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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전례
작성자 강론모음
작성일 2008년 1월 31일 (목) 23:33
분 류 설,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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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가위 추석 명절 ”
 

한가위 명절 대축일





        1. 성민호 신부/ 2                 2. 성민호 신부/ 4

        3. 강영구 신부/ 7                 4. 심상태 신부/ 11

        5. 제사예식 어떻게 되어가나/ 13

        6. 선조를 기억하는 차례예식/ 14

1     한가위 명절 대축일   루가 12,15-21    오늘은 내 차례, 내일은 네 차례

                                                                성민호 신부



오늘은 한가위라고도 하는 추석 명절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옛날부터 이날을 명절 중의 명절로서 일년 중 가장 즐겁게 지내왔습니다.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여 햇곡식과 햇과일로 조상들에게 차례를 올리고 산소에 성묘를 다녀오며 가족들이 서로 만나 풍성한 결실을 즐기면서 하루를 경축하였습니다.

  

조상들의 대를 이은 우리도 이날이 오면 선조들의 아름다운 풍습을 이어받아 고향을 찾게 되고 조상들에게 맞갖은 예의를 바치며 일가친척들을 만나 삶의 기쁨을 나눕니다. 아무리 바쁘고 얽매인 현대생활이라 할지라도, 이날만은 시간을 내어 고향을 찾는 귀성객의 행렬을 바라볼 때, 조상들이 물려준 고귀한 정신이 우리들 핏속에 그대로 살아있음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객지에서 고생하는 수많은 근로자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나, 세상살이에 몰두하다가 그만 본의 아니게 잠시 잊어버렸던 부모를 찾아주는 효심이나, 흩어졌던 혈육이 한자리에 모여 풍요로운 오곡백과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함께 조반이라도 나누는 기쁨이나, 이미 저 세상으로 떠났지만 언제나 우리 핏속에 살아있는 조상들을 추모하는 일이나, 모두 다 흐뭇한 삶의 보람이며 생활의 미덕입니다.

  

이처럼 추석 명절은 만남의 날이요, 만나서 인간의 도리를 다하는 날이며 서로 정을 나누면서 기쁨을 만끽하는 날입니다 고향을 찾아가 살아있는 부모 형제를 뵙고 효도와 우애를 다짐하는 것이나, 산소를 찾아가 돌아가신 조상들을 뵙고 그들의 고마움을 추모하는 것이나, 똑같이 훌륭한 인간의 도리이며 아름다운 정신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늘 하루만이라도 정성을 다하여 살아있는 어른들을 기쁘게 해드려야 할 것이고 돌아가신 조상들에게는 차례나 미사를 봉헌해야 합니다

  

옛날 우리 선조들은 조상께 대한 존경심이 대단하였습니다. 너무나 가난하여 초근목피로 연명을 할망정 때에 따라 조상께 제사를 올리는 일에는 온갖 정성을 다 기울였으며, 비록 생업에 바빠 다른 때에는 별로 조상을 생각하지 못하던 사람들도 명절 때만 되면 조상을 만나뵈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차례를 올리고 성묘를 하였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적어도 명절날만은 그들의 은덕을 추모하고 감사의 예의를 바치며, 저 세상에서나마 이 세상에 사는 자손들을 지켜달라는 기원을 바쳤던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조상 이야기를 하면 픽 웃어넘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핵가족으로 점점 확산되어 가는 세상에 살아있는 부모도 잊어버리는 판국인데 죽은 조상까지 기억한다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상 없이 자기들이 어디서 나왔단 말입니까? 같은 혈통을 이어준 우리의 뿌리와 어찌 무관할 수 있단 말입니까? 같은 나무 뿌리와 잎사귀가 서로 연결되어 있듯이 땅속에 묻혀있는 조상과 세상에 사는 우리도 사실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뿌리를 무시할 수 없듯이 우리도 우리에게 삶을 이어준 조상의 고마움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그들의 유업을 기리고 그들을 위하여 제사를 바치는 것이 살아있는 우리의 도리입니다 이러한 뜻에서 우리는 조상들이 누워있는 이곳에 모여 그들과 함께 하느님을 찬양하고 그들을 하느님께 부탁드리기 위하여 합동 위령미사를 봉헌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비록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나 이제는 기억마저 희미하지만, 그러나 우리에게 대를 이어주신 조부모님도 누워 계시고, 바로 우리를 낳아 길러주신 부모님도 누워 계시며, 평소 우리에게 잘해주던 일가친척들도 누워 계십니다. 검은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함께 살자더니,  의리없이 먼저 떠나 지금 이곳에 잠들어 있는 사람도 있고, 비록 유명은 달리하고 있지만 언제나 잊지 못할 친구도 여기에 잠들어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불의의 사고로 인생의 포부를 다 펴지도 못하고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식구들도 이곳에 잠들어 있을 것입니다.

