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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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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의의 싹, 메시아
작성일 2012-12-01 (토) 16:36
분 류 예레미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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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레33,1-26-미래의 영광스러운 회복 ”

미래의 영광스러운 회복

1. 말씀읽기: 예레33,1-26

1 예레미야가 아직 경비대 울안에 갇혀 있을 때, 주님의 말씀이 두 번째로 그에게 내렸다. 2 땅을 만드신 주님, 그것을 빚어 든든히 세우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분의 이름은 주님이시다. 3 “나를 불러라. 그러면 내가 너에게 대답해 주고, 네가 몰랐던 큰일과 숨겨진 일들을 너에게 알려 주겠다.

4 ─ 참으로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공격 축대들과 칼에 맞서 저항하다 파괴된 이 도성의 집들과 유다 왕궁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

5 사람들이 칼데아인들과 싸우러 나오지만, 내가 분노와 진노로 내리친 사람들의 시체들로 그 집들이 가득 찰 것이다. 그들의 온갖 죄악 때문에 내가 이 도성에서 얼굴을 숨긴 것이다. 6 그러나 이제 내가 이 도성에 건강과 치유를 가져다주겠다. 내가 그들을 치료하고 그들에게 넘치는 평화와 안정을 보여 주겠다. 7 내가 유다의 운명과 이스라엘의 운명을 되돌리고, 그들을 처음처럼 다시 세우겠다. 8 나는 그들이 나에게 지은 모든 죄에서 그들을 깨끗하게 하고, 그들이 나를 거역하여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하겠다.

9 그리하여 이 도성은 내가 이곳 주민들에게 베푼 온갖 좋은 것을 전해 들은 이 세상 모든 민족들 앞에서, 나에게 기쁜 이름과 찬양과 영광이 될 것이다. 이 도성을 위하여 내가 몸소 마련한 온갖 좋은 것과 온갖 평화를 보면서, 그들은 두려워하고 떨게 될 것이다.”

10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곳을 두고 너희 스스로 사람이나 짐승도 없는 폐허라고 하는 소리가 아직도 들리는구나. 그러나 사람이나 주민이나 짐승이 살지 않던 유다의 성읍들과 예루살렘의 거리마다, 11 기쁜 소리와 즐거운 소리, 신랑 신부의 소리와 ‘만군의 주님을 찬송하여라. 참으로 주님께서는 선하시고 그분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하고 말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릴 것이다. 그들은 주님의 집에 감사의 제물을 바치면서 그렇게 말할 것이다. 내가 이 땅의 운명을 처음처럼 되돌릴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이 말한다.”

12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지금은 사람도 짐승도 살지 않는 황폐한 이곳과 모든 성읍에 목자들이 양 떼를 쉬게 할 목장이 다시 생겨날 것이다. 13 산악 지방 성읍들과 평원 지대 성읍들, 네겝 성읍들과 벤야민 땅, 예루살렘 주변과 유다 성읍들에는 수를 세는 이의 손 밑으로 양들이 다시 지나갈 것이다. 주님이 말한다.”

14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에게 한 약속을 이루어 주겠다. 15 그날과 그때에 내가 다윗을 위하여 정의의 싹을 돋아나게 하리니, 그가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이룰 것이다. 16 그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고 예루살렘이 안전하게 살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예루살렘을 ‘주님은 우리의 정의’라는 이름으로 부를 것이다.” 17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집안의 왕좌에 앉을 사람이 다윗에게서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18 레위 지파 사제들 가운데에서도, 날마다 내 앞에서 번제물을 바치고 곡식 제물을 태워 바치며 희생 제물을 바칠 사람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19 주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내렸다. 20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낮과 맺은 내 계약을 깨뜨리고 밤과 맺은 내 계약을 깨뜨려, 낮과 밤이 제때에 오지 못하게 할 수 있다면, 21 나의 종 다윗과 맺은 내 계약도 깨져 그의 왕좌에서 다스릴 아들이 나오지 못할 것이다. 나의 시종들인 레위 지파 사제들과 맺은 계약도 마찬가지다. 22 셀 수 없는 하늘의 군대와 헤아릴 수 없는 바다의 모래처럼, 나의 종 다윗의 후손과 나의 시종들인 레위인들을 불어나게 하겠다.” 23 주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내렸다.

24 “너는 이 백성이 ‘주님께서는 스스로 선택하신 두 가문을 내치셨다.’고 불평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느냐? 그래서 사람들은 내 백성을 멸시하여, 그들이 보기에 다시는 한 민족을 이루지 못할 것으로 여긴다. 25 ─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 내가 만일 낮과 밤과 계약을 맺지 않고 하늘과 땅의 질서를 정해 놓지 않았다면, 26 야곱과 나의 종 다윗의 후손들을 내치고,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의 후손들을 다스릴 자들을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뽑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운명을 되돌리고 그들을 가엾이 여기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2. 말씀연구

예레미야서 30-33장은 새계약, 위로의 책, 희망의 책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새로운 계약 즉, 여기서 새로움이란 것은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수정될 것임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시나이 산에서 수립된 계약의 시대는 끝이 나고, 하느님의 뜻이 당신 백성의 마음속에 특별한 방법으로 새겨진다는 새계약의 시대가 예고되고 있습니다. 이제 하느님의 뜻을 예언자가 중개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친히 그들 심장에 율법을 새겨주신다는 표현이 30-33장에 걸쳐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희망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누구나 귀에 듣기 좋은 소리를 원합니다. 멸망보다는 구원을, 수고보다는 기쁨의 소리를 듣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죄를 지었으면 그 죄에 대한 벌은 받아야 합니다. 그 벌을 받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들의 말과 벌을 받아야 된다고 말하는 이들의 말 중에서는 당연히 벌을 받지 않는다는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좋은 약은 입에 쓰다고 합니다. 입에 쓰다고 하여 거부해서는 안 됩니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하느님의 진노와 벌, 그리고 유배를 선포하였습니다. 그러나 동족들은 예레미야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변절자, 반역자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를 왕궁 경비대 울안에 잡아 놓았습니다(예레32,1-2). 내가 듣기 싫은 말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주님께로부터 오는 말씀이라면 나는 내 고집을 꺾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늘 깨어 있는 삶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1. 갇혀 있는 예레미야에게 내리신 말씀

예레미야가 아직 경비대 울안에 갇혀 있을 때, 주님의 말씀이 두 번째로 예레미야에게 내렸습니다. 온 세상의 창조주이신 하느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서 평화와 안정을 약속하십니다.

