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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명
작성일 2012-02-29 (수) 00:13
분 류 창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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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 22,1-19;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다 ”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다

1. 말씀읽기: 창세기 22,1-19

1 이런 일들이 있은 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해 보시려고 “아브라함아!” 하고 부르시자, 그가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야 땅으로 가거라. 그곳, 내가 너에게 일러 주는 산에서 그를 나에게 번제물로 바쳐라.”

3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얹고 두 하인과 아들 이사악을 데리고서는, 번제물을 사를 장작을 팬 뒤 하느님께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곳으로 길을 떠났다.

4 사흘째 되는 날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자, 멀리 있는 그곳을 볼 수 있었다.

5 아브라함이 하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에 머물러 있어라. 나와 이 아이는 저리로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 돌아오겠다.”

6 그러고 나서 아브라함은 번제물을 사를 장작을 가져다 아들 이사악에게 지우고, 자기는 손에 불과 칼을 들었다. 그렇게 둘은 함께 걸어갔다.

7 이사악이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아버지!” 하고 부르자, 그가 “얘야, 왜 그러느냐?” 하고 대답하였다. 이사악이 “불과 장작은 여기 있는데, 번제물로 바칠 양은 어디 있습니까?” 하고 묻자, 8 아브라함이 “얘야, 번제물로 바칠 양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실 거란다.” 하고 대답하였다. 둘은 계속 함께 걸어갔다.

9 그들이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곳에 다다르자, 아브라함은 그곳에 제단을 쌓고 장작을 얹어 놓았다. 그러고 나서 아들 이사악을 묶어 제단 장작 위에 올려놓았다. 10 아브라함이 손을 뻗쳐 칼을 잡고 자기 아들을 죽이려 하였다.

11 그때,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고 그를 불렀다. 그가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12 천사가 말하였다. “그 아이에게 손대지 마라. 그에게 아무 해도 입히지 마라. 네가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 나를 위하여 아끼지 않았으니, 네가 하느님을 경외하는 줄을 이제 내가 알았다.”

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보니, 덤불에 뿔이 걸린 숫양 한 마리가 있었다. 아브라함은 가서 그 숫양을 끌어와 아들 대신 번제물로 바쳤다. 14 아브라함은 그곳의 이름을 ‘야훼 이레’라 하였다. 그래서 오늘도 사람들은 ‘주님의 산에서 마련된다.’고들 한다. 15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두 번째로 아브라함을 불러 16 말하였다. “나는 나 자신을 걸고 맹세한다. 주님의 말씀이다. 네가 이 일을 하였으니, 곧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 아끼지 않았으니, 17 나는 너에게 한껏 복을 내리고, 네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한껏 번성하게 해 주겠다. 너의 후손은 원수들의 성문을 차지할 것이다. 18 네가 나에게 순종하였으니, 세상의 모든 민족들이 너의 후손을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19 아브라함은 하인들에게 돌아왔다. 그들은 함께 브에르 세바를 향하여 길을 떠났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브에르 세바에서 살았다.


2. 말씀연구

아버지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가족이고, 그 중에서 아들이 가장 소중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안주하려는 아브라함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아들 이사악을 바치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절망합니다. 하지만 그 절망 속에서도 순명합니다. 탄식하면서도 순명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하는 것이고, 그렇게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믿음의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만일 나에게 이런 시련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아브라함처럼 그렇게 절망 속에서도 순명했을까요?


1 이런 일들이 있은 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1)해 보시려고 “아브라함아!” 하고 부르시자, 그가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야 땅2)으로 가거라. 그곳, 내가 너에게 일러 주는 산에서 그를 나에게 번제물로 바쳐라.”



하느님께서는 하갈에게서 태어난 이스마엘이 아니라 사라에게서 태어난 이사악이  아브라함의 뒤를 잇게 했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백 살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제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시어 땅을 약속하셨고, 자손을 약속하셨고, 복의 통로가 되게 하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3) 이제 땅을 차지하고, 아들을 얻게 된 아브라함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다 이루었다고 생각하며 안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결코 안주해서는 안 됩니다. 언제나 주님만을 섬겨야 하고, 주님의 이끄심에 온전히 응답해야 합니다.



이제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아브라함을 부르십니다. 아브라함은 “예, 여기 있습니다.”하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청천벽력 같은 말씀을 듣게 됩니다.



