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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동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
작성일 2012-09-15 (토) 11:31
분 류 야고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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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고보2,14-26 믿음과 실천 ”

믿음과 실천

1. 말씀읽기: 야고보2,14-26 믿음과 실천

14 나의 형제 여러분,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실천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한 믿음이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15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날 먹을 양식조차 없는데, 16 여러분 가운데 누가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은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이 녹이고 배불리 먹으시오.” 하고 말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17 이와 마찬가지로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18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대에게는 믿음이 있고 나에게는 실천이 있소.” 나에게 실천 없는 그대의 믿음을 보여 주십시오. 나는 실천으로 나의 믿음을 보여 주겠습니다. 19 그대는 하느님께서 한 분이심을 믿습니까? 그것은 잘하는 일입니다. 마귀들도 그렇게 믿고 무서워 떱니다. 20 아, 어리석은 사람이여! 실천 없는 믿음은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싶습니까?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사악을 제단에 바칠 때에 실천으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닙니까? 22 그대도 보다시피, 믿음이 그의 실천과 함께 작용하였고, 실천으로 그의 믿음이 완전하게 된 것입니다.

23 그렇게 하여 “아브라함이 하느님을 믿으니, 하느님께서 그것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다.”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느님의 벗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24 여러분도 보다시피, 사람은 믿음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의롭게 됩니다. 25 마찬가지로 창녀 라합도 심부름꾼들을 맞아들이고 또 그들을 다른 길로 내보냈을 때에 실천으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닙니까?

26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이듯 실천이 없는 믿음도 죽은 것입니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2. 말씀연구

어떤 믿음이 실천하는 믿음이고, 어떤 믿음이 나를 구원하는 믿음일까요? 야고보 사도는 말로만 고백하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행동이 없는 믿음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야고보 사도는 아브라함의 믿음과 라합의 의로운 행동을 통하여 “행동”을 강조합니다. 행동이 없다면 그저 생각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구원하는 믿음은 자비를 베풀게 하고, 형제자매들을 사랑하게 합니다. 나를 구원하는 믿음은 믿음안에서 오는 기쁨 때문에 아까워하지 않고, 계산하지도 않으며, 마침내 주님을 위해서라면 자기 자신까지도 내어 놓게 만듭니다. 그 믿음이 바로 살아 있는 믿음이고, 그 믿음이 바로 나를 구원하는 믿음이며, 그 믿음이 바로 “내가 가지고 있어야 하는 믿음”입니다.

 

① 실천으로 드러나는 나를 구원하는 믿음

신앙은 말하는데 있지 않고 살아가는데 있습니다. 신앙은 삶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자신이 준비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려는 열성으로 말을 하고, 나이가 드신 분들은 삶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성실한 삶과 충실한 삶이 없다면 신앙은 그저 말 뿐인 것이 됩니다.

“기도”라는 말 뒤에는 “한다.” 또는 “바친다, 드린다.”라는 말이 따라옵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행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머릿속에만 있다면 이것은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텔레비전에서 음식프로그램을 보면 먹고 싶은 생각이 들고, 생각은 먹고 있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을 본다고 해서 배가 부른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믿음은 실천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실천이 없다면 그것을 믿음이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자신의 결단을 전제로 하고, 그 결단은 어떻게든 행동으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만일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행동으로는 옮기지 않는다면 그는 결코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태권도 국가대표가 초등학생과 대련해서 졌다면 결코 말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행동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면 그의 내면에는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가진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요? 행동으로 드러나는 믿음일까요? 아니면 죽은 믿음일까요?

 

② 말로만 사랑하는 소용없는 믿음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심판(마태25,31-46)에 관하여 말씀하시면서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25,40)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내 주변에 있는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예수님께 해 드린 것입니다. 나그네를 따뜻하게 맞아들이고, 헐벗은 이들에게 입을 것을 주고, 병든 이들을 돌보아 주며, 감옥에 갇혀 있는 이들을 찾아주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이들이 해야 하는 것이고, 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믿는 이들은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날 먹을 양식조차 없다면” 당연히 자신의 것을 나누어 줍니다. 왜냐하면 매일 주님의 기도를 바치며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고 기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이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양식뿐만 아니라 옆에 있는 형제자매의 양식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기꺼이 자신의 것을 내어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코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은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이 녹이고 배불리 먹으시오.’”(야고2,16)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행동했을 때, 주님께서 자신에게 하실 말씀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이지 않았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병들었을 때와 감옥에 있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마태25,42-43)

 

그러므로 믿음이 있는 이들은 형제자매들을 사랑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랑을 주님께로부터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이 가슴에 담겨 있기에 그 사랑을 전해주고자 많은 노력을 하기 때문입니다.

 

③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야고2,17) 죽었다는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에 실천이 없다면, 그는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매일 기도하고, 성체조배를 하고, 미사에 참례하는 이가 형제자매와 다투고, 병자방문을 한번도 하지 않고, 옆집에 사는 냉담자를 방문하지 않는다면, 그는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믿음은 자신을 기쁘게 만들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며, 주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을 어떻게든 전하고 싶어 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기쁘게 손을 내밀고, 당연하게 자신의 것을 내어 놓습니다.

 

④ 말 뿐인 믿음과 실천하는 믿음

유다인들은 율법을 열심히 지킴으로써 그 행위로 구원된다고 했지만 구원은 주님께서 주시는 것이고, 우리는 주님을 믿음으로써 구원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구원되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기에 믿음대로 살아가고, 믿기에 내 목숨까지도 내어 놓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믿음으로 구원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행위가 없는 믿음, 실천이 없는 믿음은 그것을 믿음이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생각으로 구원되지는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생각이 믿음이라고 착각하는 이”에게 “그대에게는 믿음이 있고 나에게는 실천이 있소. 나에게 실천 없는 그대의 믿음을 보여 주십시오. 나는 실천으로 나의 믿음을 보여 주겠습니다.”(야고2,18) 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당에서는 열심히 기도하고, 자주 미사에 참례하는 형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직장에서는 그가 신앙인인줄 몰랐습니다. 밥을 먹을 때 성호경을 긋고 식사기도를 하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고, 다른 이들에게 신앙을 권면하거나, 자신이 신앙인이라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입니다.

