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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모님의 엘리사벳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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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1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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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해 대림 제 4주일 ”

“성령으로 가득찬 엘리사벳”

보잘 것 없는 한 여인이 하느님의 아드님을 잉태하셨습니다. 그 벅찬 기쁨을 함께 나누기 위해 마리아는 늙은 나이에 주님의 은총으로 잉태하게 된 엘리사벳을 찾아보기 위해 유다 산악 지방의 한 고을로 갔습니다(루카1,39). 성모님께서는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습니다(루카1,40). 이렇게 어머니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었을 때 엘리사벳의 태 안에서는 아기가 뛰놀았습니다(루카1,41). 세례자 요한은 어머니 엘리사벳의 태 안에서 마리아 안에 잉태되신 예수님을 알아보고 기뻐한 것입니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루카1,42) 엘리사벳은 성령께서 마리아에게 하신 일을 보았습니다. 마리아가 응답하여 구세주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신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래서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다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리아의 태중에 계신 분이 바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아 뵈었던 것입니다.

내 주변에도 예수님을 모시고 나에게 다가오는 형제자매들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이 미사에 참례하고, 성체를 받아 모셨기에 형제자매들과의 만남은 성모님과 엘리사벳의 만남과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알아보는

 

 

것입니다. 엘리사벳은 성령의 이끄심이 아니었다면 주님께서 오셨음을 몰랐을 것입니다. 나 또한 기도하지 않으면 성령의 이끄심에 온전히 맡길 수 없고, 기도하지 않으면 결코 내 형제자매들이 주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이들임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기도하지 않으면 아기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도 알아 뵙지 못할 것입니다.

얼마 남지 않은 성탄을 기다리면서 내 눈과 내 마음이 활짝 열릴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그래서 나에게 오시는 주님을 알아 뵙고 엘리사벳처럼 그렇게 기뻐합시다.

 

1. 서둘러서 길을 떠나는 성모님

성모님께서는 서둘러 엘리사벳에게 갔습니다. “서두르는 이유”는 급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고, 그 급한 이유 외에는 중요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성모님께 중요한 것은 엘리사벳을 만나는 일입니다. 마리아는 천사가 알려준 내용을 의심해서이거나 자신의 앞날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엘리사벳을 만나러 먼 길을 떠난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처지를 온전히 이해해 줄 수 있고, 함께 기뻐해 줄 수 있는 엘리사벳을 만나기 위해 서둘렀던 것입니다.

 

신앙인들도 서둘러야 합니다. 주님께로 가기 위해 서둘러야 하고, 주님께로 가는데 장애되는 것들은 잊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전하러 떠나는 제자들에게 “4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루카10,4)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인간적인 것에 의지하지 말고,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왜냐하면 중요한 것을 잊어서는 안 되고, 중요한 것을 가로막아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봉사하기 위해 걸음을 서두르는 삶, 그 삶이 바로 신앙인의 삶입니다. 분명 성모님께서는 임신 6개월째인 엘리사벳을 도와드렸을 것입니다.

 

2.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시는 어머니 마리아.

태중에서도 주님을 알아본 세례자 요한. 이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어떻게 예수님을 알아보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눈앞에 계신 분도 알아보지 못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 인사하는 사람들의 목소리 안에서, 반갑게 손을 내미는 사람들의 따스함 안에서, 도와주고 배려하는 사랑 속에서, 아껴주고 양보하는 배려 속에서 나는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하고,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예수님의 음성을 들려줄 수 있어야 합니다.

 

3. 복된 여인이신 성모님

엘리사벳이 감탄하는 것처럼 성모님은 복된 여인이십니다. 여인은 자식을 통하여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는데 그 자녀가 위대한 인물이라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위대한 인물을 떠나서 바로 하느님이시니 마리아는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된 여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분.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시어 마리아의 태중에 머물고 계십니다. 그분께서 비천한 인간의 몸에 잉태되신 것은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복되신 분이 우리와 똑같은 모습을 하시어 세상에 오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러므로 이렇게 복되신 분을 모시고 있는 마리아는 얼마나 복된 여인이겠습니까?

