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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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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1-08-27 (토) 14:28
분 류 예레미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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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레미야20,7-18 ;예레미야의 다섯 번째 고백 ”
 

예레미야의 다섯 번째 고백

1. 말씀읽기:예레미야20,7-18

7 주님, 당신께서 저를 꾀시어 저는 그 꾐에 넘어갔습니다. 당신께서 저를 압도하시고 저보다 우세하시니 제가 날마다 놀림감이 되어 모든 이에게 조롱만 받습니다. 8 말할 때마다 저는 소리를 지르며 “폭력과 억압뿐이다!” 하고 외칩니다. 주님의 말씀이 저에게 날마다 치욕과 비웃음거리만 되었습니다. 9 ‘그분을 기억하지 않고 더 이상 그분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으리라.’ 작정하여도 뼛속에 가두어 둔 주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오르니 제가 그것을 간직하기에 지쳐 더 이상 견뎌 내지 못하겠습니다. 10 군중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립니다. “저기 마고르 미싸빕이 지나간다! 그를 고발하여라. 우리도 그를 고발하겠다.” 가까운 친구들마저 모두 제가 쓰러지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가 속아 넘어가고 우리가 그보다 우세하여 그에게 복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11 그러나 주님께서 힘센 용사처럼 제 곁에 계시니 저를 박해하는 자들이 비틀거리고 우세하지 못하리이다. 그들은 성공하지 못하여 크게 부끄러운 일을 당하고 그들의 수치는 영원히 잊혀지지 않으리이다. 12 의로운 이를 시험하시고 마음과 속을 꿰뚫어 보시는 만군의 주님 당신께 제 송사를 맡겨 드렸으니 당신께서 저들에게 복수하시는 것을 보게 해 주소서. 13 주님께 노래 불러라! 주님을 찬양하여라! 그분께서 가난한 이들의 목숨을 악인들의 손에서 건지셨다. 14 저주를 받아라, 내가 태어난 날! 복을 받지 마라, 어머니가 나를 낳은 날! 15 저주를 받아라, “당신에게 사내아이가 태어났소!” 하며 아버지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여 그를 몹시 기쁘게 한 사람! 16 바로 그 사람을 주님께서 사정없이 뒤엎으신 성읍처럼 되게 하여라. 아침에는 울부짖음을, 한낮에는 전쟁의 함성을 듣게 하여라. 17 그가 모태에 든 나를 죽여 어머니가 내 무덤이 되고 내가 언제까지나 모태에 있지 못하게 한 탓이다. 18 어찌하여 내가 모태에서 나와 고난과 슬픔을 겪으며 내 일생을 수치 속에서 마감해야 하는가?





2. 말씀연구

예레미야 예언자(Jeremias, 기원전 650∼588)는 기원전 650년경 예루살렘 근교의 어느 사제가문에서 출생1)하였습니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파멸을 예고하였는데, 다윗의 왕좌를 차지했던 유대의 왕들은 예언자의 이 “불 칼” 같은 경고2)를 아예 무시했으며 또 군인들은 예레미야가 패배주의를 선동한다고 비난하며 그를 박해하고 고문하며 투옥시키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예루살렘은 함락되었습니다.



주님의 집 총감독인 임메르의 아들 파스후르 사제가 이런 일을 예언하는 예레미야의 말을 듣고서, 예레미야 예언자를 때리고 그를 주님의 집 ‘벤야민 윗대문’ 안에 있는 기둥에 묶어 놓았습니다. 다음 날 파스후르가 예레미야를 기둥에서 풀어 놓자, 예레미야가 그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파스후르가 아니라 마고르 미싸빕3)이라 부르실 것이오.



7 주님, 당신께서 저를 꾀시어 저는 그 꾐에 넘어갔습니다. 당신께서 저를 압도하시고 저보다 우세하시니 제가 날마다 놀림감이 되어 모든 이에게 조롱만 받습니다.

예레미야는 기원전 626년, 요시야왕 치세 제13년에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젊은 예언자로 나섰습니다(예레 1:2). 예레미야 예언자는 유대왕국의 멸망이 예견되었고 드디어는 예루살렘의 몰락을 초래한 비극적 시대4)를 살고 있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이 어두운 시대의 역사적 비극을 모두 지켜보았습니다. 그가 이 비극을 좌시한 것은 아닙니다. 예언자는 지도자와 민중에게 하느님 말씀의 대변자로 나서서 맹렬히 설교했고 위협했으며 왕국의 몰락을 예고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예레미야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날마다 놀림감이 되어 모든 이에게 조롱만 받았습니다.



