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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하느님 나라와 부자
작성일 2009-10-01 (목) 18:34
분 류 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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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해 연중 제 28주일; 부자청년의 예수님 따르기 ”

부자청년의 예수님 따르기

1. 말씀읽기: 마르코10,17-30

하느님의 나라와 부자 (마태 19,16-26 ; 루카 18,18-27)

17 예수님께서 길을 떠나시는데 어떤 사람이 달려와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1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느님 한 분 외에는 아무도 선하지 않다. 19 너는 계명들을 알고 있지 않느냐? ‘살인해서는 안 된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횡령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20 그가 예수님께 “스승님, 그런 것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1 예수님께서는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이르셨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22 그러나 그는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23 예수님께서 주위를 둘러보시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24 제자들은 그분의 말씀에 놀랐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거듭 말씀하셨다. “얘들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25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26 그러자 제자들이 더욱 놀라서, “그러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고 서로 말하였다. 27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바라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따름과 보상 (마태 19,27-30 ; 루카 18,28-30)

28 그때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29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30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나는 주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필요없는 것들은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내가 버린 것은 무엇이고, 버려야 할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그리고 움켜 잡아서 내가 맡고 있는 공동체를 망치고 있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부자청년의 모습을 통해 내가 어떻게 주님을 따르고 있는지에 대해 깊이 묵상해 봅시다.

 

2.1. 부자청년의 영원한 생명에 대한 질문과 예수님의 가르침

한 부자청년이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청합니다. 그동안 많은 이들이 예수님 발치에 엎드렸지만 나름대로의 청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대부분 그들 병에 대한 치유였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는 “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마르10,17)하고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그가 무릎을 꿇은 것은 예수님께 대한 존경의 표시이고, 또한 그가 청하고 있는 것이 그에게는 절박하다는 것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 청년은 예수님께 “선하신 스승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아첨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 죄인으로 불리는 이들과 죄인들에게 어떻게 하셨는지를 들어왔고 또 본 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자비를 베푸시고, 사랑스럽게 어린이들을 축복해 주시는 그 모습을 보았던 것입니다.

 

① 하느님만이 선하심을 알려 주시는 예수님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선하신 스승님”이라는 호칭을 거부하십니다. “어찌하여 나를 선하고 하느냐? 하느님 한 분 외에는 아무도 선하지 않다.”(마르10,18)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호칭을 거부하시는 이유는 당신이 선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이 말씀은 참된 완전 자체이신 하느님에게만 들어맞는 말씀이기에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 그 영광을 모두 돌리시는 것입니다.

 

② 계명들을 지켜라

예수님께서는 이 청년에게 하느님께 대한 의무보다는 이웃에 대한 계명을 상기시키십니다. “ 너는 계명들을 알고 있지 않느냐? ‘살인해서는 안 된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횡령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마르10,19) 인간이 살아가면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것들이 바로 이런 계명들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다른 이의 생명을 내가 좌지우지 않는 것, 다른 이의 재물을 내가 함부로 하지 않는 것, 해야 될 말과 하지 말아야 될 말을 구분하며, 거짓 증언을 하지 않는 것, 부당하게 다른이의 재물을 가로채지 않는 것, 부모를 공경하는 것들”을 충실하게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깊이 있게 들어가보면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내가 살인을 해야 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닙니다. 말과 행동으로 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절망에로 떨어트리고, 좌절시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내 뱉는 말들이 상대방의 마음을 크게 아프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거짓증언도 마찬가지입니다. 증언대에서 상대방을 모함하기 위해 거짓증언을 하는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쉽게 하는 것들 중에는 “모르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누구에게 전해 듣고”하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전해 들었다 할지라도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다시 전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내 귀와 내 혀를 길들이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거짓증언을 하게 됨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횡령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내 것이 아닌 것을 함부로 하고,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횡령입니다. 그런데 그 반대로 내 것임에도 불구하고 관심없이 방관하고 방치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들, 내가 관리해야 하는데 관심 없는 것들, 그래서 망가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도 재산을 함부로 하는 것이니 결국 횡령 아니겠습니까?

 

사실 이 부자 청년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살인이나 도둑질, 횡령, 부모공경, 간음 등은 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빠져들면서, 그것을 범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웃과의 관계를 충실히 할 때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니, 더욱 충실하게 이 계명을 지켜 나가야 하겠습니다.

 

③ 다 지켜왔다고 말씀드리는 부자 청년

예수님께서는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뜻밖에 이렇게 말씀을 드립니다. “스승님, 그런 것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마르10,20)청년의 대답은 자신에 대한 자랑이 아니라 그의 성실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답으로 보입니다. 열심한 유다인들 중에는 자기가 하느님의 율법을 완전히 지키고 있다는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성실한 랍비들은 항상 율법의 전부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랍비들 가운데에는 인간의 윤리적 능력을 비관적으로 생각하고, 경건한 사람까지도 자기의 죄 때문에 그의 의로움 보다도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를 생각한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청년은 예수님께서 지적하신 모든 계명을 지켰다고 생각하면서도 부족한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을 의인이라고 생각하지만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④ 가진 것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고 따르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

그런 청년을 예수님께서는 대견해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르10,21)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그에게 완전한 구원의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재산을 버린다는 것은 새로운 목적을 위한 것입니다. 곧 예수님을 따르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율법을 지키는 일, 가난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베푸는 일, 모든 자연적인 청빈보다도 가치 있는 것입니다. 버렸기에 그 빈곳에 하늘의 보화를 채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봉사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 다하고, 놀고 싶은 것 다 놀고 나서 봉사를 하겠다고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마음으로 봉사를 하게 되면 “급하게 해야 될 공동체의 일”이 있을 때는 언제나 “부재중”이 됩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일이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봉사자들은 시간관리를 잘 해야 하고, 자신의 생각들을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 일할 수 있습니다.