 

본당에서 매일 미사에 참례하는 자매가 있습니다. 그런데 공동체와 어울려서 어떤 것을 해야 할 때는 슬며시 빠져 버립니다. 그렇다고 혼자서 봉사하는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자매는 매일 미사에 참례합니다. 또 비신자 친구들이 많아서 바쁘게 돌아다닙니다. 그리고 비신자 친구들은 이 자매가 열심한 신앙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형제는 열심히 기도합니다. 그런데 누구를 돕자는 얘기를 싫어합니다. 무엇을 하자는 얘기를 싫어합니다. 하지만 그 형제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성모님에 대한 사랑과 성령의 은총에 대한 이야기들입니다.

 

나이가 드신 할아버지 한 분이 계십니다. 누가 뭐라 해도 웃으시고, 말없이 형제자매들을 도와주십니다. 성당에 오실 때는 언제나 묵주를 들고 기도하며 오시고, 성당에 오셔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히면서 주위를 둘러보십니다. 이 할아버지는 자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한 생을 주님을 믿는다고는 했지만, 과연 내 행동이 믿음을 드러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저 믿고 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 하려고는 하고 있습니다.” 다른 이들은 이 할아버지를 행동하는 신앙인이라고 말합니다.

 

믿음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모습을 행동으로 드러냅니다. 향료를 담고 있는 그릇이 향기를 풍기듯 말입니다. 내 안에 담겨져 있는 것은 어떻게든 드러남을 알아야 합니다.

 

⑤ 생각은 생각일 뿐

생각은 생각일 뿐, 그것을 믿음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많은 세상 사람들이 하느님께서 계심을 알고 있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믿고 있는 것을 실천으로 옮기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실천 없는 믿음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야보고 사도는 아브라함과 라합의 경우를 예를 들면서 행동이 왜 중요함을 알려 줍니다.

 

⑥ 아브라함의 믿음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풍성한 복을 내리셨고, 아들까지 주셨습니다. 모든 것을 이뤘다고 생각한 아브라함이 안주하려고 할 때, 하느님께서는 아들 이사악을 바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순명합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모리야 땅으로 가면서, 아들의 발걸음 하나 하나를 눈물로 채우며 하느님께로 나아갔습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은 탄식 속에서도 순명을 하셨습니다. 그렇게 제단에서 아들 이사악을 번재물로 바치려고 할 때,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더 큰 복을 내려 주십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사악을 제단에 바칠 때에 실천으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닙니까? ”(야고보2,21)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을 가진 이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믿음을 실천으로 옮깁니다. 그리고 그 실천은 그가 믿고 있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하느님을 믿으니”라는 것은 믿고 있기에 하느님께서 주신 외아들을 하느님께 다시 드릴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사악의 목숨을 원하신 것이 아니라 이사악까지도 바칠 수 있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원하셨고, 아브라함은 그 믿음을 실천으로 보여드렸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탄식 속에서도 순명하며 아들을 바치려는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⑦ 믿음의 실천으로 의롭게 됨

어떤 기술을 가지고 있는 이가 그것을 행동으로 옮겨보지 않으면 알고 있는 것 마저 잊어버리게 됩니다. 올림픽 경기나 월드컵 경기에서 선수들의 움직임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하기는 쉽지만 막상 해 보라고 하면 전혀 못합니다. 물건을 만드는 장인도 작품으로 자신의 실력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말은 말일 뿐이고, 생각은 생각일 뿐입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유다인들은 할례나 안식일 규정, 정결례 등을 철저하게 지킴으로써, 이 행위로 구원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주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기에 예수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내어 놓을 수 있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오전히 따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믿음에는 자연스럽게 실천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실천만을 가지고 “주님! 제가 이것을 했으니 구원을 주십시오.”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주님께서 은총으로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굳은 믿음을 가지고 이 은총에 감사하며 “주님! 저는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고 고백할 때, 주님께서는 구원을 주십니다. 우리는 그것을 굳게 믿고 있고, 이 믿음으로 우리는 구원되는 것입니다.

 

⑧ 실천으로 의롭게 된 라합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시팀에서 정탐꾼 두 사람을 몰래 보내며, “가서 저 땅과 예리코를 살펴보아라.”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들은 길을 떠나 라합이라고 하는 창녀의 집에 들어가 거기에서 묵었습니다(여호수아2,1). 그런데 이 소식이 예리코 임금에게 전해지게 되었고, 라합의 집에 임금이 보낸 사람들이 들이닥쳤습니다. 그러나 라합은 정탐꾼들을 옥상에 널어놓은 아마 줄기 속에 숨겨놓고는 임금의 사람들에게는 “그 사람들이 저에게 온 것은 맞습니다만 어디에서 왔는지는 몰랐습니다. 그리고 어두워져서 성문이 닫힐 때쯤 그 사람들이 나갔는데,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빨리 그들의 뒤를 쫓아가십시오. 그러면 그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참조: 여호2,2-6) 라고 둘러대어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을 살려 주었습니다.

 

라합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주 당신들의 하느님만이 위로는 하늘에서, 아래로는 땅에서 하느님이십니다.”(여호수아2,11) 라고 믿음을 고백하며 , “내가 당신들에게 호의를 베풀었으니, 당신들도 내 아버지의 집안에 호의를 베풀겠다고 주님을 두고 맹세해 주십시오. 그리고 나에게 신표를 하나 주십시오. 그래서 내 아버지와 어머니와 형제자매, 그리고 그들에게 딸린 모든 이를 살려 주고 우리의 목숨을 죽음에서 구해 주십시오.”(여호수아2,12-13)라고 청합니다. 그리고 정탐꾼들은 “그대들이 우리 일을 알리지만 않는다면, 우리의 목숨으로 그대들의 목숨을 보장하겠소.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 땅을 주실 때에 성심껏 호의를 베풀겠소.” 라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라합에 대한 정탐꾼들의 말을 듣고 “정녕 주님께서 저 땅을 모두 우리 손에 넘겨주셨습니다.”(여호수아2,24)라고 확신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예리코를 점령할 때, 창녀 라합과 그 여자와 함께 집에 있는 사람은 모두 살려 주어라.”(여호수아6,17) 라고 명령합니다. 이렇게 라합은 용기 있는 행동을 통하여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을 구하게 됩니다. 하느님을 믿고, 그 믿음대로 행동했기에 예리코가 함락될 때 자신과 그의 집안을 구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⑨ 실천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

