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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하느님의 전능
작성일 2008-01-12 (토) 12:02
분 류 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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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편 2편: 왕이신 메시아 ”
 

시편 2편: 왕이신 메시아

1 어찌하여 민족들이 술렁거리며 겨레들이 헛일을 꾸미는가?

2 주님을 거슬러, 그분의 기름부음 받은 이를 거슬러 세상의 임금들이 들고 일어나며 군주들이 함께 음모를 꾸미는구나.

3 “저들의 오랏줄을 끊어 버리고 저들의 사슬을 벗어 던져 버리자.”

4 하늘에 좌정하신 분께서 웃으신다. 주님께서 그들을 비웃으신다.

5 마침내 진노하시어 그들에게 말씀하시고 분노하시어 그들을 놀라게 하시리라.

6 “나의 거룩한 산 시온 위에 내가 나의 임금을 세웠노라!”

7 주님의 결정을 나는 선포하리라.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8 나에게 청하여라. 내가 민족들을 너의 재산으로, 땅 끝까지 너의 소유로 주리라.

9 너는 그들을 쇠 지팡이로 쳐부수고 옹기장이 그릇처럼 바수리라.”

10 자, 이제 임금들아, 깨달아라. 세상의 통치자들아, 징계를 받아들여라.

11 경외하며 주님을 섬기고 떨며 그분의 발에 입 맞추어라.

12 그러지 않으면 그분께서 노하시어 너희가 도중에 멸망하리니 자칫하면 그분의 진노가 타오르기 때문이다. 행복하여라, 그분께 피신하는 이들 모두!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2. 말씀연구

시편 2편은 시온과 온 땅의 왕이신 메시아에 대한 찬가입니다. 왕적 시편은 당신 백성에 대한 왕권을 찬양합니다. 왕은 이스라엘에서는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왕의 모습 뒤에는 더욱더 분명하게 왕이신 메시아가 그 모습을 드러내십니다. 그것은 다윗 왕좌가 준비된 것도 언젠가 영원히 당신 백성을 지배하시게 될 메시아 때문입니다.



 모든 왕적 시편은 글자 그대로 다윗 혹은 이스라엘의 특정의 왕을 가리키고 있다 할지라도 메시아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각 왕은 왕이신 메시아의 상징이고, 다윗에게 준 약속도, 이스라엘의 왕들에게 걸었던 기대도, 실제로는 메시아에게서 실현되기 때문입니다.



1 어찌하여 민족들이 술렁거리며 겨레들이 헛일을 꾸미는가?

시편 2편은 메시아에 관한, 그리고 당신께 반역하는 이 세상 왕들에 대한 그 싸움에 관한 예언적 말씀입니다. 술렁거리는 것, 헛일을 꾸미는 것은 모두 왕들의 음모와 반역을 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2 주님을 거슬러, 그분의 기름부음 받은 이를 거슬러 세상의 임금들이 들고 일어나며 군주들이 함께 음모를 꾸미는구나.

기름부음을 받은 이는 히브리말에서 “기름을 붓다, 기름을 바르다”라는 동사에 나오는 “마쉬아”에 해당합니다.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것은 임금으로 책봉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마쉬아는 칠십인역에서는 크리스토스로 옮겨지고, 그리스말과 라틴말에서는 메씨아스로 음역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또는 “메시아”로 옮길 수도 있지만, 후대의 메시아 사랑, 또는 그리스도론적 선입관이 개임될 여지가 있기 때문에 원 뜻을 살려 “기름부음받은이”로 번역하고 특수명사로 간주해서 붙여 썼습니다.



헤로데와 빌라도,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거슬러 음모를 꾸미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사도행전에서는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24 주님께서는 성령으로 주님의 종인 저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25 ‘어찌하여 민족들이 술렁거리며 겨레들이 헛일을 꾸미는가? 26 주님을 거슬러, 그분의 기름부음받은이를 거슬러 세상의 임금들이 들고일어나며 군주들이 함께 모였구나.’ 27 과연 헤로데와 본시오 빌라도는 주님께서 기름을 부으신 분, 곧 주님의 거룩한 종 예수님을 없애려고, 다른 민족들은 물론 이스라엘 백성과도 함께 이 도성에 모여, 28 그렇게 되도록 주님의 손과 주님의 뜻으로 예정하신 일들을 다 실행하였습니다. 29 이제, 주님! 저들의 위협을 보시고, 주님의 종들이 주님의 말씀을 아주 담대히 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30 저희가 그렇게 할 때, 주님께서는 손을 뻗으시어 병자들을 고치시고, 주님의 거룩한 종 예수님의 이름으로 표징과 이적들이 일어나게 해 주십시오.”(사도4,24-30)



