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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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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전례
작성자 말씀연구
작성일 2008년 3월 8일 (토) 00:42
분 류 사순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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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가해 사순 제 5주일 주일 강론 모음 ”
 

죽은 라자로를 살리신 예수님

1. 말씀읽기: 요한11,1-45

2. 말씀연구

오늘 예수님께서는 죽은 라자로를 살려 주십니다. 라자로의 부활을 통해서 나 또한 믿음을 통해서 부활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부활을 위해서도 예수님께 믿음을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1 어떤 이가 병을 앓고 있었는데, 그는 마리아와 그 언니 마르타가 사는 베타니아 마을의 라자로였다.

 마리아와 마르타는 예수님과 친분이 있던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약 3km 떨어진 올리브 산 동편 기슭에 자리한 베타니아에 살고 있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세례를 베풀던 “요르단 강 건너편 베타니아”와는 다른 곳입니다.

라자로는 “하느님이 도와주신다”란 뜻을 지닌 엘 아자르의 준말 라자르가 그리스어로 발음된 것으로 당시에 흔한 이름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베타니아 출신 라자로란 표현은 역사상 실재인물이었음을 뜻합니다.



2 마리아는 주님께 향유를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분의 발을 닦아 드린 여자인데, 그의 오빠 라자로가 병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라자로와 그의 자매들과 각별히 지내셨고, 예수님께서도 그들의 집에 머무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주님께 향유를 붓고 예수님의 발을 머리털로 닦아 준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마리아의 오빠 라자로가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3 그리하여 그 자매가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주님,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이가 병을 앓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라자로가 죽어가자 동생들은 예수님게 사람을 보냈스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사랑하셨던 그 라자로가 병을 앓고 있다고 알립니다. “주님,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마리아와 마르타는 예수님의 자비를 청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친교가 있었던 그녀들은 예수님께서 어디에 계셨는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 라자로의 병을 알리면서도 예수님을 걱정했을 것입니다.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사랑하는 이가 앓고 있다고만 알려 드립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예수님께 맡겨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이 짧은 알림에는 “신중하고도 깊은 신뢰에 찬 열렬한 소망과 기도가 포함”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죽어가는 이를 주님만이 살리실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4 예수님께서 그 말을 듣고 이르셨다. “그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그 병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와 마르타의 전갈을 들으셨지만 죽을 병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고, 그 병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다들이 영광스럽게 될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라자로는 예수님을 자비를 통하여 살아나게 되고, 그것을 통하여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은 하느님의 권능을 통하여 드러난 하느님의 현존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는 하느님의 영광은 불과 연기로, 폭풍우 속의 번개와 천둥으로, 시나이 산에 이는 바람으로, 지진으로, 천국의 눈부신 아름다움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제 하느님의 영광은 예수님을 통하여 드러납니다. 예수님의 모든 일은 바로 하느님 아버지의 일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라자로의 병을 기적을 통하여 아버지를 계시하는 계기로 간주하시는데, 그 기적은 라자로를 무덤 밖으로 불러내는 것을 뜻합니다. 더 나아가 이 기적 사건은 유다인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사형시킬 최후의 결단을 내리도록 자극할 것입니다.



5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와 그 여동생과 라자로를 사랑하셨다.

청하는 이의 기도를 한번도 외면하지 않으시고, 불쌍한 사람을 그냥 지나치시지 않는 예수님! 다가오면 누구든지 반겨주시는 예수님께서는 라자로와 두 여동생을 사랑하셨습니다. 나 또한 예수님께로 다가간다면 예수님께서는 나를 사랑해 주실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편애를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와 마리아, 그리고 라자로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편애가 아닙니다. 예수님께 사랑을 드린 사람들은 사랑, 그 이상으로 받게 됩니다. 차고 넘치도록 받게 됩니다. 결코 편애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6 그러나 라자로가 병을 앓고 있다는 말을 들으시고도,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머무르셨다.

예수님께서는 라자로가 앓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도 계시던 곳에서 이틀이나 더 묵으셨습니다. 이것은 라자로와 그의 두 여동생을 많이 사랑하셨다는 이야기와는 역설적으로 들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지체하신 이유는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바로 라자로의 병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낼 기회를 만들어 줄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셨던 것입니다.



7 예수님께서는 그런 뒤에야 제자들에게, “다시 유다로 가자.” 하고 말씀하셨다.

