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모음
강론을 위한 자료실
       
 
사순시기  
       
 logos
말씀과 전례
작성자 김한수 시몬
작성일 2008년 2월 22일 (금) 11:24
분 류 사순시기
ㆍ추천: 0  ㆍ조회: 2747      
IP: 211.xxx.24
http://missa.or.kr/cafe/?logos.1018.3
“ Re..가해 사순 제 4주일 주일 강론 모음 ”
 

1. 김한수 시몬

1.1. 사순 제4주일



제1독서 : 1사무 16, 1ㄴ. 6-7. 10-13ㄱ

  사무엘이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첫 번째 임금으로 세운 사울은(1사무 10장) 하느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버림을 받았다(1사무 15장). 이제 사울 대신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릴 새로운 임금이 하느님께로부터 선택된다. 본문은 1사무 16장에서 1열왕 2장까지 이어지는 소위 ‘다윗 왕위 계승사’의 시작 부분이다.

  ‘다윗 왕위 계승사’는 하느님께서 어떻게 다윗을 선택하시고 그를 왕위에 오르기까지 인도해 주시는지, 그리고 왕위가 그의 아들 솔로몬에 의해 계승되는지를 그리고 있다. 성서 저자는 역사의 객관적 사실을 묘사하기보다 하느님께서 여하한 곤경 가운데서도 당신께서 선택하신 다윗과 그 집안을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신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당신 백성을 인도하셨듯이 다윗을 통하여 역시 당신 백성을 인도하신다. 본문은 다윗의 통치가 인간적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과 구원 계획에 의하여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설명해 준다.

  본문이 우선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인간 역사 안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권능이다. 하느님께서는 여하한 인간적 장애에 방해받지 않으시고 당신의 계획을 실현시켜 나가시는 분이시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전혀 무시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당신의 도구로 사용하신다. 사람들의 판단과는 상관없이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마음에 드는 이를 선택하시어 그를 통하여 당신의 계획을 행하신다.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이가 그분의 부르심에 충실하지 못할 경우에도 하느님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께서는 사울과 다윗의 경우처럼 다른 사람을 선택하시어 당신의 계획을 이루어 나가신다.



제2독서 : 에페 5, 8-14

  오늘 독서는 서간의 교훈적 부분에 해당하고 있다. 소아시아 에페소의 그리스도 신자 공동체가 서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공동체는  당시 영지주의 이단과 헬레니즘 문화권의 신비종교 추종자들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었다. 저자는 새로 신자가 된 성도들을 허황된 이론으로 유혹하는 이방인들의 잘못들을 지적한다. 이 성도들은 세례성사를 통하여 지나간 과거의 삶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로써 과거 삶에로의 복귀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

  영지주의자들이 그들의 높은 인식을 들어내기 위해서 즐겨 사용하던 ‘빛’의 개념을 바오로는 완전히 새로운 영역인 그리스도 신자 실존을 위해서 사용한다; “여러분은 주님을 믿고 빛의 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빛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8절). ‘주님 안에 빛의 자녀답게’라는 표현은 완전히 바뀌어진 인간 실존의 새 모습 즉 그리스도 안의 은총 어린 새 창조를 의미한다 할 수 있다. 존재론적으로도 완전히 새로워진 그리스도 신자의 은총적 실존에서 바오로는 새로운 실천 사항을 보고 있다; “빛은 모든 선과 정의와 진실을 열매 맺습니다”(9절). 실제 영지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높은 인식을 빗대면서 빛을 이야기했지만 그들의 삶은 열매 맺지 못하는 어두움의 행위만을 드러냈다(11절). 세상엔 언제나 사람들을 혼란케 하는 세계관과 기발한 종교적 착상 등 비슷한 경향들이 있어 왔다. 그래서 그리스도 신자들 가운데도 이들에 빠지는 자들이 많았다. 바오로는 에페소 신자공동체의 구체적 상황을 생각하면서 사목자로서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 누가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를 통하여 산다면 그가 세상의 빛(요한 8,12)인 것처럼 진실을 열매 맺으며 살게 되고, 악이 판치는 세상에서도 자신은 빛을 지닌 빛의 증거자가 된다고 한다. 즉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빛이시기 때문에 이 빛이 세상에 비칠 때 세상은 바른 길을 가게 되고 다시 사랑과 정의와 진리가 살아 숨쉬게 된다는 것이다.



