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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1-07-15 (금) 18:42
분 류 지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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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혜12,12-22 ;하느님의 주권은 정의의 원천, 관대함과 교훈 ”
 

하느님의 주권은 정의의 원천, 관대함과 교훈

1. 말씀읽기: 지혜12,12-22

12 누가 감히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하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당신의 심판에 반대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께서 만드신 민족들을 스스로 멸망시키신 일을 두고 누가 당신을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불의한 인간들의 변호인으로 당신과 맞설 수 있겠습니까? 13 만물을 돌보시는 당신 말고는 하느님이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께서는 불의하게 심판하지 않으셨음을 증명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14 또 당신께서 징벌하신 자들을 두고 어떠한 임금이나 군주도 당신과 대결할 수 없습니다. 15 당신께서는 의로우신 분으로 만물을 의롭게 관리하시니 징벌을 받을 까닭이 없는 이를 단죄하는 것을 당신의 권능에 맞지 않는 일로 여기십니다.

16 당신의 힘이 정의의 원천입니다. 당신께서는 만물을 다스리는 주권을 지니고 계시므로 만물을 소중히 여기십니다. 17 정녕 당신의 완전한 권능이 불신을 받을 때에만 당신께서는 힘을 드러내시고 그것을 아는 이들에게는 오만한 자세를 질책하십니다. 18 당신께서는 힘의 주인이시므로 너그럽게 심판하시고 저희를 아주 관대하게 통솔하십니다. 당신께서는 무엇이든지 원하시는 때에 하실 능력이 있으십니다.



관대함의 교훈

19 당신께서는 이렇게 하시어 의인은 인자해야 함을 당신 백성에게 가르치시고 지은 죄에 대하여 회개할 기회를 주신다는 희망을 당신의 자녀들에게 안겨 주셨습니다.

20 당신 자녀들의 원수들로서 죽어 마땅한 자들에게까지 악에서 벗어날 시간과 기회를 베푸시며 그토록 주의와 배려를 다하여 처벌하셨다면 21 당신의 자녀들은 얼마나 신중하게 심판하셨겠습니까? 바로 그들의 조상들에게 당신께서는 맹세와 계약으로 좋은 약속들을 해 주셨습니다. 22 저희는 그냥 벌하시지만 저희의 원수들은 만 번을 더 채찍질하시니 저희가 남을 심판할 때에는 당신의 선하심을 잘 생각하고 심판을 받을 때에는 자비를 기대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2. 말씀연구

내 뜻과 하느님 뜻이 같을 경우에는 기쁘게 그 일을 하지만, 내 뜻과 하느님 뜻이 다를 경우에는 불평과 불만이 나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내 뜻에 맞춰 주길 원하고, 그렇게 청합니다. 하지만 나는 절대로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세상 만물의 주재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주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결코 불의하게 판단하지 않으시며, 쉽게 분노하지도 않으십니다. 무자비하게 단죄하시지도 않으십니다. 주님께서는 사랑이 지극하시고, 너그러우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뜻에 온전히 “예”하고 따를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12 누가 감히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하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당신의 심판에 반대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께서 만드신 민족들을 스스로 멸망시키신 일을 두고 누가 당신을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불의한 인간들의 변호인으로 당신과 맞설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께 “어떻게 이렇게 하실 수 있습니까? 하느님께서 잘못하신 것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전지전능하시고, 세상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판단을 간섭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누가 당신의 심판에 반대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불의한 인간들의 변호인으로 하느님과 맞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영화에서 보면 죄인을 변호하여 무죄를 선고받도록 하는 변호사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변호가 하느님께는 통하지 않습니다. 거짓과 감언이설이 하느님께는 결코 통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느님께 불경을 저지릅니다. 내 판단과 하느님의 계획이 맞지 않을 때는 내 판단을 접지 않고, 오히려 하느님께 불경을 저지릅니다. “하느님! 어떻게 저에게 이렇게 하실 수 있습니까?”하고.