 이틀이 지난 뒤에야 예수님께서는 유다로 돌아가시려는 계획을 알리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베타니아로 가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의 마지막 일을 하러 올라가시려는 것입니다.



8 제자들이 예수님께, “스승님, 바로 얼마 전에 유다인들이 스승님께 돌을 던지려고 하였는데, 다시 그리로 가시렵니까?” 하자,

제자들은 불평을 털어 놓았습니다. “스승님, 바로 얼마 전에 유다인들이 스승님께 돌을 던지려고 하였는데, 다시 그리로 가시렵니까?”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유다에 가시면 예수님께 닥쳐올지도 모르는 위험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호랑이의 입 속으로 왜 스스로 들어가려고 하시는지 제자들은 걱정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제자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9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낮은 열두 시간이나 되지 않느냐? 사람이 낮에 걸어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어디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다.

날이 저물기 전에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태양이 비추고 있는 한 길을 가는데, 걱정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직 예수님의 때가 오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계속 가시던 길을 가셔야만 합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마련해 놓으신 지상생활의 기간이 아직 남았기에, 유다인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수난의 때가 다가오면 그 때 비로소 유다인에게 잡혀 수난과 죽임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10 그러나 밤에 걸어 다니면 그 사람 안에 빛이 없으므로 걸려 넘어진다.”

예수님께서 유대지방을 여행하신다는 것은 사실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낮과 밤의 의미를 잘 묵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낮에 돌아다니며 이 세상의 빛(예수님)을 보기 때문에 다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제자들에게는 낮 동안(하느님께서 일하도록 주신 시간동안)에는 다칠 위험(구원을 잃을 위험)이 없다는 것입니다.



11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에 이어서, “우리의 친구 라자로가 잠들었다. 내가 가서 그를 깨우겠다.”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잠들어 있다는 것은 죽음의 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깨운다는 것은 죽음의 잠으로부터 깨워 일으킨다는 것을 말합니다. 즉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린다는 뜻입니다.



12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주님, 그가 잠들었다면 곧 일어나겠지요.” 하였다.

 가기 싫은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잠이 들었다면 곧 살아 날 것이니 가지 말자는 것입니다.



13 예수님께서는 라자로가 죽었다고 하셨는데, 제자들은 그냥 잠을 잔다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것은 성경을 읽는 사람들을 위한 주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기록한 저자의 배려인 것입니다.



14 그제야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분명히 이르셨다. “라자로는 죽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입에서 놀라운 말씀을 듣게 됩니다. “라자로는 죽었다.” 분명 예수님께서 라자로의 집에 머무실 때 제자들도 함께 머물렀을 것입니다. 그렇게 생생하던 사람이 갑자기 죽는다는 것이 놀랍고, 또 그것을 알고 계시면서도 즉시 라자로에게 가시지 않으신 것도 놀라웠을 것입니다.



15 내가 거기에 없었으므로 너희가 믿게 될 터이니, 나는 너희 때문에 기쁘다. 이제 라자로에게 가자.”

예수님께서 라자로와 함께 계셨다면 라자로는 죽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치유해 주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그곳에 없었으므로 라자로는 죽게 되었고, 예수님께서 라자로를 살리실 것이니, 죽은이의 부활을 본 제자들은 믿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생각하신 예수님께서는 이제 제자들의 믿음을 굳게 해 주실 것만을 생각하시는 것 같스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라자로에게로 가자고 말씀을 하십니다.



16 그러자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가 동료 제자들에게, “우리도 스승님과 함께 죽으러 갑시다.” 하고 말하였다.

그런데 유다인들을 만난다는 것은 또 위험을 감수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음을 굳히신 것을 알아차린 토마스는 어떠한 위험을 당할지라도 스승을 따르겠다고 결심할 뿐 아니라, 다른 제자들에게도 그런 결심을 갖자고 말하고 있습니다. 토마는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위험에 빠질지라도 감수할 각오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토마스 사도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나 또한 예수님과 함께 생사를 같이한다는 마음으로 하느님의 일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17 예수님께서 가서 보시니, 라자로가 무덤에 묻힌 지 벌써 나흘이나 지나 있었다.

