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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전례
작성자 말씀과 전례
작성일 2008년 1월 19일 (토)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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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해 예수 승천 대축일 주일 강론 모음 ”
 

예수 승천 대축일



갈릴래아 사람들아,

너희는 왜 하늘만 쳐다보고 있느냐?



제 1독서: 사도 1,1-11

제 2독서: 에폐 1,17-23

복 음: 마태 28,16-20



“갈릴래아 사람들아, 너희는 왜 하늘만 쳐다보고 있느냐? 그분은 너희가 보는 앞에서 승천하신 모양으로 다시 오시리라. 알렐루야.”

 이처럼 천상을 향한 지극한 동경심과 인간들의 지상 현실에 대한 깊은 관심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는 입당송을 서두로 오늘 예수 승천 대축일의 막이 장엄하게 오르고 있다. 그 입당송은 잠시 후에 보게 될 것처럼 사도행전의 첫머리에서 따온 것으로서, 인간의 내면에 어쩔 수 없는 분열을 야기시키는 이중적 충동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 즉 한편으로는,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러이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편에 앉으시는” (마르 16,19 참조) 천상을 절대적으로 상기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매일매일의 무거운 삶과 역사를 외면할 수 없는 우리 인간들의 상황을 측은히 여기고 있는 것 같다. 아마도 이것은 우리 모두가 다 ‘천상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고 그것들을 열심히 추구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결코 그로 인하여 ‘지상에 있는 것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주기 위한 것일 것이다(골로 3,2 참조)



천상에 대한 ‘향수’



 그렇지만, 본기도로부터 시작해서 응송, 감사송 그리고 그 나머지 모든 기도문의 근거가 되고 있는 독서들에 이르기까지 오늘 전례 전체의 열광적 축제 분위기의 배경이 되고 있는 것은 물론 ‘천상’이다.

 예를 들어, 본기도를 보자: “전능하신 천주여, 성자 그리스도의 승천으로 우리의 성장이 촉진되며, 또한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러이 올라가신 그곳으로 지체인 우리의 희망도 따르오니, 우리로 하여금 거룩한 기쁨에 용약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감사드리게 하소서.” 영성체후 기도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천상에 대한 향수를 강조하고 있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천주여…우리와 같은 인성을 지니신 그리스도께서 당신과 함께 그 천상으로 신자들의 정신과 마음을 이끌어주소서.”

 또한 오늘 승천 축일의 첫째 감사송은 더더욱 감동적이며 풍부한 신학적 내용을 담고 있다: “영광의 왕이신 주 예수, 죄와 죽음을 승리자로 개선하시어 오늘 천사들이 경탄하는 가운데 하늘 높은 곳으로 올라가셨으며, 천주와 사람 사이의 중재자가 디시고, 세상의 심판관이 되시고, 천상 권능의 주인이 되셨어도, 비천한 우리를 아주 떠나시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우리의 으뜸이 되시고 머리가 되시어 앞서 가시면서, 당신 지체들은 우리도 당신이 가신 데로 따라 가게 하셨나이다.”

 여기서 ‘천상’이란 그리스도께서 성부와 함께 사시리라고 여겨지는 어떤 지형적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것은 다만 그분의 영광스러운 승천 곧 시공의 제약을 이미 벗어났지만 우리와 보다 친밀한 생활의 일치를 이루는 그분은 우리와 더 밀접히 결합 되신다: 그러기에 ‘그분이 가신 데로’ 우리도 따라갈 수 있기를 간청하고 있다.

 따라서 ‘천상’에 대한 향수는 바울로 사도가 제 2독서에서 놀라웁게 상기시켜주고 있듯이 순수한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그리워하며 그분의 영광스러운 생명에 결합되고자 하는 여망이다. 사실, 바울로 사도는 성부께서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어 ‘당신 오른편에 앉히심으로써’ 성도들에게 무엇을 바라게 하시는지를 그들이 알아들을 수이 있는 ‘마음의 눈을 밝혀주시기를’ 하느님께 간구한다 (에폐 1,18-21).

 예수 승천 축일은 이와 같은 ‘원의’를 우리 마음속에 일깨워준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이 지상을 저버리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목적지가 다른 곳에 있음을 말해주기 위한 것이다. 바로 이런 까닭에 예수께서는 사도행전에서 천사들이 갈릴래아 사람들에게 알려주듯이 우리를 데리러 다시 ‘돌아오신다.’



“너희는 성령의 힘을 받아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제 1독서는 편의에 따라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5절은 루가가 자기의 복음서를 기술한 마지막 부분 즉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승천하신 대목(루가 24,50-51)에 이어 계속 쓰고자 하는 새 책(사도행전)의 ‘머리말’ 이다. 여기서는 그 복음의 내용을 마무리 짓기 위해 예수께서 “돌아가신 뒤에 다시 살아나셔서 사십 일 동안 사도들에게 자주 나타나시어 여러 가지 확실한 증거로써 당신이 여전히 살아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시며 하느님 나라에 관한 말씀을 들려주셨다”(3절)고 덧붙이고 있다.