  “내가 너에게 일러 주는 산에서 그를 나에게 번제물로 바쳐라.”(창세기22,2)



하느님께서는 땅을 주시겠다고 하셨고, 자손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자식이라고는 이사악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 외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이런 말씀을 하느님께로부터 들었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수많은 변명을 하고, 원망하고, 탄식하며 마침내는 하느님께 등을 돌렸을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깊은 절망과 탄식에 빠졌을 것입니다.



3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얹고 두 하인과 아들 이사악을 데리고서는, 번제물을 사를 장작을 팬 뒤 하느님께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곳으로 길을 떠났다. 4 사흘째 되는 날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자, 멀리 있는 그곳을 볼 수 있었다.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출발을 합니다. 그 밤을 뜬 눈으로 새웠을 것이고, 마침내 하느님의 말씀에 따르기로 결정하였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셨는데, 하느님께서 원하신다고 하시니, 결국 드릴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내 사라에게는 어떻게 말했을까요? 아마 아무 말도 못했을 것입니다.

아내 사라도 아브라함의 변화를 감지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남편이 하고자 하는 일이고, 또 그 일이 하느님께서 명령하신 일이니 아무 말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불안한 마음으로 아브라함과 이사악을 떠나 보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두 하인과 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번제물을 사를 장작을 준비했습니다. 하인들과 아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지만, 아브라함은 그 장작이 아들 이사악을 번제물로 사를 것임을 알고 있기에, 장작 하나 하나가 날카로운 비수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준비하여 길을 떠났습니다.



“사흘째 되는 날”에 드디어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장소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브라함의 고통은 그렇게 삼일 동안 이어졌습니다. 아들을 번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그 사실이 아버지의 마음을 찢어 놓았을 것이고, 아들이 걸어가는 발자국 하나하나를 보이지 않는 눈물로 적셔가며 그렇게 주님께서 말씀하신 곳으로 향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고통은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어느 누구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온전히 하느님께 순종했기에 이것이 가능했고, 생명은 모두 하느님의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절망 속에서도 아들을 바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 아버지께서도 그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타에 오르실 때,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셨을까요?



5 아브라함이 하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에 머물러 있어라. 나와 이 아이는 저리로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 돌아오겠다.” 6 그러고 나서 아브라함은 번제물을 사를 장작을 가져다 아들 이사악에게 지우고, 자기는 손에 불과 칼을 들었다. 그렇게 둘은 함께 걸어갔다.

이제 때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인들에게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에 머물러 있어라. 나와 이 아이는 저리로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 돌아오겠다.”라고 말하며 하인들과 떨어집니다. 하인들에게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치는 것을 보여줄 수는 없는 일입니다. 또한 하느님과 아브라함 사이의 관계를 하인들에게 보여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사악에게 번제물을 사를 장작을 지워줍니다. 이제 그 장작은 이사악의 몸을 태울 것입니다. 하지만 이사악은 자신의 몸을 불사를 장작은 자신이 지고 있음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손에 불과 칼을 들고 그렇게 둘은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장소로 걸어갑니다.



자신에게서 태어난 생명을 이제 자신이 죽여서 번제물로 바쳐야 합니다. 손에 든 칼은 아들의 생명을 앗아갈 것이고, 불은 아들의 몸을 태울 것입니다. 손에 든 칼과 불을 바라보며, 아들을 바라보며, 그리고 아들에게 지워진 장작을 바라보며, 오로지 하느님 때문에 이 고통을 이겨내며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장소로 걸어갑니다.



7 이사악이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아버지!” 하고 부르자, 그가 “얘야, 왜 그러느냐?”4) 하고 대답하였다. 이사악이 “불과 장작은 여기 있는데, 번제물로 바칠 양은 어디 있습니까?” 하고 묻자, 8 아브라함이 “얘야, 번제물로 바칠 양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실 거란다.” 하고 대답하였다. 둘은 계속 함께 걸어갔다.



삼일 동안 오면서 아버지 아브라함에게서는 평화와 기쁨과 안정을 찾아볼 수 없었던 이사악, 슬픔에 가득차서 자신을 바라보며, 하늘을 향하여 기도하던 아버지 아브라함. 이제는 하인들을 뒤로한 채, 자신의 어깨에 장작을 짊어지고 걷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손에는 불과 칼이 들려 있습니다. 드디어 아들 이사악이 아버지에게 자신의 의문을 이야기 합니다.



