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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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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생명과 죽음
작성일 2012-07-04 (수) 16:58
분 류 지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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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혜1,1-2,24;하느님을 찾고 악을 피하여라 ”

하느님을 찾고 악을 피하여라

1. 말씀읽기: 지혜1,1-2,24

1 세상의 통치자들아, 정의를 사랑하여라. 선량한 마음으로 주님을 생각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그분을 찾아라. 2 주님께서는 당신을 시험하지 않는 이들을 만나 주시고 당신을 불신하지 않는 이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신다. 3 비뚤어진 생각을 하는 사람은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고 그분의 권능을 시험하는 자들은 어리석은 자로 드러난다. 4 지혜는 간악한 영혼 안으로 들지 않고 죄에 얽매인 육신 안에 머무르지 않는다. 5 가르침을 주는 거룩한 영은 거짓을 피해 가고 미련한 생각을 꺼려 떠나가 버리며 불의가 다가옴을 수치스러워한다.

6 지혜는 다정한 영, 그러나 하느님을 모독하는 자는 그 말에 책임을 지게 한다. 하느님께서 그의 속생각을 다 아시고 그의 마음을 샅샅이 들여다보시며 그의 말을 다 듣고 계시기 때문이다. 7 온 세상에 충만한 주님의 영은 만물을 총괄하는 존재로서 사람이 하는 말을 다 안다. 8 그러므로 불의한 것을 지껄이는 자는 반드시 탄로 나고 징계하는 정의가 그를 그냥 지나쳐 버리지 않는다.

9 간계를 꾸미는 악인은 신문을 받고 그가 말하는 소리가 주님께 다다라 그 악행으로 벌을 받는다. 10 열성스러운 귀는 모든 것을 다 들으니 투덜거리는 소리도 그냥 넘기지 않는다. 11 그러니 조심하여 쓸데없이 투덜거리지 말고 비방하지 않도록 혀를 잡도리하여라. 은밀히 하는 말도 반드시 결과를 가져오고 거짓을 말하는 입은 영혼을 죽인다.

12 그릇된 생활로 죽음을 불러들이지 말고 자기의 행위로 파멸을 끌어들이지 마라.

13 하느님께서는 죽음을 만들지 않으셨고 산 이들의 멸망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14 하느님께서는 만물을 존재하라고 창조하셨으니 세상의 피조물이 다 이롭고 그 안에 파멸의 독이 없으며 저승의 지배가 지상에는 미치지 못한다. 15 정의는 죽지 않는다.

 

악인들의 삶과 생각

16 악인들은 행실과 말로 죽음을 불러내고 죽음을 친구로 여겨 그것을 열망하며 죽음과 계약을 맺는다. 그들은 죽음에 속한 자들이 되어 마땅하다.

지혜서 2장

1 그들은 옳지 못한 생각으로 저희끼리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삶은 짧고 슬프다. 인생이 끝에 다다르면 묘약이 없고 우리가 알기로 저승에서 돌아온 자도 없다.

2 우리는 우연히 태어난 몸, 뒷날 우리는 있지도 않았던 것처럼 될 것이다. 우리의 콧숨은 연기일 뿐이며 생각은 심장이 뛰면서 생기는 불꽃일 따름이다. 3 불꽃이 꺼지면 몸은 재로 돌아가고 영은 가벼운 공기처럼 흩어져 버린다. 4 우리의 이름은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지고 우리가 한 일을 기억해 줄 자 하나도 없으리니 우리의 삶은 구름의 흔적처럼 사라져 가 버린다. 햇살에 쫓기고 햇볕에 버티지 못하는 안개처럼 흩어져 가 버린다. 5 우리의 한평생은 지나가는 그림자이고 우리의 죽음에는 돌아올 길이 없다. 정녕 한번 봉인되면 아무도 되돌아오지 못한다.

6 자 그러니, 앞에 있는 좋은 것들을 즐기고 젊을 때처럼 이 세상 것들을 실컷 쓰자. 7 값비싼 포도주와 향료로 한껏 취하고 봄철의 꽃 한 송이도 놓치지 말자.

8 장미가 시들기 전에 그 봉오리들로 화관을 만들어 쓰자. 9 어떠한 풀밭도 우리의 이 환락에서 빠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이것도 우리의 몫이고 저것도 우리의 차지니 어디에나 우리가 즐긴 표를 남기자. 10 가난한 의인을 억누르고 과부라고 보아주지 말자.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라고 존경할 것 없다. 11 약한 것은 스스로 쓸모없음을 드러내니 우리 힘이 의로움의 척도가 되게 하자.

12 의인에게 덫을 놓자. 그자는 우리를 성가시게 하는 자, 우리가 하는 일을 반대하며 율법을 어겨 죄를 지었다고 우리를 나무라고 교육받은 대로 하지 않아 죄를 지었다고 우리를 탓한다. 13 하느님을 아는 지식을 지녔다고 공언하며 자신을 주님의 자식이라고 부른다. 14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든 우리를 질책하니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는 짐이 된다. 15 정녕 그의 삶은 다른 이들과 다르고 그의 길은 유별나기만 하다. 16 그는 우리를 상스러운 자로 여기고 우리의 길을 부정한 것인 양 피한다. 의인들의 종말이 행복하다고 큰소리치고 하느님이 자기 아버지라고 자랑한다. 17 그의 말이 정말인지 두고 보자. 그의 최후가 어찌될지 지켜보자. 18 의인이 정녕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하느님께서 그를 도우시어 적대자들의 손에서 그를 구해 주실 것이다. 19 그러니 그를 모욕과 고통으로 시험해 보자. 그러면 그가 정말 온유한지 알 수 있을 것이고 그의 인내력을 시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20 자기 말로 하느님께서 돌보신다고 하니 그에게 수치스러운 죽음을 내리자.”

