어가고 있는 죽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가엾은 에밀리와 같은  사람들일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자, 내가 곧 가겠다. 나는 처음과 마지막이며 시작과 끝이다”(계시 22,12).











11.            전교주일 (마태 28,16-20)(나)   복음을 전하자!     

        서울대교구 홍보실



1. 복음 이야기

오늘 복음은 부활하신 예수께서 갈릴래아에서 열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던 갈릴래아 발현사화입니다. 마태오 복음서는 갈릴래아 발현사화로써 끝이 납니다(28,16-20). 이 발현사화는 상황묘사(16-17절)와 예수님의 말씀(18-20절)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ㄱ. 상황묘사(16-17절)

  예수께서는 전에 갈릴래아에서 전도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때 예수께서는 산에 올라가셔서 제자들에게 산상설교를 행하셨습니다(마태 5-7장). 이제 같은 땅에서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시켜 세계 만민을 상대로 한 전도를 시작합니다. 만민 중에는 이스라엘 백성도 들어 있지만 주로 이방인들을 향한 전도를 가리킨다고 하겠습니다. 유다 지방과는 달리 갈릴래아 지방에는 소외된 이방인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ㄴ. 부활하신 예수님의 말씀(18-20절)

  하늘과 땅의 권능을 받으신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세례를 베풀고 내가 명한 것을 모두 다 지키도록 가르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세계 만민을 상대로 전도해서 예수님을 섬기는 교회 공동체를 만들라는 뜻입니다. 교회 공동체를 건설하는 구체적인 방편은 세례 수여와 계명 준수교육입니다.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사람은 세례를 받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부지런히 익히고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맨 마지막으로 교회 공동체를 돕고자 늘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야훼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계시면서 선민을 돌보셨듯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도 새로운 이스라엘인 교회를 항상 돌보겠다고 말씀하십니다.



2. 우리의 이해

  오늘은 민족의 복음화를 위한 전교주일입니다.

  교회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사회 속에서 발생시키는 종말론적인 공동체라 하겠습니다. 복음은 글자 그대로 기쁜 소식입니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기쁜 소식이라는 말입니다. 예수께서는 말씀을 통해서 베푸시고 용서하시는 아빠 하느님을 알려주셨을 뿐 아니라 당신 스스로 그 하느님을 본받아 모든 사람들을 측은히 여기셨습니다. 또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자신을 제물로 바치는 사랑의 행위로써 우리의 구원을 이룩해 주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이 기쁜 소식이고 그분이 십자가에서 이룩하신 일이 구원임을 믿고 사는 사람이 신앙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복음을 이웃에게 알리는 일이 전교일 것입니다. 이제 교회는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세례를 베풀고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에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끊임없이 발생시킬 때 전교의 문은 저절로 열릴 것입니다.











12.                전교주일 (마태 28,16-20)(나)      위선의 가면

전옥주 가타리나 / 작가



한 화가가 절친한 친구인 유명 배우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이 화가의 그림 그리기 솜씨는 그 실력을 따라갈 만한 인재가 없을 정도로 대단한 실력가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화가가 아무리 친구의 얼굴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려 해도 그 친구(배우)의 참 모습을 화폭에 담을 수가 없어서 무척이나 갈등을 겪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고뇌하던 화가가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어 화를 왈칵 내며 친구를 향해 말했습니다.

  “자네는 어떤 인물의 흉내도 잘 내었지. 도대체 자네의 진짜 얼굴이 어떤 건지 보여지지 않으니 자네의 초상화를 그릴 수가 없네…”

  이 화가의 외침은 어쩌면 때와 장소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변하는 순수하지 못한 오늘날 우리들의 실상을 탓하는 것도 같아 한 번 묵상해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낄 때나 온당치 못한 일을 저지르게 되면, 곧잘 손으로 얼굴을 가리거나 고개를 돌려 자신의 잘못과 부끄러움을 감추려하기도 합니다.

  자기 행실의 부끄러움 때문에 작은 손으로라도 얼굴을 감싸며 숨고 싶어한다면, 그 모습은 차라리 아름답게 보여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요즈음은 후안무치(厚顔無恥)하여 도리어 자신의 잘못을 정당화시키려고 아우성치는 행태를 자주 보게 되어, 너무나 혼란스러워 가끔은 두려워지기도 했습니다.