  

그들 모두가 우리에겐 소중하고 그리운 사람들이기에 우리는 그들이 누워있는 이곳에서 그들을 추모하면서 잠시나마 살아생전에 못다한 정을 나누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따라서 우리는 하늘나라 고향에서 편히 쉬고 있을 그들을 마음껏 그리워하면서 우리의 효성과 사랑을 바칩시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늘나라를 허락하신 하느님을 큰소리로 찬양하면서 혹시라도 그들에게 부족한 점이 있다면 우리의 정성을 보시고 용서해 주십사고 간청합시다.

  

세월은 유수와 같습니다. 이곳을 찾아준 우리도 머지않아 그들처럼 이곳에 눕게 된다는 엄연한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편안히 이곳에 누울 준비를 지금부터 서둘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우리가 남의 무덤 앞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남이 우리가 누워있는 무덤 앞에서 기도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자신이 이곳에 누워있는 장면을 한번 상상해 봅시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지금까지 남의 죽음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고 예사로이 지나쳐버렸습니다.



그러나 막상 우리가 죽어서 이곳에 눕는다고 생각하니 너무나도 서글프고 아찔하게 느껴집니다. 앞길이 창창하고 건강한 우리가 태산같이 할 일이 많은데 어떻게 벌써 이곳에 누을 수 있단 말입니까? 멀쩡한 체격에 아름다운 몸매를 지닌 우리가 애써 모은 재산과 명예와 권세를 버리고 어떻게 여기서 썩을 수 있단 말입니까? 정말 말도 안됩니다.

  

하지만 이곳에 누워있는 사람들도 옛날엔 모두 우리처럼 생각하다가 그만 별안간 닥친 죽음을 맞이하였답니다. 만일 무덤에 묻혀있는 사람들이 우리 앞에 다시 서서 말을 할 수 있다면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오늘은 우리가 성묘를 받지만 내일은 당신들 차례라오. 우리도 제상에 살 때에는 재산도 모아보고 권세도 뽐내보았으며, 미모도 자랑해 보았다오. 하지만 지내놓고 보니, 모든 것이 참으로 헛되고 헛되다는 것을 알았다오. 인생이 아무리 멋있다고 하지

만 결국 나그네길인 걸 모르고 몇 천 년 살 것처럼 살다가 결국 이 모양이 되었다오. 하느님이 선물로 주신 인생을 가치있게 보내지 못하고 허송세월한 것이 너무나 후회스럽답니다. 그러니 아무쪼록 당신네들은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살아생전에 좋은 일 많이 하소. 착하게 사는 것이 복되게 죽는 길이랍니다. 그리고 살아있을 때 주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너무나 부족했던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소. 이다음 천국에서 다시 만나 하느님 아버지를 영원히 찬양하면서 지낼 날을 기약합시다. 

  

죽은 이들의 변을 듣고 보니 공수래 공수거 인생이 너무나 허무하고 쓸쓸하게 느껴질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 신자들에게는 꿈과 희망이 있고 밝은 미래가 있습니다. 야훼가 우리의 목자시니 언제나 마음이 든든하고 아쉬울 것이 없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한 11.25)고 말씀하신 주님이 계시기에 우리는 죽음에 관하여 희망을 가지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처럼 너무 슬퍼할 필요도 없습니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결코 외면하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마지막날에 모두 살려주겠다. "(요한 6.44)고 약속하신 주님이 계시는데 어찌 우리가 실망할 수 있으며 세상에 무서울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니 우리는 주님을 믿고 따르는 길에 어떠한 환난이나 역경이나․ 박해나 시련을 당하더라도 결코 좌절하거나 물러서지 맙시다. 용기를 가지고 주님이 계시는 고향에 갈 때까지 지상 나그네생활을 보람있게 영위합시다. "세상낙이 도대체 그 무엇이며 세상고가 도대체 그 무엇이뇨. 지내노면 흩어진 연기 같은 걸 수덕입공, 왜 그리 주저하시오."라는 사말의 노래 한 구절을 묵상하면서 부활의 희망 속에 고이 잠든 형제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죽은 모든 교우들의 영혼이 천주의 자비하심으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 아멘."











2     한가위 명절 대축일   루가 12,15-21    만나고 모이고 나누는 기쁨   

                                                         성민호 신부



오늘은 한가위라고도 하는 추석 명절입니다. 해마다 이날이 오면 조상들을 만나는 기쁨과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기쁨, 그리고 풍성한 오곡백과를 나누는 기쁨을 동시에 얻게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 조상들은 옛날부터 이날을 명절 중의 명절로서 일년 중 가장 즐겁게 지내왔습니다. 식구들이 함께 모여 햇곡식과 햇과일로 조상에게 차례를 올리고, 산소에 성묘를 다녀오며, 가족들이 서로 만나 풍요로운 결실을 즐기면서 하루를 경축하였습니다.

