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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요한신부
작성일 2013-12-28 (토) 14:05
분 류 성탄
첨부#1 성가정축일_우리가족_보기.hwp (16KB) (Down:654)
ㆍ추천: 0  ㆍ조회: 18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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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가정의 성가정 지수 알아보기 ”

우리 가정은 성가정에 얼마나 가까울까요?

1. 우리 가족은 가족 구성원 모두가 서로를 하느님께서 보내 주신 하느님의 사람으로 받아들입니다. 가족 모두가 하느님의 사람이고 하느님의 자녀들이기에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가 서로를 존중합니다.

①그렇다. ②그럴 때도 있다. ③전혀 아니다

 

2. 우리 가족은 서로가 신뢰하고, 끝까지 믿어주며, 사소한 말에도 경청해 줍니다.

①그렇다. ②그럴 때도 있다. ③전혀 아니다

 

3. 우리 가족은 갈등이나 문제가 생기면 함께 기도하며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큰소리가 오가거나 누군가를 탓하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①그렇다. ②그럴 때도 있다. ③전혀 아니다

 

4. 우리 가족은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려 하지 않고, 장점만을 바라보며 살아가려고 합니다.

①그렇다. ②그럴 때도 있다. ③전혀 아니다

 

5. 우리 가족은 대화할 줄을 압니다. 내 뜻만을 강요하지 않고, 서로의 마음을 헤아려 줍니다.

①그렇다. ②그럴 때도 있다. ③전혀 아니다

 

6. 우리 가족은 서로를 위해서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 주어도 계산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늘 가족을 위해 기도하고, 함께 하려 합니다.

①그렇다. ②그럴 때도 있다. ③전혀 아니다

 

7. 우리 가족은 상대방을 내 틀에 맞추려고 노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습니다.

①그렇다. ②그럴 때도 있다. ③전혀 아니다

 

8. 우리 가족은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고, 함께 기도하며, 기쁘게 신앙생활을 해 나갑니다.

①그렇다. ②그럴 때도 있다. ③전혀 아니다

 

9. 우리 가족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배우고, 더 나은 가정을 꾸미기 위해 가족상담도 받고 있습니다.

①그렇다. ②그럴 때도 있다. ③전혀 아니다

 

10. 우리 가족은 서로가 서로를 자랑스러워합니다.

①그렇다. ②그럴 때도 있다. ③전혀 아니다

 
이름아이콘 관리자
2013-12-28 14:06
그렇다 쪽으로 가면 갈 수록 가정에는 웃음이 넘쳐납니다. 그러나 아니다 쪽으로 가면 갈 수록 웃음은 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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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토론 및 신앙권면
작성일 2013-11-09 (토) 14:46
분 류 교안자료실
첨부#1 친구들과_함께_믿음에_대해서_이야기해_봅시다.hwp (48KB) (Down:260)
ㆍ추천: 0  ㆍ조회: 3412      
IP: 14.xxx.72
http://missa.or.kr/cafe/?dominusdaysc3.932.
“ 친구들과 함께 믿음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기 ”

친구들과 함께 믿음에 대해서 이야기해 봅시다.

1. 선택 ①

한 형제가 자신과 가까운 이에게 신앙을 권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나는 나 자신을 믿는다네.”

하며 거절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형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 도박을 한번 해 보지 않겠는가? 하느님이 계신 쪽에 걸거나, 하느님께서 안 계신 쪽에 걸거나 둘 중의 한 곳에 자네의 모든 것을 걸어보는 것일세.”

그러자 그는

“나는 하느님께서 안 계시다는 쪽에 걸고 살겠네.”

하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형제는 이렇게 설명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쪽이 확률이 좋으냐면 하느님께서 계신 쪽에 거는 것일세.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계신 쪽에 걸고 열심히 살아가면 세상에서는 존경받는 사람이 될 것이고, 하느님께로 부터는 큰 은총을 받게 되기 때문이지. 그리고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는다 하더라도 손해 보는 것은 없다네. 그런데 하느님께서 안 계신 쪽에 걸고 대충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며 많은 잘못을 저지르지. 하느님께만 잘못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많은 잘못을 하지. 자기만 알고, 이기적이고..., 그렇게 좋은 평판은 듣지 못한다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죽어서 하느님이 안 계시면 문제가 안 되지만, 하느님께서 계시다면 완전히 망하는 것일세.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계시다는 쪽에 걸고서 살아가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네.”

그러자 그 친구는 한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느님을 믿는 것이 확률이 더 높군. 그래! 그러면 오늘부터 신앙을 가져 보도록 하지. 나를 잘 도와주게.”

