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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리코 소경의 치유
작성일 2009-10-23 (금) 10:23
분 류 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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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해 연중 제 30주일;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바르티매오 ”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예리코 소경의 치유

1. 말씀읽기:마르10,46-52

예리코에서 눈먼 이를 고치시다 (마태 20,29-34 ; 루카 18,35-43)

46 그들은 예리코에 들어갔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많은 군중과 더불어 예리코를 떠나실 때에, 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길가에 앉아 있다가, 47 나자렛 사람 예수님이라는 소리를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치기 시작하였다. 48 그래서 많은 이가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49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불러오너라.” 하셨다. 사람들이 그를 부르며, “용기를 내어 일어나게. 예수님께서 당신을 부르시네.” 하고 말하였다. 50 그는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 예수님께 갔다. 51 예수님께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눈먼 이가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52 예수님께서 그에게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이르시니, 그가 곧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섰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한 소경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바르티매오입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소경이었습니다. 그의 소원이 있다면 눈을 뜨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고, 하느님께서 아름답게 창조하신 모든 것들을 직접 바라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그런데 어느 날 그 앞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소경의 처지가 그러하듯이 그는 거지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니다. 청하는 이의 청을 물리치지 않으시는 예수님. 제가 믿고 있는 예수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2.1. 자비를 청하는 소경 바르티매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중에 예리코에 들르십니다. 그런데 예리코는 헤로데가 쾌락의 도시로 만든 곳으로서 많은 저택이 즐비하고 극장과 경마장, 그리고 수영장등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환락의 도시 안에 고통 받고 있는 한 소경이 있었던 것입니다. 장님의 소원이 다 그렇듯이 바르티매오의 소원도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바르티매오는 거리에서 구걸하는 거지였기에 사람들의 소리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예수님에 관한 소식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이야말로 자신의 눈을 뜨게 해 주실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병자들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나병환자를 치유해 주시고, 앉은뱅이를 일으켜 주시는 분. 그리고 눈먼 이들을 보게 하고, 벙어리들이 혀가 풀려 말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실 수 있는 분.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소식을 들었을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으로써 생겨납니다. 그렇게 바르티매오도 믿음이 생겼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에게 기쁜 소식이 주어집니다. 그날도 거리에서 구걸을 하고 있다가 “나자렛 사람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듣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듣고 그는 외치기 시작하였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마르10,47) 예수님께서는 지금 예리코를 떠나고 계신 중이십니다.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소경에게는 어쩌면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①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바르티매오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자신 앞을 지나고 계신 분이 “나자렛 사람 예수님”(마르10,46)라는 말을 듣고 잠자코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마르10,48) 그는 오히려 더욱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마르10,48) 그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구세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를 조용히 시키려고 하였지만 그는 더 큰 소리로 예수님께 자비를 청했습니다.

 

② 바르티매오의 처지에 관심없는 사람들

많은 이들이 바르티매오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는 이유는 “다윗의 자손”이라는 호칭을 들으면서 그들이 불안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로마의 식민지인 이스라엘에 메시아가 나타났다면 백성들은 당연히 로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폭동세력으로 바뀔 것이고, 로마 군인들은 당연히 그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할 것입니다. 또한 “다윗의 자손”은 언제든지 폭동세력의 핵심으로 급부상할 수 있기에 점령자들은 “다윗의 자손과 주변 인물들”을 제거하려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점령군의 무자비함을 알고 있는 이들은 위협을 느꼈을 것이고, 그래서 바르티매오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했던 것입니다.

 

또한 백성의 지도층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한다는 것을 “율법도 모르는 하찮은 존재들”의 외침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눈에는 예수님이 눈에 가시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없애버리려고 작당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눈먼 거지의 외침에 귀가 따가워 귀찮아서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공통적인 것은 이들이 바르티매오의 불쌍한 처지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눈이 멀었기에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구걸로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바르티매오의 고통은 그들의 고통이 아니었기에 바르티매오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일 내 아이가 눈이 멀었다면 더 크게 울부짖었을 것입니다.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제 아이를 낫게 해 주십시오.”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눈 뜬 사람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고 있지 못하지만 보지 못하는 소경 바르티매오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보고 있어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도 눈 뜬 장님은 아닌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 버리고 있는 사람이 바로 나 자신임을 고백할 때, 작은 것 하나에서 하느님의 크신 은총을 느낄 수 있는 눈을 갖게 될 것입니다.