   “아버지! ··· 불과 장작은 여기 있는데, 번제물로 바칠 양은 어디 있습니까?”



아브라함은 아들 이사악에게 사실을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얘야, 번제물로 바칠 양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실 거란다.”5) 하지만 이 이야기는 진실입니다.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해주신 번제물이 바로 아들 이사악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더 이상 말을 못하고 계속 걸어갑니다.



9 그들이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곳에 다다르자, 아브라함은 그곳에 제단을 쌓고 장작을 얹어 놓았다. 그러고 나서 아들 이사악을 묶어 제단 장작 위에 올려놓았다. 10 아브라함이 손을 뻗쳐 칼을 잡고 자기 아들을 죽이려 하였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곳에 다다르자 아브라함은 그곳에 제단을 쌓고, 장작을 얹어 놓았습니다. 아들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친 제단입니다. 이사악은 자신이 죽을 자리임을 모르고 아버지와 함께 제단을 쌓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가 아들 이사악을 묶어 제단 장작 위에 올려 놓자 이사악은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아버지! 왜 이러세요? 아버지! 살려주세요.”이렇게 울며 아버지에게 매달렸을 것입니다.



이때 아버지 아브라함은 울면서 하느님의 뜻을 아들 이사악에게 전했을 것입니다. “아들아! 내가 백 살에 너를 낳았는데, 너는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란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너를 달라고 하시는구나. 너의 하느님의 것이기에 하느님께서 달라고 하시니 돌려 드릴 수밖에 없단다. 용서해라! 아들아.”6)



아들 이사악은 아버지 아브라함의 마음이 어떤지를 알았고, 왜 아버지가 그렇게 삼일 동안 괴로워하셔야 하는지를 알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께 “아버지! 저는 죽기 싫습니다만 하느님의 뜻이 그렇다면 하느님의 뜻을 따르십시오. 아버지! 저는 아버지의 아들입니다.”하면서 아버지께 목을 내밀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아브라함은 눈물이 앞을 가리는 상황에서 손을 뻗쳐 칼을 잡고 자기 아들을 죽이려 하였습니다. 감히 하느님을 원망할 수 없기에, 자기 자신을 원망하면서 그렇게 칼을 들었을 것입니다.



11 그때,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고 그를 불렀다. 그가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12 천사가 말하였다. “그 아이에게 손대지 마라. 그에게 아무 해도 입히지 마라. 네가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 나를 위하여 아끼지 않았으니, 네가 하느님을 경외하는 줄을 이제 내가 알았다.”



하느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보고 계셨습니다. 눈물로 밤을 새우는 것을 보셨고, 아들의 발걸음 하나 하나를 눈물로 채우는 것을 보셨고, 아들을 사랑하는 아브라함의 처절한 마음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에 탄식속에서도 순명하는 것을 보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서 보고자 하셨던 것을 보신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불러 “그 아이에게 손대지 마라. 그에게 아무 해도 입히지 마라. 네가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 나를 위하여 아끼지 않았으니, 네가 하느님을 경외하는 줄을 이제 내가 알았다.” 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신앙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봉헌한다면 그것은 몸으로도 드러나야 합니다. 믿는다면 그 믿음이 행동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이고, 그것이 바로 하느님께 대한 순명인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부당한 것들을 많이 접합니다. 배신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겪은 고통에는 못 따라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고통이 가장 크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자신의 신앙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도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고통을 즐기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인간의 고통을 외면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느님께서도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외아드님을 내어 주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그 고통을 겪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말이 아니라 삶이고, 마음속에 있는 것을 행동으로 옮길 때 참되게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사악을 얼싸 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아들 이사악도 하느님께서 아버지 아브라함을 시험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하느님께서 아버지 아브라함과 자신을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을 확신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신 것은 이사악의 목숨이 아니라 아버지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명이었던 것입니다. 어떤 처지에든지 온전히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온전한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이 주어질 때, 그것을 내 편에서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보잘 것 없는 내가 판단하는 것은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모든 판단은 주님께 맡기고, 주님의 이끄심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어느 순간, 그 모든 것이 은총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보니, 덤불에 뿔이 걸린 숫양 한 마리가 있었다. 아브라함은 가서 그 숫양을 끌어와 아들 대신 번제물로 바쳤다. 14 아브라함은 그곳의 이름을 ‘야훼 이레’라 하였다. 그래서 오늘도 사람들은 ‘주님의 산에서 마련된다.’고들 한다.



