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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전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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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말씀연구
작성일 2008년 6월 23일 (월)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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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교황주일 ”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1.말씀읽기:마태16,13-19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다 (마르 8,27-30 ; 루카 9,18-21)

2. 말씀연구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두 가지를 물어보십니다. 하나는 사람들이 당신을 누구라고 하냐는 것과 다른 하나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하는지를 물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이렇게 물으실 수 있습니다. ①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와 ②사람들이 너를 통해서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입으로는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느님의 아드님 이십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 삶은 어떻게 고백하고 있는지 자신이 없습니다. 내 입이 아니라 내 삶으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13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필립보의 가이사리아”이 동네 사람들은 빵신(神)을 숭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빠네아스>라고 불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헤로데 안티파스의 이복 동생인 헤로데 필립보가 기원전 2세기경에 세운 도시입니다. 그 후 카이사르 아우구스토를 숭앙하기 위해 카이사리아라고 개명하였습니다. 헤로데 대왕이 세운 또 하나의 카이사리아와 구별하기 위하여 보통 필립보의 카이사리아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당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지를 묻고 계십니다.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그러자 제자들은 그동안에 자신들이 들었던 이야기들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이라는 신앙고백을 통하여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제거하기 위하여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믿는 이들에게나 믿지 않는 이들에게나 공통된 생각은 ‘특별하신 분“임에는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1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헤로데 안티파스는 예수님을 자신이 죽인 세례자 요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더러는 엘리야라고 생각했는데 엘리야는 사람들의 지대한 존경을 받았으며 하느님에 의하여 기적적으로 들어 높여졌기 때문에 메시아의 선구자로서 다시 오리라고 기대되고 있었습니다(말라4,5-6). 그리고 예레미야 예언자 역시 대단한 존경을 받고 있었습니다. 예언자들 가운데 하나라는 추측은 예수님께서 얼마나 높이 평가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언자보다 더 높은 명예를 거의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한 가지 더 높은 명예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메시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분명 대단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는데 그분이 바로 메시아인줄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메시아가 오기 전에 먼저 엘리야가 오기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이 엘리야인 것을 그들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마귀 두목의 힘을 빌어서 마귀를 쫓아내는 사람이라고 비하하기도 했습니다.



내 주변에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고백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저 역사의 인물 중에서 위대한 성현으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까? 어떻게 듣고 있습니까?



15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이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 말고,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이 질문을 예수님께서 나에게 하셨다고 생각해 봅시다. 내 삶이 멋지다면 “그리스도인들은 뭔가 다르구나!”하는 소리를 들을 것이고, 그것을 통해서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그리스도로 고백할 것입니다. 하지만 내 삶이 그저 그렇다면 “예수쟁이들이 또 떠드네!”하면서 외면할 것입니다. 입만 살아서 움직이고, 일치보다는 분열을 일으키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모욕을 당하시게 될 것입니다.

내가 생각한 것이 내 행동으로 드러납니다. 나는 주님을 누구라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16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베드로 사도는 제자들을 대표해서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고백합니다.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을 통해서 제자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믿고 따르고 있었는지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고백하고 있습니까? 나의 구세주로 고백하고 있습니까?  요한 금구 성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만일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을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인정하지 않았다면 계시는 없었으리라. 베드로가 예수님도 다른 사람의 아들들 중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면 칭찬받을 가치는 없었던 것이다.”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나는 성경을 읽는 사람이어야 하고,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이어야 하고,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나는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가 행복하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 이유는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알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살과 피는 자연인간이라는 뜻입니다. 자연인간은 평범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초자연적인 것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평범한 사람에게 하느님께서 계시를 해 주셨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계시를 받았기에,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기에 행복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참된 존엄성과 그분의 위격의 신비에 대한 지식은 아래에서부터 나오는 것(인간의 지식)이 아니라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것(계시)이기에 이 “앎”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가 복이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심오한 신비를 아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복된 사람이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본다면 내가 복된 사람인지, 아닌지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행복 선언을 살펴보면 “안다는 사람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감추시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신비를 보여 주셨다는 예수님의 감사기도”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자신들의 머리로 파악하려는 이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그저 받아들이려고만 하는 이들은 깨달았던 것입니다.