또한 여인은 삶을 통해서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는데, 하느님께 온전히 “예”하고 응답했고,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기에 여인들 중에 가장 복된 여인이 된 것입니다. 믿음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였기에 믿는 모든 이들에게는 참된 신앙의 모범이 되시니 얼마나 복되신 분이십니까?

 

4. 엘리사벳의 기쁨

엘리사벳은 태중의 아드님이 복되시다고 말씀드리고 나서 그 태중의 아드님이 바로 주님이심을 고백합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루카1,43)라고 말씀드리며 감격해 합니다.

 

엘리사벳이 이렇게 감겨하고 놀란 이유는 마리아가 자신의 집을 방문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자신의 집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 수 있도록 해 주신 분은 바로 성령이십니다. 성령의 이끄심에 온전히 응답했기에 성령께서 보여 주시는 대로 보았고, 성령께서 알려 주신 것을 받아들이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엘리사벳과 태중에 있는 세례자 요한이 알아 본 것은 자신들을 방문한“마리아”가 아닙니다. 마리아와 함께 계시는 주님을 알아 본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비천한 인간을 찾아 주셨으니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얼마나 황송하겠습니까? 그래서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가득 찬 엘리사벳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 또한 성령으로 가득 차 다시 오시는 아기 예수님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어야 하고, 아기 예수님을 모시고 오는 형제자매들을 알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기쁨에 넘쳐서 축복의 인사를 건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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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말을 위한 기도
첨부#1 2011-58호_나해_대림_제_4주일.hwp (80KB) (Down:257)
ㆍ조회: 1356    
http://missa.or.kr/cafe/?jubonara.104.29
“ 나해 대림 제 4주일 ”
 

나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매일 매일 수많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말과 내가 모르는 말, 남에게서 들은 말과 그냥 생각나는 말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한사람만 건너도 말이 바뀝니다. 그리고 자신이 왜 그 말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지난 목요일 레지오 단원들과 함께 성지순례를 갔습니다. 그리고 함께 둘러앉아서 말 전하기를 했습니다. 제가 먼저 옆 사람에게 “신앙인은 남의 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73명을 돌아서 저에게 다시 돌아온 말은 “하느님께 거룩하게 지내자.”라는 말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서로 웃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전한 말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내가 나도 모르는 말을 함부로 하고 있구나. 앞으로는 말을 조심해야지.”그런데 또 다른 이는 불평을 합니다. “네가 잘 못 전해 줬기 때문에 내가 잘못 말 한 것 아니냐?” 그런데 그도 옆 사람에게는 다른 말을 전해주었습니다. 나는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합니다. 상대방이 말을 할 때,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듣고, 그리고 상대방이 한 말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합니다. 그러니 말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 입니다. 나는 하루에서도 수없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내가 한 말이 생각이 나지 않고, 내가 했다고 생각할 수 없는 말들도 어떤 때는 내가 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내가 하지 않은 말 때문에 억울할 때도 있고, 내가 한 말 때문에 괴로울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주워 담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하고 있는 말이 무슨 말인지를 생각하며 말할 수 있어야 하고, 내가 했던 말이 무슨 말인지를 기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보통 외향적인 사람들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즉석에서 참 많은 말들을 쏟아 냅니다. 그리고 마치 자신이 오랜 동안 생각했던 말인 것처럼 말합니다. 그런데 내향적인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이 안에서 정리가 되어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말하기 전에 “이 말을 해야 될까? 안 해도 되는 말은 아닌가?”를 먼저 생각하기도 합니다.



즉 어떤 이들은 쉽게 말하지만 그 말의 깊이와 진정성이 없을 수도 있고, 또 어떤 이들은 어렵게 말하지만 그 말의 깊이와 진정성이 가득합니다.



나는 어떤 말을 하고 있을까요? 성모님께서는 천사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합니다. 천사가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1,28)라고 인사하자, 이 말에 성모님은 몹시 놀랐습니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모님의 말 하는 스타일입니다. 함부로 말하지 않고, 상대방의 말을 들으면 한 번 생각해 보는 것. 그리고 그 말에 대해서 그가 설명을 할 수 있도록 끝까지 기회를 주는 것. 이것이 바로 “성모님의 대화 법”입니다.