 

2. 선택 ②

교리 시간에 선생님께서 친구들에게 질문을 했습니요. “여러분! 천국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지요?” 그랬더니 “①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② 사랑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③ 용서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④ 주일 학교에 열심히 나와야 합니다. ⑤ 부모님 말씀 잘 들어야 합니다.”등 여러 가지로 답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장난꾸러기 학생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죽어야 합니다.” (썰렁~)

 

선생님께서 학생들에게 또 질문을 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중에서 천당 가고 싶은 사람 손들어 보세요!”

그러자 모든 학생들이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 친구만 손을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께서 그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요한이는 천당에 가고 싶지 않나보지?”

그러자 요한이가 말했습니다.

“엄마한테 물어봐야 하는데요.”^*^

 

3. 어떤 것이 이익일까요? 비신자 친구들에게 문제를 내 보세요. 친구들에게 “①하느님께서는 계시다. ②하느님께서는 계시지 않다.” 어떤 쪽을 선택하겠냐고 물어보시고, 그 친구들의 선택에 답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① 하느님이 계신 쪽에 걸겠습니다.

하느님께서 계신 쪽에 걸고 열심히 살아가면 세상에서는 존경받는 사람이 될 것이고, 하느님께로부터는 큰 은총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는다 하더라도 손해 보는 것은 없습니다. 내 삶을 성실하게 살아왔고, 부끄러움 없는 길을 걸어왔기 때문입니다.

믿는 이들에게는 전체가 중요합니다. 영원한 생명에 비하면 지금 이 순간은 아주 작은 점(순간)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나는 가끔 이 순간만을 생각하면서 살아갑니다. “뭐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되지...” 하지만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끝나는 문제는 결코 아니라는 것을 오늘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죽어서 하느님 앞에 섰을 때, “그래! 너는 세상에 살아가면서 이런 저런 일을 많이 했구나. 참 잘했구나.”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②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다는 쪽에 걸겠습니다.

하느님께서 눈에 보이시지 않으니 하느님은 안 계시는 것이고,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살고 싶습니다. 하느님께서 안 계신 쪽에 걸고 대충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느님 두려운 줄을 모르기에” 잘못을 많이 저지릅니다. 그리고 세상에서는 “자기만 알고, 이기적이고...,”그렇게 좋은 평판은 듣지 못합니다. 그런데 죽어서 하느님이 안 계시면 문제가 안 되지만, 하느님께서 계시다면 완전히 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계시다는 쪽에 걸고서 살아가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해 주고, 친구들에게 함께 믿자고 권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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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참된 기도
작성일 2013-10-24 (목) 13:15
분 류 다해
첨부#1 주일복음나눔지_49호-다해_연중_제_30주일.hwp (144KB) (Down:234)
ㆍ추천: 0  ㆍ조회: 3263      
IP: 14.xxx.72
http://missa.or.kr/cafe/?dominusdaysc3.931.
“ 다해 연중 제 30주일;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 ”

하느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

1. 말씀읽기: 루카 18,9-14

9 예수님께서는 또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사이였고 다른 사람은 세리였다. 11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12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13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1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오늘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를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기도가 무엇인지를 알려 주십니다. 기도는 결코 자랑이 아닙니다.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리는 것이며, 모든 것을 알고 계신 주님께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고백하며 자비를 청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나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주제는 아니지만, 자신의 의로움과 정당함을 기도라고 착각하며 자랑과 교만에 빠져 있는 바리사이의 모습과 늘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며 용서를 청하는 세리의 모습. 이 두 사람의 모습 안에서 서로 보완되어야 할 부분을 발견해 봅시다. 바리사이가 그렇게 살고 있지만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하며 기도했다면 얼마나 큰 칭찬을 들을까요? 그리고 세리가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하면서 삶을 변화시켜 바리사이가 하고 있었던 것을 말없이 하게 된다면 얼마나 큰 기쁨을 주님께 드릴까요? 주님께 기쁨을 드리는 기도를 하는 신앙인이 되기를 결심하며 오늘 말씀을 묵상해 봅시다.

 

2.1. 바리사이와 세리의 비유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루카19,9)을 가르치시기 위해, 교만 가득한 기도를 하고 있는 바리사이와 자신의 가슴을 치며 기도하는 세리의 이야기를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무리 의로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내 스스로 나팔을 불어서는 안 됩니다. 신앙인은 겸손해야 합니다. 겸손이 빠지면 참으로 볼품없는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자신들이 스스로 의롭다고 자부하면서 살아온 사람들이었습니다. 물론 그들은 열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들의 입으로 나팔을 불어 버리니 그들의 의로움은 모두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자신을 돌아볼 줄 모르면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된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①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온 두 사람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입니다. 하느님께 자신의 마음을 드리는 것이고, 하느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는데, 하나는 바리사이였고 또 하나는 세리였습니다(루카18,10). 바리사이는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들로서 예수님 시대에 그 수효가 육천 명 가량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세리는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사림인데, 당시 로마의 식민지 상황에서 유다인들에게 세금을 걷어서 로마에 바치니 로마의 앞잡이로 보였고, 또 세리들은 돈을 만지니 으레 부정축재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이 있었습니다. 또한 무역을 담당하며 세금을 징수하는 세관원들은 외국인들과 자주 접촉하기 때문에 직업상 죄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② 바리사이의 기도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루카18,11)

