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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통속에서도 희망을
작성일 2012-02-03 (금) 17:52
분 류 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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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욥기 7,1-21 ;욥의 탄원 기도 ”
 

욥의 탄원 기도

1. 말씀읽기: 욥기 7,1-21

인생은 고역

1 인생은 땅 위에서 고역이요 그 나날은 날품팔이의 나날과 같지 않은가? 2 그늘을 애타게 바라는 종, 삯을 고대하는 품팔이꾼과 같지 않은가? 3 그렇게 나도 허망한 달들을 물려받고 고통의 밤들을 나누어 받았네. 4 누우면 ‘언제나 일어나려나?’ 생각하지만 저녁은 깊어 가고 새벽까지 뒤척거리기만 한다네. 5 내 살은 구더기와 흙먼지로 뒤덮이고 내 살갗은 갈라지고 곪아 흐른다네. 6 나의 나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게 희망도 없이 사라져 가는구려.



욥의 탄원 기도

7 기억해 주십시오, 제 목숨이 한낱 입김일 뿐임을. 제 눈은 더 이상 행복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8 저를 바라보던 이의 눈은 저를 보지 못하고 당신의 눈이 저를 찾는다 하여도 저는 이미 없을 것입니다. 9 구름이 사라져 가 버리듯 저승으로 내려간 이는 올라오지 못합니다. 10 다시는 제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가 있던 자리도 그를 다시는 알아보지 못합니다. 11 그래서 이 몸은 입을 다물지 않겠습니다. 제 영의 곤경 속에서 토로하고 제 영혼의 쓰라림 속에서 탄식하겠습니다.

12 제가 바다입니까? 제가 용입니까? 당신께서 저에게 파수꾼을 세우시다니.

13 ‘잠자리나마 나를 위로하고 침상이나마 내 탄식을 덜어 주겠지.’ 생각하지만

14 당신께서는 꿈으로 저를 공포에 떨게 하시고 환시로 저를 소스라치게 하십니다.

15 제 영혼은 이런 고통보다는 숨이 막혀 버리기를,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습니다.

16 저는 싫습니다. 제가 영원히 살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저를 내버려 두십시오. 제가 살날은 한낱 입김일 뿐입니다. 17 사람이 무엇이기에 당신께서는 그를 대단히 여기시고 그에게 마음을 기울이십니까? 18 아침마다 그를 살피시고 순간마다 그를 시험하십니까? 19 언제면 제게서 눈을 돌리시렵니까? 침이라도 삼키게 저를 놓아주시렵니까? 20 사람을 감시하시는 분이시여 제가 잘못했다 하여도 당신께 무슨 해를 끼칠 수 있습니까? 어찌하여 저를 당신의 과녁으로 삼으셨습니까? 어찌하여 제가 당신께 짐이 되었습니까? 21 어찌하여 저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십니까? 어찌하여 저의 죄악을 그냥 넘겨 버리지 않으십니까? 제가 이제 먼지 위에 누우면 당신께서 찾으셔도 저는 이미 없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2. 말씀연구

욥기는 혼란에 빠진 한 인간이 거룩하고 전능하신 하느님 앞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 앞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이 담겨 있습니다. 경건하고 부유한 욥이 한 순간에 온갖 재난 속으로 빠져 버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 대한 신뢰를 잃지 않았습니다(1,1-2-13). 그런데 현인이고 의롭다고 자처하는 욥의 세 친구들(엘리파즈, 발닷, 초파르)는 서로 번갈아가며 욥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벌을 받는 것이라고 말하며, 위로가 아니라 고통을 주었습니다. 친구들로부터도 위로받지 못한 욥은 결국 주님께 탄식하며 기도하고, 결국 다시 건강과 재산과 명예, 그리고 자녀들을 얻게 됩니다.



어떤 처지에 있든지 주님을 찬미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 고통 속에서 주님께 의지하고, 믿음을 고백한다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욥의 탄식기도를 통해 고통 속에서 나는 어떤 기도를 주님께 바치고 있는지에 대해서 돌아봅시다.