내가 귀를 열어 상대방의 말을 주의 깊게 들을 때, 나는 상대방의 말을 그가 의도하는 대로 들을 수 있습니다(Understand). 하지만 그의 말을 내가 듣고 싶은 대로 들을 때는 그가 의도하는 대로 들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그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다면 “저 사람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를 성모님처럼 곰곰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과정이 없다면 결국 내가 듣고 싶은 대로 듣고, 내가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게 될 뿐입니다.



또한 내 혀를 길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게 됩니다. 내 안에 있는 교만과 허영, 아집과 독선은 내가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게 만들고, 내가 아닌 나의 말을 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기쁨과 위로보다는 부정과 상처를 춥니다. 그래서 내 속에 있는 나를 길들일 때, 나의 혀는 내가 해야 되는 말을 하고, 내가 하지 말아야 되는 말은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하루를 살아가면서, 나는 수많은 말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들은 나에게 기쁨을 주기도 하지만,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나를 괴롭히기도 합니다. 내게서 나오는 말들이 상대방에게 편안함과 위로를 주고, 내게서 나오는 말들이 공동체를 일치시키며, 내게서 나오는 말들이 상대방에게 기쁨을 준다면, 나의 입은 하느님을 찬미하는 입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반대라면 하느님께 모욕을 드리는 입이 될 것입니다.



동네의 모든 소문을 다 알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동네의 모든 말은 그 사람에서 시작되어 그 사람에게로 흘러갑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와서 참 많은 만들을 쏟아놓고 갔고, 그는 충실히 그 말을 옮겼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내가 이렇게 살다가 하느님 앞에 가면 어떻게 될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사람들은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들의 말을 자신에게 쏟아 놓고, 자신이 그들을 대신해서 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웃으며 얘기하고 있었지만 “진실로 자신을 믿어주고, 가슴속에 있는 이야기를 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들으면 그것을 동네방네 소문내고 있던 자신, 주워들은 말에, 말을 붙여서 동네방네 떠들고 있던 자신. 뒤에서는 “믿지 못할 사람, 입이 싼 사람”이라는 욕을 먹고 있던 자신. 그는 자신의 모습을 본 순간 부끄러워서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해성사를 보고, 다시는 남의 말을 안 하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자신이 쏟아 놓은 말들 때문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한숨을 쉬며 후회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벌이구나! 이것이 벌이야!”



말을 안 하고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하지 말아야 될 말을 안 할 수는 있습니다. 해야 될 말을 하고, 하지 말아야 될 말을 하게 될 때, 나는 상대방과의 대화에서 그의 말을 오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말이 기쁨으로 다가온다면 다른 이들과 함께 그 기쁨을 나누기 위해 전할 것이고, 그의 말이 부정적이거나 분열을 가져온다면, 마치 듣지 않은 것처럼, 그렇게 귀에는 들렸지만 가슴에까지는 자리하지 않고, 입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해야 하는 말과 하지 말아야 하는 말, 내가 들어야 하는 말과 듣지 말아야 하는 말을 분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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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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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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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성모님처럼 ”

성모님처럼

성탄은 하느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겸손이 온 세상에 선포되는 날입니다. 그래서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참된 평화를 체험하게 됩니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실현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인간의 응답이 포함되는데, 그 응답의 주인공은 바로 성모님이십니다.

성모님은 언제나 기도하는 분이셨습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하느님과 함께 한다는 것이며, 하느님의 말씀에 온전히 자신을 맡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이들은 은총 안에 머물고 있는 이들이며, 은총이 가득한 사람들입니다.

천사는 예수님의 탄생을 마리아에게 알렸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것임과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음을 알렸습니다. 그러자 마리아는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응답하십니다. 이 응답을 통해서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이사7,14)

임마누엘 예수님을 낳으신 분이 바로 언제나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살아오신 성모마리아 이십니다. 언제나 기도하며 하느님 안에서 살아왔기에 주님께서 늘 마리아와 함께 하셨고, 구약의 예언의 말씀을 이루는 구원의 도구, 은총의 도구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시편 24편에서는 주님의 것이라네, 온 땅과 그 안에 가득 찬 것들, 온 누리와 그 안에 사는 것들.”이라고 고백을 합니다. 성모님께서는 당신이 누구신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누구신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피조물은 창조주이신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하고, 주님의 말씀을 살아가야 함을 알고 있었고, 그것이 주님의 자녀들에게는 한없는 영광임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기에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라는 천사의 인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시편은 한 생을 주님만을 바라보고 사셨던 마리아의 삶을 미리 이렇게 노래합니다. “누가 주님의 산에 오를 수 있으랴? 누가 그 거룩한 곳에 설 수 있으랴?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결백한 이, 헛된 것에 정신을 팔지 않는 이라네.” 이렇게 사셨기에 주님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느님께로부터 의로움을 얻게 된 것입니다.