이 바리사이는 자신이 강도가 아님을, 불의를 저지르는 자가 아님을, 간음하는 자가 아님을 감사드렸습니다. 그리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음을 감사드렸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기도가 아니라 교만한 자기 자랑이고, 자기만족입니다. “꼿꼿이 서서”라는 표현은 그가 얼마나 교만에 차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뒤에서 기도하고 있는 세리를 돌아다보면서 자신은 세리와 같은 죄인이 아님을 강조하는 그의 얼굴에는 교만과 멸시가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라는 바림사이의 말 속에서 스스로 죄를 만들어서 벌을 받으려고 악을 쓰는 사람과 같아 보입니다. 하느님께서 이런 기도를 즐겨 받으실 리가 없다는 것을 왜 모를까요?

 

바리사이는 또 자신이 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자랑을 하기 시작합니다. 나팔을 불기 시작합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루카18,12) 이 바리사이는 열심히 살고 있음에는 틀림없습니다.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며,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바리사이는 외적으로 자신이 행하고 있는 것만을 말하고 있습니다. 두 번의 단식을 통해서 자신이 가난한 이들을 돌보고 있는 것이나, 겸손한 마음으로 형제자매들을 섬기고 있는 것이나, 믿음이 부족한 이들을 권면하고, 신앙에로 이끌고 있는 것등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세리를 무시하는 것으로 보아 그가 하고 있는 것은 자기 만족을 위한 것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이것은 하느님께 시위하는 것이고, 하느님께 무례를 범하는 것이고, 자기 자신을 망가뜨리는 것입니다.

 

이 바리사이의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매일 미사에 참례하는 냉담자”가 바로 이 바리사이의 모습입니다. 이들은 매일 미사에 참례하고 있지만 복음을 전하는 일이나 봉사를 하는 일, 나눔을 하는 일에는 인색합니다. 그저 매일 미사에만 참례합니다. 병자를 돌보지도 않고, 그저 하루 일과 중의 하나가 미사에 참례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가슴 깊이 들었다면, 주님의 성체를 모셨다면 분명 어떻게든 그 사랑이 행동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그의 신앙생활은 그저 습관일 뿐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매일 미사에 참례하는 냉담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③ 세리의 기도

바리사이가 자신이 하고 있는 단식과 십일조를 바치는 행위에 대해서 자랑스럽게 말하고, 자신은 의로운 사람임을 강조하며 하느님께 불경을 저지를 때,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루카18,13)라고 기도합니다. 세리는 하느님 앞에 감히 얼굴도 쳐들지 못하고 통회의 표시로 가슴을 칩니다. 이는 그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하느님 앞에 드러내는 것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큰 죄를 짓고 사는 죄인인지를 알고 있는 것이며, 하느님의 자비가 없다면 결코 구원받을 수 없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입에서는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라고 탄식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는 이들은 자신의 죄를 뉘우치며 탄식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자비를 청합니다. 하느님 앞에서 이 탄식 외에 또 어떤 말이 나올 수 있을까요? 내가 나를 알면 알수록, 내가 내 자신을 돌아보면 돌아볼수록 자신의 가슴을 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혹시 기도한다면서 죄를 짓고 있지는 않습니까?

 

④ 세리의 기도를 칭찬하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를 말씀하시고 난 다음에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루카18,14)고 말씀을 하십니다. 왜냐하면 세리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알았고, 그래서 자신을 낮추었기 때문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오로지 희망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바리사이는 옳게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자신이 자신을 옳게 살고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자신은 의인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판단은 사람의 판단과는 다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올바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이것을 가르쳐 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겸손한 기도, 자신을 낮추는 이를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받아들이심을 가르쳐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죄를 뉘우치는 이에게는 용서를 베풀어 주십니다. 아무리 큰 죄의 늪에 빠졌다 하더라도 깊이 뉘우친다면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를 체험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루카18,14)라고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나를 겸손하게 돌아보고, 주님께 자비를 청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찰을 통하여 나의 부족한 부분을 끊임없이 바꿔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2.2. 기도란 무엇인가?