  

조상의 대를 이은 우리도, 그들의 아름다운 풍습을 이어받아 적어도 이날만은 시간을 내어 고향을 찾게 되고, 조상에게 맞갖은 예의를 바치며, 일가친척들을 만나 햇곡식이나 햇과일을 들면서, 삶의 기쁨을 나눕니다. 아무리 바쁘고 얽매인 현대생활 속에서도 만사를 제쳐놓고 고향을 찾는 귀성객의 행렬을 바라볼 때, 조상이 물려준 고귀한 정신이 우리들 핏속에 그대로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객지에서 고생하는 수많은 근로자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나, 세상살이에 몰두하다가 그만 본의 아니게 잠시 잊어버렸던 부모를 찾아주는 효심이나, 흩어졌던 혈육이 한자리에 모여 풍요로운 오곡백과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함께 조반이라도 나누는 기쁨이나, 이미 저 세상으로 떠났지만 언제나 우리 핏속에 살아있는 조상들을 추모하는 일이나, 모두 다 흐뭇한 삶의 보람이며 생활의 미덕입니다.

  

이처럼 추석 명절은 만남의 날이요, 만나서 인간의 도리를 다하는 날이며, 서로 모여 정을 나누면서 삶의 기쁨을 만끽하는 날입니다. 고향을 찾아가 살아있는 부모 형제를 뵙고 효도와 우애를 다짐하는 것이나, 산소를 찾아가 돌아가신 조상들을 뵙고 그들의 고마움을 추모하는 것이나, 똑같이 웃어른들께 바쳐야 하는 존경심의 발로이며 훌륭한 정신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늘 하루만이라도 정성을 다하여 살아있는 어른들을 기쁘게 해드려야 할 것이고, 돌

아가신 조상들에게는 차례나 미사를 봉헌해야 합니다.

  

옛날 우리 선조들은 조상께 대한 존경심이 대단하였습니다. 끼니를 잇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여 겨우 초근목피로 연명을 할망정, 때에 따라 조상께 제사를 올리는 일에는 온갖 정성을 다 기울였으며, 비록 생업에 바빠 다른 때에는 별로 조상을 생각하지 못하던 사람들도 명절 때만 되면 조상을 만나뵈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차례를 올리고 성묘를 하였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적어도 명절날만은 그들의 은덕을 추모하고 감사와 존경의 예의를 바쳤으며, 저 세상에서나마 이 세상에 있는 자손들을 지켜달라는 기원을 바쳤던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에 와서는 조상 이야기를 하면 픽 웃어넘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핵가족으로 점점 확산되어 가는 세상에 살아있는 부모도 잊어버리는 판국인데, 죽은 조상까지 기억한다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잘못되면 조상을 탓하고, 잘되면 자기를 자랑하는 사람들은 조상이 물려준 것이 무어냐고 따지면서, 오히려 조상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삶을 이어준 조상이 없었다면 우리가 어떻게 생겨날 수 있었단 말입니까? 같은 혈통을 이어준 우리의 뿌리와 어찌 무관할 수 있단 말입니까? 같은 나무 뿌리와 가지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땅속에 묻혀있는 조상과 세상에 사는 우리도 사실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보이지 않는다고 뿌리를 무시할 수 없듯이, 우리도 우리에게 대를 이어준 조상의 고마움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그들의 유업을 기리고 그들의 유산을 발전시켜야 할 뿐 아니라, 그들을 위하여 제사를 봉헌하는 것이 살아있는 우리들의 도리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모여 조상을 위한 합동 위령미사를 봉헌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우리의 의무를 다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람들 중에는 이미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나 이제는 기억마저 희미한 조부모님도 계시고, 바로 우리를 낳아 길러주신 부모님도 계시며, 평소 우리에게 잘해주던 일가친척들도 계십니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함께 살자더니 의리없이 먼저 떠난 사람도 있고, 비록 유명은 달리하고 있지만 언제나 잊지 못할 친구도 있으며, 불의의 사고로 인생의 포부를 다 펴지도 못하고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가족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 모두가 우리에겐 소중하고 그리운 사람들이기에 우리는 그들을 추모하면서 살아생전에 못다한 효성과 사랑을 바칩시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늘나라를 허락하신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혹시라도 그들에게 부족한 점이 있다면 우리의 정성을 보시고 용서해 주십사고 미사 중

에 간청합시다.

  

세월은 유수와 같습니다. 이번 추석에는 우리가 남을 위해서 미사를 봉헌하고 기도하지만, 언젠가 다음번 추석에는 남이 우리를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지상 나그네생활에만 급급하지 말고 영원한 고향 천국을 그리워하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다음 조상을 대할 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남은 여생을 뜻있게 보내야 하겠습니다. 공수래 공수거 인생임을 명심하여, 하느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부족함이 없도록 노력해야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결코 외면하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마지막날에 모두 살려주겠다."고 하신 주님의 약속을 잊지 말고, 어떠한 역경과 시련을 당하더라도 결코 신앙의 길에서 좌절하거나 물러서지 맙시다.