성탄을 맞이하며 성모님처럼 살아갈 것을 다짐해 봅시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라고 겸손하게 고백하신 마리아를 본받아 주님의 뜻을 충실히 따르며, 성탄을 기쁘게 맞이합시다.

 

     
이름아이콘 관리자
2017-12-23 16:18
성탄을 기쁘게
1. Merry Christmas 라고 인사하기
성탄은 예수님의 거룩한 탄생을 기뻐하는 날입니다. 단순한 휴일이 아니라 우리 구세주이신 예수님의 탄생일 기뻐하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Merry Christmas 라고 인사해야 합니다.

2. 사랑의 삶을 다짐하기
이 성탄에 해야 할 것은 예수님의 탄생을 함께 기뻐하며, 미사에 참례하고, 구유를 경배하며, 낮은 모습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의 그 사랑을 가슴 깊이 간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낮추신 것처럼 나도 나를 낮추어야 하고, 예수님께서 당신 사랑을 베푸신 것처럼 나도 내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내 옆에 있는 형제자매와 선물을 나누고, 카드를 나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3. 자녀들이 성탄미사에 참례할 수 있도록 하기
자녀들이 성탄미사에 참례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성탄에 휴가를 가게 되는 경우에는 미사에 참례할 수가 없습니다. 자녀들이 성탄미사에 참례하지 않는다면 시간이 지난 후에는 신앙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부모님들은 자녀들에게 성탄의 의미를 알려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이 함께 성탄제를 즐기고, 성탄미사를 봉헌하고, 선물을 나누게 될 때, 자녀들의 신앙은 더욱 깊게 뿌리를 내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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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ㆍ조회: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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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국수집 아들의 기도 ”

국수집 아들의 기도

나는 국수집 아들로 43녀 중 다섯째였다. 엄마는 아주 열심한 가톨릭 신자였고, 아버지는 아니었다. 어린 시절 복사도 서고 주일학교도 열심히 다녔으며 초등학교 4학년부터는 소년레지오단원으로도 활동했다. 물론 새벽미사 복사 몇 번 했다는 게 매번 똑같은 활동보고였지만. 초등학교4학년 때쯤 나는 예수님은 무조건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사연이 있었다. 아버지가 국수공장을 운영하시는데 특히 여름이면 날마다 국수공장이 돌아갔다. 물론 일하는 직원도 있었지만 형이나 누나들도 일을 도울 수밖에 없었다. 당연 내게 맡겨진 일도 있었는데 땅에 떨어진 국수조각 줍기 등이었다. 그런데 이 하찮은 일 때문에 여름방학에도 친구들과 놀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잠자리 들기 전에 간절히 기도했다. '예수님~제발 비 좀 내려주셔요.' 그래야 친구들하고 놀 수 있었기에.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면 해가 쨍쨍했다. 그렇게 여름방학 내내 비는 내리지 않았고 계속된 실망 속에서 '내 기도도 안 들어주시니 예수님은 없다'고 단정했다. 그래서 엄마에게 성당도 안 다니고 복사도 안 서고 레지오도 안 한다고 대들었다. 엄마는 이유를 물으셨다. 사실대로 이야기하자 '한심한 놈 너같은 애가 내 아들이라니'한숨을 쉬시더니 차근차근 이야기해주셨다. '예수님이 모든 사람 기도를 다 들어주면 이 세상이 어떻게 되겠냐고, 예수님은 한가로운 분이 아니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한 기도는 절대 안 들어준다는 것을 모르느냐!'그때 알았다. 기도는 다른 사람을 위해 해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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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ㆍ조회: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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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하는 천사와 응답하는 마리아 ”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하는 천사와 응답하는 마리아