  

앞에서 말한 화가의 절규(?)가 우리들에게 돌아오지 않도록, 우리는 지금 우리들의 참 모습을 되찾을 용기가 필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좀더 안락한 생활을 누리기 위한 방법으로 가면을 쓰고 살아야 한다면, 그 가면의 무게는 안락함의 무게보다 몇 배 더 무거운 짐이 됨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물의 가면은 버거우면 벗어버릴 수 있지만, 마음 깊숙이 자리 잡은 허욕과 위선의 가면은 좀처럼 떨쳐버리기가 어려워 끝내는 참된 삶의 가치를 뒤집어 놓는 비극을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남에게 감추고 싶어하는 비밀 한두 개쯤은 가지고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비밀은 언젠가는 드러나게 되어 있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비밀이란 밝은 곳으로 나타나기를 꺼려하기에 항상 사람들의 어둡고 혼탁한 마음 속에서 자라기 마련입니다.

  

드러내기 싫고 무언가 감추고 싶어서, 혹은 과장되게 포장하고 싶은 마음에 어느 순간 쓰게된 가면, 그러나 벗어버리기에는 너무나도 어려운 이 눈에 보이지 않는 가면을 우리들은 왜 쓰려하고 또 쉽게 벗어버리지 못하는 것일까요?      

  주님 앞에서 모든 비밀을 고백하고 사죄를 구하면 감추고자 했던 허물과 함께 가면은 사라지게 될 것이며, 나의 허물을 포장했던 가면이 사라지는 순간, 진정 마음의 평온함을 찾았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주님! 내 스스로 만들어서 쓴 이 가면을 벗어버릴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13.            전교주일(연중 29주일) 마태오 28,16-20

                                 갈릴래아에서 열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다



전교주일을 맞이하여 오늘 교회는 만민에 대한 선교사명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마태 28, 16-20의 말씀을 복음 으로 듣는다.

이 대목은 마태오 복음서의 제일 끝자리에 놓여 있는데, 그 내용이 매우 집약적이다.

ꡐ선교사명' 과 관련된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몇 가지 생각해 본다.ꡐ선교' 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오늘 복음 말씀에서 제일 먼저 주목해야 할 점은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파견되기 전의 상태' 이다.



그 때 그들은 심한 패배감, 절망감 에 빠져 있던 상태였다. 그들은 스승을 배신하였다는 수치심과, 그분께서 십자가 위에서 처참하게 돌아가신 성금요일의 충격과 절망 속에 아직도 깊이 빠져 있던 상태였다. 그런 그들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를 통해 갈릴래아로 가면 당신을 만날 것이라는 '기쁜 소식' 을 보내 주셨다. 그들은 먼저 이ꡐ기쁜 소식' 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따라야 했다.



제자들이 ꡐ파견되는 장소가 갈릴래아의 어느 산' 이라는 점은 깊은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갈릴래아는 제자들이 예수님으로부터ꡐ처음 소명을 받은 곳' 이었고,ꡐ제자로 양성 된 곳' 이었기 때문이다. 부활하신 후 당신의 제자들을 새 출발시키시려는 예수께서는 그들을 당신과 그들 사이의 '첫 사랑' 이 있었던 갈릴래아로 불러내신 것이다(참조: 호세 2, 16).



'산'도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큰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을 뵙고 그 분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았던 것과 비슷하게, 마태오 복음서에 의하면 제자들은 '산' 에서 '산상설교' 라는 새롭게 해석된 '계명' 을 예수님으로부터 받았다. 이렇게 보면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을 '갈릴래아의 그 산'으로 다시 부르셨다는 것은, 당신의 제자들을 '모든 민족들에게 파견' 하시기에 앞서 그들에게 근본적인 가르침을 상기시켜주시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음은 '선교의 목표' 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 을 갖고 계신 분, 즉 죽음까지도 그분의 권한 아래에 두고 계신 '주님'으로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시는 사명의 핵심은 "만민을 '예수님의' 제자로 삼는 것" 이다. 언뜻 보면 매우 의아하게 생각될 수 있는 부분이다. 다른 사람들을 '예수님의 제자가 되게 하는 것' 이 핵심사명이라니 도대체 무슨 뜻인가? 이 점은 지상 생애 동안 예수께서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 제자들의 공동체를 형성' 하려고 하셨는지를 생각해 보면 좀 더 이해가 될 수 있다. 무릇 제자란 스승의 가르침을 받고 그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오늘 복음은 제자들의 사명은 복음선포를 듣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제자가 되도록 하는 데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지금까지 열 한 제자는 ‘예수님의 제자' 로만 남아 있었는데,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부활까지고 체험한 이제 그들은 만민에게 파견되어, 예수께서 그들을 부르실 때에 하셨던 말씀대로 "사람 낚는 어부들이 되는" (마태 4,19)것이다.