  

또한 오늘은 살아있는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정을 나누는 날입니다. 아무리 바쁜 세상이라 하더라도 이날만은 고향을 찾아가 부모님을 모시고 하루를 기쁘게 지냅시다. 고향에 계신 부모들도 이날이 오면 객지에서 고생하는 자녀들이 고향에 돌아오기를 은근히 기다립니다. 이처럼 흩어져 사는 부모 형제들이 함께 모여 한 혈육임을 체험하면서, 조반이라도 함께 나누는 것이 얼마나 흐뭇한 모습이며 삶의 보람입니까? 따라서 웃어른들께는 효도와 존경을 다짐하고 형제들에게는 우애와 친교를 돈독히 하는 추석의 아름다운 전통을 길이길이 보존해야 합니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이웃, 특히 불우한 이웃들도 모두다 우리의 형제요, 가족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일반사회에서도 추석을 맞이하면 불우이웃 돕기를 강조하고 있지만, 사실은 우리 신자들이 앞장서서 해야 할 일입니다. 어려운 이웃을 찾아서 인정을 베풀고 송편 하나라도 이웃과 나누는 미덕을 간직할 때, 비로소 우리는 추석 명절을 가장 보람있게 지낼 수 있습니다.

  

다행히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가족끼리 모이는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혈육을 지척에 두고도 만나지 못하는 실향민들이 있음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언젠가 이산가족들이 남북한 상호방문을 통하여 오랫동안 떨어져있던 가족을 상봉하는 극적인 장면을 보았습니다. 정말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었던 핏줄끼리의 만남은 남북한간의 두터운 장벽을 무너뜨렸고, 많은 사람들의 감동과 공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늘 특별히 실향민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면서, 하루빨리 남북통일을 허락하여 주십사고 하느님께 간청합시다

  

마지막으로,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우리에게 풍요로운 결실을 주신 하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려야 하겠습니다. 저 멀리 아프리카에서는 기근이 심하여 하루에도 수백 명씩 굶어죽는다고 하는데, 그곳에 비하여 우리는 축복을 받으면서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어떻든, 우리에게 조상을 만나는 기쁨, 가족끼리 모이는 기쁨, 그리고 풍성한 오곡백과를 맛보는 기쁨을 허락하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오늘 추석 명절을 잘 지냅시다.











3     한가위 명절 대축일   루가 12,15-21       조상들의 삶의 지혜

                                                           강영구 신부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은 우리의 고유 명절인 추석(秋夕), 한가위 대축일입니다. 교회는 우리 고유의 명절인 오늘을 대축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교회가 우리 민족 고유의 명절을 대축일로 받아들이고 지내는 것은, 각 민족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한 전통과 문화 속에서 복음이 뿌리내리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한가위 대축일은 신앙인인 우리에게 남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추석 명절이 단순히 먹고 마시고 즐기는 축제일이 아니라,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조상들의 유업을 기리면서, 서로 사랑을 나누는 축제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참으로 의미 깊은 복음 말씀을 들었습니다. 어떤 부자가 농사를 지어 추수를 하였는데, 풍작이 되어서 엄청난 수확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부자는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곡식을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떻게 할까?”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가, 부자는 작은 창고를 헐고 큰 창고를 새로 짓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영흔아,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너는 이제 몇 년 동안 걱정할 것 없다. 그러니 실컷 쉬고 먹고 마시며 즐겨라.”

  

부자가 기껏 생각해 낸 것이 어떻게 하면 그 많은 수확을 혼자서 독차지하면서 즐길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부자는 그 날 밤에 횡사(橫死)하고 말았습니다. 그 부자는 그 많은 수확을 혼자 독차지하지도 못했고, 실컷 쉬고 먹고 마시지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거둔 곡식은 다른 사람들의 손에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부자가 그 많은 수확을 혼자 독차지하면서 호사스러운 생활을 즐기겠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이미 그는 죽음의 길에 들어서 있었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 부자는 죽을 짓만 골라서 한 것입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우선 그 부자는 어떻게 해서 그 풍성한 수확을 얻게 되었는지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농사를 지어 보신 분들은 어떻게 곡식이 열매 맺는지를 잘 아실 것입니다.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우리 인간들의 노력만으로는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의 도우심이 없다면 아무리 우리 인간이 열심히 노력한다 해도 한 톨의 쌀을 거둘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때맞추어 비를 내려 주셔야 하고, 적절한 햇빛과 기후를 주셔야만 농사를 지을 수가 있습니다.