 

악인들의 그릇된 생각

21 이렇게 생각하지만 그들이 틀렸다. 그들의 악이 그들의 눈을 멀게 한 것이다.

22 그들은 하느님의 신비로운 뜻을 알지 못하며 거룩한 삶에 대한 보상을 바라지도 않고 흠 없는 영혼들이 받을 상급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23 정녕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불멸의 존재로 창조하시고 당신 본성의 모습에 따라 인간을 만드셨다. 24 그러나 악마의 시기로 세상에 죽음이 들어와 죽음에 속한 자들은 그것을 맛보게 된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2. 말씀연구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앞날을 생각하는 사람이고, 지혜로운 사람은 현재의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하느님을 찾으려 하고, 악을 피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믿음의 그릇을 준비하여 생명을 담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지혜롭지 못한 이들은 악으로 기울기 쉽고, 악으로 기울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그렇게 그들은 불신의 그릇을 준비하고, 그 그릇에는 온통 죽음을 담아 놓습니다. 어떤 것이 지혜로운 삶인지 알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믿음의 그릇에 생명이 담겨 있는지, 죽음이 담겨 있는지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2.1. 하느님을 찾고 악을 피하여라

➀ 선량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찾아라.

세상을 통치하는 이들은 정의를 사랑해야 합니다. 힘이 정의가 아니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정의가 아닙니다. 자신의 일을 성취시키기 위해 주님을 찾아서도 안 되고,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주님을 찾아서도 안 됩니다. 자신의 일과 이익을 위해 하느님을 찾는 이들은 결코 정의를 사랑하지 않고, 정의를 사랑하지 않는 이들은 결코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통치자들은 사람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람을 위해 내가 있음을 언제나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정의를 사랑해야 하고, 선량한 마음으로 주님을 생각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게 주님께로 나아갈 때 주님께서는 더 큰 은총으로 그를 돌보아 주십니다. 그러나 비뚤어진 생각을 가지고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이들은 결코 하느님께로 나아가려 하지도 않고, 하느님을 섬기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하느님의 권능을 시험하며, 죄로 빠져 버립니다.

 

➁ 지혜

그리스인들에게 있어서 지혜는 무엇보다도 신적인 것들에 대한 인식에 이르기 위한 도구였습니다. 그러나 지혜서의 저자에게 있어서 지혜는 하느님의 계시입니다. 그래서 지혜는 하느님의 뜻과 의향을 드러내고, 하느님의 생명에 동참하면서 하느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과 관련됩니다. 그래서 지혜는 의인화되어 표현됩니다. 그래서 의인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의인들의 영혼 안에 머무르면서 의인들을 하느님의 벗이 되게 해 줍니다.

 

➂ 하느님을 모독하는 자.

하느님을 모독하는 자는 그 말에 책임을 지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그의 속생각을 다 아시고 그의 마음을 샅샅이 들여다보시며 그의 말을 다 듣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온 세상에 충만한 주님의 영은 만물을 총괄하는 존재로서 사람이 하는 말을 다 아십니다. 그러므로 불의한 것을 지껄이는 자는 반드시 탄로 나고 징계하는 정의가 그를 그냥 지나쳐 버리지 않습니다. 간계를 꾸미는 악인은 신문을 받고 그가 말하는 소리가 주님께 다다라 그 악행으로 벌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가르침을 주는 거룩한 영은 거짓을 피해 가고 미련한 생각을 꺼려 떠나가 버리며 불의가 다가옴을 수치스러워 합니다. 그래서 지혜를 사랑하는 이들은 쓸데없이 투덜거리지 않으며, 남을 비방하지 않도록 자신의 혀를 잘 관리하며, 그릇된 생활로 죽음을 불러들이지 말않고, 자기의 행위로 파멸을 끌어들이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인간의 죽음과 멸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과 구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만물을 존재하라고 창조하셨지, 파멸시키려고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정의를 사랑하지 않는 이들은 생명이 아니라 죽음으로 나아가며 파멸을 생명으로 바라보며, 정의를 실천하는 이들을 어리석게 바라봅니다. 그러나 정의는 죽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보시고 갚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2.2. 악인들의 삶과 생각