기도란 무엇입니까? 기도는 내가 하느님께 마음을 드리는 것이고, 그분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하느님과의 대화요 영혼의 호흡이라고 말합니다. 물속에서 잠수를 하다가도 숨이 차면 위로 올라와야 합니다. 신선한 공기를 마셔야 만이 다시 물 아래로 내려갈 수 있습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쁜 일상생활이 물속 이라면 나는 숨을 쉬기 위해서 수면 위로 올라와야 합니다. 그렇게 숨을 쉬지 않으면 나는 결국 죽어버릴 것입니다. 즉 하느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라도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신앙인은 하느님과 대화를 해야 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말씀하고자 하시지만 내가 듣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참된 신앙인은 하느님과 대화를 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2.3. 왜 기도해야 하는가?

만일 기도하지 않으면 “갑자기 숨이 막히고, 배가 고프고...,” 이런 증상이 나타난다면 기도 안하고 못 배길 것입니다. 하지만 기도하지 않아도 이런 증상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표시도 잘 안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신앙인이 기도하지 않으면 엄청난 표시가 납니다. 제자들이 마귀를 쫓아내지 못하자 조용한 시간에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왜 저희들은 마귀를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예수님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밤을 새워서 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기도를 하셨습니다. 즉 하느님 아버지와 밤을 새워서 대화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신 것입니다.

 

① 좋으니까 해야 합니다..

좋은 사람과 함께 있으면 좋은 것처럼, 기쁨이 밀려오고, 축복이 밀려오니까 기도해야 합니다.

 

② 나 자신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즉 나 자신이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합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여라.”(루가22,40). ⇒ 기도 안하면 대번 표시가 납니다. 매 순간 선택의 순간에 신앙의 힘이 없으면 유혹에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③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얘기 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입니까?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사랑하는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내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하느님께서 무엇을 좋아하시는지를 알아내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늘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찾기 위해서,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나 또한 그렇게 해야 합니다.

 

④ 형제를 사랑하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나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세상을 위한 기도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침상에 누워있는 중풍병자를 고쳐 주실 때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의 믿음을 보시고 치유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를 침상에 뉘어서 데리고 온 사람들의 믿음을 보고서 치유해 주셨습니다.


2.4. 기도의 효과

예수님께서는 게세마니에서 피땀을 흘리시면서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소서. 그러나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 예수님께서는 피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셨지만 상황이 바뀌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기도의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통하여 당당히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을 얻으셨습니다. 기도는 상황을 바꿔놓기도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상황 속에서도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입니다.

 

노벨 생리학상 수상자인 알렉시스 카렐은 다음과 같이 발표했습니다.

“기도가 인간의 영혼과 육체에 미치는 영향은 인체 내부의 선을 통해 호르몬과 같은 물질(내분비물)의 분비 작용이 증진되는 것에서 볼 수 있다. 의사인 나는 심한 우울증 환자나 어떠한 의학으로도 도저히 치료 불가능한 환자들이 고요히 기도를 함으로써 자신의 병마와 투쟁하여 승리하는 모습들을 종종 보았다...,” 그런데 효과를 보려면 스스로 노력을 기울이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약을 먹어야 만이 약 효과를 보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바리사이의 기도와 같이 자신을 자랑하거나 하느님께 불경을 드리는 헛된 행동이 아니라, 세리의 기도처럼 참된 기도를 바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기도해야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기도해야 나 자신이 변화될 수 있습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말씀 중에서 나에게 기쁨으로 다가오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왜 그 말씀이 기쁨으로 다가오고 있습니까?

 

② 바리사이의 기도와 세리의 기도를 생각해 보면서 내가 하느님께 기도드릴 때의 모습을 함께 이야기해 봅시다. 어떻게 기도하고 계십니까?

 

③ 세리는 하느님께 어떤 특별한 것을 청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가슴을 치면서 죄 많은 자신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내가 가슴을 칠 일은 무엇이며, 하느님의 자비를 바라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4. 실천사항

① 겸손하게 기도하기

②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비방하지 않기

③ 성실하게 살아가며 계명을 지키는 삶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랑하지 않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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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
작성일 2013-10-19 (토) 19:31
분 류 다해
첨부#1 학생주보49-_다해_연중_제_30주일.hwp (144KB) (Down:271)
ㆍ추천: 0  ㆍ조회: 3064      
IP: 14.xxx.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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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해 연중 제 30주일, 겸손한 기도 ”

하느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

1. 말씀읽기: 루카 18,9-14

9 예수님께서는 또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사이였고 다른 사람은 세리였다. 11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12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13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1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루카18,9) 겸손한 삶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두 사람의 기도를 예를 드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보면서 나는 어떻게 기도하고 있는지 돌아봅시다. 바리사이처럼 기도하고 있는지, 아니면 세리처럼 기도하고 있는지...,

아! 기도를 안 하신다구요? 그럼 안 되죠.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은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신앙인의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기도를 통해 신앙인들은 더욱 겸손한 모습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만하고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기도하지 않는 이들이 분명한 것입니다.