8 말할 때마다 저는 소리를 지르며 “폭력과 억압뿐이다!” 하고 외칩니다. 주님의 말씀이 저에게 날마다 치욕과 비웃음거리만 되었습니다.

예언자는 거짓을 말해서는 안됩니다. 예언자는 하느님께서 담아 주신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예레미야 예언자의 입에 담아 준 것은 파멸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례미야 예언자는 “폭력과 억압뿐이다!” 라는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하느님께 등을 돌린 이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폭력과 억압뿐입니다. 그것을 예레미야 예언자는 선포한 것입니다.



남이 좋아하는 말을 하는 사람은 거짓 예언자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이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자기 생각이나,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해 주는 이야기를 전해서는 안 됩니다. 비록 예레미야처럼 고통속에서 살아간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9 ‘그분을 기억하지 않고 더 이상 그분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으리라.’ 작정하여도 뼛속에 가두어 둔 주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오르니 제가 그것을 간직하기에 지쳐 더 이상 견뎌 내지 못하겠습니다.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끝까지 그 말씀에 충실하다 보니, 예레미야는 그야말로 ‘말씀의 고독한 예언자’가 되었고, 전생애는 일종의 비극이었습니다. 그는 성품이 온순했고 사랑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무너뜨리고 파괴하며 전복하고 없애버리는’ 사명(1:10)을 주셨습니다. 그의 예언은 끝없는 불행만을 예고하였습니다(20:8). 예레미야는 평화를 원했건만 자기 가족과 왕들과 사제들, 그리고 거짓 예언자들과 모든 민중을 반대하여 싸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예레미야는 "온 나라 안에서 싸움과 불화의 사나이로 통한 것"(15:10)입니다. 그가 이 같은 사명을 수행하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선택할 지경에 이르기도 하였습니다. 예레미야는 말씀에 의해 완전히 가루가 될 뻔 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20:9).



고통 받은 예언자 예레미야는 고통 때문에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기 싫지만, “뼛속에 가두어 둔 주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오르니 제가 그것을 간직하기에 지쳐 더 이상 견뎌 내지 못하겠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처럼, 차라리 전하는 것이 덜 괴로운 상태입니다.



10 군중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립니다. “저기 마고르 미싸빕이 지나간다! 그를 고발하여라. 우리도 그를 고발하겠다.” 가까운 친구들마저 모두 제가 쓰러지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가 속아 넘어가고 우리가 그보다 우세하여 그에게 복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주님의 집 총감독인 임메르의 아들 파스후르 사제”에게 “파스후르가 아니고 마고르 미싸빕”이라고 불릴 것임을 예언하였는데, 군중들은 오히려 예레미야에게 “마고르 미싸빕”이라고 놀려댔습니다. 예레미야가 “하느님께 등을 돌린 이들에게 선포한 마고르 미싸빕- 사방에서 공포가-)”가 오히려 예레미야의 별명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레미야의 친구라고는 하나도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고 계십니다.



11 그러나 주님께서 힘센 용사처럼 제 곁에 계시니 저를 박해하는 자들이 비틀거리고 우세하지 못하리이다. 그들은 성공하지 못하여 크게 부끄러운 일을 당하고 그들의 수치는 영원히 잊혀지지 않으리이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이니, 하느님께서는 힘센 용사처럼 예레미야 곁에 계시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를 박해하는 모든 이들은 “자신들이 이미 받을 만큼 고통을 받았고, 자신들은 남아 있는 자들이며, 이제 하느님의 뜻대로 싸우면 이기는데, 예레미야가 재수 없게 군중을 선동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성공하지 못하고, 크게 부끄러운 일을 당하고, 그들의 수치는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바로 예루살렘의 멸망과 유배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2 의로운 이를 시험하시고 마음과 속을 꿰뚫어 보시는 만군의 주님 당신께 제 송사를 맡겨 드렸으니 당신께서 저들에게 복수하시는 것을 보게 해 주소서.