1 인생은 땅 위에서 고역이요 그 나날은 날품팔이의 나날과 같지 않은가? 2 그늘을 애타게 바라는 종, 삯을 고대하는 품팔이꾼과 같지 않은가?

하루하루를 어렵게 일하면서 살아가는 이들은, 더 나아가 희망이 없는 이들은 이 말씀이 깊이 다가올 것입니다. 매일 매일 힘든 노동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이 없는 이들, 뙤약볕 아래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데, 그들에게 있어서 유일한 기쁨은 그늘에 들어가는 것이요, 유일한 희망은 일을 마치고 보잘 것 없는 품삯을 받아가는 것입니다.

고통 속에 있는 욥은 자신의 인생을 이렇게 뙤약볕 아래에서 고역을 하고 있는 품팔이꾼의 처지에 비유를 합니다. 그 많은 재산이 사라지고, 자녀들의 죽음을 체험해야 했으며, 더 나아가 온 몸에 종기까지 얻게 된 욥에게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길이 없었던 것입니다.



3 그렇게 나도 허망한 달들을 물려받고 고통의 밤들을 나누어 받았네.

4 누우면 ‘언제나 일어나려나?’ 생각하지만 저녁은 깊어 가고 새벽까지 뒤척거리기만 한다네.

병자들에게 있어서 하루하루는 고통이고, 온 몸이 종기로 덮인 욥에게는 누워도 고통이요, 깨어 있어도 고통입니다. 그런데 밤의 잠은 작은 고통들을 잊게 만들어 주지만, 큰 고통은 잠 못 이루게 만들고, 더큰 고통을 느끼게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병자들에게 있어서 밤은 괴로움입니다. “저녁은 깊어 가고, 새벽까지 뒤척거리기만 한다네.”라는 표현을 통해서 욥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습니다.



5 내 살은 구더기와 흙먼지로 뒤덮이고 내 살갗은 갈라지고 곪아 흐른다네.

6 나의 나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게 희망도 없이 사라져 가는구려.

하느님께서는 욥을 “흠 없고 올곧으며, 하느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으로 인정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하느님께서 복을 내리셔서 그렇지, 그의 모든 소유를 없앤다면 틀림없이 하느님을 눈앞에서 저주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탄에게 욥에게만은 손대지 말라고 하시며, 그의 모든 소유를 사탄의 손에 넘겨주셨습니다. 그만큼 욥을 믿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욥의 모든 재산을 없애고, 모든 자녀를 죽게 만들었지만 욥은 “알몸으로 어머니 배에서 나온 이 몸, 알몸으로 그리 돌아가리라. 주님께서 주셨다가 주님께서 가져가시니, 주님의 이름은 찬미 받으소서.”하면서 결코 하느님께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사탄은 “사람이란 제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 소유를 내놓기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하느님께서 손을 펴시어 욥의 뼈와 욥의 살을 쳐 보시면, 분명히 하느님의 눈앞에서 하느님을 저주할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하느님께서는 “좋다. 그를 네 손에 넘긴다. 다만 그의 목숨만은 남겨 두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해서 욥은 발바닥에서 머리 꼭대기까지 고약한 부스럼으로 덮이게 됩니다. 욥의 아내까지도 “당신은 아직도 당신의 그 흠 없는 마음을 굳게 지키려 하나요? 하느님을 저주하고 죽어 버려요.”(욥기2,9) 라고 악담을 퍼 부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제 입술로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고통은 늘 욥을 괴롭혔고, 구더기와 흙먼지로 덮여 있는 살갗은 갈라지고 곪아 흐르니, 욥에게 있어서 희망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욥은 “나의 나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게 희망도 없이 사라져 가는구려.”라고 탄식을 합니다. 베틀의 북은 실을 매달고 왔다 갔다 하면서 옷감을 짭니다. 숙련된 기술자의 손에 쥐어진 베틀의 북은 눈에 보이지 않게 왔다 갔다 하는데, 욥의 탄식은 “그만큼 희망이 빠르게 사라졌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무런 희망조차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7 기억해 주십시오, 제 목숨이 한낱 입김일 뿐임을. 제 눈은 더 이상 행복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욥은 하느님께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간청을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 앞에서 인간이 어떤 모습인지를 고백합니다. 성경에서 “기억하다”라는 단어는 주로 계약과 관련된 의미로 사용이 됩니다. 그러므로 욥은 하느님께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해 주신 약속을 기억해 달라는 것이고, 그 약속을 지켜 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나약함을 기억해 달라는 것입니다.“한낱 입김일 뿐”이라고 고백을 하는데, 하느님께서는 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 입김을 불어 넣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숨을 쉬고 말을 하며, 움직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입김이 사라진다면 결국 다시 흙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은 이렇게 나약한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입김이 나에게서 사라지면 나는 결코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생명을 주시지 않으면 결코 살아날 수 없습니다.