 

① 나를 불러라(예레33,3).

하느님께서는 적의 위협 속에 있는 이 백성에게 “나를 불러라. 그러면 내가 너에게 대답해 주고, 네가 몰랐던 큰일과 숨겨진 일들을 너에게 알려 주겠다.”(예레33,3)고 말씀을 하십니다. 지금 예루살렘은 바빌론 임금의 군대가 포위를 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바람 앞의 등불과 같은 상황입니다. 지금 예루살렘의 상황은 “공격 축대들과 칼에 맞서 저항하다 파괴된 이 도성의 집들과 유다 왕궁”이라는 표현을 통해 어떤 상황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도성의 집들과 왕궁은 성벽 위에 지어진 방어용 건축물들을 말하는데, 이것들을 방패 삼아 칼데아인들의 공격에 저항했습니다. 그러나 건축물들은 무너져 내리고, 예루살렘 성 밖으로 내다 버릴 수 없던 시체들은 그 폐허 더미 속에 버려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셨듯이, 지금 유다인들이 고통 당하는 이유는 바로 하느님의 분노와 진노 때문입니다. 유다인들의 온갖 죄악 때문에 하느님께서 이 백성에게 얼굴을 숨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백성이 다시 하느님을 부르게 된다면, 다시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로 나아온다면 하느님께서는 평화와 안정을 주시겠다고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이제 내가 이 도성에 건강과 치유를 가져다주겠다. 내가 그들을 치료하고 그들에게 넘치는 평화와 안정을 보여 주겠다.”(예레33,6)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유다의 운명과 이스라엘의 운명을 되돌리고, 다시 그들에게 영광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십니다.

 

② 용서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는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죽음과 멸망의 위협에 처해 있는 이 백성에게 용서를 약속하십니다. 8 나는 그들이 나에게 지은 모든 죄에서 그들을 깨끗하게 하고, 그들이 나를 거역하여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하겠다.”(예레33,8)

이 백성은 하느님을 믿지 않고 세상의 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어떤 임금도 이 백성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벌을 내리시는 분은 바로 온 우주의 임금님이신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백성이 하느님께로부터 돌아섰기에 하느님께서는 이 백성에게서 얼굴을 돌리셨습니다.

 

그러나 사랑이신 하느님께서는 이 백성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그들의 죄를 깨끗이 용서해 주시고, 그들에게 평화를 주시려고 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이렇게 이 백성에게 자비를 베푸시면, 이것을 전해들은 이 세상 모든 민족들은 하느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이 도성을 위하여 하느님께서 몸소 마련하신 온갖 좋은 것과 온갖 평화를 보게 되면 세상 사람들은 두려워하고 떨게 될 것입니다(예레33,9).

 

③ 폐허가 생명이 넘치는 곳으로 변할 것이다.

지금 이 땅은 주님의 진노와 분노 때문에 바빌론 임금에 의해서 사람도 짐승도 살지 않는 황폐한 곳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폐허가 된 이곳이 생명이 넘치는 곳이 되고, “기쁜 소리와 즐거운 소리, 신랑 신부의 소리와 ‘만군의 주님을 찬송하여라. 참으로 주님께서는 선하시고 그분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하고 말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릴 것”(예레33,11)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이 땅의 운명을 처음처럼 되돌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예루살렘과 모든 성읍에는 목자들이 양 떼를 쉬게 할 목장이 다시 생겨날 것이고, 산악 지방 성읍들과 평원 지대 성읍들, 네겝 성읍들과 벤야민 땅, 예루살렘 주변과 유다 성읍들에는 수를 세는 이의 손 밑으로 양들이 다시 지나갈 것”(예레33,13)입니다. 모든 땅이 생명이 넘쳐나고, 참된 평화가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④ 주님은 우리의 정의

하느님께서는 정의와 공정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다윗 집안에서 정의의 싹이 돋아나게 하리라고 약속을 하십니다.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구원하실 그 날과 그 때에 한 인물을 보내시겠다고 약속을 하십니다.“그날과 그때에 내가 다윗을 위하여 정의의 싹을 돋아나게 하리니, 그가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이룰 것이다.”(예레33,15)

 

하느님께서는 다윗가문을 사랑해 주셨고, 다윗을 위하여 정의의 싹을 돋아나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십니다. 이 “정의의 싹”(예레33,15)은 바로 메시아를 가리킵니다. 세상에 정의와 공정을 이루시는 분은 메시아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참된 임금이신 메시아를 예고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다윗왕좌에 앉았던 임금들은 정의와 공정을 실천하지 않았고, 착취당하는 백성들을 압제자들의 손에서 구해주지 않았으며, 약자들(고아와 과부들)을 돌보지 않았고, 무죄한 이들의 피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새 임금을 세워 주시어 백성들을 다스리고(하느님께로 인도하고), 슬기롭게 일을 처리하며,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이룰 것임을 말씀해 주십니다. 또한 새 임금의 시대에는 유다가 구원을 받고 이스라엘이 안전하게 살며, 사람들이 그 임금의 이름을 “주님은 우리의 정의”(예레33,16)라고 부를 것임을 알려 주십니다.

 

우리는 이 임금이 누구신지 알고 있습니다.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이루시는 분이 누구신지 알고 있습니다. 구원을 주시는 분이 누구신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고, 완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구원을 통해서 정의가 실현되었음을 알고 있기에 “주님은 우리의 정의”라고 기쁘게 고백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스라엘 집안의 왕좌에 앉을 사람이 다윗에게서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예레33,17)는 말씀이 이루어집니다. 또한 "레위 지파 사제들 가운데에서도, 날마다 내 앞에서 번제물을 바치고 곡식 제물을 태워 바치며 희생 제물을 바칠 사람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예레33,18) 라는 말씀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이어가면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전세계의 주님의 사제들이 하느님 백성과 함께 사제직무를 수행하며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리고 있습니다.