알고 있는 것을 얘기해 주는데, 회개할 생각은 안 하고, 오히려 예레미야를 박해합니다. “의로운 이를 시험하시고, 마음과 속을 꿰뚫어 보시는 만군의 주님, 당신께 제 송사를 맡겨 드렸으니”라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대로 저는 말씀을 전했으니”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전하고 비록 욕만 실컷 얻어먹고, 박해를 받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하느님의 일을 했으니”라는 것입니다. “저들에게 복수하는 것을 보게 해 주소서.”라는 것은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어느 누가 동족의 멸망을 바라겠습니까? 하느님께서도 이 백성에게 벌을 내리시는 이유가 멸망시키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회개시키기 위해서임을 예레미야 예언자는 잘 알고 있습니다. 죄는 죄이고, 그 죄에 대한 벌은 받아야 합니다. 모든 악한 행동은 고통으로 그 값을 치러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정의입니다(상선벌악). 하느님의 심판은 언제나 공정하니, 모든 심판은 오롯이 하느님께 맡겨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13 주님께 노래 불러라! 주님을 찬양하여라! 그분께서 가난한 이들의 목숨을 악인들의 손에서 건지셨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가난한 이들”즉, 하느님만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의로운 이들을 악인들손에서 건져주십니다. 악인들이 하느님만을 믿고 따르는 이들을 협박하고, 폭력을 가하고, 생명까지 빼앗을 수 있지만, 영원한 생명을 관장하시는 하느님께서는 결코 의로운 이들의 고통을 그냥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건지셨다.”는 것은 보호하신다는 것이고, 생명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14 저주를 받아라, 내가 태어난 날! 복을 받지 마라, 어머니가 나를 낳은 날! 15 저주를 받아라, “당신에게 사내아이가 태어났소!” 하며 아버지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여 그를 몹시 기쁘게 한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은 고통입니다. 그 고통을 감당할 수 없기에 “자신이 태어난 날을 저주”합니다. 예레미야에게서 있어서 하느님과의 내적인 대화는 온통 고통의 외침이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나의 고통은 끝이 없나이까?"(15:18) 욥의 저주를 예고한 예레미야의 그 외침은 고백론의 절정입니다. "내가 태어난 그날은 저주받을 지어다!"(20:14 이하). 하지만 이 고통은 예레미야의 영혼을 정화시켰으니 하느님과의 내밀한 친교를 가능케 하였습니다.



예레미야 예언자와는 달리, 가끔은 “저 사람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하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그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고, 의로운 삶을 살아가는 내가 되도록 다짐을 합시다.



16 바로 그 사람을 주님께서 사정없이 뒤엎으신 성읍처럼 되게 하여라. 아침에는 울부짖음을, 한낮에는 전쟁의 함성을 듣게 하여라. 17 그가 모태에 든 나를 죽여 어머니가 내 무덤이 되고 내가 언제까지나 모태에 있지 못하게 한 탓이다. 18 어찌하여 내가 모태에서 나와 고난과 슬픔을 겪으며 내 일생을 수치 속에서 마감해야 하는가?

예레미야가 원하는 것은 자신의 죽음입니다. 하지만 예언자의 목숨은 오롯이 하느님께 달려있기에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태어난 날을 저주하고, 멸망한 도시를 그리워합니다. 창세기 19장 25절에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을 합니다. “그리하여 그 성읍들과 온 들판과 그 성읍의 모든 주민, 그리고 땅 위에 자란 것들을 모두 멸망시키셨다.”(창세기19,25)는 말씀이 자신에게 해당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를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차라리 어머니의 뱃속이 자신의 무덤이 되었다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게 어머니 뱃속에서 죽었다면 “고난과 슬픔을 겪으며, 일생을 수치 속에서 마감”하지 않아도 됐을 것임을 희망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언자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어떤 처지에 있든지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 예언자의 고통을 바라보면서 “조금 주어지는 어려움 때문에 신앙을 등지는 행위”는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어떤 처지에 있든지 복음을 선포하겠다는 다짐을 해 봅시다.



3. 나눔 및 묵상

① 예레미야 예언자의 다섯 번째 고백을 들으면서 내가 느끼고 결심한 것은 무엇입니까?



② 신앙생활을 하면서 다가오는 어려움은 무엇입니까? 그 어려움이 정말로 내가 견딜 수 없는 어려움입니까? 그리고 그런 어려움이 있는 형제자매가 있다면 어떻게 조언해 주시겠습니까?



4.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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