마태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진복선언'으로부터 시작하여 '최후 심판 말씀' 에 이르기까지 제자들을 줄곧 가르치셨다.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에 의하여 새롭게 출발되는 제자공동체는 예수님이 하셨던 '가르침' 의 임무를 이어받는다. 그러나 이 가르침은 제자들 자신의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 동안 예수님으로부터 배웠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 의하면 넓게 볼 때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친교의 삶'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례를 받음으로써 사람들은 성자 예수님과 결합하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성자 예수님과 가장 깊은 사랑으로 결합되어 있는 성부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데 이 때 성령은 이런 친교를 근본적으로 가능하게 해 준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 : 이 말씀은 부활하신 예수님에 의해 새롭게 탄생되어, 계속 자라나야 할 예수님의 제자공동체인 교회에 주어진 가장 든든한 보증의 말씀이다.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면서 "세상의 빛과 소금" (마태 5,13-16)의 역할을 하려면, 제자들은 갖가지 어려움을 겪게 되겠지만, 그들의 공동체는 당신 자신이 '하느님께서 함께 계심' 을 뜻하는 '임마누엘' (참조: 마태 1,23)이신 주님께서 "그들과 늘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해 주신 공동체이다. 생각할수록 깊은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말씀이다.



모든 민족의 복음화를 위하여 기도하는 오늘 우리는 복음 말씀으로 부활하신 주님께서 당신의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하시기 전에, 그들을 당신께 대한 그들의 '첫 열정'이 타오르던 갈릴래아로 부르신 것을 들었다. 우리들도 복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신앙의 첫 시기', ‘소명의 첫 시기'를 잊지 말아야 한다. 영세할 때의 '첫 마음', 사제서품식 때나 서원 때의 '첫 마음' 등, 하느님의 사랑에 감격하던 순간을 잊지 말고 때때로 회상해야 한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 과 '그분께 대한 우리의 사랑' 이야말로 선교활동의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14.   민족들의 복음화 주일(전교주일) 마태 28,16-20: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라”

                                                       김영남 신부





(전교주일인 오늘의 복음은 지난 '삼위일체 대축일' 때 들었던 복음과 같다. 그래서 이번 주의 ‘복음생각'은 지난 ‘삼위일체 대축일’의 것을 기초로 삼되, ‘선교’에 초점을 두었음을 미리 밝혀 둔다.)

전교주일을 맞이하여 오늘 교회는 만민에 대한 선교사명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마태 28,16-20의 말씀을 복음으로 듣는다. 이 대목은 마태오 복음서의 제일 끝자리에 놓여 있는데, 그 내용이 매우 집약적이다.



‘선교사명’과 관련된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몇 가지 생각해 본다. ‘선교’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오늘 복음 말씀에서 제일 먼저 주목해야 할 점은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파견되기 전의 상태’이다. 그 때 그들은 심한 패배감, 절망감에 빠져 있던 상태였다. 그들은 스승을 배신하였다는 수치심과, 그분께서 십자가 위에서 처참하게 돌아가신 성 금요일의 충격과 절망 속에 아직도 깊이 빠져 있던 상태였다. 그런 그들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를 통해 갈릴래아로 가면 당신을 만날 것이라는 ‘기쁜 소식’을 보내주셨다. 그들은 먼저 이 ‘기쁜 소식’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따라야 했다.