바르요나는 요나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요한 1,42;21,15에선 베드로를 요나의 아들이라고 하지 않고 요한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18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시몬을 베드로라고 부르십니다. 베드로라는 말은 아람어의 게파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것으로 “반석, 바위”라는 뜻입니다. “너는 베드로이다”라는 말씀의 주요한 의미는 시몬이 이제 반석이 되어 자신의 사명과 역할을 수행하리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바위는 하느님 자신을 가리켜 자주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바위시며, 성채이시고, 확실한 지주시며 영원한 기반이시며, 영원불변하고 굳건한 보증이십니다. 폭풍이 일거나 홍수가 골짜기로 밀어닥칠 때 사람들은 바위로 피신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반석위에 집을 짓는 슬기로운 사람과 모레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사람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입니다(마태7,24-27).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즉 반석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과 함께 머무르실 거처로 바위 하나와 집 한 채를 특별히 뽑으셨습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집이 될 것입니다. 이 교회는 하느님을 경배하기 위해 모인 공동체를 뜻합니다.

지옥문은 죽음이 정복한 자들에게 활짝 열려 있으며 이미 이 죽음의 나라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에게는 도망칠 수 없도록 굳게 닫혀져 있습니다. 예수님께 대해 죽임이 더 이상 맥을 못 추는 것과 같이 예수님의 공동체에 대해서도 죽음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죽음은 죄의 결과이지만(로마5,12) 예수님께서는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몸값으로 당신 피를 흘리심으로써 죄를 정복하실 것입니다(속량). 그리고 이 반석은 죽음에 의해 억눌리지 않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생명력은 더 이상 죽음에 의해 정복될 수 없습니다.



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십니다. 하느님 나라는 성문에 의해 보호되는 도시나 현관문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집에 비유되고 있는데 문을 열고 닫기 위해서는 열쇠가 필요합니다. 열쇠는 권한을 부여받은 수위나 청지기가 갖고 있는데 베드로는 바로 이런 청지기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엄청 큰 권한을 갖게 되는 청지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풀다와 매다”는 것은 ①“옳다, 그르다”를 판정할 수 있는 권한입니다. 그리고 ②누군가를 공동체에서 제외시키거나(파문) 공동체 안으로 받아들이는 권한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는 무엇이 올바른 교리인가 하는 결정과 누가 그리스도의 교회에 받아들여짐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구원에 참여하게 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권한을 받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풀고 매는 권한은 구원의 중개에 대해서나 그러한 중개가 이루어지는 여러 가지 양식에 있어서 포괄적인 위임인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이 선언은 하느님 앞에서 유효합니다. 마치 하느님께서 몸소 선언하신 것처럼 선언되는 그 순간에 유효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는 엄밀히 말한다면 신적인 사명을 수여 받은 것입니다. 이제 베드로의 판정은 이러한 힘과 신적인 유효성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명이 교회에 부여되어 내려오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느님 나라의 열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늘에 계신 하느님 앞에서 유효한 사도들의 성스러운 사법권을 가리키는 은유적 표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누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인지를 최종적으로 심판하는 일은 마지막 날의 심판관에게 유보되어 있습니다. 그분은 양과 염소를 갈라놓으실 것입니다. 최후의 심판이 있기 전까지는 교회에서 행사되는 사법권에 의한 예비적인 판결들이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완성하기 위해 뽑힌 선택된 자들의 이름은 하느님의 섭리 안에 감추어져 있지만, 최종적인 하느님 나라를 위해 준비하고 하느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구원의 공동체에 누가 속하는지를 결정하는 일은 베드로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권한이 인간들이 만들어 낸 제도가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에 의거하여 하늘에서 내려온 신적인 질서라는 것, 축복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의심하지 말고 말입니다.



3.나눔 및 묵상

1. 나의 주변 사람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나는 주님을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2. 베드로 바오로 축일을 맞이하여 축일을 맞이한 형제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해 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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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민호 신부
작성일 2008년 9월 6일 (토)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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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교황주일 ”
 

8.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성민호 신부





오늘은 우리 교회의 두 기둥이며 주춧돌인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입니다. 두 분 다 교회 초창기에 절대적인 업적을 남겼으며, 네로 황제의 박해 때 로마에서 순교하였습니다.

