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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전례
작성자 강론모음
작성일 2008년 3월 14일 (금) 10:07
분 류 사순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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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가해 사순 제 4주일 주일 강론 모음 ”
 

사순 제 4 주일



제 1 독서 : 1사무 16, 1b. 6-7.10-3a

제 2 독서 : 에페 5, 8-14

복     음 : 요한 9, 1-41



제 1 독서 : 아말렉족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고 전리품을 거두어 온 사건 때문에 사울 왕은 사무엘 예언자로부터 버림을 받았다(1사무 15장). 그후로 사무엘은 죽는 날까지 사울을 두 번 다시 만나지 않았다. 사울에게는 예언자가 떠난 것이 하느님께서 떠나신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후로 사울은 서서히 몰락하고 다윗이 등장하게 된다.

사무엘 상 16장은 다윗이 어떻게 하느님의 선택을 받았는가를 말해 준다. 형제들 가운데서도 가장 보잘것없던 다윗을, 양을 치던 목동을 사무엘이 기름 부어 성별(聖別)했다. 결국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외모나 능력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택이요 주도권이다.



제 2 독서 : 빛과 어둠을 대조적으로 사용하여 그리스도 신자의 윤리를 말하는 텍스트이다. 전에는 어둠의 세계에서 살다가 이제 빛의 세계로 넘어온 그리스도 신자들은 빛의 자녀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스위치를 위로 올려야 밝은 빛을 볼 수 있듯이, 뜻을 하늘에 두고 그리스도의 빛을 따라 살아야 선과 정의와 진실을 열매 맺을 수 있다.



복     음 :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소경”(9, 1)의 처지는 희망이 없는 세계, 어둠 속에 갇힌 한 인간의 절망적인 처지를 잘 말해 준다. 남들도 그렇게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더구나 본인도 그렇게 체념하고 이 세계에 젖어 살았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새로운 빛의 세계가 열린다.

“선생님, 저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누구의 죄입니까?”라고 사람들이 묻는다. “다만 저 사람에게서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라는 것이 주님의 대답이다. 궁극적으로 죄의 본질은 하느님의 구원이라는 측면에서만이 이해가 가능하다. 죄는 오로지 하느님의 과분한 은총을 통해서 용서받을 수 있다.

우리는 태생 소경의 치유 이야기에서 세 부류의 사람들을 만난다. 첫째 부류의 사람들은 스스로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다. 이들은 종교적인 자기 만족에 빠져 태생 소경을 단죄하며,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징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할 뿐더러 그 표징을 거부한다. 귀를 막고 듣지 않으려고 하는 맹목적인 태도이다. 둘째 부류의 사람들은 소경의 부모와 이웃 사람들이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징을 알아보았지만 그에 휘말려 들어가지 않으려고 한다. 여론의 압력이나 위에서 내리누르는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태도이다. 세 번째 부류의 사람은 예수님께로 결단을 내리는 태생 소경이다. 치유의 표징을 통해서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자기 삶 안에 개입하신 하느님의 행위를 인정하는 태도이다.

태생 소경은 스스로 눈이 멀었음을 인정하고 치유 받기를 원했다. 결국 그는 치유를 받고 빛의 세계를 보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온전히 보게 된 것은 신앙을 통해서이다. “주님, 믿습니다.”(9, 38)라는 신앙 고백 덕분에 그는 온전히 고침을 받고 온전히 보게 되었다.



눈을 떠라!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은 사순 제4주일로 기쁨의 주일, 장미주일이라고 합니다. 십자가를 통한 죽음과 부활의 여정에 있어서 반고비를 넘겼기 때문에 잠시 쉬며 나머지 여정을 더욱 기쁘게 가기 위한 다짐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요한 9, 1-41)은 지난 주일의 “생명의 물”에 이어 “세상의 빛”이신 그리스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소경을 낫게 하신 치유의 기적을 통해 빛과 어둠이 어떻게 다른가를 뚜렷이 말해 주고 있습니다.

어떤 화가가 쓸쓸한 저녁 풍경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어둡고 침침한 잿빛 하늘을 배경으로 외딴집 한 채가 앙상한 나무 사이에 서 있고 땅은 녹다 만 눈덩어리들로 지저분했으며, 여기저기 웅덩이들이 깊이 패어 있었습니다. 깊은 비탄과 외로움이 풍기는 춥고 황량한 경치였습니다. 그러나 화가가 작은 집 창문에 노란 불빛을 그려 넣자 그 황량하던 경치는 마술을 부린 것처럼 생기를 띠어, 비로소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따뜻하고 활기찬 곳으로 변했습니다. 빛과 관련되는 이 이야기는 빛이야말로 생명과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임을 말해 줍니다.