  

요즘같이 농사 기술이 발달한 시대에도 하늘의 도움이 없으면 결코 풍성한 수확을 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농사는 하늘이 짓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늘이 짓는 농사에 작은 노력을 보탤 뿐입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이 점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 부자는 자기가 땀을 홀려 애를 썼기에 풍성한 수확을 거둔 것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가 하늘에 감사할 줄 모르고 풍성한 수확을 거둔 것은 오직 자신의 노력의 결과라고 오만한 마음을 먹은 것이 근본적인 잘못이었습니다.

그 부자가 그 많은 곡식들을 서로 나눌 줄 모르고, 혼자 독차지하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도, 그 수확이 자신의 노력으로만 얻은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틀림없이 그 부자의 주위에는 가난한 형제들과 굶주리는 형제들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부자의 눈에는 가난한 형제들과 굶주리는 형제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눈이 멀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늘에 감사할 줄 모르는 오만함으로 눈멀어 있었고, 탐욕으로 눈멀어 있었습니다.

  

부자의 눈에는 하느님도 보이지 않았고, 하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형제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직 눈앞에 산더미처럼 쌓인 곡식 더미와 재물만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떻게 하면 하느님께 감사드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많은 것들을 가난한 형제들과 나누어 가질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혼자서 그 많은 것을 다 먹어 치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혼자서 독자치할까 하고 고민한 것입니다.

  

그 부자는 살 궁리가 아니라, 죽을 궁리만 한 것입니다. 하느님께 감사할 줄도 모르고, 하늘이 두려운 줄도 모르는 오만함이 그에게 죽음을 가져온 것입니다. 부자는 창고에 재물만 잔뜩 쌓아 놓고 있으면, 얼마든지 호의 호식하면서 잘살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보다는 창고에 쌓인 재물을 더 믿었습니다. 그러나 창고에 산더미처럼 쌓인 재물이 그의 생명을 보장해 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죽은 것입니다.

  

부자는 서로 나누고 함께 누리면서, 더불어 살려고 하지 않고 혼자만 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부터 죽음의 세력은 이미 그를 덮치고 있었습니다. 그가 혼자서 향락과 호사(豪奢)에 빠져 있을 때, 그의 주위에서는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추위와 배고픔을 당하면서 죽어 가야 했습니다.



혼자서 독차지하는 것은 부자가 되는 길이 아니라, 가난하게 되는 길이자 죽음의 길입니다. 왜냐하면 탐욕은 죽음의 늪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탐욕은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늪입니다. 한번 빠지면 여간해서는 빠져 나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탐욕에 사로잡힌 사람은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만족할 줄 모릅니다. 언제나 부족하고 언제나 불만족스럽습니다.

  

부자가 이렇게 만족할 줄 모르는 탐욕에 빠져서 허우적거릴 때, 그의 주변에서는 이웃과 형제들은 가난 때문에 서서히 죽어 가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혼자 독차지하려는 탐욕이 자신도 죽이고 이웃과 형제도 죽이게 됩니다. 그래서 부자는 창고 속에 엄청난 재산과 재물을 쌓아 놓고도 죽었던 것입니다.

  

이 부자의 어리석음은 또 있습니다. 부자는 자기 운명의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면서, 자신이 쌓아 둔 재물에 희망을 걸면서, 혼자서 그 모든 것을 영원히 누리리라 생각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내일 나의 운명을 알지 못합니다. 아니 한 시간 후의 나의 운명을 알지 못합니다. 지금은 이렇게 살아서 숨쉬고 있지만, 내일까지 살아 있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내일이 아니라 지금입니다. 지금 서로 사랑하고 서로 나누고 베풀면서 성실히 사는 것이 중요하고, 그렇게 사는 것이 내일을 대비하는 삶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부자는 내일 어떻게 될지도 알지 못하면서, 그 모든 것을 혼자 독차지하면서 내일을 대비하려 했습니다. 그것 또한 죽을 짓을 골라서 한 것입니다.

  

세상에는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재산을 자랑하고, 돈을 자랑하고, 지위와 명예를 뽐내고, 그러면서도 하늘을 두려워할 줄도, 감사할 줄도, 서로 나누어 가질 줄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이런 어리석은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이 세상에는 어둠과 죽음의 세력이 더 크게 판을 치게 되고, 이 세상은 더욱 살벌한 세상이 되고 맙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우리 고유의 명절, 한가위 대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슬기로운 우리의 선조들은 오곡 백과가 무르익는 이 가을에 추석 명절을 정하고, 풍요로운 결실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고, 조상들의 은덕에도 감사를 드렸습니다.

