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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전례
작성자 말씀연구
작성일 2008년 2월 14일 (목) 22:48
분 류 사순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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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가해 사순 제 2주일 주일 강론 모음 ”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1. 말씀읽기: 마태17,1-9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시다 (마르 9,2-10 ; 루카 9,28-36)

2. 말씀연구

보통 만화 영화의 주인공은 변신을 합니다.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나 특별한 때 변신을 하여 평화를 지킵니다. 그들은 평상시에는 자신들의 본 모습을 감추고 평범하게 살아갑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수난과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확고한 힘을 주기 위해서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십니다. 가이사리아에서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고백했습니다. 변모에서는 하느님이신 아버지께서 세 사도들 앞에서 그분이 하느님이심을 선언하고 예수님께 순명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낙담하고 있는 그들의 마음을 들어 높이기 위하여 변모는 몹시 시기적절했습니다.



가끔은 우리도 변신합니다. 화가 나면 그 무엇보다도 무서운 마귀의 모습으로, 마음이 편해지면 그 누구보다도 순진한 양으로. 어떤 것이 진짜 내 모습인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가 변신했을 때는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보다는...



1 엿새 뒤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탈출 24,16에 보면 야훼의 영광이 시나이 산 위에 머물러 있어 구름이 엿새 동안 산을 뒤덮고 있었습니다. 이레째 되는 날 야훼께서 그 구름 속에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모세가 시나이 산 위로 데리고 올라간 이들 가운데서 이름이 명기된 사람들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 이렇게 세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함께 한 제자들도 세 명 뿐입니다. 교회의 으뜸인 베드로, 열 두 사람 중 최초로 예수님을 위하여 피를 흘리게 될(44년) 야고보, 그리고 예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셨던 요한. 이 세사도가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를 보게 되는 축복을 받습니다. 



 루카복음에서는 여드레쯤 지나서(9,28)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첫 날과 마지막 날을 계산하면(빵의 기적, 수난 예고의 전후) 여드레가 됩니다. 하지만 그것을 계산하지 않으면 엿새가 됩니다.



 전통적으로 영광스러운 변모의 장소로 숭배된 갈릴래아의 다볼 산은 확실히 오늘날까지도 선뜻 하느님의 발현 사건, 즉 현세적 실 상황에서 하느님 세계의 현시를 상상할 수 있게 하는 장엄한 자리입니다.

 어느 성경 학자는 이 산이 헤르몬산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산 높이는 2,793미터로 쉽게 오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시나이산이라는 설도 있지만 다볼산이라는 것이 거의 확실합니다. 다볼산은 높이가 562미터이며 나자렛 동남 지점에 있기 때문입니다. 에스드레론 평야에서 본다면 300미터 남짓한 산이라고 합니다. 현재에도 아라비아인이 “산”이라고 하면 이 산을 말한다고 합니다. 이 산은 반로마 형명당시(66-70년) 요새화되었다고 합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이스라엘이 가장 훌륭하게 생각하고 있는 모세보다도 더 크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심을 알리고자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는데, 그분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얘졌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을 예고하셨습니다. 하지만 유다인들은 결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고통 받는 하느님의 종, 속죄양, 수난과 죽음을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시는 ”이러한 메시아를 상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 변모는 사람의 아들에 의한 심판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알려주셨던 그 영광을, 한 순간이나마 보여줌으로써 사도들의 마음에 신뢰를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가이사리아에서 주신 계시를 보충하고 완성하고 또 예수님이 완전히 영적 메시아이심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묵시록에 나오는 비유에서 의인의 얼굴은 태양이나 달, 별, 번갯불에 비기고 있습니다. 또한 옷은 빛과 같이 눈부셨다는 것을 어느 고사본에서는 “눈과 같이”(원문에는 “빛나고”로 되어 있음)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눈과 같이 라고 한 것은 팔레스티나의 한낮의 반사광선이 얼마나 흰가를 본 일이 없는 사람이 고쳐서 기록한 것입니다.



 끊임없이 기도하시는 예수님. 오늘 예수님의 변모는 기도 중에 일어납니다. 나 또한 기도를 한다면 변화될 것입니다. 거룩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사랑하는 모습으로, 온화한 모습으로..., 지금 헐크의 모습이라면 다시 온화한 모습으로 변화되어야겠습니다.


3 그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마 사도들은 잠시 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눈을 들어보니 그들의 눈앞에는 엘리야와 모세, 그리고 너무도 눈부신 예수님께서 계셨습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대표하고 있는 율법과 예언자, 곧 구약 시대가 예수님 옆에 나타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르치실 때 모세의 권위 이상으로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메시아의 길을 개척하고 이것을 이스라엘에 알릴 역할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 두 사람이 나타남으로써 구약과 신약의 이음, 또 율법과 예언이 그리스도께 종속됨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복음으로 구약을 폐지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완성하고 옛 예언을 실현하기 위하여 오셨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세와 엘리야와 나누신 대화의 내용은 당신의 죽음에 대해서입니다. 예루살렘에서 기다리고 있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에서의 제사. 예수님께서 이 모습을 보여주신 이유는 사도들의 마음에서 십자가의 걸림을 없애려 하셨기 때문입니다. 평생 못 잊을 장면을 보게 된 사도들은  스승이신 예수님의 뜻을 실천하고 마침내 스승이신 예수님처럼 그렇게 죽게 될 것입니다.



4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원하시면 제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주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모세와 엘리야가 머물고 예수님께서 지금부터 자기 나라를 넓히리라는 상상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좌우지간 베드로는 이 놀라운 광경에 너무 매료되어 이 빛나는 인물들에게 머물기를 청합니다. 그는 이 순간의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으로, 그는 이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것을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행하고 싶어 했습니다.