 

⑤ 변하지 않는 하느님의 약속(계약)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에게 정의와 평화를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이 결코 깨질 수 없음을 이렇게 표현하십니다. “너희가 낮과 맺은 내 계약을 깨뜨리고 밤과 맺은 내 계약을 깨뜨려, 낮과 밤이 제때에 오지 못하게 할 수 있다면, 21 나의 종 다윗과 맺은 내 계약도 깨져 그의 왕좌에서 다스릴 아들이 나오지 못할 것이다. 나의 시종들인 레위 지파 사제들과 맺은 계약도 마찬가지다.”(예레33,20-21) 낮과 밤이 제때에 오지 못한다면 하느님께서는 그 계약을 파기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낮과 밤은 반드시 오니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그 계약은 반드시 지켜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기다리던 메시아를 하느님께서는 보내주셨고, 주님의 사제들도 셀 수 없을 만큼 불어나게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맺으신 계약을 성실하게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한번 하신 약속은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계약에 성실하신 하느님께 인간도 성실하게 응답해야 합니다. 오롯하게 감사드려야 합니다.

 

⑥ 언제나 불평하고 쉽게 마음이 변하는 이 백성과 성실하신 하느님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은 하느님을 믿지 않았기에 결국 파멸의 길을 향해 달렸습니다. 그리고 이 백성들은 “주님께서는 스스로 선택하신 두 가문을 내치셨다.”(예레33,24)고 불평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 희망을 걸지 못하고, 결국 이 백성이 그렇게 흩어지고, 이민족들에게 멸시를 받을 것으로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당신 계약을 성실하게 이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야곱과 나의 종 다윗의 후손들을 내치고,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의 후손들을 다스릴 자들을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뽑지도 않을 것이다.”(예레33,26)라는 말씀처럼 이 백성을 내치실 계획이셨다면 뽑지도 않으셨을 것입니다. 돌보지도 않으셨을 것입니다. 사랑이신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과의 계약을 성실하게 지키십니다. 그래서 때가 되자 메시아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메시아를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이 드러납니다. 멸망이 아니라 구원을 주시려 한다는 것이, 파멸이 아니라 생명을 주시려 하신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운명을 되돌리고 그들을 가엾이 여기겠다.”(예레33,26)는 말씀으로 당신께서 하신 약속을 이루십니다.

 

때가 차자 하느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러났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백성들은 지금 눈앞에 펼쳐진 고통과 절망을 바라보지 말고 주님께서 주시는 구원과 평화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위로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구원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참된 평화를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굳게 믿으며 주님께서 변함없이 성실하신 것처럼 나 또한 성실한 삶으로 주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깨어 기도하며 주님의 구원을 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절망속에서도 희망을 가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눈앞에는 온통 어려움만 보이는데, 어떻게 하면 그 어려움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 평화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까요?

 

② 주님께서는 성실하게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주님과 한 약속을 성실하게 끝까지 잘 지킬 수 있을까요?

 

4.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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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엘리사 예언자
작성일 2012-07-23 (월) 12:07
분 류 열왕기1,2
ㆍ추천: 0  ㆍ조회: 1096      
IP: 121.xxx.242
http://missa.or.kr/cafe/?bibleold.86.
“ 2열왕 4,42-44;백 명을 먹인 기적 ”

백 명을 먹인 기적

1. 말씀읽기:2열왕 4,42-44

42 어떤 사람이 바알 살리사에서 왔다. 그는 맏물로 만든 보리 빵 스무 개와 햇곡식 이삭을 자루에 담아, 하느님의 사람에게 가져왔다. 엘리사는 “이 군중이 먹도록 나누어 주어라.” 하고 일렀다.

43 그러나 그의 시종은 “이것을 어떻게 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 앞에 내놓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엘리사가 다시 말하였다. “이 군중이 먹도록 나누어 주어라. 주님께서 이들이 먹고도 남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44 그리하여 그것을 사람들에게 내놓으니, 과연 주님의 말씀대로 그들이 먹고도 남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엘리사는 어떤 사람이 맏물로 만든 보리 빵 스무 개와 햇곡식으로 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배불리 먹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돌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기도를 바치면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고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알고 계시고, 주님께서 채워주실 것임을 굳게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믿음을 가지고 믿는 대로 행동하면, 그대로 됨을 알아야 합니다. 굳게 믿어야 합니다. 나에게만 불가능한 것이지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심오하기만 합니다.

 

42 어떤 사람이 바알 살리사에서 왔다. 그는 맏물로 만든 보리 빵 스무 개와 햇곡식 이삭을 자루에 담아, 하느님의 사람에게 가져왔다. 엘리사는 “이 군중이 먹도록 나누어 주어라.” 하고 일렀다.

어떤 사람이 엘리사 예언자에게 맏물로 만든 보리 빵 스무 개와 햇곡식 이삭을 자루에 담아 가지고 왔습니다. 맏물로 만든 보리 빵은 새 누룩을 넣어 만든 빵(레위23,17)이고, 백성들이 하느님께 햇곡식을 바치면 그것들 중에서 일부는 사제의 몫이 되었습니다.

 

엘리사는 빵과 햇곡식을 군중들이 먹을 수 있도록 나누어 주라고 말 합니다. 엘리사는 자신보다는 군중을 더 걱정하고 배려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사람의 자세입니다. 하느님의 사람은 자신의 것을 생각하지 않고 하느님 백성을 먼저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사람이기 때문이고, 하느님만을 바라보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43 그러나 그의 시종은 “이것을 어떻게 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 앞에 내놓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엘리사가 다시 말하였다. “이 군중이 먹도록 나누어 주어라. 주님께서 이들이 먹고도 남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엘리사의 시종은 “이것을 어떻게 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 앞에 내놓을 수 있겠습니까?”(2열왕4,43) 라고 반문을 합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이 군중이 먹도록 나누어 주어라. 주님께서 이들이 먹고도 남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2열왕4,43)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장정만도 오천 명이 넘는 사람을 작은 것으로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았을 때는 열두 광주리나 되었습니다(참조: 마르6,35-44).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신비롭기만 합니다. 그래서 당신 백성을 사랑하시어 아낌없이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하느님을 찬미할 수밖에 없습니다.

