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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작성일 2012-05-12 (토) 16:39
분 류 요한서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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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요한 4,7-21;사랑과 믿음 ”

사랑과 믿음

1. 말씀읽기: 1요한 4,7-21

7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9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10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11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12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13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로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압니다.

14 그리고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증언합니다.

15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머무릅니다.

16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17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되었다는 것은,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분처럼 살고 있기에 우리가 심판 날에 확신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서 드러납니다.

18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 두려움은 벌과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는 이는 아직 자기의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19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20 누가 “나는 하느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21 우리가 그분에게서 받은 계명은 이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2. 말씀연구

우리 모두는 주님께로부터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을 받았고, 받고 있고, 또 받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랑받는 사람답게 사랑해야 합니다. 미움을 움켜 잡으려는 마음을 버리고, 분노를 표출하려는 입을 다물고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기도할 때 주님께서는 내 입에서 분노가 폭발하지 않도록 도와 주시고, 미움을 움켜잡으려는 그 마음을 버릴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주님 앞에서 웃으며 주님 품에 안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7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멀리 있는 것을 선명하게 보기 위해서는 망원경이 필요합니다. 작은 것을 크게 보기 위해서는 현미경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사랑이심을 알기 위해서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을 볼 눈이 없기 때문입니다.

 

“알다”라는 말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누군가가 내 이름이나 얼굴을 알면서도 나를 알고 있다고 말한다면 몹시 서운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나의 겉에 드러나는 얼굴이나 이름만 알지 사실 내면의 것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또 배움의 길을 걷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배우면 배울수록 모르겠다고 하고, 모르면 모를수록 많이 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어떤 것을 배울 때, 그것을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은 더욱 겸손하게 그것을 익히기 위해서 노력을 합니다.

하느님을 안다고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을 안다고 말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것만을 해 나간다면 나는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입으로만 사랑을 고백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은 기도와 희생, 자선과 봉헌으로 드러납니다. 그렇게 사랑을 실천할 때, 하느님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사랑이시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9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10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의 외아드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어 우리가 하느님께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셨고, 하느님께로 나아가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몸소 십자가를 짊어지시고 십자가 위에서 희생제사를 드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느님을 사랑하셨기에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하느님께서도 언제나 예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먼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먼저 당신의 사랑을 우리에게 드러내셨습니다. 그리고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도 사랑이 무엇인지를 몸소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사랑으로 결합되어 있음을 구원역사를 통하여 보여주셨습니다.

 

11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12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하느님을 알고 있다면 하느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사랑을 알고 있다면 그 사랑에 응답해야 합니다. 그 응답은 서로 사랑함을 통해서 드러납니다.

우리는 “무자비한 종의 비유”(마태18,23-35)를 통해서 사랑 받은 사람들은 사랑해야 함을 뼈저리게 체험합니다. 일만 탈렌트라는 엄청난 빚을 탕감 받았지만, 자신에게 겨우 100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감옥에 가둔 그 무자비한 종은 결국 멸망하게 됩니다. 그 주인은 무자비한 종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청하기에 나는 너에게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마태18,32-33) 그러고 나서 화가 난 주인은 그를 고문 형리에게 넘겨 빚진 것을 다 갚게 하였습니다.

 

나는 주님의 크신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랑에 보답해야 합니다.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 삶은 바로 사랑의 삶이고, 사랑의 삶을 통해서 내가 주님과 함께 있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그렇게 결실을 맺는 삶을 우리가 살아갈 때, 하느님께서도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이 결실을 맺는 것입니다. 그것을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농부(하느님)가 땀 흘려 포도밭을 가꿀 때,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들(우리들)이 주렁주렁 포도열매(사랑의 삶)를 맺을 때, 농부는 땀의 결실, 수고의 열매를 얻게 됩니다. 그렇게 열매를 통해서 농부의 수고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13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로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압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보호하시며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들을 기억하게 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영적으로 참되게 기도하면서 성령께 온전히 맡기는 삶을 살아갈 때, 성령께서는 나를 이끄시어 사랑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사랑의 열매를 맺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머물러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둘이나 셋이 모인 곳에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고,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살아가는 당신 자녀들과 함께 계십니다.