악인들은 행실과 말로 죽음을 불러내고 죽음을 친구로 여겨 그것을 열망하며 죽음과 계약을 맺습니다. 결국 그들은 죽음에 속한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악인들은 미래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짧고 슬프다. 인생이 끝에 다다르면 묘약이 없고 우리가 알기로 저승에서 돌아온 자도 없다. 2 우리는 우연히 태어난 몸, 뒷날 우리는 있지도 않았던 것처럼 될 것이다. 우리의 콧숨은 연기일 뿐이며 생각은 심장이 뛰면서 생기는 불꽃일 따름이다. 3 불꽃이 꺼지면 몸은 재로 돌아가고 영은 가벼운 공기처럼 흩어져 버린다. 4 우리의 이름은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지고 우리가 한 일을 기억해 줄 자 하나도 없으리니 우리의 삶은 구름의 흔적처럼 사라져 가 버린다. 햇살에 쫓기고 햇볕에 버티지 못하는 안개처럼 흩어져 가 버린다. 5 우리의 한평생은 지나가는 그림자이고 우리의 죽음에는 돌아올 길이 없다. 정녕 한번 봉인되면 아무도 되돌아오지 못한다. 6 자 그러니, 앞에 있는 좋은 것들을 즐기고 젊을 때처럼 이 세상 것들을 실컷 쓰자. 7 값비싼 포도주와 향료로 한껏 취하고 봄철의 꽃 한 송이도 놓치지 말자. 8 장미가 시들기 전에 그 봉오리들로 화관을 만들어 쓰자. 9 어떠한 풀밭도 우리의 이 환락에서 빠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이것도 우리의 몫이고 저것도 우리의 차지니 어디에나 우리가 즐긴 표를 남기자. 10 가난한 의인을 억누르고 과부라고 보아주지 말자.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라고 존경할 것 없다. 11 약한 것은 스스로 쓸모없음을 드러내니 우리 힘이 의로움의 척도가 되게 하자. 12 의인에게 덫을 놓자. 그자는 우리를 성가시게 하는 자, 우리가 하는 일을 반대하며 율법을 어겨 죄를 지었다고 우리를 나무라고 교육받은 대로 하지 않아 죄를 지었다고 우리를 탓한다. 13 하느님을 아는 지식을 지녔다고 공언하며 자신을 주님의 자식이라고 부른다. 14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든 우리를 질책하니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는 짐이 된다. 15 정녕 그의 삶은 다른 이들과 다르고 그의 길은 유별나기만 하다. 16 그는 우리를 상스러운 자로 여기고 우리의 길을 부정한 것인 양 피한다. 의인들의 종말이 행복하다고 큰소리치고 하느님이 자기 아버지라고 자랑한다. 17 그의 말이 정말인지 두고 보자. 그의 최후가 어찌될지 지켜보자. 18 의인이 정녕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하느님께서 그를 도우시어 적대자들의 손에서 그를 구해 주실 것이다. 19 그러니 그를 모욕과 고통으로 시험해 보자. 그러면 그가 정말 온유한지 알 수 있을 것이고 그의 인내력을 시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20 자기 말로 하느님께서 돌보신다고 하니 그에게 수치스러운 죽음을 내리자.”(지혜2,1-20)

 

➀ 영원한 생명을 믿지 않는 어리석은 사람들

악인들은 주어지는 현실만을 바라봅니다. 그래서 지금 이순간만을 즐기려고 합니다. 그들은 하느님 앞에 있는 이들을 기억하지 못하고, 영원한 생명을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을 보지 못했다는 이유 하나를 들이대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한평생이 지나가는 그림자이고, 죽으면 그만이니, 앞에 있는 좋은 것들을 즐기고 젊을 때처럼 이 세상 것들을 실컷 쓰자고 말합니다.

 

➁ 쾌락에 빠져 버린 악인들

악인들은 영생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만을 바라봅니다. 지금 이 순간만을 바라보는 이들이 하는 일이란 먹고 마시고, 치장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난한 의인을 억누르고 과부나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도 무시하고, 자기들 마음 내키는 대로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가는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면 그들은 결코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고, 어리석기 때문에 그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➁ 의인을 괴롭히는 악인들

악인이 의인을 괴롭히는 이유는 자신들의 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빛이 어둠을 비추어 어둠속에 있는 추함을 드러나게 하니, 빛을 꺼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인들은 말합니다.

12 의인에게 덫을 놓자. 그자는 우리를 성가시게 하는 자, 우리가 하는 일을 반대하며 율법을 어겨 죄를 지었다고 우리를 나무라고 교육받은 대로 하지 않아 죄를 지었다고 우리를 탓한다. 13 하느님을 아는 지식을 지녔다고 공언하며 자신을 주님의 자식이라고 부른다. 14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든 우리를 질책하니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는 짐이 된다.”(지혜2,12-14)

악인들은 의인들의 삶 안에서 자신들의 잘못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악인들은 자신들의 길에서 벗어날 마음이 없습니다. 자신들이 하고 있는 것을 계속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영원한 생명을 믿지 않기에 의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17 그의 말이 정말인지 두고 보자. 그의 최후가 어찌될지 지켜보자. 18 의인이 정녕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하느님께서 그를 도우시어 적대자들의 손에서 그를 구해 주실 것이다.”(지헤2,17-18)라고 말하면서 의인들을 괴롭힙니다.

 

악인들은 의인들을 모욕과 고통으로 의인들의 인내력을 시험하려 합니다.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살아가는 의인들이니 수치스러운 죽음의 순간에도 하느님께 온전히 맡기는지, 그리고 하느님께서 그를 구원해 주시는지 확인하고자 합니다.

 

그렇게 악인들은 의인들에게 고통을 주었습니다. 믿지 않는 유다인들은 의로우신 예수님께 악인들이 의인을 시험하듯 그렇게 수치스러운 죽음을 안겨드렸습니다. 그러나 의로우신 예수님께서는 모욕을 모욕으로 갚지 않으시고, 겸손하게 십자가를 지시고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십니다. 그러나 죽음으로 끝나신 것이 아니라 삼일 만에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악인들의 생각은 틀렸습니다. 따라서 악인들은 불신의 그릇을 버리고 믿음의 그릇을 준비하여 그 안에 생명을 담아야 합니다.

 

2.3. 악인들의 그릇된 생각

악인들은 하느님을 생각하지 않고 지금 주어지는 편안함만을 생각합니다. 그렇게 자기 자신만의 편안함을 추구하다보니 그들은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잘못된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지혜는 하느님을 알게 하고, 생명을 가져다 주지만 악은 하느님을 등지게 하고 죽음을 가져다줍니다.