복 음 : 요한 9,1-41

  ‘태생 소경의 치유’ 대목은 이미 앞서 당신 자신을 ‘세상의 빛’으로 계시하신 예수님의 말씀(8,12)과 문맥상 연결된다. 그래서 9,5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하셨다. 하지만 전체의 전개나 흐름이 지난 주 복음,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4,5-42) 장면과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에서는 예수님의 신원이 서서히 단계적으로 계시되면서 모든 사람, 즉 사마리아 여인뿐만 아니라 제자들 그리고 사마리아 도시에 살았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왔고 또 그분을 믿었지만, ‘태생 소경의 치유’에서는 사람들이 예수님 때문에 두 부류로 갈라진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나서 단순히 그분을 믿고 ‘주님’으로 고백하려는 태생 소경과, 단지 ‘안식일 법의 위반’이라는 사실 때문에 예수님을 하느님으로부터 온 사람이 아니라 ‘죄인’으로 몰아붙이려는 바리사이들을 위시한 소위 ‘유다인’들이다. ‘빛’이신 예수님을 두고 완전히 다른 두 노선이 병행하고 있다. 빛과 어둠의 노선인 것이다. 그러나 빛은 어둠을 비추고, 그 어둠을 몰아낼 것이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다. 그러나 어둠이 빛을 이겨 본 적이 없다”(요한 1,5).

  태생 소경 이야기는 생동감이 넘칠 뿐 아니라 아주 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요한 복음 사가는 태생 소경의 태도를 통해 거칠고 불합리하고 모순투성이인 그리스도 신자의 평범한 신앙의 여정을 기술하고자 한다. 하느님께서 인간들에게 오시어 그들의 눈을 열어 주시고 보게 해 주시지 않는다면 인간들은 결코 ‘눈뜸’없이 ‘눈멀음’의 상태로 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느님께서조차 고쳐 주실 수 없는 ‘소경’들이 있다. 즉 자신들이 눈이 멀었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너무나도 잘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혹은 자신의 아집과 독선, 집착, 소유욕 등으로 가득 차 하느님의 손길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아루나찰라의 성자 라마나 마하리쉬가 지은 ‘마하라쉬와의 대화’라는 책에 보면 “신은 자만심에 차 있는 사람과 가장 거리가 멀다. 왜냐하면 다른 모든 사람들은 신을 필요로 하지만 자만심에 찬 사람은 신 없이도 자신이 잘 살아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우리는 때로는 너무나 잘 본다고 하면서 잘 못 보는 사람들일 수 있다. 어쩌면 ‘눈뜬 맹인’인줄 모른다. 육적인 눈은 밝아 세상의 모든 것과 사물들, 즉 인사(人事)와 세상사(世上事)에는 온갖 지식과 견해를 갖고 있지만, 영적인 눈은 멀거나 희미해 그분을 알아보는데 더디거나 알아 뵙지 못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엉뚱한 것을 두고 그것이 참 진리라고 보고 좇을지 모른다. “너희가 차라리 눈 먼 사람이라면 오히려 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지금 잘 보인다고 하니 너희의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요한 9,41).

◎강론

제대로 본다는 것은 


사람은 누구나 두 눈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 두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인식하며, 눈을 통해 구분하고 판단합니다.  사람에게 두 눈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릅니다.  눈이 없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으며, 산과 강, 꽃과 나무의 아름다움인들 어떻게 볼 수 있겠습니까?  다행스럽게도 사람에게 두 눈이 있어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고 확인할 수 있으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 눈을 갖고 태어났지만 소경이어서 볼 수 없다면 참으로 답답하고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눈이 있어도 볼 수 없다면,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도, 자연의 아름다움도 보지 못한다면 그런 눈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많지는 않더라도 이렇게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면서 누리는 아름다움을 전혀 누리지 못하는 그들에게 우리는 애정과 연민으로 대해야 합니다.