이제 아버지와 아들은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려 합니다. 그런데 말로만 감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재물을 바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 대한 경배는 말로만 끝내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눈을 들어 보니, 덤불에 뿔이 걸린 숫양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숫양을 끌어와 아들 대신 번제물로 바쳤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곳을 “야훼 이레”7)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야훼께서 이 산에서 마련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보고 계십니다. 나의 믿음을 보고 계십니다.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로 나아가면 나머지는 주님께서 다 알아서 해 주십니다. 나는 그저 믿기만 하면 됩니다. 믿음을 행동으로 옮기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신앙을 “낙하산을 메고서 비행기에서 뛰어 내리는 것에 비유”합니다. 그러니 그저 믿고서 낙하산을 메고 뛰어 내리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두려움에 쌓여 뛰어내리지 못하면,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서 두려움 때문에 하느님의 사랑과 이끄심을 체험하지 못한다면, 나는 결코 하느님을 위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저 입으로만 “주님! 주님!”하고 부를 뿐입니다.



15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두 번째로 아브라함을 불러 16 말하였다. “나는 나 자신을 걸고 맹세한다. 주님의 말씀이다. 네가 이 일을 하였으니, 곧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 아끼지 않았으니, 17 나는 너에게 한껏 복을 내리고, 네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한껏 번성하게 해 주겠다. 너의 후손은 원수들의 성문을 차지할 것이다. 18 네가 나에게 순종하였으니, 세상의 모든 민족들이 너의 후손을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은총을 주십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하신 약속을 다시 상기시켜 주시면서 반드시 이루어주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다음의 네 가지 “①땅을 얻게 될 것이다8) ② 큰 민족을 되게 하겠다.9) ③ 아브람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④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를 약속해 주셨습니다. 불확실한 미래이지만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말씀을 굳게 믿고서 길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땅을 차지하고, 아들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하느님의 약속을 잊고, 가지고 있는 땅과 아들만을 본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키워 주시기 위해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큰 민족이 되겠다는 약속을 구체적으로 다시 해 주십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10)처럼 한껏 번성하게 해 주겠다.”고 약속을 해 주시고, 또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후손들도 다른 민족들에게 복을 줄 수 있는 복의 통로가 되게 해 주겠다고 약속을 해 주십니다.



그렇게 믿음의 후손들은 셀 수 없을 만큼 온 세상에 가득 찼습니다. 그리고 믿는 이들 안에서 감당할 수 없는 복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 또한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명을 본받아,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가지고 기도하고, 고통 속에서도 주님께 감사하며 나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 신앙을 행동으로 드러내야 합니다. 그래야 나를 통해서 다른 이들도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19 아브라함은 하인들에게 돌아왔다. 그들은 함께 브에르 세바를 향하여 길을 떠났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브에르 세바에서 살았다.

하인들에게 돌아왔을 때의 얼굴은 분명 달랐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인들도 지난 삼일 간의 그 불안함이 사라지고, 기쁨에 넘쳐 브에르 세바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불안에 떨면서 기다리고 있는 사라는 저 멀리서 남편과 아들이 하인들과 함께 돌아오는 모습을 바라보며 주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렸을 것입니다. 어머니 사라를 향해 달려오는 이사악의 모습과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아브라함의 얼굴을 떠 올려보며, 의로운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설 수 있도록 나를 변화시켜 봅시다.



3. 나눔 및 묵상

① 내가 만일 아브라함이었다면 하느님의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일상 삶 안에서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순명을 강요할 때는 언제이며, 그것을 정말로 받아들 수 없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봅시다.



② 내가 만일 이사악이었다면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어떻게 했을까요? 아버지가 하자는 대로 했을까요?



4. 실천사항

① 순명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고, 순명하기 위해 기도하기

② 내 옆에 있는 이들에게 복을 빌어주고, 복을 전해주기

③ 주님께서 마련해 주심을 믿고, 의심하지 말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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