 

“그들의 악이 그들의 눈을 멀게 한 것이다.”(지혜2,21)

 

악인들은 눈이 멀어서 정작 보아야 하는 것을 보지 않으려고 하고, 보지 못합니다. 악인들은 하느님의 신비로운 뜻을 알지 못하며 거룩한 삶에 대한 보상을 바라지도 않고 흠 없는 영혼들이 받을 상급을 인정하지도 않습니다. 결국 그들은 죽음에 속한 자들이 되어 영원한 죽음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불멸의 존재로 창조하시고 당신 본성의 모습에 따라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악마의 시기로 세상에 죽음이 들어와 죽음에 속한 자들은 그것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인간의 죽음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영원한 삶입니다. 그래서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악인의 길이 아니라 의인의 길을 걸어야 하고, 믿음의 그릇을 준비하여 죽음이 아니라 생명을 차지해야 합니다.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 그 길 끝에는 생명과 죽음이 놓여 있습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믿음을 가진 이들이 걷는 길에 대해서 이야기 해 봅시다.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이 믿지 않은 이들과 어울려 살아가면서 힘들어하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그리고 그 어려움을 어떻게 이겨내고 있을까요?

 

②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을 묵상해 보면서 내가 걷고 있는 길은 어느 길인지, 생명을 추구하는지 죽음을 추구하는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고, 생명의 길에서 더욱 큰 기쁨을 누리기 위한 나의 노력은 어떤 것이 있는지 이야기 해 봅시다.

 

4.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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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
작성일 2011-11-05 (토) 11:21
분 류 지혜서
ㆍ추천: 0  ㆍ조회: 1535      
IP: 121.xxx.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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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혜서6,12-21 ;지혜는 찾기 쉽다 ”
 

지혜는 찾기 쉽다

1. 말씀읽기: 지혜서6,12-21

12 지혜는 바래지 않고 늘 빛이 나서 그를 사랑하는 이들은 쉽게 알아보고 그를 찾는 이들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13 지혜는 자기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미리 다가가 자기를 알아보게 해 준다. 14 지혜를 찾으러 일찍 일어나는 이는 수고할 필요도 없이 자기 집 문간에 앉아 있는 지혜를 발견하게 된다. 15 지혜를 깊이 생각하는 것 자체가 완전한 예지다. 지혜를 얻으려고 깨어 있는 이는 곧바로 근심이 없어진다.

16 지혜는 자기에게 맞갖은 이들을 스스로 찾아 돌아다니고 그들이 다니는 길에서 상냥하게 모습을 드러내며 그들의 모든 생각 속에서 그들을 만나 준다.

17 지혜의 시작은 가르침을 받으려는 진실한 소망이다. 18 가르침을 받으려고 염원함은 지혜를 사랑하는 것이고 지혜를 사랑함은 그 법을 지키는 것이며 법을 따름은 불멸을 보장받는 것이고 19 불멸은 하느님 가까이 있게 해 주는 것이다.

20 그리하여 지혜를 향한 소망은 사람을 왕위로 이끌어 준다. 21 그러니 민족들을 다스리는 군주들아 너희가 왕좌와 왕홀을 즐기거든 지혜를 존중하여라. 그러면 영원히 다스리게 될 것이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2. 말씀연구

일상 삶을 살아감에 있어 깨어 있는 이들은 지혜로운 이들입니다. 이들의 깨어있음은 볼 수 있는 것을 보게 하고, 보아야 하는 것을 보게 하며, 들을 수 있는 것을 듣게 하고, 들어야 하는 것을 듣게 합니다. 그렇게 깨어 있는 이들은 지혜로운 삶을 살게 되며, 그 삶은 하느님께로 가까이 나아가게 만들어 줍니다. 마음만 있다면, 받아들이고 하는 마음만 있다면 지혜는 내 앞에서 나를 향해 팔을 활짝 펴고, 나를 맞이해 줍니다.



12 지혜는 바래지 않고 늘 빛이 나서 그를 사랑하는 이들은 쉽게 알아보고 그를 찾는 이들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13 지혜는 자기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미리 다가가 자기를 알아보게 해 준다.

지혜서 6장 1절에서 11절까지는 세상의 임금들에게 깨달으라고, 배우라고, 귀를 기울이라고 선포합니다. 바로 하느님께서 왕들에게 권력을 주셨고, 그 통치권을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서 주셨으니 하느님의 법을 지키고, 하느님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는 방법은 지혜를 배우는 것으로 “거룩한 것을 거룩하게 지키는 이들은 거룩한 사람이 되고, 거룩한 것을 익힌 이들은 하느님 심판 때 보호를 받을 것임을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지혜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혜는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아름답고 젊은 여인처럼, 지혜는 언제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빛을 내기에, 지혜를 사랑하는 이들은 지혜를 쉽게 알아보고, 지혜를 찾는 이들은 쉽게 발견합니다. 이 지혜는 하느님께로부터 오며, 사람을 하느님께로 인도함으로써 바래지 않고, 늘 빛이 나는 것입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이 등불을 들고 기름까지 준비하여 신랑을 기쁘게 한 것처럼(참조: 마태25,1-13), 그렇게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을 알아  보게 합니다. 의로운 삶을 통하여 “기름”을 준비해야 하는 슬기로운 처녀들처럼, 그렇게 성실한 삶을 통하여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도록 그 길을 알려 줍니다.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주님의 길인지를 알게 합니다.

     

14 지혜를 찾으러 일찍 일어나는 이는 수고할 필요도 없이 자기 집 문간에 앉아 있는 지혜를 발견하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17,2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 앞에 있는 하느님의 길을 내가 걸어 나갈 때, 나는 지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며, 그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일상생활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내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지혜를 발견한 사람들이고, 그들이 바로 슬기로운 처녀들이 준비한“기름”을 가지고 있는 이들입니다.