  

처음에 어부였던 베드로 사도는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는 주님의 부르심에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는 주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과 열렬한 사랑 때문에, 열두 사도 중 으뜸 사도로 선택되어 장차 교회를 이끌어갈 특별한 사명과 권한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는 언제나 사도들 명단에서 첫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대표자로서의 역할을 다하였습니다.

  

성서를 보면, 새로운 이름이 주어진다는 것은 새로운 사명이 부여되었음을 뜻합니다. 만민의 아버지라는 뜻을 지닌 아브라함 성조나, 구세주라는 뜻을 가진 예수님이나, 다 하느님이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주님은 당신을 대리하여 사람들을 하느님께 인도하는 목자들의 목자로서의 막중한 책임을 베드로 사도에게 맡기시려고, 반석이라는 뜻을 가진 새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으신 예수님께 역시 베드로 사도가 사도들 대표로 “선생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베드로 사도의 신앙고백을 들은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들 앞에서, 그가 당신을 대리하여 교회의 총 책임자임을 공적으로 선언하셨습니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려있을 것이다."

열쇠는 통치권의 상징이며, 맺고 푸는 권한은 절대권을 의미하기 때문에, 주님은 이 말씀으로 교회의 기초가 어디에 있는가를 명시하셨고, 베드로 사도의 수위권(首位權)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또한 부활하신 후 주님께서는 당신께 대한 사랑을 고백한 베드로 사도에게 “내 어린양들을 잘 돌보아라.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고 말씀하심으로써, 당신 대신 전체교회를 이끌어갈 책임을 주셨던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후 베드로 사도는 사도들 대표로 군중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주님의 부활을 증언하였습니다. 사도행전에는 그의 말을 믿고 세례를 받은 사람이 하루에 삼천 명이나 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후 그는 여러 곳을 다니며 전도하였고 많은 박해도 받았지만, 사도들의 모임에서는 언제나 최종 결정권을 행사하였습니다. 마침내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다가 67년경 네로 황제의 잔인한 박해 때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였습니다. 그의 무덤이 있는 곳엔 지금 각국 순례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는 베드로 대성전이 세워졌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교양과 학문을 겸비하였고, 뛰어난 재질과 정열적인 성품을 지닌 분으로서 초대교회의 중추적 역할을 다하였습니다. 처음엔 앞장서서 신자들을 박해하였지만, 개종한 이후에는 여러 번 먼 곳까지 전도여행을 함으로써, 많은 이방인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였습니다. 그는 말로써뿐 아니라 14편이나 되는 편지를 통하여 주님의 가르침을 자상하게 전해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바오로 사도의 서간입니다.

  

사도행전이나 그의 서간을 보면, 그가 신자들을 박해한 사실에서부터 그의 개종경위, 그리고 그의 눈부신 활동상이나, 박학한 교리를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고, 많은 박해를 받았지만 매번 주님의 특별한 보호로 무사했음을 아울러 고백하고 있습니다.



마침내 그도 67년경 악명 높은 네로 황제의 박해 때 로마에서 참수치명을 당하였습니다. 치명한 곳에는 지금도 그 유적이 남아있으며 멀지 않은 곳에 바오로 대성전이 세워졌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이스라엘의 사도였다면, 바오로 사도는 이방인의 사도였습니다. 두 분 다 주님께 대한 뜨거운 사랑과 확고한 믿음을 가진 분들이었으며, 초대교회를 궤도에 올려놓은 장본인들이었고, 두 분 다 주님의 진리를 증거하기 위하여 로마에서 순교하였습니다.

  

물론 그들에게도 인간적인 약점이나 실수가 있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세 번씩이나 주님을 배반하였고, 바오로 사도는 신자들을 박해하였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참회하였고 주님의 부르심에 과감히 응답하여 한평생 주님의 뜻을 따르는 데 열과 성을 다하였기 때문에 빛나는 업적을 남겼으며, 많은 이들로부터 공경과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두 분의 대축일을 맞이하였습니다. 우리도 사도들의 모범을 따라 주님이 부르실 때에는 언제나 주저하지 말 것이며, 그분의 뜻을 따르는 데 최선을 다하기로 결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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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드레아 신부
작성일 2008년 8월 12일 (화)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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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교황주일 ”
 





- *♥* 나의 주님, 나의 그리스도 *♥* -



찬미 예수님!