13 만물을 돌보시는 당신 말고는 하느님이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께서는 불의하게 심판하지 않으셨음을 증명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심판은 항상 올바르십니다. 하느님의 심판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하느님께서도 “내가 한 것이 옳은 것이란다.”하고 증명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14 또 당신께서 징벌하신 자들을 두고 어떠한 임금이나 군주도 당신과 대결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악인에게는 벌을 주시지만 의로운 이들은 끝까지 돌보십니다. 그런데 악인에게 내리신 심판을 그 어느 누구도 “잘못된 판결입니다.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하며, 대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절대 권력을 가졌던 파라오도 결국 하느님 앞에서는 먼지와도 같았습니다.



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의 판결에 온전히 맡겨야 함을 알고 있다면, 당연히 하느님께서 판결하실 때 의로운 사람으로 판결 받을 수 있도록 내 삶의 방식을 바꾸어야 합니다. 어느 누구도 하느님의 판결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15 당신께서는 의로우신 분으로 만물을 의롭게 관리하시니 징벌을 받을 까닭이 없는 이를 단죄하는 것을 당신의 권능에 맞지 않는 일로 여기십니다. 16 당신의 힘이 정의의 원천입니다. 당신께서는 만물을 다스리는 주권을 지니고 계시므로 만물을 소중히 여기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분노를 함부로 표현하지 않으십니다. 인간은 자기감정을 자신보다 약한 존재에게 함부로 표현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결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또한 인간의 분노는 다른 분노를 낳고, 혼돈을 만들지만, 하느님의 심판은 평화와 안정을 만들어 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으로 인간을 창조하셨고, 자유의지를 주셨으며, 그 자유의지를 존중해 주시고, 당신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실 정도로 사랑해 주십니다. “만물을 소중히 여기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4,16)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17 정녕 당신의 완전한 권능이 불신을 받을 때에만 당신께서는 힘을 드러내시고 그것을 아는 이들에게는 오만한 자세를 질책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실 때, 홍해를 가르시어 당신 백성을 이끄셨고, 이집트인들을 물리치셨습니다. 불신자들에게 당신의 힘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런데 파라오는 모세를 통하여 하느님의 능력을 알고 있었고, 하느님의 계획을 알고 있었습니다. 파라오는 자신의 아들이 죽은 후 히브리인들이 떠나가는 것을 허락하였지만 다시 그들을 추격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벌은 홍해 바다에서의 죽음으로 돌아왔습니다. 주님의 권능을 알고 있지만, 자신의 힘을 믿고 주님께 대항하는 이는 결국 벌을 받게 됩니다. 하느님의 권능 안에서 자신의 보잘 것 없음을 체험하게 됩니다.



자연의 힘은 참으로 위대합니다. 인간이 흐르는 물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습니까? 무너지는 산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을 마음대로 하려하고, 산을 깎아서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지만, 결국 돌아오는 것은 자연의 힘 앞에서 보잘 것 없는 자신을 드러내는 것뿐입니다.



자연의 힘도 이럴 진데, 권능을 지니신 하느님의 힘은 어느 누구도 대적할 수 없습니다.



18 당신께서는 힘의 주인이시므로 너그럽게 심판하시고 저희를 아주 관대하게 통솔하십니다. 당신께서는 무엇이든지 원하시는 때에 하실 능력이 있으십니다.

하느님을 대적할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기회를 주시는 것은 힘이 없으셔서가 아니라 관대하시고 자비로우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무엇이든지 원하시는 때에 원하시는 것을 원하시는 곳에서 하실 능력이 있으십니다.” 인간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것이 전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무자비한 분이 아니십니다. 정복자들이 포로들을 학대하듯 그렇게 무자비하게 대하시는 분이 아니라 아버지가 아들을 대하듯, 목자가 양을 대하듯 그렇게 자비로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내가 믿고 있는 하느님은 지극히 너그럽고 자비로우신 분이십니다. 주님의 자비가 넘치시기에 내가 내 죄 때문에 죽지 않고, 회개할 기회를 부여받았으며, 부족한 모습으로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19 당신께서는 이렇게 하시어 의인은 인자해야 함을 당신 백성에게 가르치시고 지은 죄에 대하여 회개할 기회를 주신다는 희망을 당신의 자녀들에게 안겨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자비를 베푸시며, 당신의 자비를 입고 있는 백성들이 자비를 베풀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인자한 사람”은 주님의 자비를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용서하는 사람이고, 형제를 존중해주고, 배려하는 사람입니다. 편협한 마음으로 형제자매들에게 다가가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사랑해주는 사람입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인자한 사람”이 되길 원하십니다.



