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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전례
작성자 김재덕 베드로
작성일 2008년 2월 14일 (목) 22:50
분 류 사순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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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가해 사순 제 2주일 주일 강론 모음 ”
 

1. 김재덕 베드로

1.1. 사순 제2주일(가해)



제1독서: 창세 12,1-4a 

제2독서: 2티모 1,8b-10 

복음: 마태 17,1-9



제1독서 해설

[1절]: 아브라함은 떠나라는 명령을 주님께로부터 받는다. 그가 떠나야 하는 곳은 창세 2-11장에서 묘사된 인류의 불순종과 죄악의 상황을 암시하는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이다. 그리고 그가 가야 하는 곳은 주님께서 보여 주실 땅이다. 곧 지금까지 인류가 걸어왔던 길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2-3절]: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약속하신다. 다섯 번에 걸쳐 하느님께서 내리실 복이 언급된다. 고대 근동인들에게는 가장 큰 복으로 여겨졌던 많은 후손이 아브라함에게 약속된다. 이 구절은 창세 15장과 17장에서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시는 후손의 약속에 대한 신학적 근거가 되는 구절이다. 또한 창세 11장에서 스스로 자기들의 이름을 크게 떨치고자 했던 인간의 시도를 흩으셨던 것과는 반대로 아브라함에게는 하느님께서 친히 큰 이름을 약속하신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리시는 복은 아브라함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그를 통하여 복을 받게 하기 위한 것이다. 아브라함은 복의 중개자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 의지가 분명히 드러난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은 결국 아브라함을 통하여 인류에게 구원을 위해 새롭게 시작할 기회를 주시기 위함인 것이다. [4절]: 아브라함의 순종 정신이 간결하게 묘사된다. 아브라함은 주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길을 떠난다. 아무런 이의도, 의심도 없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인류가 걸어왔던 길과 단절하고 새로운 길을 향해서 떠난다. 지난날 인류의 역사는 하느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그분께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배반의 연속이었지만 아브라함은 전혀 반대의 자세를 보여 준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순종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성취되는 데에 인간이 기여할 수 있는 기본자세이다. 이 순종은 믿음을 동반한다.



제2독서 해설

 바오로는 티모테오의 전권에 대해서 자세하게는 말하지 않는다. 다만 기쁜 소식을 전하는데 부끄러워하지 않도록(7-9절) 그에게 준 능력과 같은 특수한 선물을 강조한다. 티모테오에 대한 바오로의 함축적 관심은 여러 곳에 나타난다. 티모테오는 바오로의 후계자(2티모 4,5-7)로 보이는 것 외에도 가르치고(2티모2,15), 어떤 질문에 대해선 결정을 내려주고(1티모 5,19) 전례를 이끌고(1티모 2,1-12) 교회 내 공직자를 임명하도록 위임을 받는다(1티모 3,1-13; 5,22).

 교계의 기능을 두 가지 관점에서 요약해 볼 때, 하나는 복음에의 봉사이다(10-11절). 즉 교계의 구성원은 그가 세상에 기쁜 소식을 전하는 책임을 위임받는 한에서 기존 공동체에 대한 권위를 행사한다. 그리고 둘째는 죽음을 이기고 생명에 이르는 길을 여신 예수 그리스도를(神人)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이다. 한마디로 교계에 속한 사람(사제단)은 공동체를 관리하고 전례를 이끌어 가고, 교리를 가르치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할 뿐 아니라(ad intra) 생명의 주님이신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을 사명으로 삼아야 했다(ad extra).



복음 해설

 [영광스러운 변모]: 복음서 저자는 “예수님의 모습이 그들 앞에서 변하여 얼굴은 해와 같이 빛나고 옷은 빛과 같이 눈부셨다”(17,2)고 적고 있다. 원문에서는 “눈부셨다”가 아니고 “희게 되었다”이다. 저자는 묵시문학적 표현을 빌어 예수님의 변모를 서술하고 있다. 다니 12,3에서 종말에 부활한 의인들의 모습이 변하리라고 보았고, 묵시 1,14-16에서 파트모스 섬에서 요한에게 발현하신 예수님의 모습도 이와 같았다. “그분의 머리와 머리털은 양털같이 또는 눈같이 희었으며…… 얼굴은 대낮의 태양처럼 빛났습니다.” 또한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의 계시를 받은 후 그 얼굴이 너무나 빛나서 사람들이 두려워 가까이 가지 못하였다(탈출 34,29-35; 참조 2 고린 3,7)는 내용과 연결되고 있다. 묵시문학에서 “흰색”은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색으로서 신성과 초월성을 나타낸다. 특별히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또 승리의 기쁨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래서 묵시록에서 “그들은 하얀 옷을 입고 나와 함께 거닐 것이며”(3,4)라든지 “승리하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며”(3,5)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모세와 엘리야]: 우리는 다음과 같은 두 전승을 토대로 해서 모세와 엘리야의 출현의 의미를 파악하고자 한다. 첫째 것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다: “과연 엘리야가 와서 모든 준비를 갖추어 놓을 것이다. 그런데 실상 엘리야는 벌써 왔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마태 17, 11-12). 물론 복음서 저자는 여기에 “그제야 제자들은 이것이 세례자 요한을 두고 하신 말씀인 줄을 깨달았다”(마태 17,13)고 덧붙이고 있다. 두 번째 전승은 말라기 예언서이다: “야훼가 나타날 날, 그 무서운 날을 앞두고 내가 틀림없이 예언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3,23). “엘리야는 불수레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2열왕 2,11-13). 또 모압 땅에서 죽은 모세에 대해서도 “벳브올 맞은편 골짜기에 묻혔는데 그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는 오늘까지 아무도 모른다”(신명 34,5-6)고 되어 있다. 이 두 전승을 종합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겠다. 엘리야가 불수레를 타고 바로 하늘로 올라갔고, 모세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전승 때문에 예수님 시대에 이들은 죽지 않고 여전히 살아 있어 세말에 다시 그들이 다시 오리라고 믿었다. 그래서 거룩한 변모시에 이들의 출현은 ‘거룩한 변모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나타날 주님의 영광의 현시’임을 말하는 것이다. 결국 그들이 하느님의 손에 의해서 죽지 않고 바로 하늘에 올라가 지금도 살아있는 것처럼 하느님께서도 예수님을 불의한 죽음에 그냥 부쳐두시지 않으시고 다시 살리시리라는 암시를 띠고 있는 것으로 본다.

