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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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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
작성일 2012-03-31 (토) 16:14
분 류 이사야서
ㆍ추천: 0  ㆍ조회: 1839      
IP: 121.xxx.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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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야50,4-11 ;'주님의 종'의 셋째 노래 ”
 

'주님의 종'의 셋째 노래

1. 말씀읽기: 이사야50,4-11

4 주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제자의 혀를 주시어 지친 이를 말로 격려할 줄 알게 하신다. 그분께서는 아침마다 일깨워 주신다. 내 귀를 일깨워 주시어 내가 제자들처럼 듣게 하신다. 5 주 하느님께서 내 귀를 열어 주시니 나는 거역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 6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7 그러나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는 내 얼굴을 차돌처럼 만든다. 나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8 나를 의롭다 하시는 분께서 가까이 계시는데 누가 나에게 대적하려는가? 우리 함께 나서 보자. 누가 나의 소송 상대인가? 내게 다가와 보아라.

9 보라,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는데 나를 단죄하는 자 누구인가? 보라, 그들은 모두 옷처럼 해지고 좀이 그들을 먹어 버리리라. 10 너희 가운데 누가 주님을 경외하고 그분 종의 말에 순종하느냐? 빛이 없이 어둠 속을 걷는 자는 주님의 이름을 신뢰하고 자기 하느님께 의지하여라. 11 그러나 스스로 불을 피우고 불화살에 불을 당기는 너희는 모두 자기가 피운 불 속으로, 자기가 댕긴 불화살 속으로 들어가거라. 이것이 너희가 내 손에서 받아야 할 바이니 너희는 고통 속에 드러누워야 하리라.

●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2. 말씀연구

“주님의 종”의 셋째 노래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박해 받는 종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박해받고, 모욕당하고 학대받는 한 사람이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유배는 창살이 없는 감옥입니다. 주인의 채찍과 폭력과 감시 속에서 노역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박해받는 종 옆에는 그를 붙들어 보호하시고 변호해 주시는 하느님께서 계시지만, 다른 한쪽에는 악의적인 고소인들인 원수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종은 승리를 거둘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느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숭배하였고, 하느님께 의지하고 힘이 강한 나라에 의지하였습니다. 결국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멀어지는 백성들의 마음을 돌려놓으시기 위해 그들에게 고통을 허락하십니다. 그리고 고통 속에 있는 당신 백성과 함께 계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고, 때가되면 다시 고향으로 데려오시려는 계획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 백성이 고통 받는 주님의 종처럼 그렇게 고통 속에 있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이끌어 내실 것입니다.



또한 이 고통 받는 종의 모습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모든 고통을 받으시는 예수님께 큰 사랑과 믿음을 드리고자 굳게 다짐해야 하겠습니다.



4 주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제자의 혀를 주시어 지친 이를 말로 격려할 줄 알게 하신다. 그분께서는 아침마다 일깨워 주신다. 내 귀를 일깨워 주시어 내가 제자들처럼 듣게 하신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하지 않고, 하느님께서 담아 주신 말씀을 선포합니다. 또한 제자는 스승의 가르침을 듣고, 스승의 가르침을 살아가며, 스승의 가르침을 전하게 되는데,“제자의 혀”를 주셨다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명을 주셨다는 것이고, 생각과 말과 행위로 하느님께서 담아주신 말씀과 가르침을 전해야 합니다.

또한 제자의 혀를 주시어 지친 이를 말로 격려할 줄 알게 하신다는 것은 유배의 고통 속에 있는 당신 자녀들을 위로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제 당신 백성을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살이하는 하느님 백성을 위로하여 믿음을 갖게 하고, 확신을 잃지 않게 하며, 주님께로 나아가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분께서 아침마다 일깨워 주신다는 것은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을 알고 있기에 어떤 처지에 있든지 감사하며, 어떤 고통이 주어진다 할지라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또한 “내가 주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자녀는 주님의 집에 살아야 하고, 주님께서 주시는 은총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자녀들의 삶의 자리는 남의 나라 땅, 종살이 하는 땅이 아니라 자신들의 고향, 성전이 있는 자신들의 땅입니다. 주님께서는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한 당신 백성을 다시 고향으로 데려가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과 내가 주님의 자녀라는 것을 매일 매일 새롭게 깨닫게 하심으로써” 당신 종에게 힘을 주시고, 고통과 모욕을 이겨낼 수 있게 해 주십니다.