육신이 죽으면 영혼은 하느님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므로 영이 없다는 것은 죽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실천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그런 믿음은 그저 생각일 뿐입니다. 밭을 갈아서 거기에 콩도 심고, 배추도 심고, 고추도 심겠다고 생각을 했지만, 이리 저리 미루다보면 밭에는 풀만 가득하게 됩니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묘종을 심는 수고를 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거둘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실천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고, 주님 앞에 아무 쓸모없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믿음이 있는 나는 내 옆에 있는 형제자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요? 어떻게 내 형제자매들에게 내 믿음을 드러내야 할까요?

 

② 행동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씀하시는 야고보 사도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면서, 내 안에서 나를 죽은 믿음으로 유혹하고 있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그리고 그 유혹들을 나는 왜 떨쳐 버리지 못할까요?

 

4.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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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숙한 그리스도인
작성일 2012-07-23 (월) 09:53
분 류 에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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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121.xxx.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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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페4,1-16;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일치 ”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일치

1. 말씀읽기: 에페4,1-16

1 그러므로 주님 안에서 수인이 된 내가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2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 주며,

3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

4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에 하나의 희망을 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5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고,

6 만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만물을 통하여, 만물 안에 계십니다.

7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나누어 주시는 은혜의 양에 따라, 우리는 저마다 은총을 받았습니다.

8 그래서 성경도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께서는 높은 데로 오르시어 포로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9 “그분께서 올라가셨다.”는 것은 그분께서 아주 낮은 곳 곧 땅으로 내려와 계셨다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10 내려오셨던 그분이 바로 만물을 충만케 하시려고 가장 높은 하늘로 올라가신 분이십니다.

11 그분께서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예언자로, 어떤 이들은 복음 선포자로, 어떤 이들은 목자나 교사로 세워 주셨습니다.

12 성도들이 직무를 수행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성장시키는 일을 하도록, 그들을 준비시키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3 그리하여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서 일치를 이루고 성숙한 사람이 되며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다다르게 됩니다.

14 그러면 우리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닐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사람들의 속임수나 간교한 계략에서 나온 가르침의 온갖 풍랑에 흔들리고 이리저리 밀려다닙니다.

15 우리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모든 면에서 자라나 그분에게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분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16 그분 덕분에, 영양을 공급하는 각각의 관절로 온몸이 잘 결합되고 연결됩니다. 또한 각 기관이 알맞게 기능을 하여 온몸이 자라나게 됩니다. 그리하여 사랑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한 마음으로 같은 믿음을 고백하며 하느님께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치를 깨뜨리는 것들이 있는데, 개인의 성숙하지 못한 인격도 공동체의 일치를 깨뜨립니다. 그리고 이단이나 거짓된 가르침도 공동체를 깨뜨립니다. 요즘 한국 교회는 “나주 율리아 현상”이나 “신천지교”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거짓된 주장에 현혹되어 진실을 버리고, 구원을 포기합니다. 그리고 거짓에 속아서 그 속에 구원이 있다고 착각을 합니다. 또한 자신만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도 그 멸망 속으로 이끌어 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 안에서 같은 믿음과 같은 사랑을 가지고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가 되는 데 방해되는 것들을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1 그러므로 주님 안에서 수인이 된 내가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2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 주며, 3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

바오로 사도는 에페소 공동체 구성원들이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기를 권고합니다. 부르심에 합당한 생활은 “① 겸손과 온유 ② 사랑 ③ 일치”입니다.

 

① 겸손과 온유

공동체 안에서 형제자매들에게 신앙의 모범을 보여주고, 그들을 주님께로 이끌며, 함께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겸손하고 온유해야 합니다. 한 형제가 예비자 과정에서 심한 혼란을 겪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권면한 형제가 신앙적인 모범과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으며, 자신을 이용하려 하고, 너무도 피곤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저런 사람이 신앙생활을 할까? 왜 처음에 저런 모습을 보지 못했을까?”를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모습이 신앙이 아님을 교리과정과 신앙생활 안에서 발견했기에 더욱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신앙의 끈을 놓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도 겸손과 온유에서 벗어난 삶은 초심자들과 예비신자들에게 큰 혼란을 주면서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모르는 내 모습이 그들을 고통스럽게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② 사랑

바오로 사도는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 줄 것”을 권고합니다. 내 옆에 이들이 내 마음에 들지 않고, 부족할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변화되지 않고, 오히려 정도가 심해질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와 거리를 두고, 그를 외면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외면하게 되면 그는 결국 공동체 안에서 떨어져 나가게 됩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사랑”을 이야기 합니다. 사랑은 한 번 더 참아주고, 한 번 더 기회를 주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용서하시면서 끊이없이 참아주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나 또한 그렇게 사랑하면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③ 일치

바오로 사도는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에페4,3)를 보존하도록 애쓰라고 권고합니다. 공동체를 파괴하기는 쉽지만 다시 만들기는 쉽지 않습니다. 성령께서는 믿는 이들을 이끄시어 같은 믿음을 고백하게 해 주십니다. 서로 사랑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평화를 간직하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성령께서는 이렇게 공동체를 서로 일치시켜 주십니다. 그러나 성령의 이끄심에 응답하지 않으면 공동체는 결코 일치하지 못합니다. 오순절에 성령의 이끄심대로 사도들이 말을 했을 때 모인 군중들은 모두 자기네 말로 들었습니다. 이것은 사도들이 말한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사도들을 통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이끄심에 온전히 응답하고, 기도 안에서 성령께 맡기는 삶. 그 삶이 바로 일치를 이루는 삶임을 알아야 합니다.