 

문제 1: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어떻게 하면 그렇게 변할까요?

① 자신은 아무런 잘못도 없고, 열심하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착각하는 이들은 자신은 문제없고 다른 이들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변하는 이유는 참되게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깊이있게 자신을 돌아보며 주님께 자비를 청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② 자신이 아무리 의로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스스로를 자랑하며 나팔을 불어서는 안 되는데 겸손하지 못하기에 자기 자신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교만은 자기 자신은 높이 평가하고 다른 이들은 낮게 평가하면서 착각에 빠지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늘 자신이 부족함을 생각하며 노력하지 않으면 남들을 업신여기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신앙인은 겸손해야 합니다. 겸손이 빠지면 참으로 볼품없는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자신을 돌아볼 줄 모르면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된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문제 2: 다음 중에서 겸손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① 누렁이는 미사 시간에 성가를 잘 불렀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께서 누렁이를 칭찬해 주셨습니다. “누렁이는 성가를 잘 부르는구나!” 그러자 누렁이는 말했습니다. “에헴~ 제가 친구들보다는 성가를 잘하지요?”^*^

② 유리는 수학을 잘합니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유리에게 “유리야! 너는 수학을 잘하니까 동생 좀 가르쳐 주렴!”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리는 기쁘게 “예!”하고 대답하고 동생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③ 건호는 “게임”을 아주 잘합니다. 그런데 종숙이와의 경기에서 그만 종숙이에게 지고 말았습니다. 친구들이 “와~ 종숙이가 이겼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건호는 “종숙이가 나보다 잘하니까 이긴 거야!”라고 말하며 종숙이를 칭찬해 주었습니다.

 

문제 3: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한 사람은 바리사이였고 다른 사람은 세리였습니다.”(루카18,10) 바리사이와 세리는 누구입니까?

바리사이는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들로서 예수님 시대에 그 수효가 육천 명 가량 되었다고 합니다.

세리는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사림인데 세리들은 으레 부정축재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역을 담당하며 세금을 징수하는 세관원들은 외국인들과 자주 접촉하기 때문에 직업상 죄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문제 4: 기도란 무엇입니까?

①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입니다. 하느님께 자신의 마음을 드리는 것이고, 하느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② 기도는 내가 하느님께 마음을 드리는 것이고, 그분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하느님과의 대화요 영혼의 호흡이라고 말합니다.

 

물속에서 잠수를 하다가도 숨이 차면 위로 올라와야 합니다. 신선한 공기를 마셔야 만이 다시 물 아래로 내려갈 수 있습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쁜 일상생활이 물 속이라면 나는 숨을 쉬기 위해서 수면 위로 올라와야 합니다. 그렇게 숨을 쉬지 않으면 나는 결국 죽어버릴 것입니다. 즉 하느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라도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신앙인은 하느님과 대화를 해야 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말씀하고자 하시지만 내가 듣지를 않으면 나는 하느님의 뜻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참된 신앙인은 하느님과 대화를 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문제 5: 왜 기도를 해야 합니까?

① 좋으니까 해야 합니다. 좋은 사람과 함께 있으면 좋은 것처럼, 기쁨이 밀려오고, 은총이 밀려오니까 기도해야 합니다.

② 나 자신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즉 나 자신이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여라.(루가22,4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기도 안하면 대번 표시가 납니다. 매 순간 선택의 순간에 신앙의 힘이 없으면 유혹에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③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얘기 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입니까?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사랑하는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내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④ 형제자매들을 사랑하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나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세상을 위한 기도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침상에 누워있는 중풍병자를 고쳐 주실 때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의 믿음을 보시고 치유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를 침상에 뉘어서 데리고 온 사람들의 믿음을 보고서 치유해 주셨습니다.


문제 6: 기도의 효과는 무엇입니까?

① 기도를 하게 되면 지금 주어지는 어려움을 이겨 낼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② 기도를 하게 되면 내가 해야 되는 것들을 기쁘게 할 수 있습니다.

③ 기도를 하게 되면 겸손해지게 됩니다.

④ 기도를 하게 되면 마음이 편안해 지고, 하느님을 더욱 사랑하게 됩니다.