 

③ 예수님의 부르심에 달려가는 바르티매오

바르티매오의 자비를 청하는 소리에 예수님께서는 걸음을 멈추십니다. 그리고 “그를 불러오너라.”(마르10,49)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를 부르며 “용기를 내어 일어나게. 예수님께서 당신을 부르시네.”(마르10,49)하고 말합니다. 그러자 바르티매오는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 예수님께로 갔습니다. 바르티매오는 너무 기쁜 나머지 “겉옷을 벗어 던지고”(마르10,50) 예수님께로 달려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르티매오에게 있어서 겉옷은 특별한 것입니다. 앉아서 구걸을 하는 거지에게 겉옷은 추위를 견디게 하고,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입니다. 아마도 이제 그는 눈을 뜨게 될 것이라는 것을 굳게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겉옷을 벗어 던져버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제 그는 눈을 뜰 것이고, 그러면 더 이상 구걸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믿음이 담겨 있는 행동이 아닐까요?

 

나도 버릴 것은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삶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 예전의 것들은 버려야 합니다.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시도”가 내 안에서 일어나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된 나는 새로운 신분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품위에 맞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고, 받아들일 것은 기쁘게 받아들이고, 해야 하는 것들은 즐겁게 행해야 합니다.

 

④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바르티매오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마르10,51) 이것은 “네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바르티매오는 먹어서 없어질 것을 요구하지도 않고, 가지고 있어도 도움이 안 되는 그런 것들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을 청합니다. 바르티매오는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마르10,46)라고 청합니다.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그래서 그는 그것을 청한 것입니다.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청한 것입니다.

 

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따.

예수님께서는 바르티매오의 간절한 마음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눈을 뜨게 해 주실 수 있다는 굳은 믿음”을 가진 것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르10,52)고 말씀하시면서 그의 눈을 뜨게 해 주십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들었을 것이고, 그 순간 바르티매오를 보았을 것입니다. “말씀하시자 그대로 되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한 처음 세상을 창조하실 때 “생겨라”하니 “생겼다”는 말씀을 기억하게 되었을 것이고, 마음이 열린 사람들이었다면 예수님께서 바로 하느님이심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⑥ 예수님안에서 기뻐하는 바르티매오

눈을 뜨게 된 바르티매오는 즉시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섭니다. 자신의 눈을 뜨게 해 주신 주님과 함께 머물고 싶었고, 그 기쁨은 주님을 따르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의 눈에는 이 세상 어떤 것보다도 주님만 눈에 들어올 것입니다. 주님만 눈에 들어오니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행복했습니다. 바르티매오는 지금 주님과 함께 구원의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믿는 것입니다. 확신을 가지고 믿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갈등을 해서는 안 됩니다. 선택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행동으로 옮길 수 있고, 그래야 열매 맺는 신앙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야 바르티매오처럼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굳게 믿읍시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라 예수님께서 걸으신 길을 힘차게 걸어 나갑시다. 행복한 이 길을 주님과 함께 걸어갑시다.

 

3.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말씀 중에서 나에게 기쁨으로 다가오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왜 그 말씀이 기쁨으로 다가오고 있습니까?

 

② 소경의 주변에 있는 이들은 소경의 사정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만일 내가 그 소경의 옆에 있었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그리고 내 주변의 병자들에게 나는 어떤 관심을 기울이고 이을까요?

 

③ 바르티매오는 예수님을 자신을 치유해 주실 수 있는 분이라고 굳게 믿었고, 그 믿음대로 치유를 받았습니다. 만일 내가 바르티매오였다면, 그래서 내 믿음대로 될 것이라면 나는 과연 치유를 받을 수 있었을까요? 혹시 내 마음 안에는 “설마 예수님이 나를 고치실 수 있겠어?”라는 의심이 조금도 없었을까요?

 

4. 실천사항

① 굳은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 매달리기

② 다른 이들의 고통에 진심으로 관심 갖기

③ 주님과 함께 기쁨의 길을 걷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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