 

공동체의 일치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나 이 선물을 관리하는 이들은 공동체이며, 그 공동체 구성원인 “나”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알 때, 그 일치를 보존하기 위해 더욱 노력하게 됩니다.

 

4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에 하나의 희망을 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5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고, 6 만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만물을 통하여, 만물 안에 계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녀들을 부르시어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로 삼으셨고, 당신 자녀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약속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은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하느님 나라를 차지할 희망을 가지고 오늘도 성실하게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각자에게 맡는 다양한 은사를 주시어, 공동체의 선익과 공동체의 일치를 위하여 봉사하게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이 모두 다양한 은사를 받았지만 그 은사를 주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이 성찬의 식탁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 모시는데, 그리스도는 한 분이시고, 우리는 같은 빵(그리스도의 몸)을 나누어 모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한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은 하느님 한 분을 향하는 것이고, 우리의 구원도 하느님 한 분에게서 옵니다. 그러므로 이교도들이나 사이비 종교에 빠진 이들이 전하는 것들에 관심을 기울여서는 안 됩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현대에도 다양한 유혹들이 신앙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의 신앙과 한 분이신 하느님만을 바라본다며 이 모든 유혹은 이겨낼 수 있습니다. 공동체의 일치는 지켜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7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나누어 주시는 은혜의 양에 따라, 우리는 저마다 은총을 받았습니다. 8 그래서 성경도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께서는 높은 데로 오르시어 포로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9 “그분께서 올라가셨다.”는 것은 그분께서 아주 낮은 곳 곧 땅으로 내려와 계셨다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10 내려오셨던 그분이 바로 만물을 충만케 하시려고 가장 높은 하늘로 올라가신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에게 아낌없이 당신 사랑을 쏟아 부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높은 데로 오르시어 포로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에페4,8)라고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편에는 19 주 하느님으로 좌정하시려고 당신께서는 포로들을 거느리시고 높은 데로 오르셨으며 사람들에게서, 심지어 반항자들에게서도 예물을 받으셨습니다.”(시편68,19)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바오로 사도는 이 말씀을 모세가 시나이 산 위에 올라가 십계명을 받아온 것을 기억 하면서 “선물을 주셨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사랑하셨고, 당신 백성이 생명을 얻도록 하시기 위해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교회를 세우셨고, 성령을 통하여 교회를 성장시키셨으며, 다양한 은사를 통하여 당신 백성들에게 선물을 베풀어 주십니다. 다양한 직무를 통하여 교회를 성장시키십니다.

 

11 그분께서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예언자로, 어떤 이들은 복음 선포자로, 어떤 이들은 목자나 교사로 세워 주셨습니다. 12 성도들이 직무를 수행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성장시키는 일을 하도록, 그들을 준비시키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3 그리하여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서 일치를 이루고 성숙한 사람이 되며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다다르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백성이 일치하기를 원하시고, 성장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예언자로, 또 어떤 이들은 복음 선포자로, 또 어떤 이들은 목자나 교사로 세워 주셨습니다. 성실한 직무 수행을 통하여 교회(그리스도의 몸)는 성장합니다. 성실한 직무 수행을 통하여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굳은 믿음과 지식을 가지고, 주님 안에서 주님과 함께 일치하며 성숙한 신앙을 고백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걸으신 그 길(사랑의 길, 일치의 길, 겸손과 온유의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14 그러면 우리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닐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사람들의 속임수나 간교한 계략에서 나온 가르침의 온갖 풍랑에 흔들리고 이리저리 밀려다닙니다. 15 우리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모든 면에서 자라나 그분에게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분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 신앙이 무엇이고,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누구인지를 알고 있는 이들은 간교한 유혹자들의 계략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흔들리지도 않고,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단호하게 대처합니다. 왜냐하면 사도들의 가르침이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모든 면에서 자라나 주님께로 이르게 하는 길”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을 받았고,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은 유아기적인 상태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어린아이는 영적으로나 지적으로나 미성숙한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쉽게 흔들리고, 쉽게 유혹에 넘어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신앙인들은 미성숙한 사람이나 불신자들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는 성숙에 도달해야 합니다. 간교한 계략에서 나온 가르침의 온갖 풍랑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 말씀으로 무장하고, 그 말씀의 의미를 온전히 깨달으며, 깨달은 바를 실천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리저리 밀려다니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모든 면에서 자라나 영적으로나 지적으로 성숙을 이루어 주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16 그분 덕분에, 영양을 공급하는 각각의 관절로 온몸이 잘 결합되고 연결됩니다. 또한 각 기관이 알맞게 기능을 하여 온몸이 자라나게 됩니다. 그리하여 사랑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구원하시는 분이시고, 내가 구원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힘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육신이 음식으로 양분을 얻어서 힘을 내고 건강하게 되는 것처럼, 당신 은총을 부어 주시어 우리를 사랑으로 성장시키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은총 안에서 살아가는 나는 힘을 내어 신앙생활을 더욱 성실하게 해야 하고, 사랑으로 형제자매들을 감싸주고, 겸손하고 온화하게 형제자매들에게 다가가며, 공동체를 일치시켜야 합니다.

 

나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나는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굳게 믿습니다. 나는 기도하며 성령께 온전히 나를 맡깁니다. 그래서 성령께서는 나를 이끄시어 헛된 것에 현혹되지 않게 해 주시고,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공동체 안에서 친교를 나누며 공동체의 성장과 성숙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런 모습이 아니라면 나는 아직 유아기적 단계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며, 말로만 살아가는 신앙인임에 틀림없습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주변에는 많는 이단이나 사이비 종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나에게 접근하여 나의 신앙을 흔들어 놓고, 또 내가 대답할 수 없게 만들어 당황하게 될 때, 나는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처신하고 있습니까?