이천 년 전 예수님 시대에도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그 불행이 그들의 부모나 혹은 자신들의 죄 탓이라고 치부해버렸습니다.  그들의 불행과 아픔을 외면하고, 오히려 죄인으로 몰아붙여 이중의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들이 죄인입니까?  오히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궁색한 변명이었습니다.  사회가 져야할 약자에 대한 책임을 율법이란 이름으로 교묘히 피해나가는 옹색한 책임회피였던 것입니다.  실상 어느 누구도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죄인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이것은 단지 육체의 장애일 뿐이며 그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많은 병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을 통해서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 위함’ 이라고 하십니다.  즉 그들은 하느님의 은총을 통해 치유되고 모든 사람이 누리는 혜택을 받아야 한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더 특별한 은총이 베풀어져야 하고 사회는 그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을 만난 소경은 비록 유다인이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처럼 앞을 보지는 못하지만 그들보다 먼저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비록 눈으로는 보지 못하지만 하느님의 은총을 통해 마음으로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오히려 앞을 보지 못하니 세상 사람들의 타락과 추함을 보지 못하게 되고, 그러니 남들보다 더 깨끗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고, 그래서 더 쉽게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눈이 있어도 제대로 볼 수 없다면, 그런 눈은 없는 것이 차라리 더 나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한 두 눈을 갖고 있어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비뚤어지고 이기적인 마음과 욕심이라는 눈을 통해 세상과 사람들을 바라본다면 소경이 차라리 더 나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두 눈이 없어도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훨씬 더 세상을 아름답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이기심과 아집과 욕심으로 가득 찬 눈으로 모든 것을 삐딱하게 바라보고 투정부리는 바리사이파 사람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차라리 눈먼 사람이라면 오히려 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지금 눈이 잘 보인다고 하니 너희의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하느님께서 주신 두 눈으로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을 제대로 보며 살아갑시다.  내 가족과 이웃이 함께 살아감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제대로 보고 감사하며 살아갑시다.  내 이웃의 고통과 아픔을 제대로 보고 그들의 아픔에 함께 참여합시다.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바라본다면, 오늘 복음의 소경처럼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나아가 이웃의 소중함과 자연의 소중함을 알아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두 눈을 가지고 마음의 소경이 되지 말아야겠습니다.  한 주간동안 우리 주위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을 더 많이 가지고 살아갑시다.

  0
3500
   
 N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31     가해 재의 수요일 강론 2008-08-09 4077
  30     가해 주님 수난 성지주일 강론 모음 말씀과 전례 2008-02-22 4245
  29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말씀연구 2008-03-15 3380
  28        Re..가해 주님 수난 성지주일 강론 모음 강론모음 2008-03-14 4175
  27        Re..가해 주님 수난 성지주일 강론 모음 주일강론 모음 2008-03-14 5827
  26        Re..가해 주님 수난 성지주일 강론 모음 김동진 사무엘 2008-02-22 3178
  25     가해 사순 제 5주일 주일 강론 모음 말씀과 전례 2008-02-22 3229
  24        Re..가해 사순 제 5주일 주일 강론 모음 강론모음 2008-03-14 3425
  23        Re..가해 사순 제 5주일 주일 강론 모음 주일강론 모음 2008-03-08 4173
  22        Re..가해 사순 제 5주일 주일 강론 모음 말씀연구 2008-03-08 2874
  21        Re..가해 사순 제 5주일 주일 강론 모음 김한수 시몬 2008-02-22 3427
  20     가해 사순 제 4주일 주일 강론 모음 말씀과 전례 2008-02-22 3192
  19        Re..가해 사순 제 4주일 주일 강론 모음 강론모음 2008-03-14 3727
  18        Re..가해 사순 제 4주일 주일 강론 모음 주일강론 모음 2008-02-29 3980
  17        Re..가해 사순 제 4주일 주일 강론 모음 말씀연구 2008-02-29 2493
  16        Re..가해 사순 제 4주일 주일 강론 모음 김한수 시몬 2008-02-22 2747
  15     가해 사순 제 3주일 주일 강론 모음 주일강론 모음 2008-02-22 4500
  14        Re..가해 사순 제 3주일 주일 강론 모음 강론모음 2008-03-14 2882
  13        Re..가해 사순 제 3주일 주일 강론 모음 김한수 시몬 2008-02-22 2899
  12        Re..가해 사순 제 3주일 주일 강론 모음 말씀과 전례 2008-02-22 2440
  11        Re..가해 사순 제 3주일 주일 강론 모음 말씀연구 2008-02-22 2521
  10     가해 사순 제 2주일 주일 강론 모음 주일 강론 모음 2008-02-05 4428
  9        Re..가해 사순 제 2주일 주일 강론 모음 강론모음 2008-03-14 2715
  8        Re..가해 사순 제 2주일 주일 강론 모음 김재덕 베드로 2008-02-14 2961
  7        Re..가해 사순 제 2주일 주일 강론 모음 말씀연구 2008-02-14 3018
  6        Re..가해 사순 제 2주일 주일 강론 모음 말씀과 전례 2008-02-14 2965
  5     가해 사순 제 1주일 주일 강론 모음 말씀과 전례 2008-02-05 3056
  4        Re..가해 사순 제 1주일 주일 강론 모음 강론모음 2008-03-14 3241
  3        Re..가해 사순 제 1주일 주일 강론 모음 김재덕(베드로) 2008-02-09 3133
  2        Re..가해 사순 제 1주일 주일 강론 모음 말씀연구 2008-02-09 270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