 유다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곧 묻어 버리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죽은 사람의 영혼이 사흘 동안 근처에서 떠다니다가 사라진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라자로가 죽은 지 나흘이나 되었다는 것은 완전히 죽었다는 것이고,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는 완전히 죽은 라자로를 일으키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 안에서 예수님께서 지체하신 이유가, 예수님께서 그토록 사랑한 친구를 도와주는데 있지 않고, 오로지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18 베타니아는 예루살렘에서 열다섯 스타디온쯤 되는 가까운 곳이어서,

1 스타디온은 185미터입니다. 그러므로 약 3킬로미터 정도 되는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 많은 유다인이 마르타와 마리아를 그 오빠 일 때문에 위로하러 와 있었다.

많은 유다인들이 마르타와 마리아를 위로하러 왔습니다. 지금의 신자나 비신자들이 그러하듯이 상가집은 꼭 가서 남아 있는 사람들을 위로해 주고, 먼저가신 분을 위해 기도해 줍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와 있었습니다.



20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그분을 맞으러 나가고, 마리아는 그냥 집에 앉아 있었다.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예수님을 맞으러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그냥 집에 앉아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예수님께서 오시는데 예수님을 마중하러 나가지 않은 이유는 오빠의 죽음에 대한 슬픔이 컸기 때문일 것이고, 예수님께 대한 서운함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21 마르타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르타는 예수님의 상황도 알고 있었지만 가까운 곳임에도 불구하고 함께  해 주지 않으신 예수님께 조금 서운했을 것입니다. 아니 오빠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을 원망했을 지도 모릅니다. 가까운데 계시는데 오시지도 않고, 큰 능력이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오빠를 죽게 내 버려 두심에 대해서..., 그래서 예수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22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마르타는 자신의 믿음을 고백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라고 고백을 합니다. 예수님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마르타는 죽은 오빠를 예수님께서 살리실 수 있다는 것은 아직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믿고 있지만 믿지 않는 부분들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전능하신”이라는 말의 의미를 사실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유한한 나의 모습을 자꾸 하느님께 투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부족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신앙에 대한 확신도 떨어지는 것입니다.



23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니,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의지를 마르타에게 알리십니다. 라자로를 살리시겠노라고. 하지만 죽은 사람을 살린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죽은 사람이 살아난 다는 것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하는 것이기 때문에 마르타는 자신이 알고 있는 교리를 고백합니다.



24 마르타가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였다.

 마르타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살려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마르타가 고백한 것은 마지막 날에 죽은 이들이 소생되리라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바리사이파 사람들뿐만 아니라 많은 유대인들이 고수하였던 믿음입니다.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계시하십니다. 모든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부활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알려 주십니다. 예수님은 생명 그 자체이십니다. 예수님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죽음의 지배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는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이 말씀 안에서 우리는 영혼과 육신의 부활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6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예수님께서는 또 말씀하십니다.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그리고 이것을 마르타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마르타가 믿는다면 라자로는 살아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적은 믿음에 달려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기적에는 늘 믿음이 따라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나 또한 예수님께 믿음을 보여 드려야 하겠습니다.



27 마르타가 대답하였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마르타는 즉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믿는다고”,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는 것을 믿는다고.”라자로의 죽음을 통해 예수님께서 바로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는 것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28 이렇게 말하고 나서 마르타는 돌아가 자기 동생 마리아를 불러, “스승님께서 오셨는데 너를 부르신다.” 하고 가만히 말하였다.

 마르타는 주님의 의지를 조용히 마리아에게 알려 줍니다. 그러나 마르타가 귓속말로 속삭인 일은 헛수고가 되고 맙니다. 마리아가 곧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본 유다인들은 그녀가 울기 위해서 무덤을 찾아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녀를 동정하고 위로하기 위해 뒤를 따라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아직까지 마을 밖에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29 마리아는 이 말을 듣고 얼른 일어나 예수님께 갔다.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찾고 계시다는 말을 듣고 얼른 일어나 예수님께로 갔습니다. 슬픔에 잠겨서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아무것도 듣지 못했던 마리아. 처음 예수님께서 오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리아는 집에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서일수도 있겠지만 슬픔이 너무 컸기 때문이었을 것이고, 예수님께 대한 원망이 있었기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르타가 예수님께서 부르신다는 것을 알리자 그때 비로소 정신이 번쩍 들었을 것입니다.