“제자들처럼 듣게 하신다.”는 것은 스승의 가르침을 한자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귀를 기울이고 있는 제자의 모습을 생각하게 합니다. 제자는 자신이 듣고 싶은 것이 아니라 스승께서 가르치는 것을 듣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의 종도 자신이 듣고 싶은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들으려고 하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실천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 안에서 주님의 사랑과 자신의 신분을 깨닫게 될 때, 고통 속에서도 주님께로 향하며, 형제자매들을 위로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5 주 하느님께서 내 귀를 열어 주시니 나는 거역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 6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주 하느님께서 내 귀를 열어 주시니, 나는 거역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는다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확신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과 함께 있기에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모욕을 모욕으로 갚지 않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 힘을 주시기에 폭력을 폭력으로 맞서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는다.”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노예는 그저 노예일 뿐입니다. 자유나 보장된 권리는 노예에게는 없습니다. 그러기에 주인의 매질에 온 몸을 맡겨야 했고, 뺨을 때리는 주인에게 얼굴을 돌릴 수가 없었으며, 모욕과 수모를 받는다 할지라도 허리를 숙이고 그저 받아들이기만 해야 했습니다. 주인이 그에게 침을 뱉으며 모욕을 해도 얼굴을 가릴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느님의 백성들은 바빌론의 종살이에서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런 고통을 통하여 자신들의 죗값을 치렀습니다.

바빌론의 통치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엎드려라. 우리가 딛고 지나가야겠다.’ 하였고, 너는 네 등을 땅바닥처럼 만들어 그들이 바닥을 밟듯 그 위를 지나가게 하였다.”(이사야51,23)라는 말씀처럼 그렇게 모욕을 당하였습니다. 그리고 욕설과 침 뱉음을 당하였고, 당시 최대의 치욕으로 간주되었던 수염을 잡아 뜯는 행위1)를 당하였습니다.



이 고통 받는 종의 모습을 예수님께서 그대로 보여주십니다. 때리는 자들에게 등을 맡기고, 침을 뱉는 자들에게 얼굴을 대어 주고, 조롱하기 위해 가시로 왕관을 씌워 주는 이들에게 머리를 내어 주셨습니다. 십자가를 짊어지게 하는 병사들에게 당신 어깨를 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못질하는 이들에게 당신 손과 발을 내어 주셨고, 창으로 찌르는 병사에게 당신 옆구리를 내어 주셨습니다.



7 그러나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는 내 얼굴을 차돌처럼 만든다. 나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주님의 백성들이 유배지로 끌려간 것은 하느님께서 무능하셔서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외면하셔서가 아닙니다. 주님의 백성의 고통은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 고통을 통하여 우상에 찌들었던 마음을 버리고, 하느님 외에 다른 것들에 의지했던 마음들을 버리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백성의 고통은 주님께서 주시는 것이지 바빌론 사람들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마음먹으시면 그 모든 상황을 말씀 한 마디로 바꾸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백성들은 모욕을 모욕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고, 수치를 수치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 모욕과 수치를 통해서 자신들이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굳은 마음을 갖게 하고, 굳은 믿음을 간직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고통 속에서도 주님 백성들은 당당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회개하고 주님께로 몸과 마음을 돌렸기 때문입니다. 고통과 모욕을 받으면 받을수록 주님께 대한 마음이 더 커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항상 주님께서 함께 계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보고 계시기에 당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죄인으로 사형을 선도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타에 오르셨습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마치 예수님께서 무슨 중죄를 지은 줄로 생각하고, 돌을 던지고 침을 뱉으며 모욕을 드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주님께서 자신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 십자가의 길을 걸으시는 것을 모르고 있었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뒤에야 예수님께서 의로우신 분이시며, 구원자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걸으시면서 예수님께서는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고개를 숙이지도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죄인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아버지 하느님께 기도하시며, 아버지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모욕하고 폭력을 가하는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소서. 저들은 자신들이 하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2)