제자들이 ‘파견되는 장소’가 ‘갈릴래아의 어느 산’이라는 점은 깊은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갈릴래아는 제자들이 예수님으로부터 ‘처음 소명을 받은 곳이었고, ‘제자로 양성된 곳’이었기 때문이다. 부활하신 후 당신의 제자들을 새 출발시키시려는 예수께서는 그들을 당신과 그들 사이의 ‘첫 사랑’이 있었던 갈릴래아로 불러내신 것이다(참조: 호세 2,16).



‘산’도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큰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을 뵙고 그 분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았던 것과 비슷하게, 마태오 복음서에 의하면 제자들은 ‘산’에서 ‘산상설교’라는 새롭게 해석된 “계명”을 예수님으로부터 받았다. 이렇게 보면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을 “갈릴래아의 그 산”으로 다시 부르셨다는 것은, 당신의 제자들을 ‘모든 민족들에게 파견’하시기에 앞서 그들에게 당신의 근본적인 가르침을 상기시켜주시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음은 ‘선교의 목표’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갖고 계신 분, 즉 죽음까지도 그분의 권한 아래에 두고 계신 ‘주님’으로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시는 사명의 핵심은 “만민을 ‘예수님의’ 제자로 삼는 것”이다. 언뜻 보면 매우 의아하게 생각될 수 있는 부분이다. 다른 사람들을 ‘예수님의 제자가 되게 하는 것’이 핵심사명이라니 도대체 무슨 뜻인가? 이 점은 지상 생애 동안 예수께서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제자들의 공동체를 형성”하려고 하셨는지를 생각해 보면 좀 더 이해가 될 수 있다. 무릇 제자란 스승의 가르침을 받고 그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오늘 복음은 제자들의 사명은 복음선포를 듣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제자가 되도록 하는 데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지금까지 열 한 제자는 ‘예수님의 제자’로만 남아 있었는데,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부활까지고 체험한 이제 그들은 만민에게 파견되어, 예수께서 그들을 부르실 때에 하셨던 말씀대로 “사람 낚는 어부들이 되는”(마태 4,19) 것이다.



마태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진복선언으로부터 시작하여 최후심판 말씀’에 이르기까지 제자들을 줄곧 가르치셨다.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에 의하여 새롭게 출발되는 제자공동체는 예수님이 하셨던 ‘가르침’의 임무를 이어받는다.



그러나 이 가르침은 제자들 자신의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동안 예수님으로부터 배웠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복음말씀에 의하면 넓게 볼 때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친교의 삶”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례를 받음으로써 사람들은 성자 예수님과 결합하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성자 예수님과 가장 깊은 사랑으로 결합되어 있는 성부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데 이 때 성령은 이런 친교를 근본적으로 가능하게 해 준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 이 말씀은 부활하신 예수님에 의해 새롭게 탄생되어, 계속 자라나야 할 예수님의 제자공동체인 교회에 주어진 가장 든든한 보증의 말씀이다.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면서 “세상의 빛과 소금”(마태 5,13-16)의 역할을 하려면, 제자들은 갖가지 어려움을 겪게 되겠지만, 그들의 공동체는 당신 자신이 “하느님께서 함께 계심”을 뜻하는 “임마누엘”(참조: 마태 1,23)이신 주님께서 “그들과 늘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해 주신 공동체이다. 생각할수록 깊은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말씀이다.