사랑하올 형제 자매님,

지난 한 주간은 생활 가운데서 구체적으로 용서를 실천하고,

가족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고,

작은 일 하나하나에서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평화를 건설해 보셨습니까?

그래서 한 주간 내내 가정에 웃음과 평화가 넘쳤습니까?

그 평화가 계속 유지되길 바랍니다.





형제 자매님,

오늘은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입니다.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는 교회의 두 기둥입니다.

그런데 두 분은 완전히 대조가 될 정도로 다른 분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무식한 어부 출신으로 성격이 급하고 거칠었습니다.

그리고 나서기를 좋아해서 쉽게 실수를 하고 후회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바오로는 많은 교육을 받은 로마 시민권 자였고

차분하고 계획성이 있고 자제할 줄 알고 자신을 낮추면서

예수님을 향한 사랑에 끝까지 항구한 분이었습니다.



우리 인간적인 판단에 따르면

오히려 바오로 사도가 교회의 반석이 될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를 교회의 반석으로 삼으셨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묻는, 예수님께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라고 고백을 합니다.



그 고백을 듣고 예수님은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그 베드로를 반석으로 하여 당신 교회를 세울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베드로를 교회의 반석으로 선택하신 것은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이 베드로의 고백 위에 서있습니다.

즉, 우리도 똑같이 믿음을 고백한다는 뜻입니다.



형제 자매님,

그런데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 곧, 구세주로 고백을 한다면

우리의 생활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인터넷에 이런 글이 있더군요.

“천국에 가서 쇼핑을 했다.

세상에 나가 살려고 하면 필요한 것들이 많아서 쇼핑을 하는데,

우선은 사랑이 필요한 것 같았다.

천국백화점 1층 진열대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사랑을 카트에 실었다.

기쁘고 평화롭게 이웃들과 사는 것이 중요해서 코너 옆쪽에 있는 평화와 화해도 실었다.

때로는 참지 못할 일도 있을 것 같아 차곡차곡 쌓여있는 오래 참음도 하나 올렸다.

너무 강퍅하지 않게 자비를 베풀 일도 있을 것 같고,

착하고 충성되게 살아야 할 것 같아, 자비와 양선과 충성도 충분하게 담았다.

부드러우면서 강하게 사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 온유는 꼭 필요했다.

온유도 싣고 나오는데,

아무래도 욕심이 생기면 스스로 절제하는 것도 꼭 필요하겠다 싶어

마지막으로 절제도 한 묶음 실었다.

이제는 세상에서 얼마든지 행복하고 넉넉하게 만족하면서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계산대로 가서 너무 비싸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계산하는 천사에게 조심스럽게 얼마냐고 물어보았다.



천사가 하는 말이 모두가 공짜라고 한다.

아니 이 귀한 모든 것이 어떻게 공짜냐고 했더니,

천사가 하는 말,

‘이미 예수님께서 다 지불하셨어요.’”



형제 자매님,

예수께서 우리가 살아야 할 값을 다 지불하시고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잘 났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그분을 나의 그리스도라고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예수님께 참된 신앙으로 고백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

오늘(28일)은 제가 17년 전에 사제서품을 받은 날입니다.

그래서 오늘 혼자서 미사를 봉헌하면서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는 예수님의 질문 앞에서

지난 17년간의 사제 생활을 조용히 돌아보았습니다.



‘나는 지금 예수님께 어떤 신앙고백을 드리고 있나?’

‘내가 서품을 받으면서 드렸던 그 뜨거운 고백을 아직 간직하고 있나?’

깊이 반성을 해보았습니다.



내가 잘 나서가 아니라 주님께서 선택해주셨기에 사제가 된 몸이니까

사제직을 수행하면서 받는 모든 영광을 그분께 돌려드려야 하는데,

나를 통해서 이루신 일들로 얼마나 그분께 영광을 돌려드렸는지 반성해보면

많은 경우 나의 인간적인 욕심 때문에 영광을 주님께 돌려드리기 보다는

제가 차지한 경우가 많았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서품 때 드렸던 주님을 향한 사랑과

그때 결심했던 첫 마음을 다시 되찾을 수가 있었답니다.