또한 입김은 금방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추운 날, 시린 손에 입김을 불어서 손을 데우지만, 금방 차가워집니다. 입김은 그저 입김일 뿐인 것입니다. 내 입김으로는 결코 내 몸을 덥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 입김으로는 결코 행복에 이를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약한 존재이니, 하느님께서 기억해 주시지 않으면 “제 눈은 더 이상 행복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라고 탄식하는 것입니다.



8 저를 바라보던 이의 눈은 저를 보지 못하고 당신의 눈이 저를 찾는다 하여도 저는 이미 없을 것입니다. 9 구름이 사라져 가 버리듯 저승1)으로 내려간 이는 올라오지 못합니다.

욥은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죽음으로서 하느님과의 관계가 끊어진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를 바라보던 이의 눈”은 바로 하느님 아버지의 눈인데, 자신이 죽으면 하느님께서 자신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자신을 찾는다 하여도 저승에서 죽은 이들의 세계에 살고 있으니, 살아계신 하느님 앞에 올라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삶이 끝나가는 것을 기억해 주시고, 고통을 당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시고, 자비를 베풀어 달라는 것입니다.

구름은 실체가 없고 허망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헛된 것에 매달리는 사람을 “뜬 구름 잡으려는 사람”이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삶도 구름처럼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매달릴 분은 오직 하느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욥이 이렇게 하느님께 탄원하며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10 다시는 제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가 있던 자리도 그를 다시는 알아보지 못합니다. 11 그래서 이 몸은 입을 다물지 않겠습니다. 제 영의 곤경 속에서 토로하고 제 영혼의 쓰라림 속에서 탄식하겠습니다.

욥이 “입을 다물지 않겠다는 것”은 자신이 처한 곤경 속에서 하느님께 탄식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고통 속에서 죽으면 결코 주님을 뵐 수 없고, 자신이 살던 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기억 속에서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제 욥의 탄원 기도가 이어집니다. 탄식이 토로됩니다.



12 제가 바다입니까? 제가 용입니까?2) 당신께서 저에게 파수꾼을 세우시다니.

13 ‘잠자리나마 나를 위로하고 침상이나마 내 탄식을 덜어 주겠지.’ 생각하지만

14 당신께서는 꿈으로 저를 공포에 떨게 하시고 환시로 저를 소스라치게 하십니다.

욥은 왜 하느님께서 자신을 적들처럼 생각하시느냐고 탄식을 합니다. 하느님께서 이런 악몽이나 유령, 물리적인 고통들을 물리쳐 주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욥을 괴롭히는 것을 막아주시지 않았음을 탄식합니다. 하느님께로부터 어떠한 위로나 구원도 받지 못하고 있음을 탄식하고 있습니다.



15 제 영혼은 이런 고통보다는 숨이 막혀 버리기를,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습니다.