어떤 형제가 본당 신부님께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형제는 주교님을 찾아가 자신이 당한 어려움을 호소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이 사울에게 한 행동을 보면서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죽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사울은 비록 지금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져 있는 상태라고는 하나 하느님께로부터 성별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로부터 성별된 사람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을 깨달은 그는 더욱 열심히 자신이 할 도리를 했다고 합니다.



3 “저들의 오랏줄을 끊어 버리고 저들의 사슬을 벗어 던져 버리자.”

고대 동양의 대제국들의 세계에서는 힘 있는 통치자가 죽으면, 모든 나라들이 극도로 도용하는 상태에 빠졌습니다. 속박을 받아 왔던 나라들 안에서는 자유에 대한 열망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거대 제국의 힘을 강화하고 새롭게 세워 나가기 위하여 예속된 제후들과 백성들의 반역을 진압하는 일은 새 왕의 중요하고도 가장 긴급한 과제였습니다.



4 하늘에 좌정하신 분께서 웃으신다. 주님께서 그들을 비웃으신다.

이 시의 저자는 지상 왕들의 반역을 하늘에 계시는 하느님의 초월적 장엄함과 대결시키고 있습니다. 세상 권세들의 어떠한 반역도 이 시의 저자에게 있어서는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반역으로 보이며, 열국들이 분노하고 음모하는 것은 하느님께 대한 반역이기 때문에,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그것은 쓸데없는 시도입니다.

 하늘에 좌정하신 하느님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무 쓸모없는 일에 목숨을 걸고 있으니 웃음이 날 수 밖에 없지 않을까요? 가소로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반역을 한다는 것.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있어서도 안 되는 일입니다. 하느님의 절대적인 권능을 막을 존재는 이 세상 피조물 중에는 없습니다.



5 마침내 진노하시어 그들에게 말씀하시고 분노하시어 그들을 놀라게 하시리라.

하느님의 진노는 사람의 진노와 다르고, 하느님의 분노는 인간의 분노와 다릅니다. 하느님께서 진노하시는 이유는 당신 백성이 잘못된 길로 가기 때문이요, 하느님께서 분노하시는 이유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 분노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잘못된 길에 들어선 이들을 바로 잡기 위해서입니다.

하느님의 분노도 자비의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야 합니다.



6 “나의 거룩한 산 시온 위에 내가 나의 임금을 세웠노라!”

세상의 주인은 하느님 이십니다. 그리고 세상을 통치하는 일을 맡은 임금은 하느님께서 세우십니다. 하느님의 뜻에 의해 세워지지 않은 임금은 참된 임금이 아닙니다. 그는 하느님의 일을 하지 않고 자신의 일을 할 것입니다. 결국 하느님이 세우신 임금에게 반역하는 것은 하느님께 반역을 하는 것입니다.



7 주님의 결정을 나는 선포하리라.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주님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는 바로 하느님께로부터 선택되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왕은 하느님의 아들이며(이스라엘의 왕은 하느님의 양자라고 보고 있었다. 2사무7,14), 땅의 끝에 이르기까지 만민에 대한 권력이 주어졌습니다.