그러면서 새롭게 “예수님 당신은 저의 그리스도이시고 제 모든 것의 주님이십니다.”

라고 고백해드렸습니다.

그래서 서품 축일에 혼자서 조용히 미사를 드린 것이 얼마나 은혜로운 일인지요!



형제 자매님,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사랑을 가득 담아서 물으십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대구신학교에서 안드레아 신부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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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황님은 누구십니까?
작성일 2008년 6월 27일 (금) 16:45
분 류 연중8-13주일
ㆍ추천: 0  ㆍ조회: 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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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교황주일 ”
 

모든 것은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 교황님은 누구시죠? ◈

교황은 이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몸소 교회를 세우신 다음 열두 제자를 뽑으시고 그 가운데 베드로를 사도들의 으뜸으로 삼아 교회를 다스리도록 위임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들이 곧 교황입니다.

교황은 1059년부터 추기경단의 비밀 투표로 선출되었으며, 새 교황은 착좌할 때 관습에 따라 새 이름을 스스로 선택합니다. 1978년에 교황직에 오르신 요한 바오로 2세는 264대 교황입니다. 그리고 2005년에 교황직에 오르신 베네딕도 16세 교황은 265대 교황이십니다. 교황은 로마의 주교, 그리스도의 대리자,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 서방 교회의 최고 지도자, 바티칸 시국 원수 등 여러 가지 직함으로 불립니다.

교회는 해마다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6월 29일)에 가까운 주일을 교황 주일로 지내면서, 교황이 전 세계의 모든 그리스도인을 훌륭하게 이끌어 갈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1. 명칭과 직위

교황이라는 명칭의 어원 Papa(아버지)는 본래 지역 교회의 초고 장상(주교, 대수도원장, 총주교)를 부르던 말이었는데 중세 초기부터 차츰 로마의 주교에게만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교황은 로마교구의 교구장 주교이며 세게 주교단의 단장으로서 현세 교회의 통괄적 최고 사목자입니다





2. 교황직의 교리적 내용

①교황은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교황의 수위권

예수님께서는 열두 사도를 선택하시고 그들 중 시몬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약속(마태16,15-19)을 하십니다. 베드로 사도에게 다른 형제들을 부탁하십니다(루가22,31-32). 베드로사도에게 양들을 맡기셨습니다(요한21,15-17). 베드로 사도는 개신교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열두 사도중의 한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베드로를 사도단의 으뜸으로 세우실 의향을 분명하게 하셨습니다.

초대 교회에서 베드로 사도는 마티아로 하여금 유다의 빈 자리를 채우도록 보궐선거(?)를 했고(사도1,15),최초로 공개 설교를 하였고(사도2,14 이하), 유대원로원에서 사도들의 활동을 변호하고(사도4,8;5,29), 이방인 개종자 문제(사도10,24-28)와 구약율법의 문제(사도15,7-22)등에 있어서 단장격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루살렘과 팔레스티나에서 선교하다가 로마를 떠나서 다른 곳으로 갔는데(사도12,17) 역사의 증언에 의하면 42-43년에 로마에 가서 로마교회를 창설하였고, 네로의 박해 때인 64년에 로마에서 순교하셨습니다. 그래서 그의 후계자인 로마의 주교는 당연히 베드로의 권위와 책임을 계승한 것으로 확신하였고 교회도 그렇게 인정하였습니다. 1세기 말에 베드로의 3대 후계자 즉 4대 교황인 성 클레멘스 1세는 멀리 고린토교회의 분쟁을 조정하였고, 2세기 초에 안티오키아의 주교 이냐시오와 2세기 중엽에 리용의 주교 이레네오는 로마의 주교가 전 교회의 으뜸이라는 것을 증언하였습니다. 2세기 말에 교황성 빅토리오 1세는 동방의 부활축일 논쟁에 개입 조정하였고, 3세기 중엽에 성 스테파노 1세 교황은 재세례를금하는 조처를 북아프리카와 소아시아 주교들에게 내렸습니다.