또한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을 모르기에, 아무리 노력해도 죄를 짓게 됩니다. 그 자체로 한계를 가진 인간이기에 “생각과 말과 행위”로 죄를 짓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 죄로 멸망에 떨어지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 회개하여 살기를 원하십니다.

사울에게도 기회를 주셨지만 그 기회를 사울은 잡지 못해 결국 멸망하고 맙니다. 다윗은 하느님 앞에 큰 죄를 지었지만 회개하고 용서를 청하여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으로 기억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회개의 삶”입니다. 그 기회를 주시고, 역사 안에서 회개하여 용서받은 사람들의 모습을 통하여, 모든 이들이 회개하면 영원한 생명을 차지하게 된다는 “확신의 희망”을 갖게 하셨습니다.


20 당신 자녀들의 원수들로서 죽어 마땅한 자들에게까지 악에서 벗어날 시간과 기회를 베푸시며 그토록 주의와 배려를 다하여 처벌하셨다면 21 당신의 자녀들은 얼마나 신중하게 심판하셨겠습니까? 바로 그들의 조상들에게 당신께서는 맹세와 계약1)으로 좋은 약속들을 해 주셨습니다.

어느 누구도 죽어 마땅한 사람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죽어 마땅한 것이 아니라 회개하여 다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 안에서 “죄를 지은 이들이 악에서 벗어날 기회와 시간”을 주셨습니다. 예언자들을 통하여 잘못에서 벗어나 회개하고 생명을 얻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므로 죄인들도 살리시는데, 당신의 자녀들에게야 얼마나 너그럽게 은총을 베푸시겠습니까? 나를 살리시기 위해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신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은 “나를 구원하시겠다는 강한 의지”가 드러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성실하게 계약을 이행하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와 성실함을 굳게 믿고, 회개하고 주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22 저희는 그냥 벌하시지만 저희의 원수들은 만 번을 더 채찍질하시니 저희가 남을 심판할 때에는 당신의 선하심을 잘 생각하고 심판을 받을 때에는 자비를 기대하라는 것입니다.

“저희는 그냥 벌하시지만 저희의 원수들은 만 번을 더 채찍질하시니”라는 것은 멸망으로 떨어질 사람들과 구원에 이를 사람들을 대하시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냥 벌하신다.”는 것은 벌하시는 이유가 잘 되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멸망으로 떨어지지 않고, 구원받게 하시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희의 원수들”은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당신의 뜻을 전하셨지만 파라오는 결코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자기 고집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하느님을 적대하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채찍질”은 결국 죽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알고 있기에 주님의 자녀들은 남을 심판할 때, 자신이 받은 자비를 생각하게 되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멸망이 아니라 구원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를 구원에로 인도하기 위해서 이해하려 하고, 용서하려 하며, 함께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선하시니 하느님의 자녀들도 선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것입니다. 또한 “내가 베푼 자비를 주님께서는 기억하시고, 그 자비를 나에게 넘치게 베푸신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용서하고, 이해해 주려고 노력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내가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에 “예”하고 응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베푸신 자비를 기억하며, 나 또한 자비를 베푸는 것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살아가면서 주님께 감사한 것도 있고, 원망스러운 것들도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온전히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 드리고, 내 판단이 아니라 주님의 이끄심에 순명할 수 있을까요?



② 내가 다른 이들과 함께 하면서 주님의 자비하심을 보여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4.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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