-강 론-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 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마태 17,9)



 오소서 성령님! 오늘 제1독서는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자 자신의 고향과 친척과 살던 땅에서 떠나는 장면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티모테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데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그에게 준 능력과 같은 특수한 선물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영광스러운 변모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이상으로 오늘 말씀을 살펴보았을 때, 오늘 말씀을 ‘믿음’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창세 12,1) 그리고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이 말씀을 듣고 자신의 고향에서 떠납니다.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믿었기 때문에 떠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행동을 통해 ‘믿음’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이란 인간적인 판단이나 조건 등을 따지지 않고 그저 단순하게 하느님의 말씀을 그대로 삶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곧, 나는 하느님 말씀을 순수하게 따르기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나머지의 것들, 예를 들면 미래에 대한 계획이나 준비들, 세상적인 모든 걱정들 등을 나의 몫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느님의 몫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 제1독서는 우리가 믿음을 갖는데 있어서 세상적인 판단과 기준 그리고 걱정들을 모두 하느님께 맡겨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나의 믿음에 세상적인 것들을 집어넣지 마십시오. 그냥 단순하게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삶으로 실천해 보십시오. 성경이 고백하고,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당신께서 말씀하시고 약속하신 것들을 반드시 성취시켜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오늘 제2독서를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티모테오에게 다음과 같이 권고합니다. “오히려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십시오.”(2티모 1,8) 사도 바오로의 이 말씀은 티모테오가 하느님의 말씀인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복음 선포에 동참하라는 의미입니다. 복음을 선포하는데 있어서 고통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기쁘게 복음 선포에 동참하라는 의미입니다. 바로 여기에 오늘 제2독서가 전하고자 하는 믿음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믿음은 바로 하느님 말씀에 대한 열정입니다. 예레미야가 “‘그분을 기억하지 않고 더 이상 그분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으리라.’ 작정하여도, 뼛속에 가두어 둔 주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오르니 제가 그것을 간직하기에 지쳐 더 이상 견뎌내지 못하겠습니다.”(예레 20,9)라고 고통 속에서 하느님 말씀에 대한 열정을 고백하는 것처럼, 어떠한 고통이 온다고 할지라도 말씀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는 것입니다. 나에게 고통이 있다면, 그 고통 때문에 너무나 힘들고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처럼 느껴질수록, 하느님의 말씀을 놓지 마십시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고통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힘을 얻게 되고, 하느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욥도 고통 안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당신에 대하여 귀로만 들어 왔던 이 몸, 이제는 제 눈이 당신을 뵈었습니다.”(욥 42,5)



 그러면 마지막으로 오늘 복음을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당신의 거룩한 모습을 보여주시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는 점입니다.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 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마태 17,9)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산 위에서 본 것만으로 당신을 영광의 메시아로 받아들이시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메시아 임무를 수난과 죽음과 그리고 부활을 통하여 완수하실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 즉 수난과 죽음 없이 영광의 부활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의 모든 삶을 체험하기 전까지 침묵하기를 원하십니다. 바로 여기에 오늘 복음이 전하고자 하는 믿음의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믿음은 바로 기다림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믿음의 특성을 쉽게 잊어버립니다. 신앙생활이 조금만 형식적으로 흘러도 하느님을 느낄 수 없다고 너무나 쉽게 고백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람이나 일 때문에 상처를 받게 되었을 때, 너무나 소중한 믿음을 포기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기다리십시오. 내가 어떠한 상태에 놓이든지, 또한 나에게 어떠한 고통이 다가오든지 하느님만을 바라보며 기다리십시오. 그렇게 될 때, 우리의 믿음은 보다 성숙해지고, 믿음을 통해 하느님 안에 머무르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말씀은 우리의 믿음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느님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기를 갈망하고, 오히려 고통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고, 하느님만을 바라보며 기다리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번 한 주간 동안에는 조용히 성체 앞에 앉아 내가 가지고 있는 믿음을 성찰해 보는 한 주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내가 그동안 사람이나 일 때문에, 또는 나에게 다가오는 고통 때문에 소중한 믿음을 너무나 쉽게 다루었다면, 오늘 이 순간부터는 어떠한 상황 안에서도 내가 가진 믿음을 소중하게 간직하겠다는 결심을 가져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 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마태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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