빛은 하느님을 드러내 주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홀로 불멸하시고 사람이 가까이 갈 수 없는 빛 가운데 계신 분”(1디모 6, 16)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오실 때에도 빛으로 예언되었고(“어둠 속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겠고…….” 이사 9, 1; 마태 4, 16), 그분 자신도 세상의 빛(요한 8, 12)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이 빛 자체이신 분이 어둠으로 가득 찬 절망의 인간, 소경을 만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땅에 침을 뱉어 그 흙을 소경의 눈에 발라 주고 실로암 연못으로 가서 씻으라고 하였습니다. 소경은 오직 믿음만으로 그 연못에 달려가 자신의 눈을 씻음으로써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몰랐을 때는 바로 소경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죄를 지어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고 뉘우칠 필요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례의 은총을 통해서 우리의 죄를 씻어 버리고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육체적으로 치유된 소경은 사람들에게 자기를 고쳐 준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으로 인정함으로써 성전에서 추방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다시 만나 그분이 메시아임을 알고 “믿습니다.”(요한 9, 38)라는 신앙 고백을 하게 됩니다. 여기서 그는 영적으로도 온전히 새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소경을 치유해 주었고 신원이 불분명하다고 해서 예수님과 눈을 뜨게 된 사람을 거부하여 스스로 눈뜬 장님이 되었습니다. 율법주의에 사로잡혀서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모르고 옹골찬 고집으로 일관, 자신의 눈멂을 인정하지 않은 어리석은 자들이 된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에는 이런 눈뜬 장님이 너무 많습니다. 성당에서는 열심히 기도하면서 집에 돌아가서는 이웃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 주교님이다 높은 사람이 오면 열심한 신자인 체하면서 사순절을 맞아 ‘십자가의 길’ 기도나 선행 한 번하지 않고 지내는 사람, 세속적인 일이나 자기 신원에 관계되는 일에는 모든 정성을 기울이면서 성서 한 번 보지 않는 사람, 성체 조배나 피정에는 요리조리 빠지면서 친목 모임이나 노는 일에는 기를 쓰고 찾아다니는 사람, 천주교를 취미 생활 단체나 친목 단체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 주일미사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 중 그 얼마나 쇄신의 긴박성을 감지하고 있는지, 본당 내의 많은 단체들, 레지오 마리애, 꾸르실료, 성모회, 매리지 엔카운터, 성서 모임, 성령 쇄신 등의 여러 단체와 회원들이 얼마나 뜨거운 소명의식으로 불타고 있는지, 자신들의 단체 발전에만 관심을 쏟은 채 타단체와의 협조에는 인색하지는 않는지, 어려움에 빠진 이웃을 외면하면서 로사리오 9일 기도를 바치다가 하루라도 거르면 큰일나는 줄 알고 있는 너무나도 미숙한 상태에 머물러 있지는 않는지, 우리의 관심을 예수님의 참된 복음의 가르침보다는 어느 성모상에서 흘러나왔다는 눈물에 더 쏟고 있지는 않는지, 태양이 빙빙 돌며 하늘에 십자가가 나타나는 일 등에 마음을 빼앗긴 나머지 본질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벗어나지 않았는지 깊이 성찰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눈뜬 장님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교회라는 제도의 벽을 넘어서서 기꺼이 주님의 사랑을 실천토록 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 대한 고백은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어둠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더럽고 야비하고 치사한 것들을 폭로하여 선과 정의와 진실을 열매 맺을 수 있어야 합니다(에페 5, 10-13).

야훼의 영이 이새의 다른 일곱 아들을 물리치고 여덟째였던 다윗을 선택하였던 것에서 나타난 것처럼 “하느님은 겉모양으로 판단하지 않고 속모양을 꿰뚫어 보시는 분”(1사무 16, 7)이시니 오직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도록 빈껍데기의 신앙, 눈뜬 장님의 신앙이 아니라 살아있는 능동적인 신앙인으로 살아가도록 노력합시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 영적으로 새로운 인간으로 변화되어 빛이신 그분 안에서 영원한 삶의 기쁨을 누리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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