모든 것을 아버지 하느님께 맡겼기 때문이고,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이루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8 나를 의롭다 하시는 분께서 가까이 계시는데 누가 나에게 대적하려는가? 우리 함께 나서 보자. 누가 나의 소송 상대인가? 내게 다가와 보아라. 9 보라,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는데 나를 단죄하는 자 누구인가? 보라, 그들은 모두 옷처럼 해지고 좀이 그들을 먹어 버리리라.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선과 악을 아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지금도 불의를 정의라고 이야기 하고, 정의를 불의라고 이야기 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진실을 통제하고, 거짓을 진실처럼 포장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므로 신앙인들은 세상을 바라보아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진실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고, 정의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의로움을 판단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나를 의롭다 하신다면 나는 그 무엇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두려움 때문에 불의 앞에 침묵해서도 안 됩니다. 그러므로 불의 앞에 당당히 맞서 싸울 수 있어야 하고, 언제나 주님과 함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19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20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마태10,19-20) 라고 말씀하시면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면 진실을 말할 수 없습니다. 두려워하면 하느님의 말씀에 따를 수 없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나를 두렵게 하는 이들은 아무것도 아닌 이들이며, 만일 내가 아무것도 아닌 그들을 두려워한다면 주님께서는 결코 나를 의롭다고 판결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10 너희 가운데 누가 주님을 경외하고 그분 종의 말에 순종하느냐? 빛이 없이 어둠 속을 걷는 자는 주님의 이름을 신뢰하고 자기 하느님께 의지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죽음이 그늘진 골짜기를 간다 할지라도 주님께 의지하고 주님께로 나아갑니다. 양들은 목자를 믿고 있기에 양들이 목자의 음성을 따라 걷는 것처럼, 양들이 목자의 지팡이 소리에 따라가는 것처럼,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도 그렇게 주님만을 따라갑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경외하고 주님 말씀에 순종하는 이들은 교만하지 않은 이들입니다.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이들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이들입니다. 자신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주님의 말씀에 온전히 희망을 두는 이들입니다. 주님께서 해방을 선포하셨지만 지금 자신들의 처지가 변한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말씀에 기뻐하며 귀향을 준비하는 이들입니다.



주님께 의지하는 이는 땅을 보지 않고 하늘을 바라봅니다. 주님께 의지하는 이는 사람을 보지 않고, 하느님을 봅니다. 그리고 주님께 의지하는 이는 고통을 보지 않고, 고통 너머에 있는 기쁨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주님께 의지하는 이는 자신의 기쁨을 바라보지 않고, 하느님의 기쁨을 바라봅니다.



주님께 순종하며 모든 것을 맡깁니다. “아버지!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소서. 그러나 제 뜻대로 하지 말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라고 피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셨습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구원 계획에 오롯하게 순종하셨습니다. 박해자들의 조롱과 모진 매질, 그리고 유혹과 멸시 속에서도 오롯하게 순종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 아버지의 뜻만을 생각하셨고,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만을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인간의 구원만을 바라보셨기 때문입니다.



11 그러나 스스로 불을 피우고 불화살에 불을 당기는 너희는 모두 자기가 피운 불 속으로, 자기가 댕긴 불화살 속으로 들어가거라. 이것이 너희가 내 손에서 받아야 할 바이니 너희는 고통 속에 드러누워야 하리라.

목자를 따르는 양들은 자신이 길을 찾는 것이 아니라 목자의 안내를 받아야 합니다. 자신이 길을 찾으려고 하고, 자신이 가고 싶은 대로 가려 할 때 목자를 잃고 길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길 잃은 양들은 사나운 짐승들의 맛있는 식사거리가 됩니다. 하느님의 자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의 길에서 벗어난 자녀들은 유혹자들의 멋진 찬거리가 됨을 명심해야 합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은 하느님의 계획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백성들은 이 고통의 시간 속에서 회개하고 하느님께로 돌아서야 합니다. 스스로 불을 피우고 불화살에 불을 당긴다는 것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상황을 자신들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폭력은 더 큰 폭력을 낳게 되며, 그 폭력의 희생자는 자기 자신이 될 수 있습니다. 수난과 죽음이 있어야만이 부활이 있는 것처럼, 고통의 시간속에서 보속을 해야 만이 구원이 있는 것입니다. 농부가 논을 갈고 모를 심지 않고 어떻게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느님의 백성들은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야 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 순종하며 주어지는 고통들을 이겨내고, 기다림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죄를 짓고 잘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반드시 주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벌”입니다(상선벌악). 그 벌을 받아야 만이 용서를 받는 것입니다. “나는 벌을 안 받을거야!”라고 말하지만 반드시 벌은 받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기 위해 몸소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희생제물이 되시어 십자가 위에서 우리 죄의 용서를 위한 희생제사를 드리셨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서야 합니다. 내가 나 자신을 구원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나를 구원해 주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해야 할 보속을 성실히 해야 함을 알아야 합니다. “고통 받는 주님의 종”의 모습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보속을 찾아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보속을 하지 않는다면, 나는 내 죄 속에서 벌을 받으며 고통 속에서 멸망해야 함을 명심해야 합니다.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린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을 헛되게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아침기도를 바치며 주님께서 아침마다 나에게 일깨워 주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② 고통 속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어떻게 느낄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고통 속에서도 주님께 매달리며, 기도할 수 있을까요?



③ 나를 위해 고난 받으신 우리 주님께 나는 무엇을 해 드릴 수 있을까요? 그리고 무엇을 해 드려야 할까요?



4.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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