 

그런데 효과를 보려면 스스로 노력을 기울이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약을 먹어야 만이 약 효과를 보지 않겠습니까? 바리사이의 기도와 같은 엉뚱한 소리가 아니라, 세리의 기도처럼 참된 기도를 바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기도해야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는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문제 7: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간 바리사이는 어떻게 기도하였습니까?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12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루카18,11-12)

② 바리사이는 스스로 올바른 사람임을 자처하였습니다. “꼿꼿이 서서”라는 표현은 그가 얼마나 교만에 차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뒤에서 기도하고 있는 세리를 돌아다보면서 자신은 세리와 같은 죄인이 아님을 강조하는 그의 얼굴에는 교만과 멸시가 가득 차 있습니다. 그는 기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랑을 한 것이고, 하느님 앞에 교만을 떤 것입니다.

 

바리사이는 기도하러 와서 죄를 짓고 가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이것은 하느님께 시위하는 것이고, 하느님께 무례를 범하는 것이고, 자기 자신을 망가뜨리는 것입니다.

 

문제 8: 세리는 성전에서 어떻게 기도하였습니까?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습니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루카18,13)

②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멸시를 받고 있던 세리는 멀찍이 서서 감히 얼굴도 쳐들지 못하고 통회의 표시로 가슴을 쳤습니다. 그는 자신을 알고 있었고, 하느님께 자비를 청했던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라는 탄식 외에 또 어떤 말이 나올 수 있을까요? 내가 나를 알면 알수록, 내가 내 자신을 돌아보면 돌아볼수록 자신의 가슴을 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어떻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혹시 기도한다면서 죄를 짓고 있지는 않습니까?

문제 9: 예수님께서는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루카18,14)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① 바리사이는 하고 있는 일은 옳았지만 너무 교만했고, 남을 비난하며 단죄했기에 의로운 사람이 못 된 것입니다.

② 세리는 비록 죄가 많이 있었다 할지라도 참회하고 용서를 청했기에 하느님께서 그를 용서해 주셨고, 의롭게 되었습니다.

 

문제 10: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루카18,14)고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하면 나를 낮추는 사람, 겸손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내 행동을 변화시켜 주님 앞에 좋은 모습을 간직할 수 있을까요?





 

3. 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말씀 중에서 나에게 기쁨으로 다가오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왜 그 말씀이 기쁨으로 다가오고 있습니까?

 

② 바리사이의 기도와 세리의 기도를 생각해 보면서 내가 하느님께 기도드릴 때의 모습을 함께 이야기해 봅시다. 나는 어떻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③ 세리는 하느님께 어떤 특별한 것을 청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가슴을 치면서 죄 많은 자신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내가 가슴을 칠 일은 무엇이며, 하느님의 자비를 바라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4. 알림

① 겸손하게 기도하기

② 친구들의 부족한 면을 들추어내지 않고, 비난하지 않기

③ 하느님의 사랑을 굳게 믿기

 

5. 말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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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수님을 향한 태도
작성일 2013-08-17 (토) 13:52
분 류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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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해 연중 제 20주일: 불을 지르러 오신 예수님 ”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1. 말씀읽기:루카12,49-53

49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50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51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52 이제부터는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 세 사람이 두 사람에게 맞서고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맞설 것이다. 53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딸이 어머니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 갈라지게 될 것이다. ”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과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의 생각과 말과 행동은 전혀 다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생각과 말과 행위를 하려고 하고,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려 하기 때문입니다. 옳은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옳지 않은 것이 어떤 것인지를 분명하게 알고 있기에 생각이 다르고 행동이 다른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믿지 않는 이들과는 갈등이 종종 생겨나게 됩니다. 왜냐하면 옳지 않은 것에 동조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는 옳은 것을 옳다고 말하고 있는지, 그리고 옳은 것을 말하는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깊이 묵상해 봅시다.

 

문제 1: 예수님께서는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루카12,49)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불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① 하느님 나라에 대한 열정과 자기 희생

② 구원에 대한 갈망을 통한 자신의 삶의 변화

③ 이곳 저곳을 다 태워버리는 불 ^*^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구원을 위해 몸소 인간이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며 당신의 죽음으로 세상에 평화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놓으신 것처럼, 신앙인들은 이 평화를 받아들이기 위해 다가오는 유혹들을 이겨내고, 불의에 당당하게 저항하며, 진리를 위해 목숨을 내어 놓아야 합니다.

 

문제 2: “불”하면 떠오르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① 뜨겁다: 엄마~ 엄마~ 엉덩이가 뜨거워~.

② 태운다: 필요 없는 것들을 태워서 없애 버립니다.

③ 맛있는 요리를 할 수 있다: 고기를 먹을 때 불이 없다면 어떻게 먹을까요?^*^

④ 모양을 바꾼다: 단단한 쇠도 불을 가해 녹여서 다른 모양을 만들 수 있습니다.