 

44 그리하여 그것을 사람들에게 내놓으니, 과연 주님의 말씀대로 그들이 먹고도 남았다.

엘리사의 시종은 보리빵 스무 개와 햇곡식을 사람들 앞에 내어 놓았습니다. 그렇게 했더니, 주님의 말씀대로 그들이 먹고도 남았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행동을 하면 그 믿음대로 됩니다. 그러나 두려움은 하느님의 은총을 담을 그릇을 준비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가끔은 “어떻게 하지!”하면서 절망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주님께 의지한다면, 주님께서는 나의 어려움에 함께 해 주십니다. 그리고 그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힘과 용기와 은총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 있어도 하느님만을 바라보고, 하느님의 자녀들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일이 아니라 기쁨이 되고, 그 기쁨에 은총이 가득 담기게 됩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내가 만일 엘리사 예언자 였다면 백 명이나 되는 군중들을 바라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그리고 보리 빵 스무 개와 햇곡식을 어떻게 했을까요? 내 눈에는 배고픈 군중이 보였을까요?

 

② 하느님께서는 보리 빵 스무 개와 햇곡식으로 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십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놀랍기만 합니다. 나는 매일 주님의 기도를 바치면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고 기도할 때 누구를 생각하고, 무엇을 생각합니까? 혹시 나만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4. 말씀으로 기도하기

  84
작성자 주님은 우리의 정의
작성일 2012-07-20 (금) 17:57
분 류 예레미야서
ㆍ추천: 0  ㆍ조회: 1183      
IP: 121.xxx.242
http://missa.or.kr/cafe/?bibleold.85.
“ 예레 23,1-8;미래의 임금 메시아 ”

미래의 임금 메시아

1. 말씀읽기: 예레 23,1-8

1 불행하여라, 내 목장의 양 떼를 파멸시키고 흩어 버린 목자들! 주님의 말씀이다.

2 ─ 그러므로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내 백성을 돌보는 목자들을 두고 말씀하신다. ─ 너희는 내 양 떼를 흩어 버리고 몰아냈으며 그들을 보살피지 않았다. 이제 내가 너희의 악한 행실을 벌하겠다. 주님의 말씀이다. 3 그런 다음 나는 내가 그들을 쫓아 보냈던 모든 나라에서 살아남은 양들을 다시 모아들여 그들이 살던 땅으로 데려오겠다. 그러면 그들은 출산을 많이 하여 번성할 것이다. 4 내가 그들을 돌보아 줄 목자들을 그들에게 세워 주리니, 그들은 더 이상 두려워하거나 당황하지 않고, 그들 가운데 잃어버리는 양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5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다윗을 위하여 의로운 싹을 돋아나게 하리라. 그 싹은 임금이 되어 다스리고 슬기롭게 일을 처리하며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이루리라.

6 그의 시대에 유다가 구원을 받고 이스라엘이 안전하게 살리라.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주님은 우리의 정의’라고 부르리라. 7 그러므로 이제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때에는 사람들이 더 이상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살아 계신 주님을 두고 맹세한다.” 하지 않고, 8 그 대신 “이스라엘 집안의 후손들을 북쪽 땅에서, 그리고 당신께서 쫓아 보내셨던 모든 나라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살아 계신 주님을 두고 맹세한다.” 할 것이다. 그때에 그들은 자기 고향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세상의 왕들은 백성을 섬기지 않고, 자기 자신의 편안함을 위해 백성들을 이용합니다. 백성들의 고통에 외면하고, 백성들에게 과중한 책임을 맡기면서도 백성들을 돌보지 않습니다. 그리고 왕의 잘못으로 인하여 나라가 망하게 되면 그 백성들은 더욱 더 큰 고통을 겪게 됩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백성들을 사랑하는 이가 참된 왕입니다. 백성들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생각하는 이가 참된 왕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왕좌를 이은 왕들은 그렇게 살지 않았습니다. 백성을 착취하고 외면하였습니다. 그리고 종살이까지 하게 하였습니다. 이런 고통 속에서 백성들이 부르짖을 때,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참된 왕이신 메시아를 예고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참된 목자이시며, 백성들을 사랑하시는 참된 왕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다면 지금 주어지는 것들은 모두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인내할 수 있게 됩니다. 희망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생명과 구원을 약속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1 불행하여라, 내 목장의 양 떼를 파멸시키고 흩어 버린 목자들! 주님의 말씀이다.

2 ─ 그러므로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내 백성을 돌보는 목자들을 두고 말씀하신다. ─ 너희는 내 양 떼를 흩어 버리고 몰아냈으며 그들을 보살피지 않았다. 이제 내가 너희의 악한 행실을 벌하겠다. 주님의 말씀이다.

양들의 운명은 어떤 목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푸른 풀밭을 만들어 양떼를 인도하는 참된 목자가 있는 반면, 양떼에게는 관심이 없고, 양들을 위해서 수고를 하지도 않으며, 양들을 통해서 이익을 챙기려고만 하는 목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목자들은 사나운 짐승이 달려들면 자신의 목숨을 챙기기 위해 양들은 버려두고 도망쳐 버립니다.

이스라엘의 목자들은 자신들에게 맡겨진 백성들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이 죄에 물들어 하느님을 섬기지 않았고, 백성들의 잘못도 붙잡아 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 백성이 멸망하여 다른 민족의 손에 넘어가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심판을 내리실 것입니다. 이 백성의 지도자들의 악한 행실에 대해서 벌을 내리실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살룸(여호아하즈)이 포로가 되어 유배지로 향하고, 거기서 죽을 것임을 선포하였습니다(참조: 예레22,10-12). 그리고 여호야킴에게는 백성에게 과중한 세금을 징수하여 이집트에 조공을 바치면서 탐욕과 사치 속에서 사는 것을 단죄하였습니다(참조:22,13­19). 그리고 여호야킴의 아들 콘야에게는 자기 어머니와 함께 유배지에서 죽게 될 것임을 선포하였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일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소홀히 할 때, 가정은 흔들리고, 공동체도 흔들리며, 결국 나 자신까지도 흔들리게 됩니다. 나를 통해서 내 옆에 있는 이들까지 피해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성실하게 해 나가면, 나를 통하여 내 가정도, 내가 속한 공동체도, 그리고 나 자신도 큰 복을 받게 됩니다.