 

⑤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가는 부자 청년

그런데 부자청년은 이 말씀을 듣고 당황했을 것입니다. 물론 그가 모든 것을 버리면 자유롭게 예수님을 따를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는 어떻게 결정을 할까요? 그는 순간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습니다.(마르10,22) 왜냐하면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이 부자청년은 솔직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왜냐하면 아닌 척 하지도 않고, 거짓으로 대답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재물에 눈이 어두워서 라기 보다는 인간의 기본적인 마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도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주님을 따르지 않을까요?

그런데 입으로는 “제가 가진 모든 것은 당신의 것이옵니다.”라고 고백을 하지만 실상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런 척”만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삶을 결코 하느님 나라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2.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운 이유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자청년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들이 버려야 할 것들, 내려 놓아야 할 것들의 목록”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놀랐을 것입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얘들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25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마르10,24-25)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버리지 못하면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빠져나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온 힘을 주어 붙잡고 있기에 못 나가는 것입니다. 부자라는 것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믿음보다는 재물에 대한 열정이 더 많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가 마음을 재물로 두고 있기에 하느님 나라에는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재물을 붙잡고 있기에 하느님 나라에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재물이 사람 마음을 좌지우지 한다는 것도 슬퍼집니다. 의인이 되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물에 대한 소유욕 때문에 발길을 돌려야만 했던 부자 청년. 그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하면서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성당에도 잘 나가고, 기도도 열심히 합니다. 그런데 막상 문제가 발생하면 그 신앙이 무너져 버립니다. 그렇게 부자청년처럼 돌아서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나의 모습이라고 인정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유를 달지 말고, 솔직하게, “저는 재물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수가 없는데요. 저는 그것만큼은 어려운데요...,” 그리고 “제가 능력이 없어서 못하겠습니다.”라고 말하지 말고, “사실 제가 할 마음이 없어서 못하겠습니다.”라고 솔직하게 고백해야 합니다.

 

① 깜짝 놀라는 제자들 - 누가 구원받을 수 있겠는가?

제자들은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마르10,26)라고 서로 말하였습니다.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렸다 할지라도 세상 것들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세상사에 관심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세상 재물에 마음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누구나 다 있습니다. 그것을 버린다는 것이 어려운 것임을 알기에 “그러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하고 서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잊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구원은 내가 무엇을 했기에 그 대가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 온전히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② 구원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

예수님께서는 부자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 말씀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보다는 자신에 대한 사랑이 큰 사람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사도들이 반문하는 것처럼 구원받을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마르10,27)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내가 어떤 선한 일을 해서 당연하게 구원을 요구하겠습니까? 그분께서 주시면 좋고 안주시면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안주실 리가 없습니다. 내가 해야 될 도리를 다하고 마지막에 “저는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고 겸손하게 고백하는 것. 그것이 바로 구원의 비결 아니겠습니까? 그저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의지하지 않고 하느님의 은총에 의지합니다. “모든 것을 놓고도 혹시 붙잡고 있는 것은 없는가?”를 고민하면서 주님의 은총에 의지한다면, 하느님께서는 넘치도록 후하게 채워 주실 것입니다.

 

③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

베드로 사도는 제자들을 대표해서 예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마르10,28) 그물을 버리고, 배를 버리고, 가족을 버리고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이제 제자들이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이제는 버렸다는 그 마음까지도 버려야 하지 않을까요?

 

④ 예수님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린 이들이 받게 될 상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받게 될 상을 말씀해 주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30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마르10,29-30)

보상을 바라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다보니 물질적인 것들이나 인간적인 것들을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다보니 예수님께서는 더 많은 축복을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예수님 때문에 가족을 버린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요? 복음을 전하는 사제나 수도자들을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그들은 집을 떠나 주님께서 원하시는 곳으로 향합니다. 그렇다고 가족을 완전히 잊은 것은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과 가족에 대한 일이 서로 상충될 때 이들은 모두 복음을 전하는 일을 우선적으로 선택합니다. 사실 우리가 가족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나를 낳아 주신 분이요, 키워 주신 분이요, 함께 피를 나눈 형제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이유들이 복음을 전하는 데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가정을 이차적으로 생각하는 형제자매들이 있습니다. 전례봉사를 하기에 명절에도 가족들과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성당 공동체와 함께 하는 이들이 바로 그런 이들입니다. 가족들이 여행을 간다 할지라도 “성당에서 하고 있는 봉사” 때문에 갈등하고, 마침내 성당 일을 먼저 하는 이들도 바로 그런 이들입니다. 이러한 열정이 있기에 신앙공동체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입니다.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십니다.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마르10,31)라는 말씀입니다. 첫째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을 말하고 꼴찌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부자청년이 지금은 모든 것을 잘 지키고 살아가고 있지만 재물에 연연하면서 살아간다면 그는 결국 구원에서 멀어질 것입니다. 사도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지만 엉뚱한 것에 집착하거나 잘못된 이상을 품는다면 그들 또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주님 뜻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구원의 문에 바짝 다가가 있은 것입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 제자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내가 그것을 차지할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분께서 나를 사랑하시기에 넘치고 후하게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말씀 중에서 나에게 기쁨으로 다가오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왜 그 말씀이 기쁨으로 다가오고 있습니까?

 

② 내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버린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그리고 버렸다고 생각하는데 버리지 못한 것, 그래서 참되게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③ 내가 부자청년이었다면 예수님의 가르침에 어떻게 응답했을까요? 나의 삶은 어떻게 응답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4. 실천사항

① 하기로 약속했으면 최선을 다해서 하기

② 변명하지 않기

③ 내가 버려야 하는 것들의 목록 정하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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