 세 개의 초막은 초막절을 상기시킨다. 이것은 메시아적이고 종말론적인 기대와 깊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즉 축제 주간은 구원의 시기를 미리 기뻐하는 때였습니다. 베드로는 자기 자신과 다른 두 제자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과 천상적 인물들을 위해서 초막을 짓고 싶어 했습니다. 자신들은 그 초막 앞에서 노숙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예언하신(8,31)이후에 그가 보인 태도와 유사합니다. 그때 그는 그러한 과정과 목적을 단념하시도록 예수님께 간청하였고, 여기서는 그 빛나는 인물들이 머물도록 권유하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도 맛을 찾아서 헤매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디 가니까 좋더라 하면 우르르 몰려가고, 저기 가니까 기도가 효험이 있더라 하면 그쪽으로 몰립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기도가 주는 맛에만 중점을 두면 안 됩니다. 그 맛을 통해서 그분께서 나를 통해 하시고자 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본 모습을 보여주신 이유는 그 기쁨에 머물러 있으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난과 죽음 앞에서 힘을 내라고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 어떤 맛이 아니라 그분의 뜻이 나를 통해서 이루어지도록 손과 발이 즉시 움직일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5 베드로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었다. 그리고 그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구약에서 구름은 하느님께서 현존하실 때 볼 수 있는 표현입니다. 율법을 주셨을 때 구름이 시나이산을 뒤덮고 있었습니다(탈출24,15). 모세가 장막에 들어 갈 때 구름이 내려와 머물고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의 지도자와 말씀을 하셨습니다(탈출33,9-11). 옛날 시나이산에서와 같이 다볼산에서 하느님께서는 구름을 통하여 말씀을 하십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잘 들으라고. 하느님께서는 직접 예수님께 말씀하지 않으시고 제자들에게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소개하십니다. 예수님의 세례 때에도 세례자요한의 귀에 같은 소리가 들렸습니다(마르1,11).



아버지 하느님은 사랑하는 아들을 지켜보십니다. 이것은 사랑의 표현이고 행복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 또한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그분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던 간에 그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가슴이 뜨끔했을 것입니다. 수난예고를 하실 때 안 된다고 펄쩍 뛰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좋은 것만을 찾지 말고 그분께서 원하시는 것을 찾으려고 해야 합니다.



6 이 소리를 들은 제자들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 채 몹시 두려워하였다.

 얼굴을 땅에 댄다는 것은 존경심을 드러내는 행위입니다. 제자들은 하느님의 계시를 듣고 존경하고 두려워했습니다. 하긴 구름, 하늘에서 들려오는 소리, 존엄하기 비길 데 없는 광경, 이것은 제자들의 마음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한 것 같습니다.



7 예수님께서 다가오시어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일어나라.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라.” 하고 이르셨다.

 가까이 오셔서 손으로 어루만지시는 행위. 이것은 친구와 같이 다정한 예수님의 행동입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사라졌지만 예수님만은 변함없이 계셨습니다. 세상 모든 것이 사라질지라도 하느님만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엄청난 체험을 하게 된 사도들. 아무 말도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너무 기쁘거나, 너무 슬프거나, 너무 당황스러울 때, 우리는 아무 말을 못하게 됩니다. 베드로 사도와 다른 사도들은 마음 깊이 이것을 간직하고 내려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메시아께서 죽었다가 살아난다는 것을 아직 그들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이 있은 다음에야 비로소 “아하! 그 말씀이었는데 내가 못 알아들었구나!”하고 무릎을 칠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변모를 말씀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영광에 찬 변모를 말하면 수난의 괴로움을 믿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군중들에게 그릇된 메시아에 대한 희망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군중들은 고통 받는 메시아를 받아들일 준비를 아직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부활 후에 자연스럽게 밝혀질 것입니다. 메시아의 고통과 죽음이 하느님의 구원 계획안에 들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8 그들이 눈을 들어 보니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 그 모든 상황이 사라졌습니다. 예수님 밖에는 아무도 보이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어떤 모습인지. 제자들은 예수님을 더욱 경외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의 눈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아야 합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아야 합니다.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하고 명령하셨다.

 하긴 말해도 믿지 않을 것입니다. 예전에 텔레비전에서 아마존강에서 악어와 수달 모녀가 싸우는 장면이 방영되었습니다. 어미 수달은 악어와 맹렬하게 싸웠고, 급격히 힘이 빠진 악어는 결국 수달모녀에게 꼬리를 뜯겨 먹는 장면이었습니다. 친구들에게 그 이야기를 해 주니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그것을 본 친구가 하나 있어서 다른 친구들도 긍정을 하게 되었는데 그래도 믿지 못하는 눈치였습니다. 세상에는 믿기 어려운 것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또한 지금 예수님의 변모를 얘기 해 준다면 잘못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정치적인 메시아로...,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는 사도들의 믿음을 떠받쳐 주는 증거의 하나가 됩니다. 멀지 않아 사람의 손에 넘겨질 예수님을 보아야 할 제자들은 지금 아버지의 손에 계신 예수님을 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자처하셨기 때문에 죽음을 당하시지만, 아버지께서 이 사실을 선언하고 계셨다는 것을 제자들은 잊지 않을 것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1. 나도 가끔은 천사의 모습처럼, 때로는 헐크의 모습처럼 그렇게 변합니다. 어떤 때 그렇게 변합니까? 신앙인은 변화되어야 합니다. 신앙인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어야 합니까? 어떻게 변화되어야 합니까?



2.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보여줄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고 있습니다. 내가 믿는 것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받아들이지 않으니 침묵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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