       

15 지혜를 깊이 생각하는 것 자체가 완전한 예지다. 지혜를 얻으려고 깨어 있는 이는 곧바로 근심이 없어진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은 하느님의 길을 찾고, 하느님 마음에 드는 삶을 찾습니다. 그 삶이 바로 깨어 있는 삶이고, 깨어 있는 삶을 통해 내 앞에 있는 하느님의 길을 올바로 볼 수 있고, 하느님의 뜻을 올바로 알 수 있으며, 하느님의 크신 사랑을 온 몸으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옆에 계신 임마누엘 주님께서는 내가 언제나 주님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나와 함께 계십니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데 내가 어떤 근심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16 지혜는 자기에게 맞갖은 이들을 스스로 찾아 돌아다니고 그들이 다니는 길에서 상냥하게 모습을 드러내며 그들의 모든 생각 속에서 그들을 만나 준다.

지혜는 자기에게 맞갖은 이들을 스스로 찾아 돌아다니고, 상냥하게 모습을 드러내며, 모든 생각 속에서 그들을 맞아 준다는 것은 인간을 사랑하시어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시고, 구원을 주시기 위해 끊임없이 사랑을 베풀고 계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언제나 나를 부르십니다.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나에게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시고, 당신의 뜻을 전해 주십니다. 그리고 기도 중에 언제나 응답하여 주십니다.

       

17 지혜의 시작은 가르침을 받으려는 진실한 소망이다. 18 가르침을 받으려고 염원함은 지혜를 사랑하는 것이고 지혜를 사랑함은 그 법을 지키는 것이며 법을 따름은 불멸을 보장받는 것이고 19 불멸은 하느님 가까이 있게 해 주는 것이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은 하느님의 가르침을 받으려 하고, 하느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려고 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의 가장 큰 소망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고,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법을 지키고, 하느님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갈 때 혼인잔치에 들어가는 슬기로운 처녀들처럼 그렇게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여, 하느님의 사랑 속에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20 그리하여 지혜를 향한 소망은 사람을 왕위로 이끌어 준다.

지혜를 향한 소망은 천상적 왕위를 향한 첫걸음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의 자녀가 된 나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품위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완성될 때에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하느님 나라에서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왕이시니, 하느님의 자녀인 나 또한 왕족이 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 품위를 “하느님의 자녀”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21 그러니 민족들을 다스리는 군주들아 너희가 왕좌와 왕홀을 즐기거든 지혜를 존중하여라. 그러면 영원히 다스리게 될 것이다.

이제 다시 세상의 왕들에게 깨달을 수 있도록 선포합니다. “너희가 왕좌와 왕홀을 즐기거든 지혜를 존중하여라. 그러면 영원히 다스리게 될 것이다.”왕좌와 왕홀을 주시는 분이 바로 하느님이시기에 하느님을 섬기지 않는 이들은 결국 그 자리에서 쫓겨나게 될 것이고, 가진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어리석은 처녀들이 기름을 준비하지 못하여 혼인잔치에 들어가지 못한 것처럼 말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내가 찾고 있는 하느님을 향한 길은 어떤 길이고, 나는 그 길을 어떻게 걸어가고 있습니까?

②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걷고 있는 길을 칭찬해 보고, 그들의 모습을 통해 내가 배워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이야기 해 봅시다.

       

4.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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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1-09-17 (토)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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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혜3,1-9; 의인들의 운명 ”
 

의인들의 운명

1. 말씀읽기: 지혜3,1-9

1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어 어떠한 고통도 겪지 않을 것이다.

2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3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4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5 그들은 단련을 조금 받은 뒤 은혜를 크게 얻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고 그들이 당신께 맞갖은 이들임을 아셨기 때문이다.

6 그분께서는 용광로 속의 금처럼 그들을 시험하시고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 7 그분께서 그들을 찾아오실 때에 그들은 빛을 내고 그루터기들만 남은 밭의 불꽃처럼 퍼져 나갈 것이다. 8 그들은 민족들을 통치하고 백성들을 지배할 것이며 주님께서는 그들을 영원히 다스리실 것이다. 9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 은총과 자비가 주님의 거룩한 이들에게 주어지고 그분께서는 선택하신 이들을 돌보시기 때문이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1. 말씀연구

신앙생활을 하면서 초심자들에게는 간혹 의혹을 품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떻게 나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데 어려운 일만 벌어질까? 그리고 저 사람은 신앙생활을 하지도 않고, 착하게 살지도 않는데 왜 저렇게 잘살까?” 또한 초심자들에게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 온 형제자매들의 고통을 바라보면서 “하느님께서 정말 계시는 것일까? 왜 저렇게 성실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고통을 주실까?”하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신앙생활을 기쁘게 하는 이들에게는 자신들에게 주어지는 고통을 고통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성숙의 기회로 받아들입니다. 자신이 입으로 고백한 신앙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기회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하느님께 보여 지는 것은 신앙인들의 고통에 가득 찬 피와 땀이 아니라, 하느님을 향한 사랑과 열정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고통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무엇을 보고 살아가고 있는지, 내 삶의 중심은 누구신지에 대해 깊이 묵상해 봅시다.