슬픔에 가려서 알아채지 못했지만 자신의 가족을 사랑하시는 예수님게서 오셨다는 것. 이제 마리아는 힘을 내어 예수님께로 달려갑니다.



30 예수님께서는 마을로 들어가지 않으시고, 마르타가 당신을 맞으러 나왔던 곳에 그냥 계셨다.

예수님께서는 마을로 들어가지 않으셨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마리아와 마르타가 당신께로 오게 하기 위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31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으면서 그를 위로하던 유다인들은, 마리아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그를 따라갔다. 무덤에 가서 울려는 줄 알았던 것이다.

마리아가 예수님께로 급히 나가는 것을 유다인들은 무덤에 가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함께 슬퍼해 주기 위해 마리아를 따라 나섰습니다.



32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계신 곳으로 가서 그분을 뵙고 그 발 앞에 엎드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계신 곳에 이르자마자 그 앞에 엎디어 마르타와 같은 말을 되풀이 합니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라고 말씀을 드립니다. 라자로를 사랑해주셨던 예수님 앞에서 오빠를 생각하면서 다시 울음을 터뜨렸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슬픔에 가려서 예수님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발치에 앉아서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던 그녀도 오빠의 죽음이라는 큰 슬픔 앞에서 눈이 가려졌던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원망하는 듯한 말은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여기에 계시지 않아서 오빠가 죽었습니다. 왜 안 오셨습니까?”그런데 하느님을 내 마음대로 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의 뜻을 물어야지 내 뜻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쉽게 저지르는 잘못중의 하나라는 것을 꼭 기억합시다.



33 마리아도 울고 또 그와 함께 온 유다인들도 우는 것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북받치고 산란해지셨다.

마리아도 울고, 또 유다인들도 울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바라보신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북받치고 산란해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음이 북받치는 이유는 나자로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들과 라자로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눈물까지 흘리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눈물은 인간적인 슬픔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분노의 표현일 수 있습니다. 인간의 죽음과 병고에서 보았던 사탄의 손길, 즉 어둠의 권세를 향한 분노였습니다. 이제 세상의 통치자인 어둠의 권세는 예수님께서 받으실 영광과 아버지께로의 귀환으로 말미암아 내쫓기게 될 것입니다.



또한 마음이 산란해 지셨다는 것은 사랑하는 라자로를 살리려 하시는 예수님의 사랑과 이 사건을 통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님을 없애려고 하는 유다인들의 마음을 아시는 그 고통이 교차하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 이 기적을 통하여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없애려고 하는 마음을 노골적으로 품게 될 것입니다.



34 예수님께서 “그를 어디에 묻었느냐?” 하고 물으시니, 그들이 “주님, 와서 보십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라자로를 어디에 묻었느냐고 물으십니다. 이것은 몰라서 물으시는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당신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하심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주님, 와서 보십시오.”하고 대답합니다.



35 예수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셨다.

눈물을 흘리셨다는 그리스말은 소리 내지 않고 운다는 의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감정이 북받쳐서 큰 소리로 운다는 것과는 대조를 이룹니다. 예수님의 눈물은 그분의 인간성을 증명하는 동시에 어머니와 같은 깊은 애정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36 그러자 유다인들이 “보시오, 저분이 라자로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본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라자로를 무척 사랑하셨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보시오, 저분이 라자로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이것을 본다면 나 또한 예수님께 사랑을 드리기 위해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쪽을 보기에 시기와 질투가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것입니다.



37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몇은,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신 저분이 이 사람을 죽지 않게 해 주실 수는 없었는가?” 하였다.

그들 중 어떤 이는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라자로를 돕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신 예수님께 놀라운 마음을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눈먼 사라믜 눈을 뜨게 해 주신 저부닝 이 사람을 죽지 않게 해 주실 수는 없었는가?” 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죽은 사람의 부활 가능성은 그들의 머리에 떠오르지 않고 있습니다. 단지 왜 예수님께서 그를 구하기 위해 좀더 빨리 오시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품는 것입니다.



38 예수님께서는 다시 속이 북받치시어 무덤으로 가셨다. 무덤은 동굴인데 그 입구에 돌이 놓여 있었다.

히브리인들에게는 시신을 자연동굴 또는 인공으로 바위에 판 동굴 속에 묻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돌무덤에 묻히셨습니다. 그 무덤은 동굴이엇는데 그 입구에 돌이 놓여 있었습니다.