  예로부터 농사를 본업으로 해서 살아온 우리 민족은 하늘을 두려워할 줄 알았고, 하늘에 감사드릴 줄 아는 순박하고 슬기로운 민족이었습니다. 알맞은 기후와 적당히 때맞추어 비를 내려 주시어 풍성한 수확을 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신 하늘에 새로 수확한 곡식으로 빛은 음식과 햇과일로 상을 차려 감사를 드렸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자연의 섭리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오뉴월 농부, 팔월 신선”이라는 말도 있습니다만, 우리 조상들은 땀 흘려 농사를 지어서 풍성한 결실을 거두게 되는 것은 하늘의 도움 때문이지, 결코 자신들의 노력으로만 그렇게 된다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덥지도 춥지도 않고 모든 것이 풍성하게 결실 맺는 이 계절에, 한가위 명절을 정하고 하늘에 감사를 드리는 축제를 벌였던 것입니다.

  

동시에 우리 민족은 조상의 은덕에도 감사할 줄 알았습니다. 우리는 하늘에서 떨어지지도 않았고, 땅에서 솟아나지도 않았습니다. 부모님을 통하여 이 세상에 태어났고, 선조들이 물려준 땅과 그 문화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오늘의 나는 조상들의 은덕을 바탕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내가 존재할 수 있도록 삶의 바탕을 마련해 주신 조상들의 은덕에 감사를 드리면서, 그분들의 명복을 비는 제사를 바쳤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지내는 추석 명절은 나눔과 사랑의 축제일이기도 합니다. 흩어졌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고 햇곡식으로 빛은 음식과 풍성한 햇과일을 장만하고 서로 사랑을 나누는 날입니다. 그리고 이웃과도 장만한 음식을 서로 나누면서, 사랑과 우의를 돈독하게 하는 날입니다.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가 산업 사회로 바뀌면서 우리 민족의 아름답고 고유한 풍습과 전통들이 하나둘씩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유물론적인 사고와 찰나적인 퇴폐 향락 문화가 스며들어서, 우리의 정신을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농자 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땀 흘려 농사짓는 일을 부끄럽게 여기고, 더 편하고, 더 쉽고, 더 돈 잘 버는 일을 찾아서 젊은이들이 모두 농촌을 떠나고 있습니다.

  

대가족 제도가 무너지면서 핵가족으로 뿔뿔이 흩어져서 살면서, 조상의 은덕도 망각한 채 예의 범절마저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이기적인 가정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오직 돈과 재물과 출세를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면서, 안일과 향락을 추구하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가 오늘 지내는 이 추석 명절을 통하여 사라져 가는 우리의 고유한 풍습과 전통을 되살려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순응하고 감사하는 생활과, 조상들의 은덕에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날이 서로 사랑하고 나누는 즐거운 축제일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보다 먼저 이 세상을 떠난 조상들의 명복을 빌면서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이 풍성하기를 진심으로 빌어 마지않습니다.



4       한가위 명절 대축일   제사의 참다운 의미와 올바른 자세 

                                                                심상태 신부



조상의 은공에 감사하면서

“신자 가정은 온 인류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세상을 떠난 부모뿐 아니라 잊혀지거나 고통받는 이들까지 하느님의 사랑에 의탁하는 마음을 제사에 담아야 합니다. 

20여년 전부터 한국교회의 토착화에 심혈을 쏟고 있는 한국 그리스도사상연구소장 심상태(수원가톨릭대 교수)신부는, 한가위나 설 명절에, 신자 가정에서 거행하는 제례가 일반 비신자가정의 유교적인 제례와는 의미가 달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잊혀진 영혼 하느님께 의탁

일반 가정의 제사가 조상과 자손의 일치 도모에 역점을 둔 가족 중심적인 분위기의 제사라면, 신자 가정의 제사는 조상의 은공에 감사하면서 동시에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인류와 세상을 위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표현하고, 특히 잊혀진 영혼들을 하느님께 의탁하는 마음이 담긴 제례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신자 가정에서도, 조상들의 은공에 감사드리는 예(禮)를 거행하지만, 일반 비신자 가정의 유교적인 제례와 구별이 모호합니다. 따라서 신자 가정을 위한 상제례 양식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와 관련 심 신부는 특히 ‘신자 가정은 보본추효(報로本追孝)로 드리는 제사의 축문을 읽을 때 적절한 복음 구절을 낭독하고, 잊혀진 이들을 기억하는 위패도 조상의 위패 옆에 같이 모셔서, 온 인류를 위해 당신 자신을 아낌없이 희생하신 하느님의 구원행위 안에 담긴 보편적인 인류애가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다.

  

한국교회는 1939년 교할 비오 12세의 ‘중국 예식에 근한 훈령'이 발표되기 전까지는, 조상 제사를 미신 행위로 여겨 금지해왔고, 이것이 박해의 구실로 작용하기도 했다. 교황 비오 12세는, 이 훈령에서 조상제사는 우상숭배가 아닌, 그 나라 민속으로 교리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고 밝혔다.