모든 민족의 복음화를 위하여 기도하는 오늘 우리는 복음 말씀으로 부활하신 주님께서 당신의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하시기 전에, 그들을 당신께 대한 그들의 “첫 열정”이 타오르던 갈릴래아로 부르신 것을 들었다. 우리들도 복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신앙의 첫 시기’, ‘소명의 첫 시기’를 잊지 말아야 한다. 영세할 때의 ‘첫 마음’, 사제서품식 때나 서원 때의 ‘첫 마음’ 등, 하느님의 사랑에 감격하던 순간을 잊지 말고 때때로 회상해야 한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과  ‘그분께 대한 우리의 사랑’이야말로 선교활동의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이름아이콘 tusenolurse
2010-11-14 15:35
jsieqh , http://www.realestatevoices.com/user/view/profile/benchcraftcompany ,snznc http://www.pixelgroovy.com/user/benchcraftcompany ,sylsx http://picks.yahoo.com/index.php ,mphow http://www.memfrag.com/mf.app?pp ,mdamx http://www.23hq.com/benchcraftcompany ,hmgoh http://www.teachstreet.com/teacher/benchcraftcompany ,kzpul http://www.wikihow.com/User:Benchcraftcompany ,qwwfo http://benchcraftcompany.posterous.com/ ,mspnf http://www.orkut.com/Main#Profile?uid=15353245488661019358 ,yjcqc http://eventful.com/users/benchcraftcompany ,gsnby http://ideas.hubspot.com/users/16004765-benchcraftcompany ,mttge http://www.google.com/profiles/116042177676136706033 ,pytvc http://upcoming.yahoo.com/user/1241172/ ,nyzmf http://www.buddytv.com/user/benchcraftcompany.aspx ,rawtq http://profiles.friendster.com/122965707 ,xnoil http://www.viadeo.com/profile/0021u3g2hq6k69pq ,fiyxy http://benchcraftcompany.createblog.com/ ,
   
 
  0
3500
   
 N  분류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1317    
행사강론
새사제 첫미사 강론 요한신부 2011-01-08 20048
  1316    
대축일 강론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 대축일강론 2008-09-20 6475
  1315    
대축일 강론
   Re..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 대축일 강론 모음2 2008-09-20 7797
  1314    
대축일 강론
   Re..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 말씀연구 2008-09-20 5648
  1313    
대축일 강론
   Re..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 대축일강론 모음 2008-09-20 7558
  1312    
설,추석
부모님 은혜를 생각하라고... 자녀들을 위하여 2008-09-14 4199
  1311    
행사강론
교무금이란? 2008-09-06 5043
  1310    
행사강론
생명의 날 메시지 이기헌 주교 2008-09-06 2967
  1309    
행사강론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10월 3일) 2008-09-06 3843
  1308    
행사강론
주님의 거룩한 변모축일 강론모음 2008-09-06 4494
  1307    
성모의 밤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대축일 성민호 신부 2008-09-06 4203
  1306    
행사강론
성녀 소화데레사 축일-포교사업의 수호자 예수 아기의 성녀 데레사 2008-09-06 5060
  1305    
행사강론
주님 봉헌축일 성민호 신부 2008-09-06 4070
  1304    
행사강론
성금요일 <요한 18,1-19> 강영구 신부 2008-09-06 3168
  1303    
행사강론
주님 만찬 저녁 미사 <요한 13,1-15> 강영구 신부 2008-09-06 3742
  1302    
행사강론
십자가 현양 축일 <요한 3,13~ 17> 강론모음 2008-09-06 4072
  1301    
행사강론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축일 (요한 2,13~22) 방윤석 신부 2008-09-06 3441
  1300    
행사강론
세례식 강론 <요한 3,1-8> 새롭게 태어나는 분들에게 2008-09-06 4619
  1299    
행사강론
예수 성심 성월 강론 모음 2008-09-06 4403
  1298    
행사강론
성모성월 강론 모음 2008-09-06 6768
  1297    
행사강론
성 요셉 성월 강론 모음 2008-09-06 5483
  1296    
행사강론
교회일치주간 교회일치주간 강론 2008-09-06 3911
  1295    
행사강론
성서주간, 성경주간 강론 그리스도왕 대축일 2008-09-06 2813
  1294    
행사강론
전교주일 강론 모음 1 전교주일 강론모음 2008-09-06 8983
  1293    
행사강론
군인주일 강론 모음 군인주일 강론모음 2008-09-06 4618
  1292    
연중25-30주일
다해 연중 제 30주일 주일 강론 모음 주일강론 모음 2008-09-06 5615
  1291    
연중25-30주일
나해 연중 제 30주일 주일 강론 모음 주일강론 모음 2008-09-06 6426
  1290    
연중25-30주일
다해 연중 제 29주일 주일 강론 모음 주일강론 모음 2008-09-06 6992
  1289    
연중25-30주일
나해 연중 제 29주일 주일 강론 모음 주일강론 모음 2008-09-06 7201
  1288    
연중25-30주일
다해 연중 제 28주일 주일 강론 모음 주일강론 모음 2008-09-06 6405
12345678910,,,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