 

② 신앙인의 성장과 성숙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고, 신앙인들에게 성장과 성숙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신앙인들이 노력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4.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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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모퉁잇돌, 모퉁이의 머릿돌
작성일 2012-07-20 (금) 15:42
분 류 에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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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페소2,11-22;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됨 ”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됨

1. 말씀읽기: 에페소2,11-22

11 그러므로 이민족으로 태어난 여러분은 한때, 사람 손으로 몸에다 행하는 이른바 ‘할례를 받은 자들’에게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이라고 불렸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12 그때에는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관계가 없었고,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으며, 약속의 계약과도 무관하였고, 이 세상에서 아무 희망도 가지지 못한 채 하느님 없이 살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13 그러나 이제, 한때 멀리 있던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하느님과 가까워졌습니다. 14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이 둘을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셨습니다. 15 또 그 모든 계명과 조문과 함께 율법을 폐지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여 당신 안에서 두 인간을 하나의 새 인간으로 창조하시어 평화를 이룩하시고, 16 십자가를 통하여 양쪽을 한 몸 안에서 하느님과 화해시키시어, 그 적개심을 당신 안에서 없애셨습니다. 17 이렇게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시어, 멀리 있던 여러분에게도 평화를 선포하시고 가까이 있던 이들에게도 평화를 선포하셨습니다. 18 그래서 그분을 통하여 우리 양쪽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19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제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함께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 20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 21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22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2. 말씀연구

우리 모두는 주님 안에서 하나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놓으시어 우리를 구원하셨고,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참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당신 양떼를 모으시어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셨고, 성령을 보내시어 당신 교회를 보호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렇게 참된 목자이신 예수님을 믿고, 하느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며 세례성사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를 성령께서는 이끄시어 온전한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주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났고, 한 믿음을 고백하며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참된 목자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며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 되어 하느님 아버지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11 그러므로 이민족으로 태어난 여러분은 한때, 사람 손으로 몸에다 행하는 이른바 ‘할례를 받은 자들’에게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이라고 불렸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에페소 교회의 신자들은 유다인들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받아들이고, 그리스도교를 믿고 있는 이들입니다. 또 유다인들이 받은 할례를 받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에페소 교회의 신자들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었고, 할례를 통해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또한 하느님 백성은 하나인데 이민족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하느님을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하느님을 믿어서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12 그때에는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관계가 없었고,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으며, 약속의 계약과도 무관하였고, 이 세상에서 아무 희망도 가지지 못한 채 하느님 없이 살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하느님을 몰랐을 때는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주시는 은총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 공동체와도 관계가 없었고, 구원과도 무관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오로 사도는 이런 상태를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 희망도 가지지 못한 채 하느님 없이 살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에페2,12)

 

이것을 기억한다면 지금 하느님의 자녀로서 살아가고 있는 것을 감사할 수 있고, 은총 안에서 살아갈 수 있으며, 오로지 생명에로만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억하기에 감사하고, 감사하기에 기도하며, 기도하기에 은총안에서 살아가고, 은총 안에서 살아가기에 영원한 생명을 미리 맛보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지 못하면 하느님을 알지 못하던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 생명과는 거리가 멀게 살아가게 됩니다.

 

13 그러나 이제, 한때 멀리 있던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하느님과 가까워졌습니다. 14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이 둘을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신지를 알았기에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며 세례성사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느님과 가까워졌습니다. 그러므로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알게 해 주시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셨으며,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놓으시어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에페2,13) 그 평화를 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놓으셨고, 부활하시어 제자들에게 처음 하신 말씀이 바로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20,19))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통하여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 놓으셨습니다. 유다인과 이방인의 구분을 없애셨고, 믿음을 가지고 나아오는 모든 이들에게 구원의 은총을 무상으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안에서 모든 벽이 사라졌고, “하느님의 자녀”로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이 둘을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셨습니다. ”(에페2,13)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당시 이방인들의 출입을 금하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전에서 “유다인들의 뜰”과 “이방인들의 뜰”을 가르고 있던 난간을 염두에 두면서 하느님 나라에서는 그 장벽(적개심)이 없음을, 모두가 하나임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참된 평화가 주어집니다. 믿는 모든 이들에게는 구분도 없고, 막힘도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 안에서 모두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주님 안에서 하나이기에 두려움도 없고, 분열도 없으며, 갈등도 없기 때문입니다.


15 또 그 모든 계명과 조문과 함께 율법을 폐지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여 당신 안에서 두 인간을 하나의 새 인간으로 창조하시어 평화를 이룩하시고, 16 십자가를 통하여 양쪽을 한 몸 안에서 하느님과 화해시키시어, 그 적개심을 당신 안에서 없애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모든 계명과 규정들을 “하느님 사랑(신명6,4)과 이웃사랑(레위19,18)”으로 단순화 시키셨습니다. 무거운 짐과 불편한 멍에가 아니라 가볍고 기쁜 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율법의 완성을 통하여 “지극히 완고하고 배타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보편적인 의로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 구원되는 것이 아니라 은총으로 구원됨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유다인들에게는 자신들이 형식적으로 지키는 율법의 폐지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율법의 완성”입니다. 그렇게 폐지와 완성을 통하여 유다인과 비 유다인의 구분을 없애시고, 그리스도인으로 새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하나의 새 인간으로 창조(에페2,15)하신 것입니다. 새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로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는 이들을 당신과 동일시하십니다(참조: 사도9,5).

 

예수님의 십자가로 구원받은 이들은 교회 안에서 하나가 되어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와 경배를 드립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공로를 보시고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이제 인간은 믿음을 고백하고 세례성사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품위를 얻게 되었으며, 마침내 하느님 나라를 상속할 수 있는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적개심을 당신 안에서 없애셨습니다. ”(에페2,16)라는 것은 율법을 통하여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받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을 갈라놓고 적대감을 갖게 했습니다. 할례를 비롯한 수많은 율법 규정들은 비유다인들이 하느님께로 나아가는데 있어서 장애물이 되었고, 유다인들과 비유다인들을 분리시키는 벽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율법의 완성자이신 예수님께서는 당신 안에서(①십자가에 달리신 몸, ②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그 모든 것들을 허물어 버리시고, 없어 배리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구원의 문은 누구에게나 활짝 열렸고, 믿는 모든 이들은 교회 안에서 이미 시작된 구원을 살아가게 하신 것입니다.