천사는 하느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을 마리아에게 전합니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루카1,31-33)

예수하느님은 구원이시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임마누엘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천사는 탄생하실 예수님에 대해서 몇 가지를 마리아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며, 다윗의 왕좌를 주시어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천사가 말한 이 말씀은 예수님 안에서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야곱의 집안은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모든 사람들을 말하는 것으로서, 그들 위에 하느님의 자비와 다스림이 펼쳐진다는 것입니다. 즉 메시아께서 다스릴 대상은 야곱의 피를 받은 자손 뿐 아니라, 히브리인, 이방인을 불문하고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 맺어진 교회, 나아가 온 인류를 말하는 것입니다. 온 세상의 임금이신 예수님께서는 영원무궁토록 당신 나라를 다스리실 것입니다.

 

천사가 전해준 예수님의 탄생 예고를 들은 마리아는 천사에게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루카1,34)

 

마리아는 요셉과 약혼한 상태이지만 아직 요셉을 알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리아의 말씀 안에서 그녀가 동정녀로 살기로 결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자기가 아직 완전히 순결한 처녀임을 나타낼 뿐 아니라, 언제까지나 이러한 상태로 계속 살고 싶으며, 따라서 어머니가 될 수 없고, 또 그것이 자기의 소원이라고 하는 결심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사실 만일 마리아가 약혼한 상태이고, 결혼하여 아이를 낳을 계획이 있었다면 천사의 알림에 놀랄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처녀로 한평생 살겠다는 결심과 함께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겠다고 기도하고 있었으므로, 어떻게 처녀로서의 삶과 어머니로서의 삶을 동시에 할 수 있는지를 물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잉태는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래서 천사는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루카1,35)

 

예수님의 아버지는 하느님이시고, 마리아는 처녀로서 임신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께 온전히 맡기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고 응답하면 되는 것입니다.

 

천사는 엘리사벳의 경우를 들면서 확신을 시켜 줍니다.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 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루카1,36)

아이 못 낳는 여인에게도(석녀 엘리사벳) 아기를 낳게 해 주시는 하느님께서는 못 하시는 것이 없습니다. 차원은 다르지만 엘리사벳이 아기를 가지게 된 것은 동정녀가 잉태하게 되는 사건을 미리 보여주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엘리사벳과 성모님의 임신은 서로 다릅니다. 엘리사벳은 즈카르야와의 관계에서 세례자 요한을 임신했지만, 마리아의 경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느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불가능한 것을 하느님께 투영하여 하느님도 불가능한 것이 많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루카1,37) 나는 이것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마리아는 이제 모든 것은 하느님께 맡깁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1,38)

 

종은 곧 노예를 뜻합니다. 종은 주인의 뜻을 따라야 하고, 주인은 종을 통해 자신의 뜻을 실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마리아가 자신의 신앙과 믿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는 응답을 통해서 마리아는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깁니다.

이 응답을 하는 동시에 마리아의 몸에는 말씀이 강생하셨고, 그녀는 성자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마리아의 믿음과 승낙을 통해서 예수님의 어머니로 삼으시고, 그녀를 온 인류의 구원사업의 협력자로 삼으셨습니다. 마리아는 그 겸손한 믿음과 순종으로 하와의 불신과 반역행위를 지우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힘이 있어서 열매를 맺지 않고는 결코 하느님께 돌아가지 않습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하느님께로 다시 돌아갑니다. 기쁘게 돌아갔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나에게 당신의 뜻을 전하십니다. 그런데 나에게 보낸 천사는 언제나 내가 안돼요. 못해요. 왜 제가 해야 하나요?”라는 불평 가득한 말을 듣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길 수도 있습니다.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이 내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나를 온전히 주님께 맡기는 내가 되어 봅시다.

     
이름아이콘 관리자
2017-11-22 04:31
네 개의 초가 모두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이제 때가 되었으니 아기 예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실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의 성탄을 기다리면서 우리는 마리아의 믿음을 본받으려고 합니다. 성모님의 믿음을 참으로 대단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은 성모님을 공경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성모님과 같은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 노력합시다.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리아처럼, 나 또한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신앙인 되도록 노력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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