⑤ 순수하게 한다: 순수한 금덩어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불을 가하여 불순물을 태워야 합니다.

⑥ 새 생명을 준다: 메마른 대지에 불이나면 모든 것이 타 버리지만 다시 그곳에 새 생명이 자라나게 됩니다.

⑦ 열정적이다: 불길처럼 타오르는 열정은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문제 3: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불은 어떤 “불”일까요?

① 산을 태운 “불”과 엉덩이에 난 “불”

아현이와 정현이는 방학 동안 놀기만 했다고 부모님들께 꾸중을 들었습니다. 둘은 만나서 뒷산 공원으로 올라갔습니다. 정현이는 “우리 심심한데 불장난이나 할까?”아현이는 “그래! 엄마한테 받은 스트레스를 불로써 풀어볼까?”하며, 둘은 나뭇가지를 모아서 불을 지폈습니다. 그런데 바람이 불어서 불씨가 그만 아현이 옷에 붙었습니다. 정현이는 아현이의 옷에 붙은 불을 꺼 주다가 자신의 옷에도 불이 붙었습니다. 그렇게 둘은 옷을 다 태우고 울면서 집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부모님한테 또 혼났습니다. 누가 ⓐ“불”장난 하라고 했어? 그리고 엉덩이에 ⓑ“불”이 나도록 맞았습니다.

 

② 화가 나서 타오르는 “불”

훈이와 종선이가 떡볶이 집에서 오뎅 4개와 핫도그 2개를 먹었습니다. 그런데 계산을 하려고 하는데 주인 아저씨가 오뎅 12개와 핫도그 6개를 먹었다고 하면서 돈을 더 내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아저씨는 계속 우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훈이가 말했습니다. “종선아! 나 ⓐ열불이 나서 도저히 못 참겠다. 어떻게 저렇게 거짓말을 하지?”그러자 종선이가 말했습니다. “아저씨! 저 ⓐ열불이 나서 못 참겠어요. 하지만 저는 성당에 다니는 아이라 참겠습니다. 여기 돈이 있습니다. 사업 번창하세요!”^*^

 

③ 예수님을 향한 타오르는 “불”

종숙이는 첫영성체를 준비하면서 다른 친구들과 함께 평일미사에 참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문을 외우고, 묵주기도를 하다 보니 예수님의 사랑이 느껴졌고, 예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기도를 하면서 종숙이는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불타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전에는 오빠가 때리면 같이 덤비고 울고 했는데, 이젠 오빠가 때리거나 구박하더라도 웃으면서 참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빠에게 더 잘 해 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불타오르니 그 정도는 쉽게 할 수 있었고, 기도하는 것이 너무도 기뻤습니다.

 

문제 4: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고 말씀을 하시면서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①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겠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하느님 나라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의 굳은 마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②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기 보다는 자신이 더 영광을 받으려 하며, 하느님께 나아가고자 하는 이들을 가로막고, 그들에게 길을 인도해 주지도 않는 이들의 모습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③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들을 계속해서 보내셨지만 이 백성은 예언자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박해하고,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오히려 거짓예언자가 판을 쳤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믿음이 없는 그들의 태도를 가리키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 돌아선 이들의 마음에 믿음의 불을 지르러 오신 것입니다. 결단을 내리라고 칼을 주러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지르시는 불에 나를 맡겨야합니다. 내 안에 쓸데없는 것들을 태워 버리고, 무딘 마음을 다시 새로워지게 하며, 다시 순수한 믿음과 열정을 가지고 주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구원을 차지하려고 노력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문제 5: 예수님께서는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루카12,50)라고 말씀하시면서 세상에 어떻게 불을 지르실 것인지를 예고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받으실 고통의 세례는 무엇일까요?

① 수난과 죽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수난과 십자가의 죽음으로 이 세상에 참된 평화를 주십니다. 그리고 부활을 통하여 이 세상에 구원의 불을 지르십니다. 그러나 수난과 십자가의 죽음(메시아의 고통)의 고통을 잘 알고 계셨기에 그 고통을 이겨내시기 위해 늘 아버지 하느님과 함께 하셨습니다.

② 세례자 요한에게서 받으셔야 하는 세례입니다. 하잘 것 없는 인간인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는 것은 하느님이신 예수님께는 참으로 힘든 일이었습니다. 안 받으려고 하셨지만 베드로 사도가 자꾸 권유해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

 

문제 6: 예수님께서 지르신 불을 통하여 사람들은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로 세상에 불을 지르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체험한 이들과 믿음을 가진 이들에게는 구원의 기쁜 소식이었고, 백성의 지도자들에게는 어떻게 해서든지 감추고자 하는 진실이었습니다. 그리고 구원을 갈망하는 이들에게는 도전이었습니다.