 

 

17 이렇게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시어, 멀리 있던 여러분에게도 평화를 선포하시고 가까이 있던 이들에게도 평화를 선포하셨습니다. 18 그래서 그분을 통하여 우리 양쪽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 모든 민족들이 주님을 섬기게 될 날이 올 것임을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예고(참조: 이사 56장~57장)하셨습니다. 그래서 유다인이든 유다인이 아니든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아버지 하느님께로 나아오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수하셨고, 성령께서는 주님의 백성들을 아버지 하느님께로 이끌고 계십니다.

 

이것이 바로 참된 평화입니다. 어느 누구도 차별이 없고, 한없는 기쁨 속에서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것. 그 평화를 주님께서는 사도들을 통하여 선포하게 하셨으며, 에페소 교회의 공동체도 그 평화를 받아들여 성령 안에서 하나 되어 하느님 아버지를 찬양하게 된 것입니다.

 

19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제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함께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 20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

믿는 이들은 주님 안에서 서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에페소 교회의 공동체도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성도들과 함께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에페2,19)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에페2,20)이라는 것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이 주님의 말씀을 전하여 그들이 주님을 믿게 되었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수고의 땀과 열정적인 복음선포가 있었기에 이들이 믿음을 가지게 되었으니, 당연히 사도들과 예언자들은 에페소 공동체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모퉁잇돌”(에페2,20)이라고 하는 것은 이방인들과 유다인들이 만나는 곳, 하느님을 알고 있던 사람들과 하느님을 모르고 있던 사람들이 만나는 곳의 연결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모퉁잇돌)을 중심으로 믿는 모든 이들이 하나가 되었고, 하느님의 한 가족이 된 것입니다.

 

21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22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은 믿는 이들이 예수님 안에서 하나 되어 주님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리는 그리스도 공동체를 말합니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바로 구원자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 공동체는 성령께서 이끄시어 하느님을 섬기며, 하느님 나라를 미리 맛보며 살아가게 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건물”을 이야기 합니다. 건물이 온전한 건물이 되기 위해서는 기초를 다져야 하고, 기둥과 벽들이 튼튼해야 하며, 건물의 모든 구성 요소들이 자기 역할을 잘 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건물 안에서 쾌적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짓는 건물은 바로 하느님의 성전이며,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여야 하고, 성령의 이끄심에 온전히 맡겨야 합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인 공동체, 즉 교회는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느님께서 머무시며, 교회를 통하여 온갖 은총을 풍부하게 받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사랑에 온전히 응답할 때, 나는 하느님 나라의 멋진 지체가 될 것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우리 모두는 주님 안에서 하나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 옆에 있는 형제자매들과 내가 하나라는 생각이 들 때는 언제이고, 형제자매들이 나와 관계가 없다고 생각될 때는 언제입니까?

 

② 내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 형제자매들과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그리고 주님 안에서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살아가기 위해서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4. 실천사항

① 나를 사랑하시는 예수님께 감사 드리고 예수님 안에 머물기.

② 형제자매들과 일치하기 위하여 나를 버리고 예수님으로 채우기

③ 교회 공동체를 위하여 기도하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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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상속자, 구원, 성령의 보증
작성일 2012-07-11 (수) 19:12
분 류 에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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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페1,1-14;그리스도를 통하여 베풀어진 은총 ”

그리스도를 통하여 베풀어진 은총

1. 말씀읽기: 에페1,1-14

인사

1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가 된 바오로가 에페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사는 신자들에게 인사합니다. 2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베풀어진 은총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5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6 그리하여 사랑하시는 아드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총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풍성한 은총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8 하느님께서는 이 은총을 우리에게 넘치도록 베푸셨습니다. 당신의 지혜와 통찰력을 다하시어, 9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신 당신 선의에 따라 우리에게 당신 뜻의 신비를 알려 주셨습니다. 10 그것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는 계획입니다. 11 만물을 당신의 결정과 뜻대로 이루시는 분의 의향에 따라 미리 정해진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몫을 얻게 되었습니다. 12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이미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 우리가 당신의 영광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13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여러분을 위한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 안에서 믿게 되었을 때, 약속된 성령의 인장을 받았습니다. 14 우리가 하느님의 소유로서 속량될 때까지, 이 성령께서 우리가 받을 상속의 보증이 되어 주시어,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십니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2. 말씀연구

에페소서는 필리피서, 콜로새서, 필레몬서와 함께 “옥중 서간”이라고 불립니다. 바오로 사도는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3,1;4,1;6,20; 콜로4,3;10,18;필레9.10.13.27 참조) 서간을 작성하고 서간을 공동체에 보내는데 티키코스의 도움을 받습니다.(에페6,21-22; 콜로4,7-8) 에페소서는 콜로새서와 공유되는 부분들이 많이 있는데, 이는 에페소서가 콜로새서를 이용한다는 사실로 정리가 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서 주어지는 은총에 대해서 이야기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은총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구원의 복음을 믿으며,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살아가며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게 됩니다. 따라서 내가 은총 안에서 살아가느냐, 살아가지 못하느냐는 지금 이 시간의 행동으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해 봅시다.

 

1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가 된 바오로가 에페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사는 신자들에게 인사합니다. 2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 에수님의 사도가 된 바오로”라는 표현을 통해서 바오로는 자신이 누군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에페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사는 신자들에게 인사합니다.”라고 말하며 에페소서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에페1,2)라고 축복합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베풀어진 은총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5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6 그리하여 사랑하시는 아드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총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풍성한 은총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①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고, ② 우리가 하느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으며 ③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결정하셨습니다. ④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죄의 용서(속량)를 받았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크신 은총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찬양받으셔야 합니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 - 에페소서의 중심 주제

에페소서의 중심 주제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입니다. 이 계획은 창조 이전 영원의 차원에서 미리 결정되어 인류의 역사가 흘러오는 동안에 가려져 있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실현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사도들에게 계시되어 온 세상에 선포되었습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구원 행위, 곧 새로운 창조가 실제로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이러한 교회의 “머리”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교회는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에서 시작하여 온 세상으로 팽창해 나가는데, 이것을 몸의 성장, 하느님 집의 건설 등으로 표현합니다. 세례성사를 통하여 이 “몸”의 지체가 된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을 찬미하면서 하느님의 새로운 창조에 동참하게 됩니다.