1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어 어떠한 고통도 겪지 않을 것이다. 2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3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의로운 신앙인들은 하느님만을 바라보며 살기에, 하느님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해낼 수 있습니다. 마치 마라톤 선수가 49.195KM를 완주하여 승리의 월계관을 썼을 때의 기쁨처럼, 하느님께서는 의인의 고통에 대한 보상을 차고 넘치도록 해 주십니다. 마라톤에 관심 없는 이들이 TV 중계를 통해 보면서 “뭐 어렵게 저렇게 뛰고 있어. 집에 누워 있으면 이렇게 편하구먼...,”말한다면 마라토너들의 흘리는 땀과 인내는 그들이 보기에 전혀 소용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엄청난 가치가 있음을 알기에 고통을 이겨내며 뛰고 또 뛰는 것입니다.

의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하느님의 자녀로서 살아가기에 주어지는 고통들이 있지만 그것을 고통으로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기쁨으로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하느님 때문에 당하는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불신자들의 눈에는 어리석게 보이지만 그 고통의 시간 뒤에 구원과 평화가 기다리고 있음을 그들도 안다면, 결코 파멸을 향해 달려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4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5 그들은 단련을 조금 받은 뒤 은혜를 크게 얻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고 그들이 당신께 맞갖은 이들임을 아셨기 때문이다.

박해자들의 눈에는 신앙을 고백하는 이들이 모진 고문 속에서 흘리는 피와 부서진 뼈 조각들이 보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눈에는 순수한 신앙과 사랑을 보고, 확고한 믿음을 보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보시고 잠시 겪는 육신의 고통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단련을 조금 받은 뒤 은혜를 크게 입을 것”이라는 말씀을 통해서, 지금 육신의 죽음이 주어진다 할지라도 하느님께는 그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시기 위해 일부러 고통을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고통을 당할 때 하느님께서는 내 옆에 계시면서 그 고통을 이겨내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순교자 원시장 베드로가 붙잡혀서 매를 맞을 때 “이 죄인은 매 맞는 것을 느끼지 못하니 끝장을 낼 방법이 없겠다ꡓ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ꡒ저는 매 맞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나 천주께서 여기 계셔서 저를 굳세게 해 주십니다.ꡓ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추운 1월에 물을 뿌려 얼려죽일 때, 원시장 베드로는 이렇게 고백을 하고 마지막 숨을 거두었습니다. ꡒ나를 위하여 온 몸에 매를 맞으시고 내 구원을 위하여 가시관을 쓰신 예수여, 당신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내 몸이 얼음에 덮여 있는 것을 보십시오.ꡓ



하느님께서는 시련을 당할 때, 그것을 이겨내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자녀들이 그 정도는 해야 하기 때문이고, 그보다 더 큰 상을 준비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6 그분께서는 용광로 속의 금처럼 그들을 시험하시고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

순금이 용광로 속에서 불순물을 제거하고 빛나는 가치를 가지듯, 신앙인들도 시련을 통하여 자신의 믿음을 순수하게 정화합니다. 시련이 없다면 자신의 믿음이 어떤 상태인지 아무도 알수 없을 것입니다. 말로는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지만, 막상 상황이 닥치면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순교자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주님을 위해서 내 놓으신 분들입니다. 고통과 죽음으로 신앙을 정화하고, 빛나는 영광을 받으신 분들입니다.



7 그분께서 그들을 찾아오실 때에 그들은 빛을 내고 그루터기들만 남은 밭의 불꽃처럼 퍼져 나갈 것이다. 8 그들은 민족들을 통치하고 백성들을 지배할 것이며 주님께서는 그들을 영원히 다스리실 것이다.

그루터기들만 남은 밭의 불꽃처럼 퍼져 나갈 것이라는 것은 믿는 이들의 새로운 상태, 광명과 영광의 상태로 들어감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는 불에 타는 곡식의 그루터기나 짚 또는 검불 등은 하느님의 진노(탈출15,7; 이사5,24; 나훔1,10; 말라3,19)를 상기시킵니다. 또 적군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승리로 말미암아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철저한 파괴를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그루터기들만 남은 밭에 불꽃으로 번져가는 의인들은 하느님의 영광을 받은 사람들로서, 하느님께서 악인들을 벌하시는데 참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의인들이 그렇게 영광스럽게 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의인들은 세상 모든 민족에 대한 하느님의 영원한 통치에 동참하게 되는 영광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9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 은총과 자비가 주님의 거룩한 이들에게 주어지고 그분께서는 선택하신 이들을 돌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주어지는 고통만을 바라보는 이들은 의인의 길을 걸을 수 없으며,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체험할 수 없는 사람들임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을 신뢰하고, 주님께만 생명의 길이 있음을 깨닫고, 주님께 온전한 봉헌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내게 필요한 것은 내 눈으로 주어진 일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눈으로,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주어진 일들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참을 수 있고, 나눌 수 있고, 양보할 수 있으며,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내 목숨까지도 내어 놓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의인과 악인의 삶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내 삶은 의인의 삶입니까? 악인의 삶입니까?



② 하느님을 위하여 내가 내어 놓을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느님을 위하여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내가 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4.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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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1-07-15 (금)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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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혜12,12-22 ;하느님의 주권은 정의의 원천, 관대함과 교훈 ”
 

하느님의 주권은 정의의 원천, 관대함과 교훈

1. 말씀읽기: 지혜12,12-22

12 누가 감히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하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당신의 심판에 반대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께서 만드신 민족들을 스스로 멸망시키신 일을 두고 누가 당신을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불의한 인간들의 변호인으로 당신과 맞설 수 있겠습니까? 13 만물을 돌보시는 당신 말고는 하느님이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께서는 불의하게 심판하지 않으셨음을 증명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14 또 당신께서 징벌하신 자들을 두고 어떠한 임금이나 군주도 당신과 대결할 수 없습니다. 15 당신께서는 의로우신 분으로 만물을 의롭게 관리하시니 징벌을 받을 까닭이 없는 이를 단죄하는 것을 당신의 권능에 맞지 않는 일로 여기십니다.