16 저는 싫습니다. 제가 영원히 살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저를 내버려 두십시오.3) 제가 살날은 한낱 입김일 뿐입니다.

욥은 고통 속에서 차라리 죽어 버리는 것이 낫다고 탄식을 하고 있습니다. 영원히 살수 있는 존재도 아닌데, 이런 고통을 당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것이 낫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고통 속에서 죽음을 택하고자 하는 이들도 있고, 그렇게 행동으로 옮기는 이들도 있습니다. 너무도 괴롭기 때문에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말하고, 움직일 힘만 있어도 약을 사다가 먹고 죽고 싶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 생명은 나의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내 생명은 하느님 손에 달린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어떤 처지에 있다 할지라도 인내하고, 감사하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기도가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기도하려고 노력할 수 있는 것입니다.



17 사람이 무엇이기에 당신께서는 그를 대단히 여기시고 그에게 마음을 기울이십니까? 18 아침마다 그를 살피시고 순간마다 그를 시험하십니까? 19 언제면 제게서 눈을 돌리시렵니까? 침이라도 삼키게 저를 놓아주시렵니까?

이것은 시편의 말씀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5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시편8,5) 이 시편에서는 인간을 돌보시는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리고 있지만, 욥은 이 말씀을 통해서 제발 자신을 그냥 놓아 달라고, 죽게 해 달라고 애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욥을 그냥 내버려 두신다면 “침이라도 삼킬 수 있을 텐데”, 하느님께서 욥을 붙잡고 계시니 오로지 고통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20 사람을 감시하시는 분이시여 제가 잘못했다 하여도 당신께 무슨 해를 끼칠 수 있습니까? 어찌하여 저를 당신의 과녁으로 삼으셨습니까? 어찌하여 제가 당신께 짐이 되었습니까?

욥은 탄원기도를 바치며 하느님께 원망을 하고 있습니다. “알몸으로 어머니 배에서 나온 이 몸, 알몸으로 그리 돌아가리라. 주님께서 주셨다가 주님께서 가져가시니, 주님의 이름은 찬미 받으소서.”하면서 결코 하느님께 죄를 짓지 않으려 했지만, 하느님께 탄원기도를 바치며 하느님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감시하시는 분”으로, “욥을 과녁으로 삼으신 분”, “욥을 짐으로 생각하시는 분”으로 고백하며 하느님께 탄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감시하시는 분이 아니라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시어 당신의 크신 사랑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과녁으로 삼으시는 분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으로, 당신의 자녀로 삼으신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짐으로 생각하시는 분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시고도 아까워하지 않는 분이십니다.



21 어찌하여 저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십니까? 어찌하여 저의 죄악을 그냥 넘겨 버리지 않으십니까? 제가 이제 먼지 위에 누우면 당신께서 찾으셔도 저는 이미 없을 것입니다.4)

욥은 하느님께 자신의 처지를 알리며 용서를 청합니다. 자신이 이렇게 고통을 당하는 이유는 자신이 잘못을 했기 때문에 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찌하여 저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십니까?”라고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죽을 지경에 이르렀으니 자신을 살려달라고 간청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제 먼지 위에 누우면 당신께서 찾으셔도 저는 이미 없을 것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죄를 용서해 주시고, 살려주신다면 주님께서 자신을 볼 수 있고, 찾을 수 있으며, 욥도 주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은 어떤 처지에 있든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이들입니다. 주님께 매달리는 이라면 누구나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희망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결국 신앙인은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가지고 희망으로 살아가는 이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나 또한 굳은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 희망을 결코 꺾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고통 속에서도 나는 주님께 희망을 두고, 주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고 있습니까? 그렇게 고통 속에서도 주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평소의 나의 신앙생활은 어떠해야 할까요?



② 내가 주님을 찬미할 때는 언제이고, 주님께 불평과 불만을 드릴 때는 언제입니까? 욥의 고통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점은 무엇입니까?



4.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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