 

3 그런 다음 나는 내가 그들을 쫓아 보냈던 모든 나라에서 살아남은 양들을 다시 모아들여 그들이 살던 땅으로 데려오겠다. 그러면 그들은 출산을 많이 하여 번성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그들을 쫓아 보냈던 모든 나라에서 살아남은 양들”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쫓아 보낸 이유는 마음이 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고, 죄로 얼룩진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며, 자신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유배지에서 고생을 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보게 되고, 뉘우치게 되고, 다시 하느님을 찾게 될 것입니다. 그때 하느님께서는 다시 그들이 살던 곳으로 데려와 잘 살게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4 내가 그들을 돌보아 줄 목자들을 그들에게 세워 주리니, 그들은 더 이상 두려워하거나 당황하지 않고, 그들 가운데 잃어버리는 양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하느님께서는 뉘우치고 돌아선 이들을 돌보아줄 목자들을 세워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이 목자들은 백성들이 두려워하지 않게 하고, 당황하지 않게 하며, 길을 잃지 않게 할 것입니다.

 

5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다윗을 위하여 의로운 싹을 돋아나게 하리라. 그 싹은 임금이 되어 다스리고 슬기롭게 일을 처리하며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이루리라. 6 그의 시대에 유다가 구원을 받고 이스라엘이 안전하게 살리라.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주님은 우리의 정의’라고 부르리라.

살룸이나 여호야킴, 콘야처럼 다윗의 집안은 정의와 공정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다윗가문을 사랑해 주셨고, 다윗을 위하여 의로운 싹을 돋아나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십니다. 이 “의로운 싹”(예레23,5)은 바로 메시아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다윗을 위하여 의로운 싹을 돋아나게 하리라.”(예레23,5)는 것은 참된 임금이신 메시아를 예고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다윗왕좌에 앉았던 임금들은 정의와 공정을 실천하지 않았고, 착취당하는 백성들을 압제자들의 손에서 구해주지 않았으며, 약자들(고아와 과부들)을 돌보지 않았고, 무죄한 이들의 피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새 임금을 세워 주시어 백성들을 다스리고(하느님께로 인도하고), 슬기롭게 일을 처리하며,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이룰 것임을 말씀해 주십니다. 또한 새 임금의 시대에는 유다가 구원을 받고 이스라엘이 안전하게 살며, 사람들이 그 임금의 이름을 “주님은 우리의 정의”(예레23,6)라고 부를 것임을 알려 주십니다.

 

우리는 이 임금이 누구신지 알고 있습니다.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이루시는 분이 누구신지 알고 있습니다. 구원을 주시는 분이 누구신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고, 완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구원을 통해서 정의가 실현되었음을 알고 있기에 “주님은 우리의 정의”라고 기쁘게 고백할 수 있게 됩니다.

7 그러므로 이제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때에는 사람들이 더 이상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살아 계신 주님을 두고 맹세한다.” 하지 않고, 8 그 대신 “이스라엘 집안의 후손들을 북쪽 땅에서, 그리고 당신께서 쫓아 보내셨던 모든 나라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살아 계신 주님을 두고 맹세한다.” 할 것이다. 그때에 그들은 자기 고향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멸망과 유배를 통해서 회개하고 돌아선 당신 백성을 다시 고향으로 데리고 와서 살게 해 주실 것임을 약속해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의 종살이를 할 때, 모세를 통하여 종살이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것처럼, 유배지에 있는 이스라엘 집안의 후손들을 모든 나라에서 데려오실 것입니다. 이때 하느님의 백성들은 하느님을 “이스라엘 집안의 후손들을 북쪽 땅에서, 그리고 당신께서 쫓아 보내셨던 모든 나라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살아 계신 주님”이라고 부를 것이며, 그 주님의 이름으로 맹세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렇게 체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참된 임금은 어떤 사람입니까? 내가 만일 이 나라의 임금이라면 어떻게 이 나라를 통치하시겠습니까?

 

②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참된 임금님이십니다. 나는 예수님의 백성입니다. 예수님을 임금으로 모시는 내가 예수님 안에서 기쁨과 평화를 누리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무엇을 주고 계십니까? 나는 “주님의 우리의 정의”라고 자신 있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4. 말씀으로 기도하기

  83
작성자 베텔의 사제 아마츠야    
작성일 2012-07-10 (화) 18:03
분 류 아모스,오바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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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모7,10-17;아모스가 베텔에서 쫓겨나다, 거짓 예언자 ”

아모스가 베텔에서 쫓겨나다

1. 말쓰읽기: 아모7,10-17

10 베텔의 사제 아마츠야가 이스라엘 임금 예로보암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하였다. “아모스가 이스라엘 집안 한가운데에서 임금님을 거슬러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이 나라는 그가 하는 모든 말을 더 이상 참아 낼 수가 없습니다.

11 아모스는 이런 말을 해 댑니다. ‘예로보암은 칼에 맞아 죽고 이스라엘은 제 고향을 떠나 유배를 갈 것이다.’”

12 그런 뒤에 아마츠야가 아모스에게 말하였다. “선견자야, 어서 유다 땅으로 달아나, 거기에서나 예언하며 밥을 벌어먹어라.

13 다시는 베텔에서 예언을 하지 마라. 이곳은 임금님의 성소이며 왕국의 성전이다.”

14 그러자 아모스가 아마츠야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예언자도 아니고 예언자의 제자도 아니다. 나는 그저 가축을 키우고 돌무화과나무를 가꾸는 사람이다.