 루가의 의도는 주님의 부활에 대한 믿음의 근거를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 분명하다: ‘사십 일 동안’사도들은 여전히 그분을 ‘뵈올’수 있었고 또 그분의 말씀을 ‘[들을’수 있지 않았던가 ! 그 최대의 역할은 예수께서 거듭거듭 사도들에게 하신 약속에 따라 그들이 예루살렘에서 기다려야 할 성령이 하시게 될 것이다(4-5절).

 둘째 부분(6-11절)은 예수 승천의 주제를 다시 취하여 몇 가지 특징적인 사실들로써 그 내용을 풍부히 하면서 또 한편 그것을 그리스도의 선물일 뿐만 아니라 그분의 ‘연장’ (延長) 자체인 성령의 오심과 밀접히 연결시키고 있다.

 바로 이런 까닭에 사도들이 단순히 생각했듯이 ‘이스라엘 왕국’이 즉시 재건되리라(6절)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스라엘 왕국은 오히려 예수의 승천으로부터 그분의 영광스러운 재림에 이르기까지의 온 여정에 걸쳐 ‘다시 세워질 것이다.’ 성령의 힘이 사도들의 복음적 증거의 협력을 받아 그 왕국의 씨앗을 꽃피워 번창케 할 것이다: “그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권능으로 결정하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다.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수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뿐만 아니라 땅 끝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7-8절).

 그러므로 예수 승천은 한편으로 교회의 체험의 종착지라고 한다면 다른 한편으로는 이제 막 일어나려고 하는 보다 큰 사건의 출발점이라 하겠다.

 마지막 구절들은 이와 같은 사실을 말래주고 있다: “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사도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하셨는데 마침내 구름에 싸여 그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셨다. 예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는 동안 그들은 하늘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흰 옷을 입은 사람 둘이 갑자기 그들 앞에 나타나서 이렇게 말했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너희는 여기에 서서 하늘만 쳐다보고 있느냐? 너희 곁을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시던 그 모양으로 다시 오실 것이다’”(9-11절).

 루가복음에서는 (24,4) 주님의 몸에 향료를 바르러 여인들이 달려간 그 빈 무덤에서도 ‘눈부신 옷을 입은 두 사람’이 나타난다. 그들은 구원의 역사에 결정적으로 개입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표지 역할을 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예수의 모습이 못 보게 하는 어떤 것으로보다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러나는 하느님의 특별한 구원적 계시의 상징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구름’은 구약성서에서나 (출애 13,22 참조) 신약성서에서나 (루가 9,34-35 그리고 이외 병행구들 참조) 일반적으로 신적 현현의 장면을 묘사하는 데 쓰일 뿐만 아니라 다니엘서에서는(7,13) 주님의 ‘종말론적 재림’ 의 상징과 예고로도 사용된다(마태 24,30 ; 1 데살 4,17 ; 묵시 1,7 ; 14,14-16 등 참조).



그분은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시던

그 모양으로 다시 오실 것이다”



 따라서 루가의 생각에 따르면 예수 승천은 종말론적 추동으로 가득 차 있는 하나의 시실이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인간들과 그들의 역사로 온 인류의 ‘맏물’이신 그리스도 (1고린 15,20)께서 이제 막 일어날 일들을 ‘예고’해주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천사들이 한 말의 의미가 분명해진다: “너희 곁을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시던 그 모양으로 다시 오실 것이다”(11절).

 여기서 ‘그 모양으로’라는 비교어법은 외적인 어떤 유사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 현실의 유사성을 뜻한다: 즉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러이 하늘에 올라가시는 것처럼 그렇게 돌아오셔서 우주에 대한 당신의 ‘지배권’ 을 확인시키시고 온 인류 역사를 당신 안에 모아들이실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승천은 결별이 아니라 되돌아오심에 대한 보증이다. 즉 제자들로부터의 떠남이 아니라 보다 풍성한 성령의 활동에 의해 더욱더 실제적인 위로를 주는 당신 현존에 대한 약속이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이 내게 부여되어 있다”

이같은 내용은 마태오에 의한 오늘 복음에서도 추론된다. 오늘복음은 예수의 승천을 시각적인 개념으로 묘사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그 결론 부분에서 여렴풋하지만 잠재적으로 동일한 신학적으로 동일한 신학적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셩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16-20).