②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 백성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이기적이고 악한 마음들이 예수님을 통하여 드러나자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님의 불을 끄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지르신 불을 통하여 참된 목자를 만나게 되었고,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체험하게 되었으며, 자신들의 변화된 삶(세리와 창녀들의 회심 등)을 통하여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문제 7: 예수님께서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루카12,51)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어떤 의미입니까?

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들과 예수님을 죄인으로 단죄하는 사람들은 서로의 태도가 달랐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든지 믿지 않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고, 각자의 선택은 서로를 갈라놓게 된다는 것입니다.

② 예수님께서는 여기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저기서는 저렇게 말씀하시면서 공동체를 분열시키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

 

신앙생활을 하면서 큰 평화를 체험합니다. 그런데 주님을 바라보지 않으면 신앙생활을 하면서 평화가 없습니다. 오히려 분열이 생겨 편이 갈리고, 서로 시기질투하게 되는 경우도 생겨납니다. 사람에게 실망하며 갈등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하는 부분에서는 망설이게 되며, “주님을 몰랐더라면 이런 고민은 하지 않았을 텐데.”하면서 등을 돌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지도 못하고 저렇게 하지도 못하는 난처한 상황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만을 바라볼 때는 큰 평화가 밀려옵니다. 갈등과 서운함은 그저 분심일 뿐이고, 형제자매들이 나에게 평화를 주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에게 평화를 주신다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역경 속에서 오히려 더 큰 평화를 얻게 됩니다.

 

문제 8: 예수님께서는 “이제부터는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 세 사람이 두 사람에게 맞서고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맞설 것이다. ”(루카12,52)고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① 주님께 대한 태도가 다르면 행동도 달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신앙인은 주일에 성당에 가려하고, 비신앙인은 주일에 가족과 함께 다른 것을 하려고 할 때 갈등이 생겨나게 됩니다.

② 성당 가지 않으려는 아들을 둔 어머니는 아들을 꾸짖고, 성당 다니지 않는 아버지는 성당 가지 않으려는 아들에게 자유를 주라고 말하며 신앙을 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딸이 어머니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 갈라지게 될 것이다.”(루카12,53)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서로가 주님께 대한 다른 태도를 보이게 되는데, 주님 편에 선 사람들의 선택은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비신자가 가정에 있는 경우에는 신앙인들은 더욱 멋지게 살아가야 합니다. 내 멋진 삶으로 가족들에게 신앙의 기쁨을 전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가 되어 주님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문제9: 다음 중에서 예수님의 사랑의 불로 타올라 변화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친구는 누구입니까?

① 시험 때만 되면 성당에 빠지는 학승이는 굳은 결심을 하고, 평상시에 열심히 공부하고 시험 때라 할지라도 성당에 다니겠다고 굳은 다짐을 했습니다. 그리고 한 번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성적도 많이 올라갔습니다.

② 성당에만 오면 누렁이를 괴롭히던 흰둥이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달재에게 용서를 청하고, 힘 약하고, 얼굴 못생긴 누렁이를 놀리거나 때리지 않았으며, 미사에 오면 친절하게 대해주었습니다. 성당에 가기가 싫었던 누렁이도 흰둥이가 잘해주자 성당 가는 것이 기뻤습니다.

③ 친구가 없다고 늘 속상해하고, 성당 가도 자신을 반겨주는 사람이 없다고 성당에 가끔씩 나오는 영길이는 예수님의 말씀을 가슴에 품고,“내가 변하면 되겠구나!”생각하고 친구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친구들도 영길이에게 마음을 열었고, 영길이는 더욱 기쁘게 친구들과 어울리고, 성당 가는 것이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문제 10: 내가 예수님의 사랑의 불로 타올라 변하게 된다면 어떤 모습으로 변하게 될까요? 어떻게 변화되고 싶으십니까?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불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안에 있는 불신을 태워 버리고, 주님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야 합니다. 그렇게 확신에 찬 삶을 살아갈 때 나는 옳은 것은 옳다고 당당하게 말하며, 주님 편에서 주님 안에서 주님과 함께, 주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화를 누리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말씀 중에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은 어떤 말씀입니까? 그 말씀이 와 닿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② 신앙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잘 하는 것일까요?

 

③ 신앙생활 하면서 내가 태워 버려야 할 것들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신앙생활 하지 않는 가족이 있다면 어떻게 도와주고 이끌어 주어야 할까요?

 

4. 실천사항

① 주님의 마음을 알아드리기 위해 더욱 깊이 기도하기

② 참된 평화를 누리기 위해 버릴 것은 버리기

③ 친구들의 모범적인 생활을 본받고 따라하려 하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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