15 그런데 주님께서 양 떼를 몰고 가는 나를 붙잡으셨다. 그러고 나서 나에게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16 그러니 이제 너는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너는 ‘이스라엘을 거슬러 예언하지 말고 이사악의 집안을 거슬러 설교하지 마라.’ 하고 말하였다.

17 그러므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 아내는 이 성읍에서 창녀가 되고 네 아들딸들은 칼에 맞아 쓰러지며 네 땅은 측량줄로 재어 나누어지고 너 자신은 부정한 땅에서 죽으리라. 그리고 이스라엘은 제 고향을 떠나 유배를 가리라.’”

●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2. 말씀연구

베텔의 사제 아마츠야, 그리고 하느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아 예언직을 수행하는 아모스. 두 사람 모두 하느님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아마츠야는 하느님을 위해 살아간다고 말하지만 사실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아모스에게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하느님의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귀가 닫혀 있으면 결국 하느님의 말씀을 거스를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나는 귀가 열려 있고, 다른 이가 틀린 말을 한다고 생각한다면 결국 하느님을 등질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리고 내가 바로 하느님을 등진 사람일 수 있습니다.

 

10 베텔의 사제 아마츠야가 이스라엘 임금 예로보암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하였다. “아모스가 이스라엘 집안 한가운데에서 임금님을 거슬러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이 나라는 그가 하는 모든 말을 더 이상 참아 낼 수가 없습니다. 11 아모스는 이런 말을 해 댑니다. ‘예로보암은 칼에 맞아 죽고 이스라엘은 제 고향을 떠나 유배를 갈 것이다.’”

아모스는 우상숭배로 물든 이스라엘에 하느님의 진노를 선포합니다. 빚돈을 빌미로 무죄한 이를 팔아넘기고, 신 한 켤레를 빌미로 빈곤한 이를 팔아 넘기는 이들, 불륜을 저지르고 하느님의 이름을 더럽히고, 하느님의 성소를 더럽히는 이들, 거룩하게 살아가야 할 나즈르인들에게 술을 먹이고, 예언자들에게 예언을 하지 못하게는 이들.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이스라엘 민족에게 진노를 내리실 것을 아모스 예언자를 통하여 선포하십니다. 그런데 베텔의 사제 아마츠야는 이스라엘 임금 예로보암에게 사람을 보내어 “아모스가 이스라엘 집안 한가운데에서 임금님을 거슬러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이 나라는 그가 하는 모든 말을 더 이상 참아 낼 수가 없습니다.”(아모7,10)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아모스가 선포한 말 “예로보암은 칼에 맞아 죽고 이스라엘은 제 고향을 떠나 유배를 갈 것이다.”(아모7,11)을 전합니다.

 

그런데 베텔의 사제는 이 백성이 저지르는 악을 알고 있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임금 예로보암도 자신들이 저지르는 죄를 알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의 죄를 밝히는 아모스의 입을 닫아 버리려고 합니다. 아모스의 말에 귀를 막습니다.

 

아모스는 음모를 꾸민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죄를 있는 그대로 이야기 했을 뿐입니다. 아모스는 결코 음모를 꾸민 것이 아닙니다. 그저 멸망할 것이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할 뿐입니다.

 

그런데 내가 만일 베텔의 사제였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백성들의 죄악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그들과 동조하여 한 생을 살았을까요? 아니면 아모스가 선포한 하느님의 말씀을 미리 선포하여 백성들을 바꾸어 놓았을까요?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눈과 귀를 막아서는 안 됩니다. 더 나아가 다른 이들의 잘못을 눈감아서도 안됩니다. 그러나 베텔의 사제 아마츠야는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죄는 참으로 큽니다.

 

12 그런 뒤에 아마츠야가 아모스에게 말하였다. “선견자야, 어서 유다 땅으로 달아나, 거기에서나 예언하며 밥을 벌어먹어라. 13 다시는 베텔에서 예언을 하지 마라. 이곳은 임금님의 성소이며 왕국의 성전이다.”

아마츠야는 아모스에게 “선견자야, 어서 유다 땅으로 달아나, 거기에서나 예언하며 밥을 벌어먹어라. 13 다시는 베텔에서 예언을 하지 마라. 이곳은 임금님의 성소이며 왕국의 성전이다.”(아모7,12-13)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말 안에서 아마츠야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예언을 하면서 밥을 벌어 먹어라.” 라는 말은 자신이 사제직을 수행하면서 물질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자신이 그렇게 하니 남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또한 아마츠야는 베텔이 임금의 성소이며 왕국의 성전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아마츠야 자신이 있으니 아모스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물러가라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곳에 있는 아마츠야가 가장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곳은 가장 어리석은 사람 때문에 결국 아무 쓸모없는 곳이 되어 버리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아마츠야의 모습이 내 모습일 수 있다는 것을 늘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있는 곳을 더욱 거룩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14 그러자 아모스가 아마츠야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예언자도 아니고 예언자의 제자도 아니다. 나는 그저 가축을 키우고 돌무화과나무를 가꾸는 사람이다. 15 그런데 주님께서 양 떼를 몰고 가는 나를 붙잡으셨다. 그러고 나서 나에게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아모스는 결코 예언을 해서 밥을 빌어먹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럴 마음도 전혀 없는 사람입니다. 이제 아모스는 자신이 누군지를 밝힙니다. “나는 예언자도 아니고 예언자의 제자도 아니다. 나는 그저 가축을 키우고 돌무화과나무를 가꾸는 사람이다.”(아모7,14) 그런데 이런 아모스를 하느님께서 붙잡으셔서 사명을 부여하셨습니다.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여라.”(아모7,15) 그래서 아모스는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16 그러니 이제 너는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너는 ‘이스라엘을 거슬러 예언하지 말고 이사악의 집안을 거슬러 설교하지 마라.’ 하고 말하였다. 17 그러므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 아내는 이 성읍에서 창녀가 되고 네 아들딸들은 칼에 맞아 쓰러지며 네 땅은 측량줄로 재어 나누어지고 너 자신은 부정한 땅에서 죽으리라. 그리고 이스라엘은 제 고향을 떠나 유배를 가리라.’”