이와같이 교황의 수위권(首位權)은 이론적으로 정립되기 저에 이미 고대 교회에서 실시되고 있었습니다.





②교황은 세계 주교단의 단장

교황의 수위권이아무리 확고하고 강력할지라도 각 지역 주교들의 고유한 사목 권한을 배제하거나 축소하거나 대행하지 않습니다. 주교들은 주교품을 받음으로써 사도들의 후계자가 되고, 위임된 지역교회의 완전한 사목자가 되며, 로마 교황과 더불어 한 주교단을 이룹니다. 베드로 사도가 단장이었던 것처럼, 교황님도 주교단의 단장입니다. 따라서 교황을 제외한 주교단이나 주교단과 유리된 교황이란 생각조차 할 수 없습니다(교회헌장22). 그러므로 주교단 안에서 각 주교들은 그들의 사목권을 교황으로부터 받는 것이 아니고 주교서품을 통해서 하느님으로부터 받기 때문에, 자기에게 위임된 지역교회(교구)안에서는 교황의 대리가 아니고(교회헌장 27)고유하고 직접적이고 통상적인 사목자이며(교회헌장23), 세계 교회에 대해서는 교황과 함께 한 주교단으로서 전반적 최고 사목권의 주체가 됩니다.



3. 교황의 직무

교황의 직무는 교회의 직무내용처럼 진리를 가르치는 예언직과 이에 상응하는 교도권, 인간을 성화하는 사제직과 신품권, 교회를 다스리는 왕직과 통치권으로 크게 구별할 수 있습니다.





①교도권

구원의 계시 진리를 가르치는 책임을 진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권위를 부여받은 주교들이다”(교회헌장 25). 주교들의 통상 권위로 가르치는 것을 통상 교도권이라고 하고, 주교들이 세계 공의회를 통하여 가르치는 것과 교황이 교황직위를 발동하여 가르치는 것을 장엄교도권이라고 합니다.

교황의 통상 교도권 행사는 일반 주교들처럼 공식 설교, 교리해설, 사목교서, 교구회의 등으로 하고, 교황청의 행정부서의 율령이나 법원의 판결같이 간접적으로 행사하기도 합니다.

교황의 장엄 교도권은 세계 공의회를 통하여 행사하기도 하고, 교황 스스로 “교좌에서의 선언”에 의하여 행사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교황이 장엄 교도권으로 신앙이나 도덕에 관한 최종결정을 하는 경우에는 절대로 그르칠 수 없다는 것이 가톨릭 교회의 신앙입니다. 교황의 이 특은을 무류지권(無謬之權)이라고 한다.





☞교황의 무류지권

교황이 교좌에서 선언한 것이 무류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조건이 채워져야 합니다.

㉮전체 교회의 최고 목자로서 공식으로 선언합니다. 따라서 교황도 로마 교구장의 자격이나 개인 학자의 자격으로 주장하는 것은 무류하지 않습니다.

㉯계시 진리를 최종적으로 정의하려는 의도를 밝혀야 합니다. 따라서 교황의 자격으로 할지라도 통상적인 지도, 권유, 해설, 반박, 경고 등은 무류하지 않습니다.

㉰신앙이나 도덕에 관한 문제에 국한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과학, 예술, 사회, 경제, 정치,기타 문제에 관한 선언은 무류하지 않습니다.





②신품권

교황의 신품권은 다른 주교들의 신품권과 같습니다. 모든 주교는 주교품을 받음으로써 완전한 신품권을 받아서 칠성사를 집전하고 모든 전례를 주관합니다. 그래서 어떤 주교가 교황으로 선출되어도 더 큰 신품권을 받은 것이 아니며, 주교 아닌 사람이 교황으로 선출되면 즉시 주교품을 받아야 로마의 주교가 되고 세계 교회의 교황이 됩니다. 따라서 교황이 집전한 성사나 주교가 집전한 성사나(자기 권한 내에서) 신부가 집전한 성사의 객관적 가치는 완전히 동일한 것입니다.