 

사랑으로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셨습니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오로지 사랑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멸망을 하느님 탓으로 돌려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자녀들은 사랑이신 하느님 안에서 사랑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하느님의 그 사랑을 온 세상에 전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받는 사람의 삶의 자세입니다.

 

8 하느님께서는 이 은총을 우리에게 넘치도록 베푸셨습니다. 당신의 지혜와 통찰력을 다하시어, 9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신 당신 선의에 따라 우리에게 당신 뜻의 신비를 알려 주셨습니다. 10 그것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는 계획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고, 은혜를 베푸셨으며, 우리를 용서하셨고, 우리를 예수님과 함께 일으키시고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 앉히셨으며(에페2,6),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시고자 하셨습니다. 또 우리를 상속자로 삼으셨고( 에페1,11: 그리스도 안에서 한몫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선행을 하며 살아가도록 그 선행을 미리 준비하셨으며(에페2,10),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죄의 용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야말로 구원의 중개자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신 당신 뜻의 신비(구원의 계획)를 알려 주셨습니다(에페1,9) 이 신비는 하느님의 계획안에 감추어져 있었으나, 이제 교회를 통해 드러나는 현실을 지칭합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신비입니다.

 

때가 찬다는 것은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이 세상에 보내셨다.”는 것과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시작된 교회의 때“를 가리킵니다.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는 계획”(에페1,10)을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데 모아진다는 것은 세상 모든 것들이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만물의 파괴된 질서를 새롭게 회복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물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을 얻고, 그리스도 아래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신비가 계시되고 실현되며 전개되는 그리스도의 때를 살아가고 있고,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11 만물을 당신의 결정과 뜻대로 이루시는 분의 의향에 따라 미리 정해진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몫을 얻게 되었습니다. 12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이미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 우리가 당신의 영광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한 몫을 얻게 되었다는 것은 하느님 나라의 상속 재산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활짝 열어 놓으신 하느님 나라에 이미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12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이미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 우리가 당신의 영광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에페1,12) 이것이 바로 사랑으로 온 세상의 구원 계획을 세우신 하느님 아버지의 뜻입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구원입니다. 그래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난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 아버지의 계획입니다. 그렇게 감당할 수 없는 상속을 했을 때, 그리스도인들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것은 “끊임없는 찬미와 찬양”입니다.

 

13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여러분을 위한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 안에서 믿게 되었을 때, 약속된 성령의 인장을 받았습니다. 14 우리가 하느님의 소유로서 속량될 때까지, 이 성령께서 우리가 받을 상속의 보증이 되어 주시어,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례 성사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나고 성령의 인장(인호)을 받았습니다. 이제 세례성사로 새롭게 태어난 이들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고,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속과 속량의 완성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재림)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가 받을 상속의 보증이 되어 주시어,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십니다.”(에페1,14) 즉, 보증인이 확실하니까 염려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소유로서 하느님 나라를 차지할 때까지,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이끄심에 온전히 의지하며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은 하느님을 찬미 찬양합니다. 나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영원한 생명과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기를 희망하며 하루하루를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내 삶은 하느님을 찬미 찬양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은총은 무엇이 있습니까? 어떤 은총 속에서 하느님께 찬미와 찬양을 드리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② 하느님을 찬양하는 삶은 어떤 삶입니까? 나는 하느님을 어떻게 찬양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찬양해야 합니까?

 

4.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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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겸손, 초심자의 교만, 기쁨
작성일 2012-07-08 (일) 09:42
분 류 코린토 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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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코린12,1-10;바오로가 받은 환시와 계시 ”

바오로가 받은 환시와 계시

 

1. 말씀읽기: 2코린12,1-10

1 이로울 것이 없지만 나는 자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예 주님께서 보여 주신 환시와 계시까지 말하렵니다.

2 나는 그리스도를 믿는 어떤 사람을 알고 있는데, 그 사람은 열네 해 전에 셋째 하늘까지 들어 올려진 일이 있습니다. 나로서는 몸째 그리되었는지 알 길이 없고 몸을 떠나 그리되었는지 알 길이 없지만, 하느님께서는 아십니다.

3 나는 그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나로서는 몸째 그리되었는지 몸을 떠나 그리되었는지 알 길이 없지만, 하느님께서는 아십니다.

4 낙원까지 들어 올려진 그는 발설할 수 없는 말씀을 들었는데, 그 말씀은 어떠한 인간도 누설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5 이런 사람에 대해서라면 내가 자랑하겠지만, 나 자신에 대해서는 내 약점밖에 자랑하지 않으렵니다.

6 내가 설사 자랑하고 싶어 하더라도, 진실을 말할 터이므로 어리석은 꼴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랑은 그만두겠습니다. 사람들이 나에게서 보고 듣는 것 이상으로 나를 생각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7 그 계시들이 엄청난 것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내가 자만하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으로, 나를 줄곧 찔러 대 내가 자만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8 이 일과 관련하여, 나는 그것이 나에게서 떠나게 해 주십사고 주님께 세 번이나 청하였습니다.

9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

10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약함도 모욕도 재난도 박해도 역경도 달갑게 여깁니다.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2. 말씀연구