 여기서도 우리는 사도행전이서처럼 예수와 사도들의 마지막 만남의 장면을 보고 있다. 그런데 그 만남이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지고 있지 않고 복음선포가 시작되었던(4,12-17) 갈릴래아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게다가 ‘산’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아마도 이 ‘산’은 이해하기 어려운 ‘행복’에 관한 가르침(5-7징)을 세상에 선포했던 그 ‘산’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마치 지나간 과거 모두를 이 순간에다 모아놓음으로써 원천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것 가다: 즉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방법으로 앞서 이루어진 당신의 모든 역사의 타당성을 재확인해주시고 당신이 행하신 그‘산상설교’에 새로운 활력소를 붙어 넣어주신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20절) 하시는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다.

 주석상의 문제점이 될 수 있는 서로 다른 이 지형적 배경 외에 우리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전교 사명’ 이라고도 일컬어지는 그리스도의 이 마지막 메시지가 다고 있는 매우 중요한 내용이다.

 우선 그 메시지의 첫머리에서 위엄있게 선포되고 있는 그리스도론적 선언을 살펴보자: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여러 곳에서 ‘권한’ 즉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행동의 ‘권위’ 에 대해 말한다. 예를 들어, 산상설교의 끝부분에서는 사람들이 “예수께서 가르치는 것이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권위가 있기 때문에”(7,29) 놀랐다고 한다. 또 조금 후에 예수께서 중풍병자를 고쳐주시며 당신에게 ‘죄를 사할 권한’이 있다고 하실 때 사람들은 또다시 놀라움과 ‘두려움에’ 싸인다(9,6-7).그리고 또 예수의 생래 거의 마지막 무렵 그분이 성전에서 상인들을 쫓아내셨을 때 대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은 그분께 묻는다 :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들을 합니까? 누가 이런 권한을 주었읍니까?(21,23).

 이제 예수께서는 다른 사람들이 논쟁의 시비를 걸어오고 있는 그 권한의 출처를 밝혀주신다 : 그것은 히브리어의 수동태가(‘나는…받았다’) 분명히 밝혀주고 있듯이 하느님께로부터 온다.

 그리고 그것은 공간(‘하늘과 땅’)과 시간(‘세상 끝날까지’)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비록 이전에는 예수께서 그 권한을 이따금 행사하시는데 그쳤지만 지금은 그 권한이 그분의 부활의 영광과 결합됨으로써 그분 자신에게서 충만히 드러나고 있다 : 사실, 부활은 승천을 통하여 완성되며, 예수를 성부 ‘오른편에’ 영원히 자리하시게 하여 온 세상 역사의 주인이 되게 하고 무엇보다도 특히 그분을 당신 교회의 ‘주인’이 되게 한다.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가르쳐라”



 분명히 예수께서는 그 ‘권위’의 힘으로 당신 사도들을 파견하시며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라”(19절)고 명하신다 : 여기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란 실제로 이방인들과 유다인들로 구성되어 있는 인류 전체를 뜻한다.

 만일 다른 사람들과 일치하여 결합되지 못한다면 주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예수의 그 말씀에 따라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으로 서로 결합되어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항구한 ‘제자직’으로 이해되는 교회의 거대한 모습이 생겨난다.

 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사실 자체는 그 전제 조건인 신앙 외에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특징적인 요소 즉 세례와 그분이 ‘명하신’ 모든 것을 지킬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세례는 마태오 복음사가의 관점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신비에만이 아니라 심위일체의 신비 그 자체에 ‘잠기는 것’이다 : 사실 그리스도께서 성부의 영광에 오르심은 온 인류를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품안에-실제적으로도-들게 한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심으로써, 교회는 비록 인간의 역사 속에 들어 있지만 하느님께 근거하고 있는 그 초월적 특성을 항구히 되추구하는 구원의 실체로서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온전히 ‘지키는 것’ 여시 똑같은 목적을 지향하고 있다 : “그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20절). 세례는 복음을 통하여 끊임없이 울려 퍼지고 있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여 지상적 생활보다는 천상적 생활 형태ㄹ 생활을 바꾸어 나갈 때에야 진실된 덕으로 입증된다.

 이렇게 해서 그리스도께서는 성부 곁에서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의 권한을 누리시는 외에도 “세상 끝날까지 항상”(20절) 우리 가운데 현존하신다 : 그분은 당신 교회를 통한 세례와 복음선포로써 하느님 나라를 향한 온 인류의 쇄신의 여정을 이끌어주신다.

 “교회의 생명은 마치 세상에 심어진 하나의 씨앗과 같으며 그것은 모든 것을 변화시킬 때까지 자라기를 멈추지 않는다. 종말이 와서 형제들에 대한 사랑을 동해 실현되는 율법의 의미가 드러나고 생명의 신비가 벗겨지게 되면 교회는 그 사명을 다하고 끝나게 되며 오직 성부께로부터 축복받은 이들만이 남아 예수께서 당신 성령을 통해 미리 마련해놓으신 영원한 나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J. Pikaza, Leggere Matteo, Marierri, Torino 1977,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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