  나아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여러 종족과 민족의 훌륭한 정신적 유산을 보호 육성한다. 또 민족들의 풍습 중에, 미신이나 오류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지 않는 것이면, 무엇이나 호의를 가져 고려하고, 할 수 있다면 잘 보존하고자 한다”(전례헌장 제37항)고 밝히고 있다.



한국사목연구소(소장 김종수 신부)는, 심 신부를 비롯한 관련 전문가들이 참여한 가운데, 유교 제사를 바탕으로 가톨릭 상제례 토착화 시안을 내놓은 바 있으나, 아직까지 조상 제사에  관한 교회의 공식적인 예식서는 마련되지 않은 실정이다.        



명절 예식서 빨리 나와야



“설이나 추석 명절 미사 때, 신자들이 개인, 또는 구역별로 정성껏 마련해온 음식을 봉헌하고 절(拜)을 드리며, 공동체성을 드러내는 것도 좋겠습니다. 조상 은공에 감사하는 우리의 제사 예식을, 미사 중에 포함시키는 명절 예식서가 빨리 나왔으면 합니다."

  

심 신부는, 또 많은 가정이 집에서 차례를 지내고, 성당에 가서도 미사 예물을 봉헌하는 등 ‘이중과세'를 지내는 신자들이 있다며, 이 같은 이중 부담을 덜기 위해서라도 교회의 공식적인 차례 예식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심 신부는 한국교회의 토착화 작업과 관련해 “교회 지도자들이 방향을 제시하면서, 관련 전문가들의 연구가 이뤄지도록 분위기를 초성하고, 현실적인 지원으로 뒷받침할 때 ’토착화' 작업은 실효를 거둘 수 있는데, 우리 교회의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고 아쉬움을 표시했다.

                                                                      <이연숙 기자>



◇ 준비 사항 ◇



▲ 몸과 마음 준비 : 제사를 드리기에 앞서, 며칠 전부터 몸과 마음을 단정하게 하고, 가능하면 온 가족이 어려운 이웃을 찾아 자선을 행한다. 불목하고 있는 이웃이 있는지를 살펴 기꺼이 화해하기로 다짐하며 고해성사를 한다.

  

▲ 제상차림 : 제상은 집안의 관습에 따라 차린다. 그러나 향상(香床)에는 향로와 향합, 촛대 외에, 중앙에 십자가를 모신다.

  

◇ 예식 순서 ◇

  1) 제사 준비가 되어 영정(또는 위패)을 모시면, 제주(祭主)는 제사의 시작을 알리고, 십자성호를 긋는다.

  2) 참석한 모든 사람이 함께 두 번 절한다.

  3) 다음에 제주가 영정(위패) 앞에 나아가 무릎 꿇어 분향하고, 잔을 받아 미리 준비한 그릇(모사기 : 茅沙器) 위에 삼제(三祭 : 술을 세번 조금씩 따르는 것을 말한다)를 한 다음, 제사를 돕는 이에게 주면, 돕는 이는 잔을 올리고, 메와 탕 그릇 뚜껑을 열어놓는다. 제주는 두 번 절하고 물러난다. 참석한 모든 이가 차례로 나아가서 잔을 올린다.

  4) 이러한 절차가 끝나면, 제주가 조상께 고한다.

     “주님의 보살핌으로 오늘 다시 (      )께 제사를 올리게 되었나이다. 이 맑은 술과 여러가지 음식을 장만하여 드리는 저희의 정성과 사모하는 마음을 받아주소서, 저희는 언제나 (      )를 기억하여 이 제사를 올리오니, (       )께서는 저희가 주님의 뜻에 따라 서로 사랑하며 화목하게 살아가도록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5) 제주는 아래의 말이나, 다른 알맞은 말로 참석자들이 조상을 기억할 것을 권한다.

     바오로 사도는,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을 인용하여 이렇게 전해 줍니다. “성서에는 '눈으       로 본 적이 없고, 귀로 들은 적이 없으며, 아무도 상상초차 하지 못한 일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마련해 주셨다'하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1고린 2,9)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들 가운데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는 사람도 없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 죽는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해서 살고, 죽더라도 주님을 위해서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도 주님의 것이고, 죽어도 주님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의 주님도 되시고, 산 자의 주님도 되시기 위해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로마 14,7-9).

이 말씀으로 우리 (       )께서는, 영원한 행복을 누리고 계시며, 주님 안에서 우리와 하나되시어,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 안에 한 가족입니다.

  

6)  이어서 돕는 이가 나아가, 숟가락을 메에 세운다.

7)  제주와 모든 참석자는 두 번 절한다. 절한 다음 조상을 생각하며, 잠시 묵상한다

8)  이어서 국그릇을 거두고, 냉수나 숭늉을 올린다.

9)  제주는 모든 참석자와 함께 작별 배례로, 두 번 절한다.