이제 아모스는 거짓 사제직을 수행하고 있는 아마츠야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먼저 주님의 명령을 전합니다. “이스라엘을 거슬러 예언하지 말고 이사악의 집안을 거슬러 설교하지 마라.”(아모7,16) 아마츠야는 거짓 예언자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백성이 죄악으로 빠져드는데도 방관했고, 동조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왕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아모스를 고발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아모스가 하는 모든 말을 더 이상 참아 낼 수가 없다고 왕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견디기 어려우신 분은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거슬러 예언자지 말라고 말씀하시며, 이사악의 집안을 거슬러 설교하지 말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아모스는 아마츠야에게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벌을 알려 줍니다. “네 아내는 이 성읍에서 창녀가 되고 네 아들딸들은 칼에 맞아 쓰러지며 네 땅은 측량줄로 재어 나누어지고 너 자신은 부정한 땅에서 죽으리라. 이어서 이스라엘이 받게 되는 벌을 알려 줍니다. “이스라엘은 제 고향을 떠나 유배를 가리라.”(아모7,17ㄴ)

 

하느님께서는 누구에게나 기회를 주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사랑을 드러내십니다. 그런데 그 기회를 저버리고, 그 사랑을 외면하면 다가올 벌을 피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민족에게 짓밟히고, 죽음을 당하는 것을 보아야만 하는 고통, 자신의 삶의 자리를 뒤로 하고 유배지에서 종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고통. 이 고통을 생각해 본다면 회개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아마츠야와 아모스와의 관계를 생각해보면서 내가 만일 아마츠야였다면 아모스를 어떻게 대했을지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내 주변에 있는 아모스는 어떤 말을 나에게 하고 있습니까?

 

② 내가 하는 말들은 내가 속한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습니까? 올바른 길로 가도록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듣지 않는다 하여 침묵하거나, 좋지 않은 모습에 동조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느님께서는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내가 어떤 말을 하기를 원하실까요?

 

4. 말씀으로 기도하기

  82
작성자 부르심, 예언자의 자세
작성일 2012-07-09 (월) 08:39
분 류 에제키엘서
ㆍ추천: 0  ㆍ조회: 1104      
IP: 121.xxx.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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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제2,1-10;에제키엘이 소명을 받다 ”

에제키엘이 소명을 받다

1. 말씀읽기: 에제2,1-10

1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일어서라. 내가 너에게 할 말이 있다.” 2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실 때, 영이 내 안으로 들어오셔서 나를 일으켜 세우셨다. 그때 나는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3 그분께서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내가 이스라엘 자손들, 나를 반역해 온 저 반역의 민족에게 너를 보낸다. 그들은 저희 조상들처럼 오늘날까지 나를 거역해 왔다. 4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완고한 저 자손들에게 내가 너를 보낸다. 너는 그들에게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하고 말하여라. 5 그들이 듣든, 또는 그들이 반항의 집안이어서 듣지 않든, 자기들 가운데에 예언자가 있다는 사실만은 알게 될 것이다. 6 그러니 너 사람의 아들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이 하는 말도 두려워하지 마라. 비록 가시가 너를 둘러싸고, 네가 전갈 떼 가운데에서 산다 하더라도, 그들이 하는 말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의 얼굴을 보고 떨지도 마라. 그들은 반항의 집안이다. 7 듣든 말든 너는 그들에게 나의 말을 전하여라. 그들은 반항의 집안이다. 8 너 사람의 아들아, 내가 너에게 하는 말을 들어라. 저 반항의 집안처럼 반항하는 자가 되지 마라. 그리고 입을 벌려 내가 너에게 주는 것을 받아먹어라.” 9 그래서 내가 바라보니, 손 하나가 나에게 뻗쳐 있는데, 거기에는 두루마리 하나가 놓여 있었다. 10 그분께서 그것을 내 앞에 펴 보이시는데, 앞뒤로 글이 적혀 있었다. 거기에는 비탄과 탄식과 한숨이 적혀 있었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2. 말씀연구

에제키엘 예언자는 본디 사제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에제키엘을 부르시어 당신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로 삼으십니다. 에제키엘 예언자는 네부카드네자르의 첫 번째 팔레스티나 침략 때에(기원전 598년)에 바빌론 땅으로 끌려갔고, 그곳에서 예언활동을 하였다고 전해집니다.

 

하느님께서는 에제키엘을 부르시어 누구에게 예언을 해야 하는지, 예언자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십니다. 즉 멸망을 향해 치닫고 있는 당신 백성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듣든, 듣지 않든 간에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에게 선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1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일어서라. 내가 너에게 할 말이 있다.”

하느님께서는 에제키엘 예언자를 부르십니다. “사람의 아들아, 일어서라. 내가 너에게 할 말이 있다.”(에제 2,1) 사람의 아들은 다니엘서와 같은 묵시 문학에서 신비로운 존재를 가리키거나 신약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칭호와는 다릅니다. 사람은 히브리 말로 “아담”입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지만 에제키엘은 주님의 영광 앞에서는 그저 나약하고 비참한 사람일 뿐입니다.

 

2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실 때, 영이 내 안으로 들어오셔서 나를 일으켜 세우셨다. 그때 나는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하느님께서 에제키엘에게 말씀하실 때, 하느님의 영이 에제키엘 안으로 들어오셔서 에제키엘을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구원하라는 사명을 맡기시는 이들에게는 당신의 신적인 힘, 곧 당신의 영을 부여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뽑으신 이가 당당하게 그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그 힘은 하느님께로부터 나옵니다. 그러므로 오로지 하느님께 의지하며 부여받은 사명을 수행할 때, 예언자는 자신의 일을 하지 않고 하느님의 일을 하게 됩니다. 하느님께 의지할 때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이제 예언자는 하느님의 사람이기에 그 누구를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그 무엇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3 그분께서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내가 이스라엘 자손들, 나를 반역해 온 저 반역의 민족에게 너를 보낸다. 그들은 저희 조상들처럼 오늘날까지 나를 거역해 왔다. 4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완고한 저 자손들에게 내가 너를 보낸다. 너는 그들에게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하고 말하여라.