③통치권

교황의 통치권은 그의 수위권 때문에 모든 성직자들의 통치권을 능가하고 포괄합니다. 교황의 통치권은 주교를 포함한 모든 신자에게 미치고, 교회의 사명 수행에 직접 관련되는 모든 사항에 해당됩니다. 교황의 통치권은 교회를 지도하기에 필요한 입법권과 사법권과 행정권을 포함한 것입니다. 교황은 이러한 삼중 통치권을 행사할 때에 여러 가지 보좌기관(법원, 행정부서, 회의 등)을 이용하지만 최종 결정권자는 교황 자신입니다. 그래서 현대 국가의 삼권 분립제도는 교회나 교황에게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황의 통치권에 의한 결정 중에서(장엄교도권과 직접 결부된 신조선언이 아닌) 일반 명령이나 지시는 그 자체로서 무류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교황의 지시를 존경과 순명으로 받아 들이면 충분하고, 교황의 현세적 조건(정교조약, 재산관리 등)에 대한 교황의 결정은 비판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4. 교황의 법적지위

①교황은 로마 교구의 교구장입니다. 로마 교구의 주교좌는 바티칸이 아니고 라테라노 대성전입니다. 교황은 로마 교구 사목을 위하여 총대리 추기경의 보좌를 받고 있습니다.

②교황은 로마 관구의 수도 대주교입니다. 로마 교구와 그 주변 7교구를 합한 로마 관구의 관구장이며, 7개 속교구에는 전통적으로 주교급 추기경을 두고 있습니다.

③교황은 이탈리아의 수좌 대주교입니다. 이탈리아의 모든 교구 중에 수석 교구의 교구장으로서의 명예직입니다.

④교황은 서방 교회의 총주교입니다. 역사적으로는 로마를 모교회로 하여 발전한 라틴식 전례를 가진 모든 교회들을 총괄하는 대주교를 뜻하는데 현재로서는 명예직입니다.

⑤교황은 바티칸 시국의 국가원수입니다. 187년 이탈리아가 통일되면서 교황의 영토는 몰수되고 교황의 주거지인 바티칸 언덕과 몇 개 기관들만 교황의 관할로 남았었는데, 1929년 비오 11세와 이탈리아 정부 사이의 라테라노 조약에 의하여 바티칸시는 독립된 주권국가로 인정되었고, 교황은 국가원수로서 불가침 특권과 외교특권을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교황이 파견한 교황대사는 주재국에 대하여 교황의 전권대사이며, 주재국의 교회에 대하여 감독과 연락의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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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임승욱 요한금구
작성일 2008년 6월 23일 (월)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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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교황주일 ”
 

◈ 가해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



1. 제1독서 주석 : 사도 12,1-11



  1-3절 : “그 즈음에 헤로데 임금이 교회에 속한 몇몇 사람을 해치려고 했다.”는 표현은 물려받은 본문에 대한 저자의 수정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에즈라 1서 9,20절의 내용과 일치한다. 또한 “칼로 쳐 죽인다.”는 표현은 당시 살인자와 타락한 도시의 사람들은 참수에 의해 처형당해야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부정사와 함께 쓰이는 ‘좋아하다’라는 표현은 70인 역에서 자주 나오는 어법이라고 할 수 있다.



  4-6절 : “감옥에 가두었다”라는 표현도 70인 역의 문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를 백성 앞으로 끌어낼 작정이었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합법적인 재판과정에서는 백성들이 결정할 수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 부분의 서술은 아마도 수난사를 모범으로 했을 것이다.



  7-11절 : 이제 천사가 나타나 모든 행동을 시작한다. 베드로의 구출은 자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느님께 소급된다. 베드로는 천사의 명령에 따라 행동을 하며 파수병들을 지나 거리로 나오게 된다.



2. 제2독서 주석 : 2디모 4,6-18



  6-7절 : “나는 이미 하느님께 올려지는 포도주로 바쳐지고 있습니다.”와 “떠날 때”라는 표현은 인생의 종말을 나타내고 있다. 죽음이 가까웠다는 의식을 반영해 주고 있는 6절에 이어 7절에서는 바오로의 생애를 회고하는 승리적 선언이 나오고 있다. 이 선언은 세 개의 평행 귀절로 되어있는데 그 중 두 구절은 코린토 전서 9,24 이하로부터 잘 알려진, 그리고 경주장 으로부터 나온 비유를 사용하고 있다. “믿음을 지켰습니다.”라는 표현은 “신실성을 유지한다”는 데 대한 ‘확정된’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8절 : ‘기다리다“라는 표현은 동방의 왕들이 어떤 사람을 인정하여 추천하는 칙령 가운데서 거의 전문용어로 사용되는 표현이다. 아마도 그 말은 본래 그런 영예를 얻은 자들의 이름이 나라의 역사 기록에 나타나는 사실과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또한 이 표현은 순교의 용어를 상기시키고 있다.