14 그리고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증언합니다. 15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머무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고 몸소 희생제사를 드리심으로써 우리를 죄의 종살이에서 풀어 주셨고, 닫혔던 하늘나라의 문을 활짝 열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믿는 이들은 모두 구원을 받게 해 주셨습니다. 이것을 알고 있기에 예수님을 세상의 구원자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의 구원자이심을 알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증언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고 구세주이심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고, 구원자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알고 있기 때문에, 보았기 때문에 증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삶으로 증언합니다. 사랑으로 증언을 합니다. 그렇게 사랑으로 증언하는 이들의 삶은 주님 안에서의 삶이고, 그 삶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 안에 하느님께서 머무심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16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알고 있는 우리는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자체이시기에 당신의 아드님까지 우리에게 내어 주셨던 것입니다. 종을 구원하시려 당신의 외아들을 내어 주신 하느님! 그래서 하느님은 사랑이시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물려고 하는 것입니다.


17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되었다는 것은,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분처럼 살고 있기에 우리가 심판 날에 확신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서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의 생명까지 내어 놓으셨습니다. 벗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당신의 목숨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삶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사랑을 알고 있기에 그 사랑에 응답하며 그렇게 주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을 삶으로 실천하기에, 한없이 부족하지만 주님께서 보여주신 길을 걸어가고 있기에, 주님께서 마지막 날에 구원해 주실 것을 확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완전한 사랑을 실천해서가 아니라 주님께서 한없는 사랑을 베푸시기에 그 사랑에 희망을 걸고, 확신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18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 두려움은 벌과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는 이는 아직 자기의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기에 그 사랑의 실천에 장애되는 것들은 물리치려고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기에 비록 목숨을 위협한다 할지라도 결코 주님께 대한 사랑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순교자들이 그렇게 사랑을 드러내셨습니다. 박해자들의 가혹한 형벌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느님만을 믿고 그 모든 것들을 이겨 내셨습니다. 그 두려움을 주님께 대한 사랑으로 이겨내셨습니다. 그래서 사랑을 하면 오직 주님 밖에는 안 보이는 것입니다.

남들의 눈을 의식해 신자임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삶이 부족하기에 교회에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라고 핑계를 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인임을 드러내지 못하는 이유는 그가 주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신앙인임을 드러내지 못하고, 조금만 어려움이 있어도 뒤로 물러나고, 주님께로부터 돌아서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사랑이 아닙니다.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19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크신 사랑을 먼저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랑을 드리지 않는다 할지라도 끊임없이 사랑을 베푸시며, 주님께로 돌아오기를 바라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언자들을 파견하신 이유는 심판을 선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을 선포하기 위해서이고, 사랑을 선포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이렇게 사랑해 주셨으니, 나 또한 그 사랑에 응답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20 누가 “나는 하느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기 형제자매를 사랑합니다. 비록 그가 나에게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용서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기도하면서 용서해 줍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오른 뺨을 치면 왼뺨마저 돌려 대 주고, 누가 억지로 오리를 가지고 하거든 십리까지 가 주라고 말씀하셨으며, 더 나아가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 옆에 있는 형제자매를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것이 바로 기도하는 신앙인의 삶의 모습이고, 주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삶이며, 겸손하게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또한 눈에 보이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입니다. 형제자매의 모습 안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바라보지 못하기에 그를 사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결국 기도하지 않으면 내 옆에 있는 형제자매들이 누구인지를 모르게 되고, 사랑하지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21 우리가 그분에게서 받은 계명은 이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사랑은 “계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해도 되고, 안 해도 그만인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해야 하는 것. 그것이 바로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운 사람은 노력을 해도 잘 안됩니다. 보기만 해도 얼굴이 굳어지고, 고개를 돌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기도가 부족해서임도 알고 있습니다. 내가 미운 사람을 사랑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내가 받게 될 상도 없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주님께서 내게 베풀어 주신 큰 사랑만을 기억해 봅시다. 그리고 사랑하려고 노력하면서 마음을 비워 봅시다. 그렇게 할 때 사랑이 고이지 않겠습니까? 비운 자리에 사랑이 자리하지 않겠습니까?

 

3. 나눔 및 묵상

① “사랑”하면 떠오르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 해 봅시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② 어떻게 하면 미워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웃을 수 있고, 먼저 손을 내밀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가 내민 손을 잡을 수 있을까요? 더 나아가 그를 위해 기도해 줄 수 있을까요?

③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님께로 나아가기를 두려워하게 하거나, 뒤로 물러나게 하는 것들은 무엇이 있습니까? 무엇이 나의 신앙열정을 흔들고 있습니까?

 

4.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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