하느님께서는 에제키엘을 파견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아, 내가 이스라엘 자손들, 나를 반역해 온 저 반역의 민족에게 너를 보낸다.”(에제2,3)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느님의 크신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하느님을 배반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했습니다. 그들의 조상들이 하느님을 거역하였듯이 그들도 하느님을 거역하였습니다. 이들은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완고하여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잘못을 저질렀으며, 예언자들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매달리실까요? 불순종하고, 거역하며, 뻔뻔하고 마음이 완고한 이 백성에게 왜 매달릴까요? 당신 예언자들을 통하여 “회개하고 나에게 돌아오라.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실까요?

이것은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가장 보잘 것 없는 백성을 선택하셔서 변함없이 당신 사랑을 베풀어 주십니다. 이 사랑을 통해 하느님께서 누구이신지를 알게 됩니다. 이런 백성을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모습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선다면 하느님께서는 사랑과 구원을 주신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5 그들이 듣든, 또는 그들이 반항의 집안이어서 듣지 않든, 자기들 가운데에 예언자가 있다는 사실만은 알게 될 것이다.

등대는 사람들이 보든 보지 않든 그 자리에서 빛을 발합니다. 지나가는 배들에게 길을 안내합니다. 지나가는 배들이 보든 보지 않든 간에 등대는 그 자리에서 자기 일을 합니다. 예언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백성들이 말씀을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간에 예언자는 자신이 부여받은 메시지를 선포해야 합니다. 그들이 반항하여 하느님을 거스른다 할지라도 하느님께서 자신들에게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그들이 말씀을 받아들인다면 하느님께서 자신들을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6 그러니 너 사람의 아들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이 하는 말도 두려워하지 마라. 비록 가시가 너를 둘러싸고, 네가 전갈 떼 가운데에서 산다 하더라도, 그들이 하는 말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의 얼굴을 보고 떨지도 마라. 그들은 반항의 집안이다. 7 듣든 말든 너는 그들에게 나의 말을 전하여라. 그들은 반항의 집안이다.

예언자는 자신이 부여받은 사명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두려움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어부가 물고기를 두려워해서는 물고기를 낚을 수 없고, 예언자가 사람을 두려워해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할 수가 없습니다. 비록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달했을 때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아 예언자를 박해한다 할지라도, 모함과 박해가 예언자를 기다린다 할지라도 예언자는 자신이 부여받은 메시지를 선포해야 합니다.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이 하는 말도 두려워하지 마라. 비록 가시가 너를 둘러싸고, 네가 전갈 떼 가운데에서 산다 하더라도, 그들이 하는 말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의 얼굴을 보고 떨지도 마라. ”(예레2,6)

 

신앙의 역사 안에서 볼 때, 많은 예언자들이 당당하게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였고,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면서 고통을 당하거나 피를 흘렸습니다. 많은 순교자들이 박해자들 앞에서 당당하게 신앙을 선포하며 순교의 월계관을 받아 쓰셨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고통 속에서도 상황이 변하길 기도하지 않고, 그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청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과 함께 하길 청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의 사명을 완수해 나갔고, 그렇게 그들은 자신의 신앙을 지켜 나갔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고 신앙인임을 드러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느라고 신앙을 외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려움 때문에 포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을 알게 되면 그 모습은 변하게 됩니다. 하느님과 함께 하면 당당한 신앙인으로 변화 됩니다.

 

8 너 사람의 아들아, 내가 너에게 하는 말을 들어라. 저 반항의 집안처럼 반항하는 자가 되지 마라. 그리고 입을 벌려 내가 너에게 주는 것을 받아먹어라.” 9 그래서 내가 바라보니, 손 하나가 나에게 뻗쳐 있는데, 거기에는 두루마리 하나가 놓여 있었다. 10 그분께서 그것을 내 앞에 펴 보이시는데, 앞뒤로 글이 적혀 있었다. 거기에는 비탄과 탄식과 한숨이 적혀 있었다.

하느님께서는 에제키엘에게 “저 반항의 집안처럼 반항하는 자가 되지 마라.”(에제2,8)라고 말씀하시면서 에제키엘의 입에 하느님의 말씀을 담아 주십니다. 사실 예언직을 수행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제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주저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할 수 있는 사람을 부르시지 못하는 사람을 부르시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그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하시는 것이기에 그의 능력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에제키엘을 시켜서 당신 백성에게 하실 말씀을 두루마리에 적어 주십니다.

손 하나가 나에게 뻗쳐 있는데, 거기에는 두루마리 하나가 놓여 있었다. 10 그분께서 그것을 내 앞에 펴 보이시는데, 앞뒤로 글이 적혀 있었다.”(에제2,9-10)

 

앞뒤로 글이 적혀 있었다는 것은 에제키엘 예언자가 선포해야 할 하느님의 말씀이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많은 내용은 “비탄과 탄식과 한숨”(에제2,10)이 담겨 있었습니다.

 

비탄은 당신 백성이 고귀한 품위를 잃어버리고 이민족에게 짓밟히며, 고통을 끌어 당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탄식은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해도 자신의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헛된 것에 매달려 멸망의 길을 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원의 손길을 내 밀었지만 그 손길을 외면하니 한숨만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순종하는 이 민족에게도 비탄과 탄식과 한숨이 뿜어져 나올 것입니다. 멸망하여 종살이하러 끌려가는 자신의 처지를 비탄하고, 종살이하면서 고통과 분노와 고된 노역 안에서 탄식하고, 돌아오라는 하느님의 메시지를 외면하고 비참한 처지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한숨짓게 될 것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예언자는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에제키엘 예언자가 받은 소명과 이스라엘 백성의 상황을 생각해보면서 내가 만일 에제키엘 예언자였다면 어떻게 했을까를 이야기 해 봅시다.

 

② 복음을 선포하면서 나를 어렵게 만드는 것은 무엇입니까? 포기하고 싶게 만드는 요소들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나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고, 어떻게 극복하고 있습니까?

 

4.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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