  9-12절 : 모든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았던 바오로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고 있으며, 그 버림받음은 바로 주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13절 : 책들은 두루마리를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책들”이라고 했을 때, 저자는 아마도 이런 “두루마리들”, 또는 파피루스 책들을 뜻했을 것이다. 그 당시에 기록하기 위해 사용했던 일반적인 재료는 파피루스였다.



  16-18절 : 이 본문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은 바오로가 이제 두 번째로 로마에 투옥당해 있으면서 첫 번째의 투옥과 그의 성공적인 석방을 회고하고 있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 경우 “사자”는 네로황제를 가리킨다. 하지만 바오로가 모든 사람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데 대한 설명은 바오로에 대한 초대교회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으며, 그 경우 “사자”는 상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3. 복음 주석 : 마태 16,13-19



  13절 : 예수는 사람의 아들로서의 자신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로써 사람의 아들 칭호만이 마르코 복음 8,31의 수난예고에서부터 앞으로 당겨졌다.



  14절 : 엘리야와 더불어 예레미야는 부가적으로 지칭되었다. 아마도 예레미야가 많은 성경 가운데 첫 번째 예언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예레미야는 이사야과 함께 하느님의 사자로서 마지막 때가 오기 전에 파견될 것이라는 기대는 그리스도교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그 당시 표상에 의하면 그는 신약 시대 동안에는 하늘에 멀물고 있다고 생각되어 졌다.



  16절 : 베드로의 고백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표현이 첨가됨으로서 확대되었으며, 이와 같은 표현은 신약성경 중에서 여기에서만 나타난다. 마태오에게 있어서 사람의 아들과 하느님의 아들은 대립되지 않는다. 다만 어떤 의미에서 사람의 아들이 이해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만이 제기된다. 마태오는 그리스도 칭호와 하느님의 아들 칭호를 통해서 분명하지 않은 사람의 아들 칭호를 설명하며, 이 하느님의 아들 칭호는 바로 예수수난을 통해서 그것의 궁극적인 성취를 발견한다. 마태오의 주된 관심은 특별히 따르라고 부르면서 그 안에서 구원하는 하느님의 아들에 대한 고백이다.



  17절 : “바르요나” 즉 요나의 아들이라는 말은 기이하다. 왜냐하면 시몬의 아버지는 요한 1,42에 ‘요한’이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요나는 ‘요하난’ 즉 요한의 축소형이라고 받아들여야 한다. 고유 명사로서의 요나는 이 이름을 가진 예언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전 세대와 예수 후세대 어디에서도 나타나지 않는다.



  



  18절 : “반석”은 베드로 자신이며, 그의 고백이 아니다. 베드로의 특수한 지위는 예수께서 주신 것이며, 베드로는 그의 강한 성격이나 신앙 때문에 찬양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선사받은 자로서 찬양받는다. 베드로는 믿음의 이적을 경험한 최초의 사도로서, 그가 걸림돌로 변할 때조차도 “반석”으로 남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모든 사도들과 예언자들은 그 위에 교회가 지어지는 주춧돌이다. 그리고 죽음의 모든 세력이 공동체를 끝내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19절 : 이제 베드로는 지상에서의 하늘나라의 관리인이다. 이 기능이 “매고 푼다”는 표현으로 상세하게 해석되어진다. 이제 죄의 용서는 더 이상 바리사이파적인 율법학자들의 말이 아니라, 죄의 용서를 위한 열쇠와 권능은 예수를 따르는 자에게만 주어진다.



4. 이 주일의 초점



1) 나도 교회의 한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인식시켜준다.

2) 세상의 기준이 아닌 예수님의 기준을 따를 수 있도록 용기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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