39 예수님께서 “돌을 치워라.” 하시니, 죽은 사람의 누이 마르타가 “주님,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벌써 냄새가 납니다.” 하였다.

 죽은 이를 일으키시려 하시는 예수님께서는 돌을 치우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누가 봐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죽은 사람을 살린다는 것은 누가보기에도 불가능합니다. 벌써 썩어서 냄새가 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니 돌을 치우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황당하게 들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르타는 “주님,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벌써 냄새가 납니다.”하고 말씀을 드립니다.



40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믿으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믿기만 하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게 되리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즉, 돌을 치우라는 것입니다. 믿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서 내 생각대로 예수님의 말씀을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안되는 것은 내가 안 되는 것이지 예수님께는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41 그러자 사람들이 돌을 치웠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을 우러러보시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제 말씀을 들어 주셨으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사람들은 궁시렁 거리면서 돌을 치웠을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바치십니다. 이것은 기적을 일으키도록 능력을 형식적으로 요청하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갈망하는 예수님의 기도를 아버지께서 들어 주셨음을 의미합니다. 라자로를 부활시킨 기적을 포함하여, 무엇이든지 예수님께서 청하시기만 하면 그것이 바로 아버지의 뜻이었기에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의 양식은 그를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는 것이며, 그분의 일을 성취시키는 것입니다.



나 또한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이루려 노력하고, 그렇게 기도하며, 그것을 이루면서 감사의 기도를 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42 아버지께서 언제나 제 말씀을 들어 주신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씀드린 것은, 여기 둘러선 군중이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의 일이라고 부르는 기적들은 바로 아버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고, 아버지 하느님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일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손길을 알아 차려야 합니다. 하지만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하느님을 모독했다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예수님의 기도는 라자로를 살리는 것뿐만 아니라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일, 즉 생명을 주는 일에 대해 기쁨을 표하고 감사를 드리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통하여 아버지를 알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43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큰 소리로 외치셨다.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 이 말씀은 마치 세상을 창조하실 때의 모습이 보여 지는 것 같습니다. 말씀 한마디에 생겨나는 모든 것들. 이제 그 말씀대로 될 차례입니다.



44 그러자 죽었던 이가 손과 발은 천으로 감기고 얼굴은 수건으로 감싸인 채 나왔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그를 풀어 주어 걸어가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이제 기적이 일어납니다. 죽은 라자로가 손발은 베로 싸 매인 채, 또 얼굴은 수건으로 감긴 채 모든 사람이 보고 있는 가운데 무덤으로부터 걸어 나옵니다. 라자로의 부활을 통하여 믿는 모든 이들에게,  이 기적이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있는, 즉 영적인 죽음을 깨울 수 있는 예수님의 능력을 보여주는 표시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풀어 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라자로를 자유롭게 해 주라는 의미도 있겠지만 놀라움에 사로잡힌 유다인들에게 자기네 손을 가지고, 기적을 만지며, 다시 살아난 라자로가 귀신이 아니라 뼈와 살이 있는 라자로임을 확인하게 하시려는 의도일 것입니다.



45 마리아에게 갔다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본 유다인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이 기적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생명 그 자체이시고, 인간들에게 나누어 주는 생명이시며, 하느님과 함께 누리는 생명이어서 죽음으로 인하여 결코 파멸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

이 엄청난 사건을 바라보면서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안 믿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믿으십시오. 눈을 들어 세상을 바라본다면, 아니 가까이에 있는 거울을 통하여 나 자신을 바라본다면, 나에게 해 주신 엄청난 기적을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눈을 감지 말고, 귀를 막지 말고, 내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놀라우신 일들을 바라봅시다.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기적들을 봅시다.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간직합시다.



3. 나눔 및 묵상

1. 내가 만일 마리아와 마르타였다면 예수님께 어떻게 말씀 드리겠습니까? 오빠 라자로가 아프고,  사람을 보냈지만 예수님께서는 소식이 없습니다. 그리고 오빠가 죽은 지 삼일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나는 예수님께 어떻게 말씀드리겠습니까?



2. 사랑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생각하면서 슬퍼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눈물을 흘리면서 슬퍼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 느낌을 함께 나눠 보면서 예수님께의 라자로를 향한 마음을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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