16 당신의 힘이 정의의 원천입니다. 당신께서는 만물을 다스리는 주권을 지니고 계시므로 만물을 소중히 여기십니다. 17 정녕 당신의 완전한 권능이 불신을 받을 때에만 당신께서는 힘을 드러내시고 그것을 아는 이들에게는 오만한 자세를 질책하십니다. 18 당신께서는 힘의 주인이시므로 너그럽게 심판하시고 저희를 아주 관대하게 통솔하십니다. 당신께서는 무엇이든지 원하시는 때에 하실 능력이 있으십니다.



관대함의 교훈

19 당신께서는 이렇게 하시어 의인은 인자해야 함을 당신 백성에게 가르치시고 지은 죄에 대하여 회개할 기회를 주신다는 희망을 당신의 자녀들에게 안겨 주셨습니다.

20 당신 자녀들의 원수들로서 죽어 마땅한 자들에게까지 악에서 벗어날 시간과 기회를 베푸시며 그토록 주의와 배려를 다하여 처벌하셨다면 21 당신의 자녀들은 얼마나 신중하게 심판하셨겠습니까? 바로 그들의 조상들에게 당신께서는 맹세와 계약으로 좋은 약속들을 해 주셨습니다. 22 저희는 그냥 벌하시지만 저희의 원수들은 만 번을 더 채찍질하시니 저희가 남을 심판할 때에는 당신의 선하심을 잘 생각하고 심판을 받을 때에는 자비를 기대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2. 말씀연구

내 뜻과 하느님 뜻이 같을 경우에는 기쁘게 그 일을 하지만, 내 뜻과 하느님 뜻이 다를 경우에는 불평과 불만이 나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내 뜻에 맞춰 주길 원하고, 그렇게 청합니다. 하지만 나는 절대로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세상 만물의 주재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주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결코 불의하게 판단하지 않으시며, 쉽게 분노하지도 않으십니다. 무자비하게 단죄하시지도 않으십니다. 주님께서는 사랑이 지극하시고, 너그러우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뜻에 온전히 “예”하고 따를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12 누가 감히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하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당신의 심판에 반대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께서 만드신 민족들을 스스로 멸망시키신 일을 두고 누가 당신을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불의한 인간들의 변호인으로 당신과 맞설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께 “어떻게 이렇게 하실 수 있습니까? 하느님께서 잘못하신 것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전지전능하시고, 세상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판단을 간섭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누가 당신의 심판에 반대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불의한 인간들의 변호인으로 하느님과 맞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영화에서 보면 죄인을 변호하여 무죄를 선고받도록 하는 변호사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변호가 하느님께는 통하지 않습니다. 거짓과 감언이설이 하느님께는 결코 통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느님께 불경을 저지릅니다. 내 판단과 하느님의 계획이 맞지 않을 때는 내 판단을 접지 않고, 오히려 하느님께 불경을 저지릅니다. “하느님! 어떻게 저에게 이렇게 하실 수 있습니까?”하고.



13 만물을 돌보시는 당신 말고는 하느님이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께서는 불의하게 심판하지 않으셨음을 증명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심판은 항상 올바르십니다. 하느님의 심판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하느님께서도 “내가 한 것이 옳은 것이란다.”하고 증명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14 또 당신께서 징벌하신 자들을 두고 어떠한 임금이나 군주도 당신과 대결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악인에게는 벌을 주시지만 의로운 이들은 끝까지 돌보십니다. 그런데 악인에게 내리신 심판을 그 어느 누구도 “잘못된 판결입니다.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하며, 대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절대 권력을 가졌던 파라오도 결국 하느님 앞에서는 먼지와도 같았습니다.



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의 판결에 온전히 맡겨야 함을 알고 있다면, 당연히 하느님께서 판결하실 때 의로운 사람으로 판결 받을 수 있도록 내 삶의 방식을 바꾸어야 합니다. 어느 누구도 하느님의 판결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15 당신께서는 의로우신 분으로 만물을 의롭게 관리하시니 징벌을 받을 까닭이 없는 이를 단죄하는 것을 당신의 권능에 맞지 않는 일로 여기십니다. 16 당신의 힘이 정의의 원천입니다. 당신께서는 만물을 다스리는 주권을 지니고 계시므로 만물을 소중히 여기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분노를 함부로 표현하지 않으십니다. 인간은 자기감정을 자신보다 약한 존재에게 함부로 표현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결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또한 인간의 분노는 다른 분노를 낳고, 혼돈을 만들지만, 하느님의 심판은 평화와 안정을 만들어 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으로 인간을 창조하셨고, 자유의지를 주셨으며, 그 자유의지를 존중해 주시고, 당신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실 정도로 사랑해 주십니다. “만물을 소중히 여기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4,16)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17 정녕 당신의 완전한 권능이 불신을 받을 때에만 당신께서는 힘을 드러내시고 그것을 아는 이들에게는 오만한 자세를 질책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실 때, 홍해를 가르시어 당신 백성을 이끄셨고, 이집트인들을 물리치셨습니다. 불신자들에게 당신의 힘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런데 파라오는 모세를 통하여 하느님의 능력을 알고 있었고, 하느님의 계획을 알고 있었습니다. 파라오는 자신의 아들이 죽은 후 히브리인들이 떠나가는 것을 허락하였지만 다시 그들을 추격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벌은 홍해 바다에서의 죽음으로 돌아왔습니다. 주님의 권능을 알고 있지만, 자신의 힘을 믿고 주님께 대항하는 이는 결국 벌을 받게 됩니다. 하느님의 권능 안에서 자신의 보잘 것 없음을 체험하게 됩니다.