초심자들은 자신이 받은 작은 은총을 마치 성인 성녀들이 이룬 성덕에 도달한 것처럼 자랑하고 교만해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다양한 은총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런데 그 은총은 더욱 사랑하게 만들고, 더욱 겸손하게 만들며, 더더욱 기도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러므로 어떤 이가 하느님의 은총을 자랑할 때 사랑하지 않고, 겸손하지 않고, 더더욱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는 그가 받은 것마저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코린토 교회에서 바오로의 반대자들은 자신들이 받은 신비적 체험들을 자랑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신비적 체험들은 체험 당사자들을 더욱 주님께로 나아가게 하여 공동체를 성화시키는데 도움이 되어야 하는데, 자랑하며,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계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1 이로울 것이 없지만 나는 자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예 주님께서 보여 주신 환시와 계시까지 말하렵니다. 2 나는 그리스도를 믿는 어떤 사람을 알고 있는데, 그 사람은 열네 해 전에 셋째 하늘까지 들어 올려진 일이 있습니다. 나로서는 몸째 그리되었는지 알 길이 없고 몸을 떠나 그리되었는지 알 길이 없지만, 하느님께서는 아십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교를 박해사다가 주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아 복음을 전하게 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코린토의 교우들은 신령한 말에 현혹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바오로의 적대자들은 현시와 계시와 같은 신비적 체험담들에 빠져 들어가며 공동체를 분열시켰습니다. 더 나아가 이들은 바오로 사도는 신비가가 아니라고 비방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공동체를 위하여 자신이 누구보다도 신령한 말들을 잘하고, 신비스러운 환시나 계시들을 더 많이 체험했노라고 본의 아니게 말합니다. “이로울 것이 없지만 나는 자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예 주님께서 보여 주신 환시와 계시까지 말하렵니다.”(2코린12,1) 복음을 전하는 이는 공동체를 일치시키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로울 것이 없지만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체험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을 “그리스도를 믿는 어떤 사람”이라고 표현하면서 “ 그 사람은 열네 해 전에 셋째 하늘까지 들어 올려진 일이 있습니다. 나로서는 몸째 그리되었는지 알 길이 없고 몸을 떠나 그리되었는지 알 길이 없지만, 하느님께서는 아십니다.”(2코린12,2-3) 이러한 은총을 주시는 분은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아십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3 나는 그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나로서는 몸째 그리되었는지 몸을 떠나 그리되었는지 알 길이 없지만, 하느님께서는 아십니다. 4 낙원까지 들어 올려진 그는 발설할 수 없는 말씀을 들었는데, 그 말씀은 어떠한 인간도 누설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무아경에서 체험한 일이라 몸을 지니고 승천했는지, 몸은 땅에 두고 영만 승천했는지 알 길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아십니다. 낙원은 의인들이 죽어서, 또는 의인들이 종말에 부활하여 가는 곳인데, 이곳에서 바오로 사도는 남들에게 발설해서는 안되는 말을 들었다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신비적인 체험은 하느님께서 개인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이것은 연인과 연인의 밀어입니다. 그것을 연인과 공유해야지 다른 이들에게 이야기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은사를 받았다고, 어떤 체험을 했다고 자기 자랑을 위해서 떠들어서는 안 됩니다. 은사를 받은 사람답게, 은총체험을 한 사람답게 공동체에게 모범을 보이며, 일치와 평화를 이루며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5 이런 사람에 대해서라면 내가 자랑하겠지만, 나 자신에 대해서는 내 약점밖에 자랑하지 않으렵니다. 6 내가 설사 자랑하고 싶어 하더라도, 진실을 말할 터이므로 어리석은 꼴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랑은 그만두겠습니다. 사람들이 나에게서 보고 듣는 것 이상으로 나를 생각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이 받은 은총을 자랑하지 않고 오히려 약점을 자랑하려 합니다. 이것이 바로 공동체를 일치시키는 목자의 삶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이 받은 은총을 말할 때 거짓을 말하거나 과자응ㄹ 말하지 않을 것이므로 어리석은 꼴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사도 자신을 보고 듣는 것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게 하려고 자랑을 그만 두겠다고 합니다.

 

7 그 계시들이 엄청난 것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내가 자만하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으로, 나를 줄곧 찔러 대 내가 자만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바오로 사도가 자신이 받은 은사들을 말하지 않은 것은 “그 계시들이 엄청난 것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2코린 12,7) 라고 말합니다. 말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사람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초심자들에게서 드러나는 현상 중의 하나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이 자만하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자신의 몸에 가시를 주셨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가시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많은 이들은 바오로 사도의 지병으로 알아듣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병을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으로, 나를 줄곧 찔러 대 내가 자만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2코린12,7) 라고 이해하며 더욱 겸손하게 복음을 선포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밝힙니다.

 

8 이 일과 관련하여, 나는 그것이 나에게서 떠나게 해 주십사고 주님께 세 번이나 청하였습니다. 9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주님께 세 번이나 그 고통이 바오로에게서 떠나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지만 주님께서는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2코린12,8) 라고 말씀하시면서 그 고통을 받아들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함께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는 이는 바오로 사도가 아니라 바오로를 통해 주님께서 전하시는 것입니다. 바오로가 하고자 하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바오로를 통해서 주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것을 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약하면 약할수록 주님께 의지하고, 약하면 약할수록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기억하며, 약하면 약할수록 주님과 함께 하려 하기에 바오로 사도는 더없이 기쁘게 자신의 약점을 자랑하려 합니다.

 

10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약함도 모욕도 재난도 박해도 역경도 달갑게 여깁니다.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

바오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것을 잘 알고 있는 바오로 사도는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약함도 모욕도 재난도 박해도 역경도 달갑게 여깁니다.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2코린12,10ㄱ) 라고 고백을 합니다. 주님 안에서 살아가며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수행해야 하기에 자신의 약함은 약점이 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알고 바오로를 부르셨기에 그것마저도 당당하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모욕을 받는 것도, 재난도 박해도, 역경도 모두 달갑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부르시어 파견하신 예수 그리스께서 함께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모두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 ”(2코린12,10ㄴ)라고 당당하게 고백합니다.

 

나를 부르신 분은 주님이십니다. 나와 함께 해 주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하시는 것이기에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고통 속에서 절망해서도 안 됩니다. 내 힘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서도 안됩니다. 왜냐하면 나는 주님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초심자들은 자기가 받은 은총이 너무 기쁜 나머지 자랑하고 싶은 충동을 자제하기 힘들어 합니다. 더 나아가 자신이 받은 은총을 과장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겸손을 잃어 버리고, 공동체를 분열시킬 때도 있습니다. 내가 받은 은총들은 어떤 것이 있으며, 그것을 자랑하고 싶어서 교만해졌을 때는 언제입니까?

 

②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고통 속에서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께 의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자세와 노력이 필요할까요? 그리고 나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➂ 나를 강하게 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나를 이끄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나의 변화된 모습을 돌아보고, 그 기쁨을 함께 이야기 해 봅시다.

 

4.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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