“너는 내 아들”이라는 고대의 양자에 관한 조문을 사용함으로써 육체적으로 낳는다는 관념을 배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편저자는 대관식 때 선호하는 의식의 관념 즉, 왕이 하느님의 아들 됨을 “선포하는 관념”으로 변형시켰습니다. 이러한 행동을 통하여 특별한 중요성을 강조하여 부여한 곳은 왕 개인의 권위가 아니라 왕으로 받은 직무였습니다. 이에 따라서, 구약의 왕권은 진정한 통치자이신 하느님의 뜻을 구현하는 기능과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시편에서 오늘은 말씀의 탄생이 이루어지는 영원이지만, 동시에 부활의 날이기도 합니다. 이 날에는 그리스도의 불멸의 몸과 그분과 함께 구속된 인류는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갑니다.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시어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아들로 말미암아, 아들의 십자가상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받고 속박에서 풀려났습니다(참조: 콜로새 1,13-14). 이리하여 시편의 예언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나에게 청하여라. 내가 민족들을 너의 재산으로, 땅 끝까지 너의 소유로 주리라.”는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대사제의 영광스러운 자리를 스스로 차지하신 것은 아닙니다. 영광스러운 자리는 ,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하고 말씀하시는 하느님께서 주신 것입니다(히브리5,5).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인 “그분과 함께 그분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렇다면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는 하느님은 “말씀”은 우리들이 하느님의 생명으로 태어날 수 있도록 “인간인 우리들의 생명에 태어나셨다”는 것입니다.



8 나에게 청하여라. 내가 민족들을 너의 재산으로, 땅 끝까지 너의 소유로 주리라.

하느님께로부터 임명을 받았기에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힘을 부여 받았고, 소유물을 받았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청하기만 하면 이 모든 것들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왕에게 부여한 아들의 특권도 같은 방식으로 이해가 되어야 합니다. 왕은 하느님께 은혜를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열국들과 땅을 그의 유산으로 주실 것입니다.

 고대 동양의 신탁들은 권력을 추구하는 왕들의 역사적 열망에 부응하여, 신의 도움에 관한 약속을 통하여 거대한 힘을 왕들에게 나누어 주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강조점을 주는 곳은 대체로 해당 국가의 국내적 사건입니다. 다른 한편 구약성경에서는 국내의 역사적 사건들을 역사 초월적인 하느님의 뜻을 짊어지고 다니는 사건들로서 간주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하느님의 뜻은 역사를 초월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전적으로 모두 다 포함하게 되었습니다. 즉 신앙은 역사적 현실의 경계선을 넘어가는 것입니다.



9 너는 그들을 쇠 지팡이로 쳐부수고 옹기장이 그릇처럼 바수리라.”

하느님께로부터 힘을 받았기에 못할 것이 없습니다. 옹기장이 그릇이 쇠 지팡이에 아무런 힘없이 깨져 버리는 것처럼, 하느님께서 주시는 힘은 그 무엇으로도 감당할 수 없습니다.



10 자, 이제 임금들아, 깨달아라. 세상의 통치자들아, 징계를 받아들여라.

하느님께 대항하는 권력자들은 깨달아야 합니다. 자신들의 권력이 하루살이보다도 못하다는 것을. 이제 하느님께 충실하지 못한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징계뿐입니다.



11 경외하며 주님을 섬기고 떨며 그분의 발에 입 맞추어라.

지상의 통치자들에게 다시 한번 경고의 말씀이 주어집니다. 그들은 권능을 가지고 통치하시는 참된 하느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이 시 전체는 이 땅의 참 주님이신 하느님께서는 시온의 왕 배후에 서 계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하느님을 섬기고 그분을 두려워하며, 그분께 온전히 승복하고 자신을 낮춰야 하는 것입니다. 신하들이 왕의 발에 입을 맞추어 존경과 복종을 드러내듯이 하느님께 그렇게 복종해야 합니다.



12 그러지 않으면 그분께서 노하시어 너희가 도중에 멸망하리니 자칫하면 그분의 진노가 타오르기 때문이다. 행복하여라, 그분께 피신하는 이들 모두!

하느님께 마음을 두는 사람과 세상 권력에 마음을 두는 사람의 끝은 다릅니다. 하느님께서 분노하시어 멸망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지상의 왕들이 겸손하게 하느님께로 향해야 합니다.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과 경외심을 갖고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하느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면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하느님의 분노를 사게 될 것입니다.



시편 2편은 하느님은 주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분노가 하느님을 비웃는 자들에게는 위협적인 것이지만 주님 안에 피난처를 찾는 자들은 하느님의 도우심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하느님께 무조건적으로 경외해야 합니다.



3. 나눔 및 묵상

1. 나는 하느님을 무조건적으로 따르고 있습니까? 아니면 계산하면 따르고 있습니까?



2. 내가 하느님을 거슬러 행하고 있는 것들은 어떤 것입니까? 나는 어떻게 해야 그 모든 것을 접고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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