자연의 힘은 참으로 위대합니다. 인간이 흐르는 물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습니까? 무너지는 산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을 마음대로 하려하고, 산을 깎아서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지만, 결국 돌아오는 것은 자연의 힘 앞에서 보잘 것 없는 자신을 드러내는 것뿐입니다.



자연의 힘도 이럴 진데, 권능을 지니신 하느님의 힘은 어느 누구도 대적할 수 없습니다.



18 당신께서는 힘의 주인이시므로 너그럽게 심판하시고 저희를 아주 관대하게 통솔하십니다. 당신께서는 무엇이든지 원하시는 때에 하실 능력이 있으십니다.

하느님을 대적할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기회를 주시는 것은 힘이 없으셔서가 아니라 관대하시고 자비로우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무엇이든지 원하시는 때에 원하시는 것을 원하시는 곳에서 하실 능력이 있으십니다.” 인간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것이 전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무자비한 분이 아니십니다. 정복자들이 포로들을 학대하듯 그렇게 무자비하게 대하시는 분이 아니라 아버지가 아들을 대하듯, 목자가 양을 대하듯 그렇게 자비로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내가 믿고 있는 하느님은 지극히 너그럽고 자비로우신 분이십니다. 주님의 자비가 넘치시기에 내가 내 죄 때문에 죽지 않고, 회개할 기회를 부여받았으며, 부족한 모습으로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19 당신께서는 이렇게 하시어 의인은 인자해야 함을 당신 백성에게 가르치시고 지은 죄에 대하여 회개할 기회를 주신다는 희망을 당신의 자녀들에게 안겨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자비를 베푸시며, 당신의 자비를 입고 있는 백성들이 자비를 베풀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인자한 사람”은 주님의 자비를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용서하는 사람이고, 형제를 존중해주고, 배려하는 사람입니다. 편협한 마음으로 형제자매들에게 다가가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사랑해주는 사람입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인자한 사람”이 되길 원하십니다.



또한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을 모르기에, 아무리 노력해도 죄를 짓게 됩니다. 그 자체로 한계를 가진 인간이기에 “생각과 말과 행위”로 죄를 짓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 죄로 멸망에 떨어지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 회개하여 살기를 원하십니다.

사울에게도 기회를 주셨지만 그 기회를 사울은 잡지 못해 결국 멸망하고 맙니다. 다윗은 하느님 앞에 큰 죄를 지었지만 회개하고 용서를 청하여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으로 기억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회개의 삶”입니다. 그 기회를 주시고, 역사 안에서 회개하여 용서받은 사람들의 모습을 통하여, 모든 이들이 회개하면 영원한 생명을 차지하게 된다는 “확신의 희망”을 갖게 하셨습니다.


20 당신 자녀들의 원수들로서 죽어 마땅한 자들에게까지 악에서 벗어날 시간과 기회를 베푸시며 그토록 주의와 배려를 다하여 처벌하셨다면 21 당신의 자녀들은 얼마나 신중하게 심판하셨겠습니까? 바로 그들의 조상들에게 당신께서는 맹세와 계약1)으로 좋은 약속들을 해 주셨습니다.

어느 누구도 죽어 마땅한 사람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죽어 마땅한 것이 아니라 회개하여 다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 안에서 “죄를 지은 이들이 악에서 벗어날 기회와 시간”을 주셨습니다. 예언자들을 통하여 잘못에서 벗어나 회개하고 생명을 얻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므로 죄인들도 살리시는데, 당신의 자녀들에게야 얼마나 너그럽게 은총을 베푸시겠습니까? 나를 살리시기 위해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신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은 “나를 구원하시겠다는 강한 의지”가 드러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성실하게 계약을 이행하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와 성실함을 굳게 믿고, 회개하고 주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22 저희는 그냥 벌하시지만 저희의 원수들은 만 번을 더 채찍질하시니 저희가 남을 심판할 때에는 당신의 선하심을 잘 생각하고 심판을 받을 때에는 자비를 기대하라는 것입니다.

“저희는 그냥 벌하시지만 저희의 원수들은 만 번을 더 채찍질하시니”라는 것은 멸망으로 떨어질 사람들과 구원에 이를 사람들을 대하시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냥 벌하신다.”는 것은 벌하시는 이유가 잘 되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멸망으로 떨어지지 않고, 구원받게 하시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희의 원수들”은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당신의 뜻을 전하셨지만 파라오는 결코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자기 고집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하느님을 적대하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채찍질”은 결국 죽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알고 있기에 주님의 자녀들은 남을 심판할 때, 자신이 받은 자비를 생각하게 되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멸망이 아니라 구원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를 구원에로 인도하기 위해서 이해하려 하고, 용서하려 하며, 함께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선하시니 하느님의 자녀들도 선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것입니다. 또한 “내가 베푼 자비를 주님께서는 기억하시고, 그 자비를 나에게 넘치게 베푸신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용서하고, 이해해 주려고 노력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내가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에 “예”하고 응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베푸신 자비를 기억하며, 나 또한 자비를 베푸는 것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살아가면서 주님께 감사한 것도 있고, 원망스러운 것들도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온전히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 드리고, 내 판단이 아니라 주님의 이끄심에 순명할 수 있을까요?



② 내가 다른 이들과 함께 하면서 주님의 자비하심을 보여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4.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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