10) 제사를 마치면서 조상과 가족, 친척들과의 통교를 더욱 깊게 할 것을 결심하고, 주님께 감사하며 성가를 부른다.

11) 영정(위패)을 따로 모신 다음, 참석자들은 술과 음식을 나눈다.

    이 식사는 사랑과 일치의 식사이며, 조상과 가족 간의 통교를 더욱 깊게 하는 의미가 있      다. 이러한 축제의 기쁨은 이웃, 특히 소외된 형제들에게도 확장되어야 한다.





※ 차례상 차림은 화려하지 않은 병풍을 치고, 상을 편 후 영정 (위패)을 놓는다.

영정 앞 1열은, 숟가락을 담아 놓는 대접과 잔과 받침대, 송편을 놓는다.

2열에는, 어동육서(漁東肉西)라 하여, 상의 오른쪽(동쪽)에 어적(생선 구운 것), 가운데에 소        적(두부 구운 것), 왼족(서쪽)에 육적(고기 구운 것)을 놓고,

3열에는, 3가지 종류의 탕을 놓는다.

4열에는, 좌포우혜(左脯右醯)라 하여 왼쪽에 포를, 오른쪽에 식혜를 놓으며,

5열에는, 홍동백서(紅東白西)라 하여, 붉은 과일을 오른쪽(동쪽)에, 흰색 과일은 서쪽에 놓는           다.



                제사상 그림 별도 부착



5     제사 예식서 어떻게 되어가나



(주교회의 전례위원회에서는 발간 안 하기로, 원하는 신자에겐 예식 시안 알려줘)



지난 84년 천주교 200주년 기념 사목회의는 상제례 토착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신자들을 위한 상제례 예식서 발행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에 따라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사목연구소는 93년 제사예식을 포함한 ‘상제례 예식서’ 기초 시안을 마련했다.



특히 제사예식은 유교적 제례 풍속과 가톨릭 전례의 접목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주교회의 전례위원회는 최근 한국천주교회 차원의 이 조산제사 예식서를 별도로 발간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유는 “지역과 가문의 전통에 따라 조상제사 예식에 차이가 있고, 또 구체적인 예식서를 배포한다는 것은, 가톨릭적 제사의 의미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제사예식을 신자들의 선택에 맡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위원회는 개인적으로 별도의 자료를 만들어 배포하거나, 개별적인 요구가 있을 경우, 예식시안을 알려주는 것은 허용키로 하였다.



한국교회에는 현재 이 예식시안 외에, 김수창 신부의 ‘차례예식’, 최기복 신부의 ‘가톨릭 조상제사의식’, 그리고 대구대교구의 ‘위령례와 위령기도’ 등이 나와있는 상태이다.











6                      선조를 기억하는 차례(茶禮) 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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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가족이 모여 조상이 평소에 즐겨하던 음식을 차려놓고 적당한 자리에 조상의 영정과 십자가를 모시고 촛불을 밝힌다.

① 성호경

② 성가 : 가톨릭 성가집에서 하나를 선택하여 부른다.  (예 - 2장, 34장, 44장, 50장, 59장, 423장, 434장 등)

③ 독서 : 감사와 축복에 관계된 성서 구절을 선택하여 봉독한다.  (예 - 신명기 30, 15-20 역대기상 29, 10-18, 이사 12, 1-6, 시편 48,1-14,  요한 17,1-5; 20-26, 마태 5, 1-12, 에페 1, 3-14) 독서 후 독서자가ꡒ 주님의 말씀입니다ꡓ하면 가족들은 ꡒ하느님, 감사합니다ꡓ라고 답한다. 독서후 잠깐동안 묵상을 한 다음 가장의 말씀을 듣는다.

④ 가장(家長)의 말씀  

         가장은 오랜만에 가족들을 환영하며 하느님의 말씀에 성실하게 살아갈 것을 권고하며 대화를 나눈다.

   ㉠ 먼저가신 선조 들의 가르침과 가훈과 가풍을 전해준다.

   ㉡ 그 동안의 가족들 소식과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한다.



⑤ 가장의 말씀이 끝나면 서열순으로 영정에 큰절을 올린다.(남녀 가리지 말고)

⑥ 위령기도 : 가톨릭 기도서 74쪽의 위령기도를 드린다. 이외에도 기도서를 참조하여 부모를 위한 기도, 자녀를 위한 기도, 부부의 기도, 가정을 위한 기도 등을 바친다.

⑦ 신자들의 기도 : 가족들은 돌아가면서 감사나 은혜를 청하는 기도를 바친다.

⑧ 성가 : 가톨릭 성가 중에서 하나를 택한다. (35장, 77장, 445장, 481장 등)

⑨ 주님의 기도 : 모두 다 주님의 기도를 바친다.

⑩ 식사 : 모두들 편하게 앉아 준비한 차례 음식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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